[2020 런던,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⑴, 이진준 작가 비평]각자의 내밀한 정원에서, 경계공간 거닐기
[2020 런던,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⑴, 이진준 작가 비평]각자의 내밀한 정원에서, 경계공간 거닐기
  • 전민지 비평가
  • 승인 2020.11.19 13: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원에) 들어가며

정원의 탄생은 사적이다. 적어도 한 명의 조성자가 일정한 공간을 두어 정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연과 인간 세계를 각각 쪼갠 뒤 이들을 자신에게 보기 좋은 형태로배치한다. 이 과정에서 조성자의 의도가 돌에, 나무에, 잔디에 투명하게 스며들고, 이상적인 공간에 자아가 동일시된다. 그 자리에 종종 함께하는 고택이나 정자에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세계와 유토피아로서의 자연이 접경한다는 점에서 개인의 이상향이 명확히 드러난다.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을 동시에 논하기에, 또한 인공적이면서도 자연적인 것을 논하기에 정원만큼 적절한 경계공간(liminal space)이 있을까. 양극단에 놓여 병치될 수 없었던 존재들이 상상과 실재라는 가면을 벗고 한데 모여 시각적 환영을 자아내는 순간은 그 자체로 이미 낙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원의 탄생은 한편으로 시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진준 작가가 지난 십여 년간 발표해 온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정원의 개념을 먼저 언급하는 것은, 시간이 관통하는 그의 우물에서 공간과 경계의 문제를 길어 올리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번 글을 통해 이진준의 작업을 연도순으로 짚어보는 대신, 무규칙의 규칙으로써 직조해보고자 한다. 이에 2011년 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에서 열렸던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 인공정원(Artificial Garden)(2011.09.15. - 2011.10.26.)으로 글을 연다.

 

<Artificial Garden>

▲이진준, ‘Artificial Garden’, 2011. LED, Air conditioner & Fan sound, Temperature (18-20 centigrade), Grass, Soil, Polycarbonates(사진=이진준)
▲이진준, ‘Artificial Garden’, 2011. LED, Air conditioner & Fan sound, Temperature (18-20 centigrade), Grass, Soil, Polycarbonates(사진=이진준)

적절한 속도감으로 색을 바꾸어내는 LED 빛과 그 장치로부터의 웅웅거리는 소리들. 그리고 서걱거리며 발에 밟히는 바닥의 잔디와 흙. 동명의 작품 <Artificial Garden>이 등장하는 이 전시에서 인공성과 자연성의 개념은 제목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 직관적으로 드러난다. 2020년 현재 영화관의 한 형태 ‘Screen X’로 우리에게 더욱 익숙한 삼면의 스크린은 전면 스크린의 일방향적 한계를 뛰어넘어 전시장에서의 시간에 입체성을 가미하였다. 이때 펼쳐지는 파노라마 영상과 산책로를 거니는 듯한 신체적 경험의 감각은 서로 다른 끝에 위치해 있다. 미디어아트라는 매체 기술을 근간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조성한 인공의 정원에서 관객은 산속과 전자 세계의 사이 어딘가에 놓인 신세계에 희미하게 닿게 된다. 미디어 테크놀로지와의 결합에서 자연은 굴복하는 대상이 아닌 스스로 기능하는 매체가 된다. 어쩌면 당연하게, 재현과 현전 사이를 무한히 횡단하는 관객들은 이 세계가 실현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손끝이 닿는 순간 실재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이러한 지점으로부터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것은 매체 이론가 마크 포스터(Mark Poster)의 지적이다. 요약하자면, 기호의 물질적 기반은 새로운 미디어를 마주하는 과정에서 원시적인 물질성을 과감하게 내려놓는다. 뚜렷하고도 물리적이었던 물질성은 뉴미디어 기술이나 전자매체 기술로 칭해지는 요소로 인해 자취를 감추곤 한다. 그러나 이때의 원시적인 물질성이 반드시 인공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디지털 매체에 의해 생성되는 세계와 더불어, 선택과 의도를 거쳐 탄생한 정원은 이미 사적이고 인공적이라는 점에서 원시적인 물질성이 갈 곳을 잃게 된다. 어쩌면 원시적인 물질성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이를 통해 이진준의 작업에서는 오히려 그 모호한 경계에 의한 서사적 레이어가 한 층 더 쌓일 따름이다.

인공정원을 거니는 이들은 19세기 보들레르에 의해 본격적으로 언급되고 벤야민의 논의로 확장된 도시 산책자’, 즉 플라뇌르(Flâneur)와는 다른 개념으로서 존재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새로이 열린 길을 탐구하는 산책자들이지만, 도시를 산책하는 플라뇌르와는 달리 원초적 공간으로서의 자연으로부터 도피하려 하지 않는다. 적절한 습도로부터 오는 풀내음을 반기고, 실내 온도가 18-20도로 조절된 공간에서 익숙함을 느낀다. 그러나 곧이어 타성에 젖은 시각과 촉각에 인공의 장면들이 개입한다. 작가는 이처럼 장소 아닌 장소에서 이질적 풍경으로부터의 환상성을 마주하게 함으로써 감각의 주체가 되기를 제안한다. 이는 그가 양분된 세상을 한곳에 구축하여 관계항을 생성하려던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전시를 기획한 이은주 큐레이터는 볼프강 벨슈(Wolfgang Welsch)의 상보성개념을 들어 두 개의 눈’, 즉 여기에서는 새로운 전자매체와 비전자매체를 위한 눈을 거쳐 새로운 지각 획득이 가능해짐을 짚는다. “전자세계와 비전자세계는 어떤 경우에 서로 대립되기도 하지만 전자매체의 발달은 역으로 비전자매체의 세계를 재확인할 수 있는 동기라고 썼던 부분 또한 이와 동일 선상에 있다.

 

<Inner Scene>

▲이진준, Inner Scene, 2012. Single Channel Video(사진=이진준)
▲이진준, Inner Scene, 2012. Single Channel Video(사진=이진준)

한편, 위 전시는 작가가 명확히 언급했던 것과 같이 동아시아의 급격한 경제 발전과 IT 기반의 미디어 도시공간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을 드러내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다. 멜리사 치우(Melissa Chiu)와 벤자민 제노키오(Benjamin Genocchio)가 Contemporary Asian Art』(2010)에서 아시아 현대미술을 네 개의 축 1) 전통에 대한 재고찰(Rethinking Tradition), 2) 정치, 사회 그리고 국가(Politics, Society and the State), 3) 아시안 팝, 소비자중심주의와 고정관념(Asian Pop, Consumerism and Stereotypes), 4) 도시의 자연(Urban Nature) 으로 분류한 것과 연결한다면, 이진준의 작업은 일정 부분 위 3번과 4번에 겹쳐지는 속성을 띤다. 이와 같은 지점은 2012년의 <Inner Scene>에서도 연이어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싱글채널 비디오라는 영상 언어의 기본적 틀 위에 현대사회의 보편성을 담아 앞서 언급된 동아시아의 급격한 경제 발전이후의 단면을 담아낸다. 다른 무엇보다도 눈에 띄기 마련인 홍콩의 전경은 “IT 기반의 미디어 도시공간의 상징으로서 기능한다. 이와 동시에, 기나긴 현대사의 일부분이 되어 동시대인-작가로서의 역할을 다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명확해진다. 그의 작업은 자신이 해석한 사회의 내외부를 동시다발적으로 같은 스크린 내에 표출하며 외연화한 결정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제목 <Inner Scene>, 이도공간(異度空間)이 현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른 차원의 공간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Here and There>

▲이진준, Here and There, 2011. Beam projection mapping on the four doors, 2 Door handles, Grass, Single Channel Video 000230(사진=이진준)
▲이진준, Here and There, 2011. Beam projection mapping on the four doors, 2 Door handles, Grass, Single Channel Video 000230(사진=이진준)

다시 전시 인공정원으로 돌아오자면, 전시장의 입구에서 관람객을 반기는 빔 프로젝션 매핑 작업 <Here and There>의 경우, 신세계에 닿은 (또는 닿을) 이들을 위한 문으로 작동한다. ‘이곳저곳에 대한 끝없는 궁금증을 매개체로 삼아, 문고리를 잡아야 할 것만 같은 동적인 환각을 불러일으키며 보는 이로 하여금 영사된 풍경의 저편으로 향하게 한다. 이는 그저 자연으로의 회귀나, 자연친화적 삶의 작동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른 층위이다. 작가는 미디어가 지배하는 가상과 현실이 중첩되어 탄생한 경계공간에 대해 지난 20년 가까이 연구해 왔다. 위 작업의 또한 자연스럽게 경계공간의 개념으로 해석된다. 2011년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진준은 이에 대해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안인가 밖인가 혹은 열어야 하나 닫아야 하나?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등등의 선택의 순간, 심판의 순간 등 그런 시간적 순간과 함께 공간의 관념적인 벌어짐을 문을 통해 마주하길 바랬다고 밝힌 바 있다. 나무와 하늘이 등장하여 외부와 내부를 이을 때, 우리는 시간과 순간의 틈을 오롯이 바라보며 다른 평행세계를 꿈꾼다. 어쩌면 관객들은 문을 열기도 전에 자신의 앞에 놓인 영토를 구상하고, 재배열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로써 공간 운용의 감각은 이진준 작업의 거대한 축이 된다.

 

<Nowhere in Somewhere>

▲이진준, Nowhere in Somewhere, 2013. Photo, C_print, 171x110cm(사진=이진준)
▲이진준, Nowhere in Somewhere, 2013. Photo, C_print, 171x110cm(사진=이진준)

위의 관점은 <Nowhere in Somewhere> 연작으로 나아간다. 이 작품을 언뜻 본 관객들은 풍경의 특정 부분에 빛이 더 잘 든다, 또는 내리쬔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산이나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느리고 고요한 풍경사진에서 발견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연과 미디어의 복합적인 디스플레이 역학이다. 낮과 밤이 중첩되는 시간에 촬영된 작품 배경 속에서, 감상자는 서로 교차하는 순간들의 대화에 동참하며 시공간의 경계에 서게 된다. 그렇다면 자연에서 프로젝션되는, 그리고 자연 위에 프로젝션되는 가상의 물성은 무엇을 말하는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소급되는 예술론이 주장하듯, 예술은 자연을 모방(ars imitatur naturam)하기 때문인가? 이는 아마 물질성 구현의 문제이자, 맥락 재구성의 차원일 것이다. 자연으로부터의 물질과 디지털 물질이 병치될 때 우리는 도리어 비물질의 시공간을 마주한다. 이렇듯 작가는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면서, 상반된 것들의 이질적 결합으로써 실제 세계에 대한 정의를 관객들에게 묻는다.

▲이진준, Nowhere in Somewhere, 2013. Photo, C_print, 110x171cm(사진=이진준)
▲이진준, Nowhere in Somewhere, 2013. Photo, C_print, 110x171cm(사진=이진준)

한편 활동 초기부터 이진준은 앨리스온과의 인터뷰를 통해 매체의 형식보다는 개념을 중시하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형식을 찾기 위해벽화, 비디오, 실험극 등 작업 영역에 있어 한계를 두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해왔음을 강조하였다. 학부에서 조소를 전공한 이후, 사진과 퍼포먼스, 비디오, 조각 등 여러 매체를 유동적으로 배회하던 그였다. 실제로 그간의 작업은 매체에 대한 도전이라기보다 전달하고자 하는 질문에 가장 적절한 매체를 찾고 활용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과의 인터뷰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진준은 스스로를 설치 작업을 주로 하는 현대미술가 혹은 그냥 작가, 그리고 학자라고 여긴다. “리서치를 바탕으로 현대미술의 담론과 역사 그리고 현대미술의 철학을 다양한 매체로 다루고 있을 뿐이라는 내용과 함께, 매체 선정이 작업의 중심축이 되지는 않는다고도 말한다. 이처럼 문화인류학적 관찰을 기반으로 하여 그가 발표해 온 작품들의 기저에는 매체의 속성 이면에서 발견되는 내러티브의 조각들이 자리하고 있다.

 

<Insomnia>

▲이진준, Insomnia, 2006. Video and Sound Installation, 3min 40sec.(사진=이진준)
▲이진준, Insomnia, 2006. Video and Sound Installation, 3min 40sec.(사진=이진준)

이 시점에서 과거로 회귀하여 2006년 발표작 <Insomnia>를 소환해본다. 블라인드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소리와 작품의 배경음악, 블라인드 너머의 세상으로부터 내리쬐는 빛. 감각기관으로서 존재하는 창문 위 프로젝션은 끝없이 지속될 것만 같다. 오랜 불면증이라는 작가의 개인적 배경으로부터 시작된 이 작업은 블라인드 뒤편의 바람과 작가의 어두운 작업실을 전시장으로 온전히 이동시킨다. “창문 바깥 세상의 소리들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때론 사는 것이 마치 전쟁처럼 느껴지곤 할 때가 있는 것처럼.”이라는 작가의 말은 개인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꿰어내기에 이른다. 비교적 구체적인 형태로 의미화된 영상 설치 작업이 다시 관객 개개인의 주체적 성찰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채워진 특유의 풍경은 아우라를 풍기고, 탐색을 낳으며 현대사회의 기호체계를 클로즈업한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7, 이진준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소리·풍경(2017.09.01. - 2017.11.26.)에서 커미션 프로젝트로 <Nowhere in Somewhere Insomnia & Hanabi>(2017)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Insomnia> 작업의 확장 개념으로 고종황제의 침전 함녕전에서 프로젝션된 이 작품은 이미지, 사운드, 영상을 통해 총체적이고도 공감각적 풍경으로서의 덕수궁을 재구축하였다. 유구한 역사를 기반으로 덕수궁이라는 공간이 지닐 수밖에 없는 타고난 성질들을 고려한다면, ‘과거와 현재의 조응이라는 흔하디 흔한 표현이 더욱 유효해진다. 그런가 하면, 일시적으로나마 행복을 상징하는 불꽃놀이 영상과 디스토피아의 표상으로서 등장하는 원자폭탄 폭발 장면은 관점에 따라 모두 누군가의 유토피아가 된다. 뿐만 아니라 마치 괴테가 감각을 매개로 하여 인간의 내부와 자연이 불가분의 관계성 아래 연결되었다고 확신했던 것과 같이, 이 작업은 덕수궁관이 위치한 장소특정성과 더불어 단절된 도시와 자연을 연결한다. 기와지붕과 대청마루 사이를 타고 형상을 점찍듯 그려내는 이진준의 오디오비주얼 문법은 공간 -그것이 인공적이든, 자연적이든-의 리듬에 충실하다. 시각의 음향적 전환을 거치며 과거의 환영을 어디에선가 꺼내온 작가는 이들을 허공 속 경계에 두지 않고, 바로 이곳 우리의 세상으로 이끌어 온다.

 

다시, 이진준의 정원

작가의 정원으로 돌아온다. 곧 발표될 그의 박사학위 논문 Empty Garden: A Liminoid Journey to Nowhere in Somewhere(University of Oxford, 2020) 역시 비어 있는 정원을 다룬다. 지난 몇 년의 연구 기간 동안, 작가는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에서 드러나는 동아시아 정원의 개념을 중심으로 인간이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경험 및 창조하는 방식에 대해 탐구해 왔다. 중국 전통 산수화나 조선시대 문인들의 상상 정원 의원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의 유교적 배경은 자아표현의 수단으로서 정원이 갖는 위치를 더욱 공고히 했다. 이쯤에서 우리는 그로부터 200년 이상의 세월을 뛰어넘어 이진준이 시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서구 문화 속 고대의 잔존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인간의 몸짓과 표현 동작을 고대로부터 이어진 기억의 상속 기능과 결부시키고자 했던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를 떠올려 본다. 그가 짚은 대로 과거의 정신적 유산을 공유하는 사람만이 새로운 표현가치를 창조하는 양식을 발견한다. 그간의 작업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작가에게 아시아 정원이 지니는 역사성과 상징성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기술을 이해하는 데 숱한 시사점을 던졌다”. 그렇기에 이진준이 시도하는 수직적 시간성은 역사적 사례를 참조하되 시대간 경계경험 전개에 대한 절제된 은유라는 점에서 바르부르크와 공명한다.

이진준, The Shadow of Scream, 2006. Variable Installation, Urethan, Light and Shadow, Ash(사진=이진준)
▲이진준, The Shadow of Scream, 2006. Variable Installation, Urethan, Light and Shadow, Ash(사진=이진준)

그러나 무엇보다도, 작업에서의 오랜 관심사를 바탕으로 인류학자 빅터 터너(Victor Turner)의리미노이드(liminoid)개념을 다루었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1980년대 중반에 주로 언급되었던 이 용어는 아놀드 반 게넵(Arnold Van Gennep통과의례개념에서 출발한 것으로, 반복적인 일상에서 벗어났을 때 인간이 느끼게 되는 새로운 영역에서의 행복감을 의미한다. 작가가 2010년대 대부분의 설치작품에 정원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여타 장소보다도 정원이 이러한 경계공간의 적절한 예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가드닝(gardening)을 통해 탄생한 정원에 잠시 여행을 간’ 자아는 추상적이고도 유연하게 존재하며, 독특한 경계경험(liminoid experience)을 마주하게 된다. 이때 기술 매체에 은닉된 시적 언어들의 배치는 인간이 잊고 지내기 마련인 원초성과 정신성에 직결된다. 시공간을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고양되는 여러 순간을 마주하며, 우리는 (서구의 기준으로) 유토피아이자 (동양의 개념으로는)이상향을 만나게 될 테다. 단순하지만 내밀한 각자의 기억은 결국 이곳에서 한 겹씩 퇴적되어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사적 역사의 한 줄기를 창조해낸다. 이진준의 인공자연적 정원 속에서, 작가와 관객은 모두 동등하게 산책의 주체가 되어 경계를 탐방한다.

▲이진준, Moving stairs, 2008 Variable Installation ,Painting on the stairs and walls in a museum(사진=이진준)
▲이진준, Moving stairs, 2008 Variable Installation ,Painting on the stairs and walls in a museum(사진=이진준)

이외에도 <Undo>(2013), <They>(2010), <Your Stage>(2009) 등 이번 원고에서 다루지 못한 이진준의 작업은 이후의 공통분모를 위해 남겨둔다. 2021년 스위스에서 열릴 그의 개인전 Empty Garden에서, 우리는 그가 창조해낼 가드닝의 결정체, 즉 또 하나의 경계공간에 대해 다시금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므로.

 

[각주]

1)이은주, 《인공정원(Artificial Garden)》도록, UP출판, 2012. p. 4.
2)이은주, 이진준, <이후의 인터뷰>, 《인공정원(Artificial Garden)》도록, UP출판, 2012. p. 74.
3)Chiu, Melissa., and Genocchio, Benjamin. Contemporary Asian Art. London: Thames and Hudson, 2010.
4)작가의 오랜 관심사인 ‘경계공간’의 예시로, 아프리카 무속과 한국 굿, 빛과 소리를 활용한 나이트클럽, 브레히트의 연극 및 무대이론, 계단, 창문 기타 건축공간 등이 있다. 첫 번째 개인전이었던 《ART Theatre – 역할놀이》(2007) 또한 연극과 현실, 배우와 관객, 무대의 경계성 등에 주목했던 시도였다. 이진준 서면 인터뷰 답변, 2020.11.08.
5)이은주, 이진준, <이후의 인터뷰>, 《인공정원(Artificial Garden)》도록, UP출판, 2012. p. 74.
6)앨리스온, 「이진준, 독창적 문법과 언어를 향한 실험적 성찰_interview」, 앨리스온 2007년 11월호, 2007.11.07., https://aliceon.tistory.com/496 (2020.10.24. 접속)
7)기존에 경영학과를 졸업한 작가가 다시 서울대학교 조소과로 편입을 하여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점은 이전 공개된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다뤄진 내용이기도 하다. 한편, 이진준은 아르코미술관 개인전 《ART Theatre – 역할놀이》(2007), 국립현대미술관 《젊은모색 2008》 작가 선발 등 국내외에서의 활발한 활동을 거친 뒤 2010년대 중반 영국으로 떠나 영국왕립예술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이래로 현재까지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8)이진준 서면 인터뷰 답변, 2020.11.08.
9)국립현대미술관, <이진준 – 작가인터뷰>,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빛·소리·풍경》 도록, 국립현대미술관, 2017. p. 132.
10)<Insomnia>는 갤러리 현대의 싱글채널 비디오 전시 《Channel 1》(2007.10.02. - 2007.10.21.),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 진행된 《100인의 인터뷰》(2017.12.16. - 2018.03.25.) 등에서 전시된 바 있다. 10년의 시차 속에서도 동일한 내러티브를 유효하게 전달한 작업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1)갤러리 현대, <Interview with 이진준>, 《Channel 1》, 갤러리 현대, 2007. p. 85.
12)<불면증>과 <불꽃놀이>는 이진준이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에서 처음 발표한 영상설치 작업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었다. 이 전시에서의 커미션 작업은 한국에서 5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이기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이진준 – 작가인터뷰>,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빛·소리·풍경》 도록, 국립현대미술관, 2017. p. 130. 
13)전소정, 안소현, 파니 슐만, 『부바 키키 – 공감각에 대한 단상』, 미디어버스, 2018. p. 23.
14)연구 제목의 ‘Nowhere in Somewhere’는 이진준 작가가 영국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 석사학위 졸업작품으로 발표한 연작의 타이틀이기도 하다. 한편 작가는 이 작품으로 졸업 당시 180회 졸업전시 최고작품상(Merlin Entertainment Annual Fine Art Award)을 단독 수상한 바 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2017년 본지 기사 참조. 이은영, 「이진준 작가 영국왕립예술대학원 180회 졸업전시 최고작품상 Merlin Entertainment Annual Fine Art Award 수상」, 서울문화투데이, 2017.06.27.,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683 (2020.10.25. 접속)
15)이진준 서면 인터뷰 답변, 2020.11.08.
16)이진준의 네 번째 개인전《Empty Garden》은 스위스 글라루스(Glarus)에서 2021년 4월 개최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 앞서, 작가는 한 달간 현지에 머물며 작품의 재료를 수집한다. 가드닝의 개념으로 미술관 작품 및 공간 설치에 접근해온 이전 작업의 연장선 상에서, 자연재료(빛, 공기, 온도, 주변 수집 재료 등)와 인공재료(빔, 조명, 소리, 영상 등)를 이용한 전시 구성을 선보인다. (전시 정보 작가 제공, 2020.11.08.)

 

[작가 주요 프로필]

영국 왕립조각가협회 정회원
마담투소 예술상(영국 왕립예술대학원 미술대학원 졸업 최고 작품상), 2017
문신미술상 청년작가상, 2014
서울문화투데이 젊은예술가상 2012

서울 디지털미디어시티 조형물 공모전 대상, 2008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2005

개인전<인공정원>, 갤러리 정미소, 2011
개인전<당신의 무대>,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2009
개인전<역할놀이>, 아르코미술관, 2007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순수미술 철학박사
영국 왕립예술대학원 현대미술 석사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조소과 학사 및 석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