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 수상자 인터뷰]송영인 종묘제례악 이수자 “천천히, 묵묵히 제 자리에서 노력하며 나아가는 것이 나의 신조”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 수상자 인터뷰]송영인 종묘제례악 이수자 “천천히, 묵묵히 제 자리에서 노력하며 나아가는 것이 나의 신조”
  • 왕지수 기자
  • 승인 2020.11.19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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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무용 꽃 피우려면 전통무용에 높은 사회적 인식과 함께 기량 좋은 무용수 많아야…
일무, 궁중무용, 창작 무용까지 전통을 넘어 다양한 도전 즐겨

[서울문화투데이 왕지수 기자] 우리는 자라면서 빨리 무언가를 얻고 성취해야 한다고 배운다. 빠르게 그리고 영악하게 누구보다 자신을 앞세우고 두각을 나타내야한다고 가르침을 받는다. 남들이 한 발자국을 앞섰다면 나는 두 발자국 아니 세 발자국을 앞서 걸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도태된 삶이라는 생각이 만연한 사회이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우리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간다.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제는 시대감각이 떨어지는 고리타분한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 되어버렸고 느린 것은 어느새 답답한 것, 미련한 것이라는 시선이 자리잡은 듯하다.

▲지난 12일 서울문화투데이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송영인 종묘제례악 이수자
▲지난 12일 서울문화투데이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송영인 종묘제례악 이수자

여기 그저 천천히 가는 것이 꿈이라는 사람이 있다. 천천히 기본을 익히며 그리고 그 기본에 충실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바로 소리무용단의 대표이자 종묘제례악 이수자인 송영인 무용가가 말하는 가치이다. 송영인 소리무용단 대표는 궁중무와 민속무의 맥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는 한국무용가다. 국악고, 한예종 무용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본래의 것을 다스린다는 뜻의 소리무용단은 전통 예술의 올곧은 보존과 계승을 바탕이 돼, 그 원형을 바탕으로 새로운 작업을 하는 단체다.

송 대표는 한예종 전통예술원 졸업 후 국악고 동문으로서 매년 봉행하는 종묘제례악 일무의 가치와 보존과 계승에 소명의식을 가지고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일무 이수자가 됐다. 더불어 ()정재연구회원으로 활동하며 전승의 어려움이 많은 궁중무의 이론과 실기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그 결과 궁중무의 가장 대표적인 춘앵전뿐만 아니라 무산향을 비롯해 학연화대처용무합설, 무고, 검무, 아박무, 박접무 등 20여 종의 정재 작품을 구성하고 지도할 수 있으며, 지난 7년간 국악고 무용 강사로 정재작품과 전공수업을 지도했다.

또한 고려시대 때부터 전해오는 대표적인 민속무용 중의 하나인 서울시무형문화재 제45호 한량무 이수자로 한량과 색시에 관한 춤을 학습하며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 밖에도 그는 대학 시절 박병천 선생과 인연으로 현재 진도를 오가며 진도씻김굿의 지전춤과 진도북춤 활동을 통해 무속장단, 무속춤만이 가지고 있는 예술성을 전승하고 있으며, 성악, 기악 단체의 안무를 맡아 악가무 일체의 합일화 예술 작업도 활발히 하고 있다.

올해 1월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을 수상한 송영인 무용가를 지난 12일 서울문화투데이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말하는 전통무용이란 무엇이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올해 초 ‘제11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을 수상했다. 당시의 소회가 궁금하다.

무용가는 상을 받게 되면 보통은 무용대회 같은 곳에서 경연을 통해 받는 상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서울문화투데이에서 받은 상은 사회적으로 예술가로서 활동한 부분에 대해 받는 상이다보니 감회가 더욱 새로웠다. 아직은 예술가라고 하기엔 스스로 부끄러운 부분이 있다. 그러나 크게 해낸 것은 없지만 무용가 혹은 예술가로서 추이를 지켜보고 잘 할 수 있다는 응원의 메세지 같은 상이었다. 마치 신인상을 받은 느낌이었다. 무용을 좋아했고 그것을 업으로 선택해 일을 하고 있는데 그 모습에 대해 더 열심히 하라고 응원하는 뜻으로 다가왔다.

▲경복궁 음악회에서의 송영인 종모제례악 이수자(사진=송영인)
▲경복궁 음악회에서의 송영인 종모제례악 이수자(사진=나승열)

전통무용이 무엇인지 서울문화투데이 독자들이 알기 쉽게 설명 부탁한다.

그 시대의 창작물이라고 보시면 된다. 당시의 사회성과 신분에 따라서 나온 자연스러운 창작춤. 그 시대의 창작이었던 것이 백 년, 이백 년이 흘러 우리에게 전통이 되는 것이다. 그 때 당시의 생활상과 시대적인 분위기와 가치관 등이 반영되어 있는 춤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살풀이, 부채춤, 승무, 태평무 등 종류가 다양하다. 대중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강강술래를 예를 들어, 누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춤이 아니라 그 시대 진도에 살던 어머니들의 한이 깃든 춤이다. 사설을 살펴보면 고향 땅을 떠나 먼 곳으로 시집을 와서 친정 어머니가 보고 싶은데 보지 못하네’, ‘떠나간 서방은 올 생각은 없고 애는 우는데등의 내용이 나와있다. 그런 애환과 삶이 손 짓 하나, 발 짓 하나에 녹아들어 강강술래라는 창작물이 나온 것이다. 살풀이도 원래 무속인이 한을 풀어내는 동작을 보고 춤을 춘 것이 살풀이 춤이 된 것이다. 그 당시의 무용단, 무용 교습소에서 그 시대에 존재했던 동작들 중 예술성이 있는 것을 정리해 지금까지 보존되어 내려온 것이 전통 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전통무용 중에서도 일무와 궁중무용을 주로 삼아 춤을 추고 있다. 일무와 궁중무용도 간단하게 설명 부탁한다.

궁중무용은 외국 사신이 왔을 때나 혹은 임금과 나라를 위한 연회가 열릴 때 궁에서 춘 춤이다. 발이나 얼굴이나 손이 보이면 안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한삼을 끼고 춤을 추고 또 노래를 부를 때도 입이 보여선 안되기 때문에 한삼으로 가리고 부른다. 개인의 끼나 교태가 보이면 안 되는 춤이다보니 책에도 감정을 억제하고 나타내면 안 된다고 써져 있다. 일무는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만드신 춤이다. 고려시대부터 중국에서 들어온 아악제례악을 즐겼는데 우리도 우리 음악과 춤을 듣자라는 뜻으로 세종대왕이 만든 것이다. 당시 세종대왕의 의견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반대하는 세력도 있어 공표하지 못 하고 있다가 세조 때가 되어서야 종묘대제에서 선보일 수 있었다. 일무는 열을 맞춰 추는 춤이기 때문에 이름이 일무이다. 64명이 8명씩 우주를 상징하는 8개의 방위로 열을 맞춰 춘다. 별다른 동작이 없어 보이지만 춤을 추는 내내 집중을 하지 않으면 흐트러지기 때문에 긴장을 해야 하는 춤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느 하나가 튀어나와 튀는 것이 아닌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춤이다. 누구는 빨간색 누구는 파란색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뤄야하는 춤이기도 하다.

젊은예술가상을 받을 당시 전통 무용을 꽃 피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전통무용을 꽃에 비유해 볼 때 전통 무용이라는 꽃은 현재 활짝 피었는지 아니면 아직은 아닌지 전통 무용가로서 관점이 궁금하다.

최근 뉴스나 사회적인 분위기를 살펴볼 때 전통무용, 전통음악 등의 전통문화 자체가 많이 대중화되고 열린 것 같다. 궁중무용 축전이나 청덕궁의 달빛기행, 경복궁의 별빛기행 등 서울 오대궁 안에서 전통 공연을 선보이고 또 일반인들이 그 공연을 보고자 직접 예매를 해서 5분 만에 매진이 되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전통음악이나 무용이 TV의 브라운관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예술로 자리잡은 것 같다. 그러나 그 안을 더 세밀하게 파고 들어보면 전통 무용만을 놓고 봤을 때 살풀이가 뭔지, 승무가 뭔지, 부채춤이 뭔지를 크게 구별하지는 못한다. 어찌보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직접 배워보거나 본 적이 없으니까. 전통 무용이 어색하고 조금은 어렵기도 했던 옷을 벗어던지고 친근함을 입었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무용하는 사람의 입장으로도 이 전통 무용을 선보일 무대가 많이 없기 때문이다.

전통무용이라는 것 자체가 연륜이 쌓여야 더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내공이 깊은 유명한 전통무용 선생님들은 제대로 걷지도 않으시고 팔 하나만 들어도 관객들의 박수가 절로 나온다. 섣불리 젊은 나이에 전통무용을 선보이겠다고 나가봤자 어설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아마 지금 나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 무용수들은 산 속에 들어가서 연습을 정말 많이 하고 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전통무용에 대한 인식이 더 발전하고 또 그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무용가들이 함께 이뤄져야한다고 본다. 전통무용에 대한 고취된 사회 인식과 기량이 좋은 무용수들의 합이 맞았을 때 전통무용이라는 꽃도 활짝 피우지 않을까 싶다.

전통무용가로서 본인의 기량을 연마하기 위해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연습이다. 올 초 국악방송 라디오의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다. 그때 디제이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올해의 계획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 때 서울문화투데이 젊은예술가상을 받고난 직후였는데 상까지 받고 수준이 그 자리에 머물러있다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스승님들도 연습을 매일 하신다. 소리를 하시는 분들은 아침마다 목을 푸시느라 연습을 하시고 공연 전에는 천 번의 연습을 하신다. 그래서 올해는 큰 목표 없이 정말 연습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도 창피하지 않고 스승님께도 실망을 시켜드리지 않기 위해 연습을 통해 기량을 연마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집 거실에 대형거울을 하나 들여놓고 수시로 연습을 하고 있다. 연습실을 못가서 연습을 못했다는 핑계를 하지 못하도록 환경을 만들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도 거울을 보며 연습을 하고 있다. 직접 공연을 한 영상도 계속 돌려보면서 어떤 동작이 잘됐고 아닌지 등을 체크하고 기억해두었다가 다음 공연 때 적용하고는 한다. 내가 무대에서 펼친 동작들을 보며 어떨 때는 괜찮다고 생각됐다가도 어떨 때는 정말 다시는 저렇게 추지 말아야지 할 때도 있다. 예술은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계속 배우고 하루하루 수행하는 과정과도 같다. 최근에는 성균관대학교 박사과정에도 붙어서 공부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공연 중인 종묘제례악 이수자 송영인 소리무용단 대표(사진=송영인)
▲공연 중인 종묘제례악 이수자 송영인 소리무용단 대표(사진=나승열)

공부를 다시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무용은 실기적인 부분이 크다. 그런데 춤 동작을 연습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춤이 왜 나오게 됐고 그 안에 당시 사람들의 어떤 생각이 깃들여져 있는지 이해가 되어야 한다. 먼저 그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활상이 있었고 그것이 몸의 동작, 춤으로 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실기를 전문으로 하는 학교를 나왔다. 그러다보니 춤의 순서를 기억하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여러 개의 춤을 배웠고 다른 사람들보다 여러 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실기는 많이 경험했지만 이론적으로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승님이신 양성옥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있다. 무용을 기능으로만 보면 안된다는 말씀이었다. 연기가 같이 들어가서 표현을 해야 된다고 하셨다.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은 기능이지만 그것을 나타내는 것은 연기적으로 표현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렇지 않으면 스포츠와 다를 게 없다고 하셨다. 실제로 또 다른 스승님이신 김영숙 선생님의 집에 가보면 거실 양 옆이 다 책들로 빼곡하게 쌓여 있다. 항상 논문이나 책에 파묻혀 지내신다. 선생님은 저희에게 머리핀 하나 사러갈 시간에 책 한 장을 더 열어보라고 하신다. 멋 부리고 치장하는 데 신경쓰지 말고 책을 한 번 더 펼쳐보고 어떻게 하면 발걸음 하나가 무거워지는지 고민하라는 것이다.

선생님들의 말씀처럼 궁중무용을 할 때는 궁중무용의 모습이 장착되어야 하고 승무를 출 때는 승무하는 모습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착 되어야 한다. 춘앵전은 춘앵전처럼 정말 우리 앞에 있는 관객이 임금님이구나’, ‘우리가 좋은 잔칫날 이렇게 앞에서 선보이는구나라는 마음으로 춰야한다. 진도북춤을 출 때도 우리가 들판에서 신명나게 신이 나서 춤을 추는 것처럼 마음이 정말 신이 나서 해야 기능적인 면도 달라진다. 그렇다보니 전문 서적을 찾아보게 됐는데 좀 더 전문적인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를 해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까지는 그런 생각을 못하다가 올해 결심을 하게 됐다. 몇 년 전에 선생님이 아무리 옆구리를 찔렀어도 안 갔을 거다. 힘들 거 뻔히 알고 공부하느라 고생할텐데 굳이?’라는 생각이었다. 이제 스스로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니까 스스로 원서를 쓰게 되더라.

선생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새기는 것 같다. 지금까지 다양한 스승님을 통해 배웠던 가르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김영숙 선생님, 윤성주 선생님, 양성옥 선생님, 이미주 선생님 등 좋은 스승님을 많이 만났다. 지금까지도 무용을 재밌고 편하게 할 수 있게 도와주시는 분들이다. 선생님들마다 해주시는 전반적인 이야기들이 욕심부려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가르침이다. 욕심이 있는 아이들은 손 동작, 발 동작, 눈빛 하나에서 그게 보인다고 하신다. 욕심을 부린다고 해서 춤이 더 잘 춰지는 것도 아니며 습득이 잘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본인이 갖고 있는 것 안에서 노력을 하라고 하신다. ‘욕심 부리지 않고 편안하게 하라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가르침이고 계속 가지고 가고 싶다. 그리고 가족이랑 살든 결혼을 하든 혼자 살지 말라고도 이야기해주신다. 집에 혼자 문 열고 들어갔다가 나오는 건 안 된다고 하신다. 혼자 있으면 욕심이 나오기 때문이다. 나만 생각하게 되고 양보할 게 없을 때 욕심이 나온다. 그렇게 될 때 누가 옆에서 나를 막 치고 올라오진 않을까 불안감이 올라오고, 이 사람이 이걸 하면 이걸 쫓아서 하고 저 사람이 저걸 하면 저것도 쫓아하고 그러다보면 아무것도 안 된다. 편안하게 마음먹고 그러면 모든 게 동그랗게 돌아간다는 말을 해주신다.

몇 년 전에 크게 실의에 빠진 적이 있다. 그 때도 그냥 차분하게 견뎌냈다. 정말 노력을 많이 했지만 실패를 맛봤는데, 선생님들의 가르침대로 편안하게 천천히 조급해 할 것 없이 견디고 기다렸다. 그랬더니 정말 좋은 일이 생겼다. 평창 올림픽을 할 때는 CNN에도 출연을 하고 또 안무가로서 여러 공연도 하게 되고 올해는 젊은예술가상이라는 상까지 받았다. 선생님들이 해주셨던 말씀이 나와 잘 맞는다. ‘나 노력 많이 했으니 알아주세요라는 것도 어찌보면 자만일 수 있다. 스스로 노력하는 건 자기만 알고 있으면 되고 욕심을 버리고 묵묵히 나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해준다. 천천히 묵묵히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다보면 모든 것이 잘 돌아갈 거라고. , 그리고 선생님들께서 최근에는 건강도 잘 챙기라는 말씀도 해주신다.

전통무용을 6살 때부터 해왔다고 들었다. 그 오랜 시간동안 한 길로만 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전통무용은 큰 어머니께서 인간무형문화재이시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언니들과 함께 어울려 무용도 또 동시에 영어 학원, 피아노 학원 등도 다녔다. 다른 것은 도중에 하다가 관두게 됐는데 전통무용은 끊이지 않고 계속 하게 됐다. 재미가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하다가 고등학교, 대학교를 내가 좋아하던 무용으로 가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다.

전통무용만을 고집하지 않고 창작 무용 등 다양한 장르에도 도전하고 있다.

무용을 하다보니 음악팀하고 협연을 많이 하게 됐다. 20대 때 음악팀에서 우리가 음악으로 뭐하는데 거기에 맞춰 움직여주세요로 시작해 지금까지 다양한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다. 창작 무용을 할 때는 어디까지 전통의 선을 지켜야하고 또 얼마나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할지 항상 고민이 많이 된다. 올해 서울문화투데이의 상을 받을 당시에도 창작 무용 공연을 하고 있었다. 종묘제례악을 기반으로 한 창작 무용이었는데 그때도 똑같은 고민이 쌓여 있었다. 그래서 김영숙 선생님을 찾아갔는데 선생님께서 창작이라는 거는 안무자의 생각에서 나오는 거니까 무엇을 하든지 안무 노트만 확실하면 괜찮다고 하셨다. 그걸 가지고 누구는 왜 그렇게 했어 누구는 왜 저렇게 했어 말을 할테지만 창작은 자유이기 때문에 너무 틀에 박혀 있으려고 하지말고 눈치보지 말고 나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 한마디에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밤새 다시 안무 노트를 뒤집고 다시 썼다. 그런 창작의 고뇌와 고충이 있기도 하지만 재미있다.

오는 12월 13일에는 디제잉하시는 분들과 협업한 공연이 있다. 디제잉을 입힌 국악에 입춤을 추며 선보이는 공연이다. 다른 장르와의 협업은 공연의 전체적인 그림을 구상하는 연출자와의 생각과 내 생각을 일치시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연출자와 최대한 많이 대화를 나누고 연출자가 원하는 감성과 안무의 형태를 이해하려고 했다.

새롭게 도전을 하거나 협업을 하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관현악을 정말 좋아한다. 국악 관현악이든 서양 관현악이든 할 것 없이 관현악 특유의 풍성하고 풍부한 음향을 정말 좋아한다. 음악에 문외한이라 잘은 모르지만 빈틈없이 들어오고 나오는 그 음향이 개인적으로 너무 좋다. 관현악에 맞춰 춤을 춰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서울문화투데이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전통무용에 대해 좀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바라봐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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