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즐거운 치킨집 아르바이트 썰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즐거운 치킨집 아르바이트 썰
  • 윤영채
  • 승인 2021.01.23 0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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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채(2000년 생) 21살의 카페 부사장이자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대입 삼수생이다.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존 말코비치 되기’, 좋아하는 책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다. 좌우명은 ‘마음먹기 나름!’, 훗날 떠나게 될 마다가스카르 여행에서의 설렘을 미리 기대하며 살고 있다.<br>
윤영채(2000년 생) 21살의 카페 부사장이자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대입 삼수생이다.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존 말코비치 되기’, 좋아하는 책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다. 좌우명은 ‘마음먹기 나름!’, 훗날 떠나게 될 마다가스카르 여행에서의 설렘을 미리 기대하며 살고 있다.

이제 스물두 살이다. 성인이 된 후 내가 한 일이라고는 대학 입시와 낙방의 반복, 그리고 카페 아르바이트 정도가 전부였다. 어느덧 50대 중후반이 되신 부모님을 보며, 슬슬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돈을 아끼고,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알바로 한 달에 60만 원을 벌어, 40만 원을 주식에 투자하고 남은 돈은 적금 통장에 넣어도 얼마 되지 않을 터였다. 언제까지고 입시에만 목매어 궁상맞게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유로운 삶을 표방하는 내게, 돈이 없는 이 현실이 억압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매번 구인광고를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쉬곤 했다.

답답한 마음에 동네 절친 선호에게 김밥을 싸 들고 소풍이나 가자고 문자를 넣어뒀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우리 집에서도 멀지 않은 치킨집에서 알바를 했었는데 인제 그만둘 거라 대타가 필요하다고 했다.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 6일 근무에 시급 9,500(2021년 기준 최저 시급 8,720)이라는 조건에 끌린 나는,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선뜻 하겠다고 말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카페 알바비와 치킨집 월급을 합치면 수중에 매월 200만 원의 돈이 생기면 투자와 적금도 더 많이 할 수 있고, 얼마간의 여행 자금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금 날 지배하는 걱정과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비록 육체적 노동이든 정신적 노동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출근 첫날, 유리컵 같았던 내 견고한 계획은 완전히 깨져버렸다. 뜨거운 기름에 튀겨져 분해된 닭의 사지와 불지옥, 베트남 출신 경력 직원들의 무시와 냉대가 이어졌다. 그 뜨겁고 혼잡한 주방과 기름으로 범벅이 된 바닥은 중심조차 잡기 어려웠고, 그 허둥거림은 딱 지금의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이곳에서 나는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였다. 토막 난 닭에 양념이나 바르는 기계가 된 것 같았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부대끼고, 튀김 솥에서 막 건져진 치킨처럼 진이 빠져버린 6시간은 악몽이었다.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난 뒤, 사장님은 내게 치킨 한 마리를 건네시며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말씀하셨다.

쌓인 눈이 만들어낸 적막한 찬 기운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때까지도 모락모락 김을 토해내는 치킨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6시간 동안 내 삶이 과연 존재하긴 했을까.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 하는 혼란스러움이 이어졌다. 그 사이 치킨은 식어 살의 수분은 빠지고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돌처럼 굳어버린 닭의 사체를 들고 동전을 뒤집듯 생각을 번복했다.

 

이건 아니다. 정말 아니다.’ 이게 답이었다.

 

더불어 고민의 정체도 드러났다. 난 지독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렇게 내가 영원히 멈춰버리는 것은 아닐까, 어떤 것 하나 이뤄내지 못한 채 나이만 먹어가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그래서 당장 눈에 보이는 을 가지고 싶었다. 월급 통장에 0 하나씩이 늘어간다는 건 적어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의미지 않겠는가. 설령 그것이 내 영혼을 갉아먹는 일이라도 말이다.

그러나 우린 닭이 아니다. 돈으로 교환되기 위해 작게 절단되어 견딜 수 없는 불구덩이 속에서 튀겨져야 할 이유는 없다. 자신을 팔아가면서 번 돈은 분명 보상도 크겠지만, ‘는 이미 이 세상에서 소멸되고 없는 것을. 존재를 잃어버린 세상에서는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 온몸에 기름 냄새를 풍기며 애처롭게 담을 넘어 집으로 들어오던 새벽, 처량한 내 꼴은 그 누구보다 가난해 보였다. 비루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추위에 뻣뻣하게 식어버린 가여운 치킨 한 마리에 불과했다.

요즘 나는 열심히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출근마다 나를 미소로 반겨주는 엄마와 향긋한 원두 향, 갓 나온 따뜻한 커피 한 모금 속에서 일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 이후 조금씩 활기를 찾은 가게, 고마운 손님들의 온기로부터 봄을 그린다. 아직 겨울의 절반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돈은 더 못 벌게 되었지만 그래도 어떤가. 이렇게 편안하고 행복한 것을. 카페 내부는 치킨집의 뜨거운 열기보단 못하지만 은은한 햇볕 같은 체온이 돌고 있다.

하고픈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내가 나약해서 그곳으로부터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의 악몽 같은 기억을 통해, 적어도 를 존중해주는 곳에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기회가 생길진 모르겠지만, 꿈과 희망 돈 그리고 의 비중을 잘 조절하며 사는 힘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기운을 내야 한다. 오늘 저녁은 치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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