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자 인터뷰] 장철 성악가 “예술이 직업인 사람들이 예술을 계속하는 것이 정말 사치일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자 인터뷰] 장철 성악가 “예술이 직업인 사람들이 예술을 계속하는 것이 정말 사치일까?”
  • 이은영ㆍ진보연 기자
  • 승인 2021.02.24 15: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술가에게 문화예술 창작활동은 경제활동
유학 시절 성대 파열, 벨칸토 창법으로 다시 시작된 노래
“무대 위 전달력, 가창력만큼 중요”
서양 성악-국악 접목한 창작, 오페라 번안 작업 지속할 것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ㆍ진보연 기자]코로나19는 직접 대면이 핵심인 문화예술의 창작, 제작, 유통, 소비, 향유 등 생태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프리랜서, 계약직 노동자, 파트타임 노동자의 비율이 높은 예술인들은 소득감소를 넘어 생존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전례 없는 위기상황에도 문화예술계는, 물리적 제한에 저항하는 다양한 형태의 창의적인 시도를 통해 새로운 성찰을 부여하고 있기도 하다.

▲장철 성악가
▲장철 성악가 ⓒ김재성 작가

국내 공연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는 무엇일까.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19 공연예술신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뮤지컬 티켓 판매액이 전체 시장의 64.1%를 차지하며 1위를 기록했다. 이에 반해 오페라와 국악, 무용은 각각 1.5%, 0.7%, 0.5%로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뮤지컬과 오페라는 모두 음악과 이야기가 있는 예술 장르인데, 왜 이렇게 심각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우선 대중은 오페라를 ‘어렵다’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작품이 외국어로 진행되다 보니 이 자체를 불편해하는 경우도 있으며, 화려하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귀족ㆍ왕족ㆍ신화 등의 소재에 대한 거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100~200년 전의 비극을 주로 다루다 보니 어려운 고전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기분을 갖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오페라가 쓰인 시기 등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한계임은 분명하다. 

바리톤 장철은 이러한 한계를 일찍이 인지하고, 대중에게 가까워지는 공연양식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성악가이다. 풍부한 음색으로 다양한 레퍼토리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바리톤 장철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리치니오 레피체’ 국립음악원을 졸업했다. 또한 이탈리아 A.R.A.M(로마 음악 예술)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무지카 비바 페스티벌 등 유럽 내 주요 음악 코스를 다수 수료했다. 유학 중 마리오 델 모나코 국제성악콩쿠르 1등, 움베르토 죠르다노 국제성악콩쿠르 1등, 쟈코모 라우리볼피 국제성악콩쿠르 2등, 리카르도 잔도나이 국제성악콩쿠르 잔도나이 부문 우승 외 다수의 콩쿠르에서 수상했다. 

그는 연가곡을 연주자 발전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가까워지는 공연양식으로 지역문화 발전과 국민의 문화 발전을 향상시키는데 그 목적을 뒀다. 독일, 프랑스, 이태리, 러시아, 스페인, 영미, 북유럽 등 각 나라 작곡가들이 계획한 연가곡의 극적 구성과 시대적 화성 차이, 가창표현의 다양성, 피아노 반주부의 변화 등을 고찰했다. 또한 우리 가곡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자 여러 해에 걸쳐 한국 가곡만으로 여러 차례 독창회를 열었다.

장르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진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목표로, 오페라 가수지만 꾸준히 우리 가곡과 국악과 가요를 겸해오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월에는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제12회 문화대상 음악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갈수록 좁아지는 국내 오페라 무대에 성악가들이 다시 서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관객’일 것이다. 장철은 오페라가 대중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선 외국곡을 한국어로 번안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어를 고집하는 시대착오적 태도에서 벗어나 대중에게 오페라를 쉽게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성악가 장철을 만나, 그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음악에 대해 물었다.

제12회 서울문화투데이 최우수상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드리며, 시상식 당시 전하지 못한 수상소감과 상을 받은 소회가 궁금하다.

유학생 시절 국제 콩쿠르에서 여러 번 수상을 한 기억은 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상을 받는 것은 처음이다. 거의 24년 만에 받게 된 셈이다. 제2회 문화대상 당시 신금호 선생님이 오페라 가수이자 연출가로서 상을 받으셨고, 순수 성악가로 받는 것은 내가 처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서울문화투데이 창간 12주년 문화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한 장철 성악가
▲서울문화투데이 창간 12주년 문화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한 장철 성악가

‘대한민국오페라대상’이라는 시상식이 유일할 정도로 오페라계는 상이 박하다. ‘대한민국오페라대상’은 우리나라 오페라계의 최고 작품, 성악가, 연출가, 지휘자, 감독 등을 선정하는 시상식인데 유일한 시상식치고는 범주가 제한적이다. 또한, 평생 오페라 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고 몇 년에 한 번 무대에 오르는 이들에게 상이 돌아가기도 한다는 점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코로나19 이후로 개인 활동이 많이 위축된 상황인데, 일상의 달라짐이나 최근 활동의 변화가 있다면?

코로나19 이후 공연이 거의 다 취소됐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조금씩이라도 하고 있는 나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무대에서 공연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음악가들은 어쩔 수 없이 택배 업무나 야간 대리운전 등 무대 밖 생활 전선으로 뛰어들고 있다. 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처럼 많은 사람이 모이는 단체들, 많은 학생을 상대로 운영하는 학원 같은 곳은 타격이 정말 크다. 공연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많은 음악인이 종교단체에서 솔리스트, 연주자, 지휘자 등으로 활동하고 있던 터라 종교단체 집합 제한 명령으로 인한 피해 역시 만만찮다. 지난 1년은 모두에게 너무 힘들었던 한해였다. 

아울러, 문화예술을 선택할 수 있는 부수적 활동으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은 예술인들을 더욱 고립시키고 있다. 아직도 오페라 공연이 취소됐다는 글에는 ‘이 시국에 오페라를 하는 것 자체가 배부른 소리’라는 댓글이 달린다. 예술이 직업인 사람들이 예술을 계속하는 것이 정말 사치일까? 다른 곳에서 돈을 벌고 여가 시간에 오페라를 보러 오는 이들에겐 사치일지 모르나, 오페라를 업(業)으로 삼는 우리에겐 그곳이 일터고 밥줄이다. 예술가에게 문화예술의 창작활동은 경제활동에 속하며, 경제적 수입으로 연결되지 않는 창작활동은 그다음의 창작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창작 오페라 ‘붉은 자화상’ 장철 성악가 공연 모습
▲서울오페라앙상블 창작 오페라 ‘붉은 자화상’ 장철 성악가 공연 모습

그동안 출연한 오페라가 수없이 많은 것으로 안다. 특히 창작 오페라 역사물에 출연을 많이 했는데 그때만 느끼는 특별한 감정이나, 임하는 각오 등이 있는지 궁금하다.

다른 성악가에 비해 확실히 창작 오페라, 창작 가곡, 역사물 등의 비중이 많은 편이다. 악보를 잘 보고 새로운 것들을 빠르게 익히는 편이라 새로운 작품이 나오면 나를 많이 찾아주시는 것 같다. 

이미 수많은 세월을 거치며 무대에 오른 고전 작품에 비해 창작물은 새롭게 탄생한 작품을 바탕으로 스스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조선의 천재 화가 윤두서의 자화상 이야기를 그린 오페라 <붉은 자화상>에서는 격동의 시대를 겪었던 화가의 삶과 더불어 문인 화가의 고충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평생을 낮은 바닥에서 양반다리를 한 채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다 보니, 어깨가 굽고 허리와 목에 만성 통증이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 부분을 무대에서 최대한 표현하려 노력했는데, 미술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로부터 공연을 관람하신 후 ‘디테일한 표현에 감동했다’라는 감상을 들었을 때 보람을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붉은 자화상> 공연 당시 나는 오십견으로 고생하고 있었고, 직접 느꼈던 고통을 고스란히 무대 위에서 표현해냈기에 객석에서 받는 감동도 컸으리라 생각된다. 

오페라 <나비의 꿈>에서는 윤이상이라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작품의 악보ㆍ대본에 쓰여 있는 모습과 더불어 윤이상 선생님의 작품세계와 살아온 모습, 당대 시대상 등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다. 보다 깊이 있는 표현을 위해 윤이상 선생님의 재판 실황 육성을 듣고 인물 연구를 했다. 음악인이라면 누구나 최고로 꼽는 윤이상 선생님을 직접 연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실제로 공연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앞서 철저한 연기 준비에 대해 언급한 바 있는데, 오페라 무대에서 연기력도 중요할 것 같은데. 

당연히 그렇다. 오페라 무대에 서는 성악가는 노래를 기본으로 연기력과 전달력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대부분 성악가는 자신의 목소리를 과시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는다. 이렇게 되면 관객의 입장에서는 ‘노래를 잘한다’라는 감상 외에 받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성악가들은 연기력을 1차 목표로 잡는 것이 전달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가사 전달력’은 ‘연기력’만큼 중요한 요소다. 보통 성악가들은 노래와 소리를 잘 내는 것 안에서만 가사를 전달하려고 한다. 자신의 성량과 음악을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용을 전달하고 가사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소리와 음악을 생각한다. 내 표현력 안에서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가사전달이 1순위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오페라 작품이나 부르는 노래 선곡 역시 내용을 우선순위로 두고 선택하는 일이 많아졌다.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는 장철 성악가 ⓒ김재성 작가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는 장철 성악가 ⓒ김재성 작가

성악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오페라 무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한국 오페라가 갈수록 대중에게 외면당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진단하며,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과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창작 오페라를 제외한 보통의 오페라는 외국어 가사를 그대로 부르고 화면으로 한국어 자막이 나온다. 오페라가 대중들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선 외국곡을 한국어로 번안해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뮤지컬의 경우, 오리지널 팀의 내한공연을 제외하고선 모두 우리나라 가사를 새롭게 붙여 공연을 하고 있지 않나. 이에 반해 오페라는 아직까지 원어를 고집하는데, 나는 이 부분이 시대착오적 태도라 판단한다. 오페라를 보러오는 관객들이 없다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오페라를 대중들에게 쉽게 전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나라의 시대, 상황에 맞는 번안을 통해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아야 한다. 

독일의 리트, 이탈리아의 칸초네, 프랑스의 샹송 그리고 우리나라의 가곡은 문학과 성악이 공존하는 음악의 장르는 시대를 막론하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 가곡의 아름다움을 보다 널리 알리고자 여러 해에 걸쳐 한국 가곡만으로 수차례 독창회를 개최하기도 했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가곡의 매력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가곡의 매력은 우리나라 말로 쓰여 있다는 점이다. 외국곡을 우리나라 말로 번역해서 듣는 것과 우리나라 작곡가가 느낀 감상을 우리말로 표현한 곡은 정말 다르다. 가곡은 시를 비롯한 문학작품에 클래식풍 멜로디를 입힌 것이다. 작품을 통한 감상을 음악에 실어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했기 때문에 그 노래에는 문학 속 운율, 어감, 정서가 전부 살아있다. ‘우리나라’의 가곡이 외국곡을 번역한 가곡과 다른 울림을 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장철 성악가의 한국가곡음악회 ‘말의 노래-2019’ 공연 모습
▲장철 성악가의 한국가곡음악회 ‘말의 노래-2019’ 공연 모습

그동안 국내 유수의 국악관현악단과 함께 국악과 서양 성악의 접목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해왔다. 교성곡 <만수산 드렁칡>, 극음악 <금시조>, 칸타타 <세종대왕>, 단가 <사철가> 등 수십여 편의 국악 작품을 협연해왔는데 이러한 시도의 계기가 있었는지?

어렸을 때부터 국악을 좋아해서 매일 듣고 자랐다. 서양 음악 못지않게 좋아했던 국악으로, 국악인도 못 하고 성악인도 못 하는 국악과 성악이 접목된 음악을 추구하게 됐다. 그 후 음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국악교향악단, 국악관현악단 등 다양한 국악인들과 같이 여러 공연을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주변 성악가분들이 어떻게 하면 그렇게 국악을 잘하는지 궁금해하시더라. 그들에게 나는 ‘국악을 많이 듣고 좋아해야 한다’라고 말해준다. 좋아하는 게 생기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많이 접하게 되고, 그러면서 몸에 익지 않나. 배움만으로 예술의 요소들을 다 채워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많이 헤매고, 힘들었다. 하지만 오페라와 대중음악의 중간 접점을 찾아 생긴 뮤지컬 장르처럼 제가 여태하고 있던 국악과 성악에 접목이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진 두 음악을 접목하기 위해선 애매하지 않은 자신만의 색깔이 반드시 필요하다. 요즘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 중에서는 안예은 씨가 단연 돋보인다. 국악을 바탕으로 한 곡을 본인의 창법으로 부르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내 경우엔 국악의 선율을 바탕으로 한 클래식 가곡을 성악 발성으로 선보이고 있다. 예술에서 경계를 흐리고 한계를 부수는 작업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연주 활동 외에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음악감독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많은 오페라 단체 중 서울오페라앙상블과 함께한 이유와 개인 연주자만이 아닌 음악감독을 맡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서울오페라앙상블과 거의 모든 작품을 함께 하고 있는 건 장수동 단장님에게 코가 꿰였기 때문이다.(웃음) 그분과의 인연은 유학 말년, 로마오페라극장에서 처음 공연된 한국오페라 작품으로부터 시작됐다. 백기현 성곡오페라 단장님이 1998년 이순신 장군 순국 40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오페라 <이순신>(Yi Sunsin)이었다. 이 작품에서 나는 ‘원균’ 역을 맡았다. 로마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이순신>은 다시 한국 무대에 올랐고, 그때 장수동 선생님이 연출을 하셨다. 

그다음 해에 공부를 마무리하고 귀국한 후 장수동 단장님과 3번 연속 공연을 함께하게 됐다. 한번은 바리톤 파트 내 주연과 주조연 캐릭터를 놓고 배역을 정할 일이 있었다. 내가 판단하기에 나는 주연보다 조연 캐릭터가 나와 잘 어울릴 것 같아 그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굉장히 좋아하셨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 롤이 큰 주연을 맡고 싶어 하는데, 전체 작품을 위해서 본인에게 맞는 역할을 선택하니 좋게 봐주신 것 같다. 

그때부턴 힘든 작품, 어려운 캐릭터를 도맡게 됐다. 그러다 선생님께 ‘선생님 작품에 이렇게 매진하는데 감투라도 하나 주시죠’라며 음악감독을 시켜

▲장철 성악가 ⓒ김재성 작가

달라고 우겼다. 없던 자리를 혼자 만들어 들어간 거다. 처음엔 인정도 안 해주시더니 언제부턴가 저를 ‘서울오페라앙상블 음악감독’이라 소개해 주시더라. 그렇게 음악감독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한 10년은 걸린 것 같다. 인정해주실 때까지 스스로 음악공부하면서 젊은 친구들이 오면 가르쳐주고 꾸준히 지휘자, 연출가들과 이야기하며 제가 정한 이름을 책임지려고 애를 썼다. 숙원사업을 이루게 되어 좋지만, 인터뷰 자리를 빌려 단장님께 꼭 어필하고 싶은 단점도 있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음악감독이 되니, 다른 오페라 단체에서 섭외가 안 된다는 것이다.(웃음) 

솔직히 말하자면, 서울오페라앙상블과의 작업만 고집한다기보다 다른 곳과 음악적 이상이 맞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민간 오페라단뿐만 아니라 국립 오페라단과의 작업 역시 그렇더라. 나는 음악가로서 투철한 고집을 갖고 있기에 납득할 수 없는 요구를 할 경우 함께 일하기가 어렵다. 특히 단체의 음악인들이 아닌 행정팀과의 마찰로 작업이 불발된 경우가 꽤 있었기에 아쉬움도 남는다. 

수상 당시 밝혔듯, 유학 시절 지나친 연습과 잘못된 발성 시도로 성대가 파열됐고 이로 인한 후유증으로 아직까지 고생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성악가에게 성대 파열이란 어떤 의미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은 어떠했는가?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성대 문제는 늘 가까이 있고, 그만큼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것 같다. 내 경우는 맞지 않는 소리 연습을 무리하게 많이 했던 것이 원인이 됐다. 지금은 바리톤으로 활동하지만, 유학 시절 초기에는 테너를 맡았다. 음역이 넓어 낼 수 있는 저음과 고음의 범위가 넓었다. 이에 ‘이탈리아에서 보기 드문 고음을 갖고 있으니, 특별히 고음역 테너를 하면 좋겠다’라고 추천을 받았고, 그 소리를 연습하다 왼쪽 성대 근육이 파열됐다. 지금

도 왼쪽 성대 근육이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왼쪽 성대가 거의 진동을 못 해, 오른쪽 성대만 사용되고 있다. 말하자면 팔 하나로 링 위에 오르는 권투 선수인 셈이다. 처음에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 노래가 아예 안 됐으니 말이다. 1년 가까이는 말도 잘 못 하고 힘들게 보냈다. 병원에서는 성악을 계속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좋은 선생님을 만나 정통 벨칸토(Bel canto) 발성을 배워서 회복할 수 있었다. 

나는 벨칸토의 여러 요소 중 치유기능에 주목했다. 운동 하다 부상을 당하면 재활 운동을 통해 치료하듯, 고음을 내다 망가진 목소리는 아름다운 소리를 연습하며 고칠 수 있다는 원리였다. 그래서 병원에서 추천한 치료 대신 정통 벨칸토 발성, 호흡법에 집중하는 것을 선택했고 그 결과 다시 노래할 수 있게 됐다. 수술한 것이 아니니 성대가 완전히 돌아온 건 아니나 망가진 성대로 노래 부르는 또 다른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이 정도 경험과 노하우라면 클리닉을 하나 내도 될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나의 제자들은 이 스튜디오를 제2의 클리닉이라 부른다. 유학을 마치고 학교 강의를 다니며 레슨을 시작할 때, 소문을 듣고 목이 망가진 학생들이 유난히 많이 찾아왔다. 성대 결절이나 폴립 등으로 노래가 어려워진 친구들을 내가 시도했던 방법대로 고쳐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고생을 자처한 것 같다. 처음부터 잘하는 친구들만 골라 받았으면 지금까지 편하게 일했을 텐데 말이다.(웃음) 망가진 애들 고쳐준다고 금방 뛰어난 기량을 회복하거나 좋은 대학에 턱턱 붙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다시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신뢰나 사랑이 쌓이기 때문에, 거기서 많은 보람을 느낀다. 

이 뿐만 아니라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집안의 반대에 부딪히는 등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음악의 길을 닦아왔다. 

중ㆍ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을 줄곧 해왔던 터라 아버지는 내가 법대로 진학해 사법고시를 치르길 원하셨다. 하지만 그러기엔 음악을 너무 사랑했다. 착실히 공부만 잘하던 아들이 갑자기 노래를 하겠다고 우기니 당연히 반대하셨다. 급기야 ‘공부를 잘해서 안 되는 거면, 공부를 못하면 되겠네’라고 생각했고,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시험지를 전부 백지로 냈다. 

꿈을 접지 않고 계속 버티니, 가을 접어들면서 부모님께서 ‘남은 기간 성악으로 서울대에 갈 수 있으면 허락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남은 기간이 3개월이었다. 3개월 동안 서울대 들어간다는 게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저는 거기에 동의하고 서울대에 입학하지 못하면 집을 나가겠다는 각서를 썼다. 일주일에 한 번 겨우 레슨을 받으며 혼자 노력을 많이 해 결국 서울대에 차석으로 입학했다. 실기 준비는 3개월이었지만 레슨을 받지 않았을 때부터 혼자 성악을 따라 하고, 마음속에 성악이 흐르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크고 작은 공연장에서 선보였던 수많은 공연 중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무대가 있다면?

해외 공연 중에서는 이탈리아 야외에서 했던 쟌 카를로 메노티(Gian Carlo Menotti)의 오페라 <전화>(The Telephone)의 무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유학 시절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휴양도시 마을 광장에 마련된 소규모 상설 무대에서 공연을 펼쳤는데, 그때의 광경이 사진처럼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당시에 느꼈던 기분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국내 무대 중 가장 감명 깊었던 무대는 단연 윤이상 선생님을 연기했던 <나비의 꿈>이라 할 수 있다. 우리말로 우리의 정서를 전달하기 때문에, 외국 오페라를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이유로 나는 불어나 영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 내가 모르는 언어로 된 오페라 작품은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모르는 언어로 제대로 전달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가곡은 부를 수 있지만, 오페라는 안 된다. 내 양심의 문제다. 물론 웬만큼 내용은 알지만, 조금 아는 것과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오페라는 작품 속 인물의 삶을 표현해야 하는데, 얕은 실력으론 한계가 분명 있다. 그리고 그 한계는 객석에 앉은 관객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장철 성악가의 서울오페라앙상블 창작 오페라 ‘나비의 꿈’ 공연 모습
▲장철 성악가의 서울오페라앙상블 창작 오페라 ‘나비의 꿈’ 공연 모습

학생들을 가르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자세와 태도가 있는지?

제일 중요한 건 음악을 진짜로 사랑해야만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사랑해야만 견딜 수 있는 순간들이 분명 찾아온다. 좋아해도 힘들 텐데 그저 대학에 가려고, 할 게 없어서 관성적으로 하는 건 의미가 없다. 더불어 다른 장르를 넘어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 성악을 배우는 아이들은 배울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선택의 상황에 놓였거나 기회가 왔을 때 다른 장르를 겸하거나 전향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다른 목적이나 목표를 이루려 성악을 수단으로 삼는 것은 클래식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싶다. 너무 고집스럽지만.

롤모델로 삼고 있는 음악가가 있나?

지금 몸담고 있는 오페라 쪽에서는 장수동 선생님이다. 정말 꿋꿋하게 자신이 정한 방향대로 길을 만들어 가는 그 뚝심이 존경스럽다. 그리고 성악가로서는 테너 안형일 선생님이 계시다. 우리나라의 국보 같은 분이시다. 예전에 공부할 땐 발성의 표본으로 삼던 성악가들이 분명 있었지만, 기술적인 것보다 인성을 더 중요한 가치로 두기 때문에 그 인물들을 함부로 롤모델로 삼을 순 없을 것 같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이나 배역이 있다면?

국악 창작을 계속해보고 싶다. 작품의 형식은 오페라, 음악극, 가곡 뭐든 좋을 것 같다. 이전에 교성곡, 칸타타 등의 작업도 참 행복하게 했었고, 내가 배운 서양 성악으로 우리 음악을 표현한다는 게 특히 좋았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계속하고 싶다. 

더불어 외국 오페라를 한국어로 번안하는 작업에도 욕심을 내고 싶다. 번안 작업은 생각보다 굉장히 까다롭다. 노래에 어울리는 뉘앙스를 살려야 하고, 하다못해 고음에서 어떤 모음을 붙여야 더 소리내기에 좋을까 함께 생각해야 한다. 결국은 노래하는 사람이 그 작업을 해야 제대로 나온다. 어렵지만 필요한 일이기에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성악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어려운 일이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음악적 행로는 차치하고 인간적으로 주변 동료들이나 제자들에게 올바른 길을 걸어가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 시대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예술인으로 기억되면 참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