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여행: 완벽한 타인 속에서 가면을 벗다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여행: 완벽한 타인 속에서 가면을 벗다
  • 윤영채
  • 승인 2021.03.05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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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2021학년 대입 2번 논술에 이런 문제가 나왔다. “당신이 여행을 가는 이유에 대해 기술하시오.” 이 주제를 보고 생각했다. 논술 1번 문제에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으니, 누가 읽어도 그럴듯한 답을 빠르게 적어내자. 곰곰이 쓸 말을 생각하던 찰라, 한수희 작가의 수필집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에서 한 구절이 떠올랐다. “여행을 떠나면 새로운 인생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건 순진한 착각이다. 장소가 바뀌어도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오면 새로운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예전과 같지만 어딘지 예전과는 다르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공감할 수 없었던 남의 생각과 정리되지 못한 설익은 나의 견해를 조잡하게 섞어 답안지에 적고 나왔다. 모두가 떠난 뒤 그 시험장엔 진심이 담기지 않은, 가식적으로 휘갈긴 시험지가 외롭게 놓여있었으리라.

내용의 요지를 복기하자면 이렇다. ‘여행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낯선 곳에서의 지독한 고독을 견디며 용기를 얻을 것이고, 그 용기 끝에 편안함을 찾을 것이며,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는 내가 가진 것들을 돌아볼 여유가 생길 것이다.’ 어쩌면 이보다 더 허접스런 답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내가 실제로 경험한 낯선 곳에서의 기행은 조금 달랐다는 것이다. 분명 그날 적은 것은 거짓이었다.

열네 살 사춘기, 독기를 품은 여중생들이 가득한 학교에서 나는 지쳐 있었다. 여름방학엔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다. 침대에서, 꼬여버린 인간관계와 내 잘못을 후회하느라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때 엄마와 큰 언니 손을 붙잡고 나주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았다. 일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햇볕을 쬐고, 텃밭에서 막 딴 채소를 먹었다. 새벽이면 할머니를 따라 목욕탕에 갔고, 오후엔 할아버지 손을 잡고 산책을 했다. 밤엔 모두 모여 드라마를 보며 분노에 치를 떨었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다. 친구들에게 잘 보이려 억지로 웃을 필요도 없었고, 급식을 함께 먹어줄 사람이 없을까 봐 마음을 졸일 필요도 없었다. 학급 내에서 평판을 신경 쓰거나, 하굣길에 무심코 들었던 말을 곱씹으며 인상을 찌푸리지 않아도 되었다. 나주에서의 어색한 생활이 주는 편안함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게 첫 여행이라는 단어가 부여되는 순간이었다.

이후에 갔던 부산, 울산, 여수, 횡성, 제주, 캄보디아, 보라카이, 일본 그리고 두 번의 태국 여행에서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여행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거짓으로 꾸며진 가상의 인물인 윤영채를 나라 믿는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가식 없는 솔직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남에게 잘 보이려 하거나, 별거 아닌 일로 갖곤 했던 자격지심 같은 것에서도 자유스러울 수 있었다. 매번 가식으로 포장하며 느꼈던 허무함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산물을 맛보고, 기념품을 사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진 않았다. 가장 자유롭게 가슴이 뛰는 순간, 나를 용서할 수 있는 시간을 배우고 얻었으며, 그 끝에서 수수하게 빛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

바쁘게 달려 어떠한 결과를 내야만 나를 사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두려운 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해 내야만 자애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여행을 통해 배운 한 가지는, 자아를 외면하면서도, 멈춤 속에서도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바쁜 현실을 너저분한 일상에 버려두고 온 여행이지만, 달리지 않아도, 결과를 얻지 않아도, 도망쳐도 괜찮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웃었고, 사색하며, 먹는 것을 고르는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으니까. 다시 거짓과 질시의 늪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여행을 통해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갈 조금의 용기와 힘을 축적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비밀을 품고 산다. 나 역시 연인에게, 형제에게, 부모에게 그리고 친구에게 각각 말하지 못할 많은 비밀을 종양처럼 안고 살아간다. 너무나도 많다.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Perfect Strangers)’를 원작으로 한 한국 영화 완벽한 타인의 마지막 장면엔 이런 자막이 나온다. “사람들은 누구나 세 개의 삶을 산다. 공적인 하나. 개인적인 하나. 그리고 비밀의 하나.” 그러나 타인과 함께한 여행에서도 공적이 아닌 개인적인 삶을 살 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었고, 혼자 떠난 여행에서는 비밀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다시 공적인 삶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해도 숨을 한 번 쉬었으니 아쉽진 않다. 인생은 그런 것이니 말이다. 옆으로 지나가는 낯설기만 한 사람들도, 이곳에서 치열하게 공적인 페르소나를 쓰고 살고 있을 것이다. 여행이란 그래서 짜릿하다. 자유를 느끼는 이 공간에서 누군가는 지겨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흥미롭지 않은가. ‘완벽한 타인완벽한 자유그 자체인지 모른다.

솔직하게 적지 못했던 시험날, 다른 이들은 어떤 답을 적었을까. 그들은 무슨 이유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유? 사랑? 희망? 새로운 삶? 새로운 삶을 얻은 이도 있겠지만, 기나긴 여행 끝에 내가 접했던 것은, 지옥으로 돌아가야 하는 구질구질한 현실이었다. 그렇게 삶은 바뀌지 않았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새로운 환경에서 어떤 우연적 요소로 인해 180도 바뀐 세상에서 사는 주인공, 그게 본인이 될 확률은, 우리 집 깨미(애완묘)가 황금 똥을 쌀 만큼 희박하다. 오히려 인생이 바뀌는 순간은 큰 상처를 입었을 때다. 이때 더욱더 독해지거나 약해 무너지거나, 둘 중 하나의 길을 우리는 걷게 된다. 여행은 상처에서 멀어져 잠시 숨을 쉴 수 있는 효과적인 선택지였다. 새로운 인식의 태도를 얻지는 못했지만, 그저 덧없는 인생, 버티는 삶에 대해 뼈저리게 곱씹으며 맥주를 마셨고, 자유로운 이 시간을 즐겼고,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모두의 가슴엔 말 못 할 비밀이 있다. 그래서 인생은 슬프고 쓴 것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말곤 없기 때문이다. 감추지 않아도 웃을 수 있고, 먹고 마실 수 있는 자유를 원하는가. 그래서 거짓을 벗어던진 자유의 나를 만나고 싶다면, 오늘도 자책하며 맥주 한 캔을 따는 것이 아니라,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골목길로 들어가 보자. 기필코 혼자서……. 그곳에서 완벽한 타인들 속에서 편안함을 누려보자. 인생은 생각보다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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