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ㆍ상쾌ㆍ통쾌!, '남산골 허생뎐' 보러가자
유쾌ㆍ상쾌ㆍ통쾌!, '남산골 허생뎐' 보러가자
  • 편보경 기자
  • 승인 2009.12.17 1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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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중요 구성 요소 살리면서도 현대적으로 각색

이제 판소리가 재밌어진다. 무대에서는 허생의 아내로 분한 명창 안숙선이 허생(왕기석 명창)에게 텅텅 비어버린 쌀독을 보여주며 해학적인 몸짓과 함께 소리를 시작한다. 

유쾌ㆍ상쾌ㆍ통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2009 서울남산국악당의 송년레퍼토리 명창 안숙선의 우리시대 소리극 '남산골 허생뎐'이 공연을 앞두고 17일 프레스 리허설의 막을 올렸다. 

▲ '남산골 허생뎐'은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있다. 연암집을 찾은 박지원에게 설희(를 시집 보내기로 했다며 구슬픈 가락을 하는 명인 안숙선.

이 날 무대에 오른 명인 안숙선을 비롯한 허생과 박지원으로 분한 국립창극단 지도위원인 왕기석 명창, 허생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변씨와 이완 역을 맡은 국립창극단 김학용, 윤석안 등 실력파 국악인들은 현대인들의 눈높이를 고려하면서도 우리 고유의 판소리의 멋을 살린 공연을 유감없이 뽐냈다.

또 자체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젊은 소리꾼인 선아, 설희역의 박자희, 김진희 등도 신선한 매력으로 공연에 활기를 더했다. 

특히 이 공연의 예술감독과 작창을 담당하고 직접 배우로도 출연하는 명인 안숙선은 허생의 부인역으로 대가 답게 코믹하면서도 지혜로운 아내역을 맛깔스럽게 연기했다.

▲ 허구헌 날 집에서 책만 읽는 허생(왕기석 분)에 돈을 좀 벌어 오라고 잔소리를 하고 있는 허생부인(안숙선 분)

공연이 끝난 후 가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연출가 김석만 서울시극단장과 명인 안숙선, 왕기석 명창, 뮤지컬 '라디오스타와', '청 이야기' 등의 대본을 써 주목받는 신예 작가 강보람, 젊은 소리꾼 박자희, 김진희 등이 함께해 공연의도와 공연을 앞둔 소감을 밝혔다.

김석만 연출가는 "어떻게 하면 판소리 양식을 존중하면서도 마치 '알집'과 같은 판소리를 1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 현재적으로 구현해 내는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이 작품을 만들게 됐다"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 허생이 돈을 벌어 오지 않으면 어짜피 굶어 죽을테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며 떼를 쓰고 있는 허생부인

명인 안숙선은 "많은 음악극들이 공연 되고 있지만 행여나 우리 고유의 몸짓이나 우리의 소리, 느낌들을 잃어 버리게 될까 염려스럽다"며 "남산 국악당에서이런 기획을 해주셔서 고맙다"고 공연 소감을 밝혔다.

아울러 "김석만 연출가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이 한국적인 창극을 만드는 것이다" 며 "지금처럼 쭉 이어가다 보면 세계에 내 놔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의 말을 전했다.

▲ 허생이 꿈에 그리던 돈을 500만냥이나 벌어서 집으로 돌아오자 허생부인이이것이 꿈인지 생신지 하면서 돈 상자를 치마폭으로 숨겨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왕기석 명창은 "우리 대 선배님이신 안숙선 명인과 그 동안 연인 역활 부녀 역활 등을 함께 많이 해 왔는데 이번 공연도 함께 출연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감회를 전한 뒤 "개인적으로는 창극단에서 활동한지 30년째가 되는데 우리 국공립 예술 단체들의 공연 제작 여건이라는 것이 여전히 한계가 있다"며 현실을 지적했다.
 
또 "창극이 꼭 대형화되어야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왔는데 우리 나름대로 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살리면서도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느낄 수 있는 공연을 하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며 "이번 연말과 크리스마스는 남산 한옥 마을 극장에서 보내는 뜻 깊은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안숙선 명창. 왼쪽부터 김석만 연출가, 왕기석 명창, 강보람 작가, 젊은 소리꾼 박자희, 김진희
강보람 작가는 그간 뮤지컬 작업을 주로 해 오다 하다가 창극 대본을 쓰게 된 느낌에 대해 " 안숙선 선생님을 비롯한 명창분들과 작업을 하게되다 보니 표현 양식이나 이야기를 풀어내가는 것이 한편으로는 좀 걱정이 되었지만 고향이 전라도라 리듬들이 의연중에 내 몸에도 녹아있어 재미있게 작업을 한 것 같다고 느낀다"며 "서구의 뮤지컬이 꽉 짜여진 골자에 의해 보여주는 것이 있다면 우리 선조들의 넉넉하고 여유로운 삶을 창극이라는 좋은 그릇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젊은 소리꾼 박자희와 김진희는 공연을 앞둔 소감에 대해 "소리공부를 하면서 이름만 들어도 너무 대단하신 선생님들과 공연을 하게 되서 너무 큰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에너지를 심어주시는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잘 이어 받고 싶다"고 기대를 내비쳤다. 

▲ 쟁쟁한 오디션을 뚫고 당당히 캐스팅 된 젊은 소리꾼 박자희와 김진희. 두 사람의 활약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편 연암 박지원의 원작 소설을 창극으로 각색한 '남산골 허생뎐'은 작년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송년레퍼토리 공연으로 선보인 '남산골 변강쇠뎐'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에 힘입어 안숙선 명창과 김석만 연출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 작품.

원작소설은 한문으로 씌여져 있어 읽기가 어려웠지만 창극으로 꾸며진 이 작품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 또 허생전의 실제 배경인 남산골에서 공연을 가져 더욱 기대를 모은다. 공연은 오는 19일부터 27일까지 총 10회에 걸쳐 열린다.

서울문화투데이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