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대구미술관, 과거ㆍ 현재 그리고 미래 (2)
[특별기획]대구미술관, 과거ㆍ 현재 그리고 미래 (2)
  • 이은영 기자ㆍ안소현 비평가
  • 승인 2021.04.16 03: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구미술관, 개관10주년 기념전, ‘대구근대미술전-때와 땅', ‘다티스트1-차규선, 정은주’, ‘첫번째 10년’
지역 미술관 역할 숙고 반영한 근대에서 현재까지 세대 이은 작가 조명
독립운동가이자 뛰어난 예술가 이여성 산수, 이상정 전각까지
서병오의 '근대미술 아카데미, 교남시서화회', 김진만, 서동균 등 배출
대구가 나은 걸출한 화가 이쾌대, 이인성 작품세계 조망
지역 미술관 태동 위해 작가들 모금 운동 펼쳐

(1편에 이어서)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229

과거와 이어지는 대구 미술의 현주소

대구 근대미술 아카이브전(사진=대구미술관)

대구의 과거는 2층에서 진행되는 ‘첫번째 10년’전과 ‘다티스트1-정은주, 차규선’전을 통해 현재로 연결된다. ‘첫번째 10년’은 대구미술관의 창립 과정과 지난 10년간의 행적을 알아볼 수 있는 아카이브 전시다. 대구는 회화로 유명한 지역이었음에도 오랫동안 미술관이 없는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대구미술관 건립을 위해 지역 작가들이 아트페어를 열기도 하며 모금 운동을 펼쳤다.(사진=대구미술관)

문현주 홍보팀장은 “미술관 건립 논의는 계속 있었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 등 일련의 사건으로 본격화되지 못하다가 10년 전에 비로소 대구미술관이 개관됐다”고 얘기했다. 전시는 민간차원에서 미술관 건립 운동을 펼쳤던 1997년부터 미술관 건축 설계 공모가 이루어졌던 1999년을 가로지르는 ‘서사를 위한 준비’ 파트와 2011년 개관 후 미술관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살펴보는 ‘10년의 서사’ 파트로 구성돼 있다. 이 전시를 통해 시민과 함께해온 대구미술관이 중히 여겨온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다티스트’전은 “지역 미술의 발전을 도모하고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대구를 기반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현대 미술 작가를 선정해 전시하는 시리즈물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선정된 두 작가는 정은주와 차규선이다. 문 팀장은 “원래 원로 작가와 중견 작가를 각각 한 명씩 선정할 예정이었지만 두 작가가 모두 훌륭해 고민 끝에 둘 다 중견 작가로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두 작가 모두 추상 또는 추상에 가까운 작업을 하면서 묘하게 대구 지역 추상 전통과 연결된다.

차규선, 자연 형상에서 나아가 흙을 주재료로 '분청회화' 창안

차규선은 대구를 기반으로 25년간 활동한 작가다. 초기 작업은 구상 계열 풍경화가 주를 이루지만 2001년을 기점으로 ‘분청회화’를 창안하며 이름을 알렸다. 작가는 경주 남산에서 자연을 가까이하며 성장한 까닭에 그 시절 느낌을 품고 있는 흙을 주재료로 사용한다고 한다.

대구미술관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옛날에는 저 자연을 내가 주체가 되어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연이 나한테 말을 거는 것 같다”고 말했다. 흙과 아크릴 물감으로 기억 속 풍경을 재현했던 분청회화 시기에도 그리는 주체는 강하게 부각되지 않았다. 기억하는 주체는 여기 있지만 경험하는 순간과 회상하는 순간이 같을 수 없듯 분청 작업도 그리는 순간의 캔버스와 마른 후의 캔버스가 다르다. 작가는 기뻐하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하며 결과물을 받아들일 뿐이다.

다티스트1 전시에 선정된 차규선 작가의 '풍경에 대하여' 전시 전경.(사진=대구미술관)

2019년 이후 최근작에서는 주체적 시선을 더욱 내려놓은 것 같다. 자연은 구축하는 시선에 맞서 점차 해체되고 결국 추상에 가까워진다. 차규선의 작업은 여러모로 정점식을 떠올리게 한다. 분청회화에서 보이는 서예적 붓놀림은 물론이고 자연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형상에서 출발해 추상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차규선, 청송, 2020, 대구미술관 제공
차규선, 청송_ 2020. (사진= 대구미술관)

정은주, 붓질에 마음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캔버스에 응축시키다

반면 정은주는 장석수를 상기시킨다. 엉뚱한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겉보기에 두 사람의 작업은 전혀 닮아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장석수는 액션페인팅에 기반한 역동적 추상 작업을 했던 반면 정은주는 차분한 색면 추상을 한다. 그렇지만 작업 과정을 살펴보면 둘 모두에게 신체성이 중요하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다티스트1 전시에 선정된 정은주 작가의 '초록아래서' 전시 전경.(사진=대구미술관)

정은주는 회화로 작업을 시작했다가 2000년부터 2016년까지는 반입체 작품을 만들었다. 나무와 캔버스에 스프레이를 여러 겹 뿌린 후 사포로 갈아서 매끄러운 색면을 형성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어느 시점부터 이 작업이 괴롭다고 느꼈고 2017년부터는 다시 회화로 복귀하게 된다. 신체의 움직임을 반영하는 붓질을 통해 마음의 스펙트럼이 다채로운 색을 품고 캔버스에 스며든다. 정은주의 작업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적이나 그 안에 응축된 에너지는 장석수 못지않게 강렬하다.

정은주, '초록아래서' 전시 전경.(사진=대구미술관)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가는 대구, 문화적 자양분 유감없이 보여주는 전시

최은주 관장은 이번 전시특별전에 대해 "한국 근대미술의 발상지로서 대구가 지닌 문화적 자양분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전시로 사회를 생각하는 대구근대미술의 정신을 느낄 수 있고, 대구 시민들이 대구 예술에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때와 땅’전 기획자인 박민영 학예사는 “사료가 부족해 이번 전시에 여성 화가가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대구는 회화가 강세인지라 지금까지는 회화 전시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장르를 다룰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문현주 팀장은 “지금까지는 대구 미술의 과거를 통해 미술관의 입지를 굳히고 이를 기반으로 역동적인 오늘날의 대구 화단을 보여주려 했다면 앞으로는 해외와의 협력을 통해 세계 속의 대구로 자리 잡을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서 “추후 프랑스 매그 재단과 협력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을 대구에서도 보고 싶어 하는 시민들에게 응답하는 한편 대구미술관의 소장품도 해외에 알리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대구미술과의 10년 간의 역사를 조명한 '첫번째 10년' 전시 전경(좌)과 10년 간 열렸던 전시 도록 모음(우). (사진=대구미술관)

대구미술관은 대구만의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도 바깥 세계와 무리 없이 연결되고 있다. 지역 주민을 교육하면서 미술관의 역할 역시 충실히 수행하려 노력한다. 도서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미술사를 배우고 있다는 한 관객은 "이번 전시를 기회로 많은 공부가 되었고 대구 근대 미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고 전했다. 지역 미술관의 역할을 고민하는 대구미술관의 앞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