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 ‘절창’의 두 남자와 그 연출가, 아주 잘 만났다!
[윤중강의 뮤지컬레터] ‘절창’의 두 남자와 그 연출가, 아주 잘 만났다!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1.04.2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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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무대엔 오직 2명이다. 전체는 6명이다. 그것 자체로 완벽했다. 넣을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다. 
박초월제(미산제) 판소리 ‘수궁가’로 만든 작품 ‘절창’이 그랬다. 판소리를 소리판보다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방식이 태어났다. (2021. 4. 17 ~ 18, 국립극장 달오름) 

일찍이 신재효는 말했다. ‘광대가’에서 광대가 갖춰야 할 네 가지 덕목으로, 인물치레, 사설치레, 득음, 너름새를 꼽았다. 김준수와 유태평양은 넷을 두루 갖췄다. 김준수는 인물치레, 유태평양은 사설치레를 꼽을 수 있다. 김준수가 실제 인물이 준수하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창극에서의 그는 언제나 그 인물에 딱 맞는 캐릭터로 변신했다. 유태평양은 가사의 전달력이 참 좋다. 사설에 대한 이해도와 구현력이 상위레벨이다. 국립창극단의 역사에서 안숙선명창이후엔 유태평양이 최고라고 단언한다. 

‘절창’에선 두 사람의 또 다른 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게 ‘절창’의 가장 큰 성과다. 김준수의 ‘너름새’요, 유태평양의 ‘득음’이다. 

김준수는 ‘절창’에서 무대를 매우 넓고 강렬하게 활용했다. 기존의 판소리 무대에서 일정한 크기의 돗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소리하는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기존의 발림(너름새)이 거의 손과 부채를 중심으로 만들어 내는 발림과는 달라도 아주 달랐다. 김준수의 발림은, ‘발림의 확장’ 또는 ‘너름새의 확장’이다. 21세기의 공연문화에 맞는 판소리의 움직임이다. 그의 ‘발림의 확장’은 ‘콜롬버스의 달걀’과 같다. 창극판에 존재하는 움직임을 판소리판에 가져와서 동작을 확장했다. 김준수가 그간 여러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매력적인 움직임과 자신감을 전제로 해서, 전통판소리 ‘수궁가’에 매우 현명하게 적용하고 있다. 오직 배우는 두 사람인데, 무대가 꽉 차게 느껴진 건 김준수의 활달한 움직임 덕분이다. 

여러 무대에서 연기력이 돋보였던 유태평양은 ‘절창’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절창(絶唱)을 들려주었다. 나이에 맞는 소리라는 걸, 유태평양을 통해서 확인한다. 30대의 유태평양은 나이에 맞는 소리를 했다. 나이든 명창의 숙련이나 노련 또는 젊은 명창의 패기 또는 열정과는 달랐다. 선긋기가 확실했다. 내가 무대에서 ‘가수’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를 알고 있었다. 지금 이 나이의 내가 할 수 있는 노래를 진솔하게 들려주었다. ‘명창’의 정의가 자신에게 맞는 소리, 나이에 맞는 소리라고 한다면, 유태평양은 30대를 대표하는 명창 중 명창이다. 

특히 수궁가의 눈대목(하이라이트)이라 할 ‘범피중류’에서의 유태평양은 존경스러울만큼 빛났다. ‘범피중류’의 앞부분에선 장단을 배제했다. 따라서 오직 유태평양의 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내겐 이 부분이 가장 좋았다. 일찍이 판소리와 창극에서, 장단은 이미 관객의 뇌리에 존재하기에 부분적으로 장단을 직접 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예술적이고, 극적 내용에 집중할 수 있는 논리를 펼쳐온 나와 같은 사람의 입장에선 더 그렇다. 

오직 유태평양의 소리 하나만으로, 범피중류는 시작됐다. 유태평양은 그 시적(詩的) 정서가 마치 몽환적(夢幻的)으로 유려(流麗)하게 펼쳐냈다. 판소리판에서처럼 열심히 부르는 모습을 관객에게 드러내지 않았다. 관객은 마치 유태평양이란 선주(船主)의 배에 함께 몸을 싣고서, 그 배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신비한 세계로 가는 기분이었다. 

판소리에선 아니리가 아닌 이상, 소리에선 늘 장단이 따라붙는다. 범피중류에서 처음을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다는 게 ‘신의 한수’다. 유태평양의 소리가 점차 시적(詩的)에서 극적(劇的)으로 갈라는 찰나 여기에 장단에 ‘쩍’하니 붙었다. 고수(조용수)의 장단 속에 거문고(최영훈)가 합쳐졌다. 

전통창극에서 창작창극까지, 창극단무대는 물론 외부 음악극에서, 최영훈의 거문고는 늘 ‘무게중심’이 된다. ‘내 이름은 사방지’라는 작품의 어떤 공연에서, 그 날 따라 소리꾼들의 노래가 매우 흔들리는데, 변함없는 건 최영훈의 거문고였다. 결국 최영훈이 소리의 맥을 잡아주니, 점차 그 작품 속 배우(소리꾼)도 안정감을 찾고 극적 역할에 더욱 충실해졌다. ‘흔들림 없는’ 최영훈이요, ‘속내가 깊은’ 성음(聲音)이다. 

국악창작그룹 ‘불세출에서 활동하는 박계전은 피리, 생황, 태평소를 통해서 극음악의 변화와 활기를 주었다. 앞으로 박계전은 더욱 발전할 가능성이 커 보였다. 

’수궁가‘를 가져온 ’절창‘에서 ’숨은 주역‘은 전계열이다. 실제 전계열은 무대 옆 공간에서 모듬북 등을 세팅하고 연주를 했다. 그래서 관객들은 그를 전혀 볼 수 없었다. 이 또한 연출(남인우)이 매우 잘 한 일이다. 대목마다 그의 역할이 컸으나, ’범피중류‘에선 더 그랬다. 소리와 장단, 거문고와 생황이 만난 ’범피중류‘는 전계열의 모듬북과 함께 점차 입체적으로 심화(深化)되었다. 국악공연에서 늘 쓰는 오션드럼이요, 레인스틱이라지만, 전계열의 손을 거치면, 그 소리가 매우 품격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뭘까? 그건 전계열이 단순한 타악기 연주가이기보다는, 스스로 ’고수의 확장‘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렇다. 전계열은 또 한 사람의 고수였다. ’절창‘에서, 김준수가 ’발림의 확장‘을 해냈다면, 전계열은 ’고수의 확장‘을 해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가치가 여기에 있다. 곧 창극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존의 판소리에 내재한 음악적 및 연극적 확장성(擴張性)을 만들어냈다. 

이런 것이 가능한 배경에는 출연자들의 탁월함과 함께, 여러 요소를 현명하게 조율해 낸 연출의 비범함이다. 연출가 남인우는 ’사천가‘를 비롯해서 판소리와 전통예술을 소재로 한 작품을 연출했다. 그간의 노하우와 센스가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했다. 

남인우는 ’버릴 줄 아는‘ 연출가였다. 과거 ’내이름은 오동구‘(2013)와 같은 작품과 달랐다. 남인우 연출은 재기발랄이었다.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창극 버전인 작품에서, 남인우는 매우 재밌는 작품을 만들었고, 연출가로서 스스로 변화무쌍을 즐겼던 것 같다. 국립창극단으로 오랜만에 돌아온 남인우는 달라져 있었다. 단순해졌고, 깊어졌다. 처음 모노톤의 세트는 화려찬란함과 선을 긋고 있다. 소리꾼 두 사람을 돋보이게 하겠다는 목적성을 읽게 해주었다. 

기존의 창극과는 다른 무대 세트의 뒤편에서 두 남자(김준수, 유태평양)가 실루엣으로 등장을 했을 때, 여기서부터 성공 예감이 들었다. 연출은 ’부채를 든 남자‘의 매력을 참 잘 알고 있었다. 이번 무대가 기존의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다른 무대와 확실하게 차별화된 건, 결국 다른 요소를 덕지덕지 무대로 채우지 않고, 오직 무대에서 존재하고 들리는 모든 것이 ’소리의 확장‘으로서 존재했단 것을 극찬(極讚)하고 싶다. 

우리의 전통예술에는 연출이 없는 것이 아니다. 연출이 안 보이는 것이고, 연출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걸 요즘 연출이 알아야 한다. 전통예술의 텍스트를 잘 읽어낼 줄 아는 연출가이 드물다. 남인우는 달랐다. 이 연출은 소리의 흐름 자체를 잘 알고 있었고, 무대 위의 두 남자의 매력을 돋보이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수궁가’를 소재로 한 ‘절창’을 재미로 이끈 원동력의 하나는, 두 소리꾼이 마치 대학로 소극장의 ‘멀티맨’처럼 보이기 했다는 점이다. 판소리 자체의 소리꾼은 이미 멀티맨이다. 하지만 이건 너무 익숙해져서 신선하지 못하다. 창극에서는 거의 고정배역이기 때문에, 이런 특성이 전혀 살지 못한다. ‘절창’에서 두 명의 소리꾼은 중심이 되는 토끼와 자라 이외에, 자라모, 자라처, 용왕, 호랑이, 쉬파리, 독수리, 사냥꾼 등이 변화하면서 소리와 연기를 펼쳤다. 

이런 방식은 김종욱찾기 (2005)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대한민국 대학로에선 이미 보편화됐지만, 창극에서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남인우는 이런 특성을 무대에 잘 살려주는 연출이고, 여기에 두 사람의 연기가 정점을 찍었다. 

“왜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기존의 판소리와 기존의 창극과 ‘선 긋기’를 확실하게 하면서, 마치 틈새시장을 공략하듯 걸작 하나가 탄생을 했다. 전통판소리 하나만 가지고, 재미와 의미의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국립창극단의 유수정 예술감독을 비롯해서 모든 분께 큰 박수를 보낸다. 국립극장의 100년사(2050)에서 누군가가 이 작품을 소중히 다룰 것이다. 이제부터 국립극장이 ‘이런’ 작품, ‘이런’ 접근을 제대로 많이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