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 시간과 형식의 하이브리드》展 , 과거와 현대 아우르는 도자
《도자: 시간과 형식의 하이브리드》展 , 과거와 현대 아우르는 도자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4.2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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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에 공존하는 기술, 시간, 문화를 중심으로
본화랑 오는 6월 5일까지, 5인 작가 그룹전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기자] 도자 안에는 다양한 시간과 형식이 공존한다. 도자가 단순 과거 유물로 남지 않고 현재의 우리와 같이 살아가는 작품이 된 것은 시대 속에서 불변의 순수성만을 고집하지 않고 시간 흐름에 같이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도자는 시대마다 나타나는 다양한 문화, 기술의 융합, 변종적 결합을 허용해오며 전통의 색과 동시대의 흐름을 담아내왔다.

도자가 가진 다양한 시간의 장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전시가 개최된다. 29일부터 오는 6월 5일까지 본화랑에서 열리는 《도자: 시간과 형식의 하이브리드》전이다. 도자 예술을 다양한 장르와 시대적 표현방식의 융합으로 바라보며 새로운 공존의 형태를 선보인다. 도자가 가진 전통과 현대, 시간과 형식을 하이브리드적 개념으로 접근해 새로운 시각과 방법으로 재해석 한다.

▲ 백산 김정옥, 청화백자팔각병, 20 x 36(h) cm (사진=본화랑)
▲백산 김정옥, 청화백자팔각병, 20 x 36(h) cm (사진=본화랑)

전시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5인의 작가 작품으로 구성됐다. 전통도자를 현대적 맥락으로 풀어내는 도예 작가 이헌정, 유의정, 주세균의 작품과 유리 매체로 도자의 미학을 구현하는 이상민 유리 작가의 작품, 마지막으로 한국 도자 정통성을 이어가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인 백산 김정옥 사기장의 전통 도자기까지 만나볼 수 있다.

도자 예술의 하이브리드

하이브리드는 두 가지 이상의 이질적인 요소가 혼합돼 새로운 것을 창출한다는 의미다. 구조적 해체와 장르의 잡종화 현상이 촉발된 포스트모더니즘부터 하이브리드는 혁신적인 예술 개념으로 자리 잡아왔다. 이 개념은 우리 민족의 문화적 전통을 계승한 도자예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도자는 과거부터 경계 없이 기술과 문화의 접목이 실현되던 장르였다. 우리 민족의 독자적인 도자인 고려청자도 중국에서 전해진 청자 기술력에 고려인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결합시켜 우리 민족 고유의 도자를 만든 것이다.

전시는 시대에 따른 문화와 생활 양식을 흡수하며 변화해 온 도자의 특징을 주목하며, 지금 동시대 예술가들은 어떻게 도자의 양식, 내용의 변화를 추구하는 지 탐색해본다. 전통과 현대의 상호작용 속 창작된 작품들을 시간성의 혼합과 공존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해본다.

유의정, 청화백자 용문+보석 호, 2018, 백자 위에 금, 유약, 사진꼴라쥬, Ø 31 x 38.5(h) cm
▲유의정, 청화백자 용문+보석 호, 2018, 백자 위에 금, 유약, 사진꼴라쥬, Ø 31 x 38.5(h) cm (사진=본화랑)

도자의 새로운 독창성 끌어낸, 형식의 하이브리드

하이브리드적 사고는 현대 도예가들에게 자유로운 발상의 전환 이질적인 것들의 수용과 혼합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유의정, 쥬세균, 이헌정 작가는 전통과 현대의 새로운 결합 논리로 도자의 독창적 재해석을 펼친다.

유의정 작가는 전통 도자기에 동시대적 현상을 대입해 도자의 양식적 혼용을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전통 기법을 따르되 기존 제작 방식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재료, 문양, 테크닉을 결합해 전통의 특성을 보여주면서 현대적 미감을 돋보이게 해준다. 유 작가는 전통 문양의 참조를 통해 도자에 도식적인 문양을 입힌 후 전통적 유약의 기능과 사용 방식을 달리 함으로써 이미지와 형상이 흘러내리도록 해 혼합에 의한 변형을 꾀 한다. 사진 꼴라주 테크닉을 이용해 독창적 형태의 시대적 문양을 만들기도 한다.

주세균, Tracing Drawing PD1802, 2018, Pencil drawing on ceramics, 19 x 19 x 51.5 cm
▲주세균, Tracing Drawing PD1802, 2018, Pencil drawing on ceramics, 19 x 19 x 51.5 cm (사진=본화랑)

주세균 작가는 인터넷 상에 존재하는 부족한 정보를 통해 백색 도자기를 만들고 불완전한 형태로 수집된 국보와 보물의 이미지를 도자의 원형 구조 위 에 연필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 불충분 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으로써 주 작가는 도자기 위에 두 개 이상의 유물 이미지를 결합하거나 하나의 고정된 시점에 의한 유물의 제한적 형상을 그려 낸다. 이미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의도적인 왜곡과 변형이 일어나는 데, 이를 통해 작가는 전통과 현재의 인식 간 괴리를 드러낸다.

앞선 두 작가는 도자의 전통성과 현대성의 조화, 공존이 돋보이는 경향이었다면 이헌정 작가는 전통과 전통에 적대적인 것과의 경계를 허물어 전혀 다른 요소의 상호 결합 과정으로 새로움을 창조해내는 경향을 보인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력을 도예의 재로로 삼는다. 과거에는 표면이 깨지거나 금이 간 도자, 일그러진 도자는 완전한 실패작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이헌정 작가는 제한적 과거의 인식을 깨고 거부하며 작품을 완성시킨다. 이 작가가 만든 달항아리는 기우뚱하고 상하체의 접합 부분은 매끄럽지 않으며 일부는 금박으로 덧대어져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전통적 도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의 미감을 창출해 낸다.

▲이헌정, 달항아리, 2019, ceramic, 55 x 55 x 62(h) cm (사진=본화랑)
▲이헌정, 달항아리, 2019, ceramic, 55 x 55 x 62(h) cm (사진=본화랑)

시간의 겹을 엮어 창출한, 시간의 하이브리드

도자에는 과거의 정신과 현대의 삶이 교차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관통하는 고차원적 존재로 도자를 바라볼 때, 많은 예술가들은 영감을 얻고 예술적 가치를 이뤄내고자 한다.

유리 작가 이상민은 작업에서 도자를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순간이 조우하는 공간이며 시공간을 초월한 선인들과의 교감 장소로 이해한다. 이 작가는 전통적 레퍼런스를 토대로 도자의 형상 모양과 음영의 위치를 분할 계산해 유리 판 위 에 밑작업을 한다. 그 다음 10t 유리 판 배면을 그라인더로 연마해 도자기의 형태와 입체감을 온전히 담아낸다.

이 과정을 통해 완성된 유리는 도자의 형상을 표면 위로 고요히 띄워올린다. 빛의 반사와 굴절에 의해 드러나는 도자 주변의 여러겹의 윤곽선은 신기루와 같이 일렁여 현재 형태에 과거의 형상이 덧 입혀지고 시간과 시간이 중첩되며 혼재하는 듯한 초월적 순간을 만들어낸다.

이상민, 백자청화운용문호白磁靑畵雲龍文壺(Joseon Period), 2019, Engraved Glass and framed, 91 (W) x 139 (H) x 6 (D) cm (사진=본화랑)
▲이상민, 백자청화운용문호白磁靑畵雲龍文壺(Joseon Period), 2019, Engraved Glass and framed, 91 (W) x 139 (H) x 6 (D) cm (사진=본화랑)

마지막으로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05호 사기장 기능 보유자 백산 김정옥(金正玉) 선생의 작품으로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고고한 과거의 시간을 만날 수 있다. 김 선생은 일흔이 넘 은 나이에도 발물레를 고수하며 유약의 제작, 배합, 가마, 장작까지 전통적인 제작 방식으로 한국 도예의 정통성을 지켜오고 있다. 그의 작품은 조선의 혼과 정신, 시간이라는 무형적 가치를 지니고 시공간을 넘어 현재까지 도달한다.

도자 예술이 급변하고 있는 예술 환경 속에서도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항상 전통성과 현대성 사이의 새로운 가치와 중심을 잡는 작품이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동시대의 도자 예술이 가진 경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도자 예술의 시작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러 형식들 간의 혼합·전통의 창조적 계승·도자에 내재된 무형적 가치 형상화는 앞으로 도자 예술의 새로운 존속방식을 모색할 수 있는 재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