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인문학 알고리즘 톺아보기]디지털 사회의 무감각화가 낳은 고통없는 사회: 대명사로서 존재하는 페이크 캐릭터 창출과 페이크 게스트하우스 전시
[청년, 인문학 알고리즘 톺아보기]디지털 사회의 무감각화가 낳은 고통없는 사회: 대명사로서 존재하는 페이크 캐릭터 창출과 페이크 게스트하우스 전시
  • 윤지수
  • 승인 2021.05.04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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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수(1992년 생)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를 나와 '미술이론의 공부와 연구를 위해' 네델란드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문화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특히, 동시대 문화 현상과 변화에 대한 관심이 많고 미술, 과학, 역사를 포함한 다양한 인문학 분야에 관해 탐구하는 것을 좋아한다.
윤지수(1992년 생)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를 나와 문화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특히, 동시대 문화 현상과 변화에 대한 관심이 많고 미술, 과학, 역사를 포함한 다양한 인문학 분야에 관해 탐구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이 hi!”. 
“왜요. 재벌 처음 봐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전용 엘리베이터 타고 다닐 줄 알았어요?” 
“늦게 받았다고 미안해하지 않을 거에요. 내가 그만큼 보.상.해.줄.거.니.까”. 

최근 김갑생할머니김의 미래전략부 이호창 본부장은 매일유업과 전략적 제휴를 맺으며 매일유업을 시찰했는데, 이 영상이 4월 17일에 유튜브에 올라왔고, 이는 100만 뷰를 넘어섰다. 또한 그는 원진성형외과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고, 이 영상 또한 유튜브에 올라오며, ‘한국의 톰 하디’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수많은 클립 영상을 생산해냈다. 

2017년도 7월 7일에 데뷔한 매드몬스터는 2019년 11월에 발매된 싱글 수록곡 ‘내 루돌프’를 EDM 버전으로 재발매하여 뮤직비디오를 유튜브를 통해 최초공개했다. 이 영상 또한 24시간 이내에 100만 뷰가 넘어섰다. 

놀랍게도 김갑생할머니김 미래전략실 본부장 이호창과 매드몬스터의 00년생 멤버 제이호는 29기 KBS 공채 개그맨 이창호가 만든 페이크 캐릭터들이다. 이 캐릭터들은 그의 ‘부캐’로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화제성을 낳고 있다. 유튜브 피식대학 채널을 통해 만들어진 부캐 ‘카페 사장 최준’이 쏘아 올린 페이크 캐릭터 열풍은 최준의 뒤를 잇는 아이돌그룹 ‘매드몬스터’, 재벌 3세 ‘이호창’으로까지 번졌다. 이 부캐들은 본캐의 존재감을 뛰어넘으며 시청자들의 과도한 관심과 소통을 낳고 있다. 특히 매드몬스터의 경우 페이크 아이돌그룹임에도 불구하고 ‘포켓몬스터’라는 팬덤이 생겨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블로그, 카페 등에서 응원 구호를 외치거나, 뮤비리액션을 하거나, 총공을 위해 소통하는 등의 부가적 활동 또한 파생시켰다.

“어디에나 있으나, 어디에도 없다.” 동시대 문화현상 전반을 정의할 수 있는 한 문장이다. 개그맨들이 만들어낸 페이크 캐릭터는 특정한 대상을 지칭하지 않는다. 현실에 존재할법한 사람들, 혹은 영화나 드라마 속 인물들의 무수히 많은 특징을 합하여 만들어낸 ‘보편적’ 대상이다. 즉, 이들은 대명사로 존재하지 않고, 명사로서 존재한다. 플라톤은 현실 세상을 이데아의 모방이라고 했지만, 역으로 동시대는 디지털 문화가 가열되어 빅뱅(Bigbang)한 뉴이데아다. 우리가 이 페이크 캐릭터에 열광하는 이유는 ‘어디에선가 본 적 있는, 만난 적 있는 인물들’의 특징들을 종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친근하고 공감하기 쉬우며, 더 나아가 이들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무수히 많은 밈, 영상들이 파생되는 이유 또한 이 캐릭터가 배제하고 있는 유일무이한 ‘차이’ 때문이다. 

갤러리 요호에서 2월 25일부터 4월 25일까지 진행되었던 남다현 작가의 솔로 전시 <#23 남다현개인전> 또한 디지털문화가 파생한 비 은폐성을 잘 보여준다. 여행지에서 봤을 법한 게스트하우스를 구현한 이번 전시는 무장소성(無場所性)의 특징을 지닌다. 해외여행을 해본 경험이 있는 관람객이라면 한번쯤은 봤을법한 게스트하우스의 화장실, 침대, 테이블과 의자 등의 모습을 스티로폼, 은박지, 종이 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구현했다. 실제 대상과는 전혀 다른 재료의 사용과 인터넷 검색을 바탕으로 한 리서치 기반의 작업이라는 특성은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에게 ‘특정한 대상’을 떠올리게 하기보단 ‘페이크(fake) 게스트하우스’ 자체를 즐기게 한다. 관람 후 게스트하우스를 리뷰하듯이 글을 정리해서 올리거나 전시장 자체를 사진 찍어 개인 SNS에 피드 하는 관람객들이 많았던 것도 차이가 지워진 장소가 촉진한 ‘소통’ 때문이다. 이 또한 디지털 세계가 배제한 ‘단절성(斷絶性)과 이어지는 맥락이다.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삶이 생존으로 완전히 얼어붙은 팬데믹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우리에게 올더스 헉슬리(A.L.Huxley)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 나오는 이 한 구절은 어쩌면 배부른 소리일지 모른다. 철학과 문화학 교수인 한병철은 그의 저서 『고통 없는 사회』에서 “생존의 히스테리에 지배되는 사회는 좀비의 사회”라고 말한다. 동시대 사회에 대한 그의 통찰처럼 우리는 '좋아요'가 난무하고, 무한한 허용이 이루어지는 이 디지털 사회가 만들어낸 뉴이데아에 종속되었다. 그리고 디지털 문화를 한층 가열시킨 팬데믹은 차이를 분열시키고, 개성의 파편들을 종합하여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가상의 캐릭터와 가상의 공간을 창출한다. 따라서 우리는 소통의 파도를 즐기지만, 타자의 진정한 터치와 타자가 줄 수 있는 고통이라는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