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프리뷰] 국립현대미술관, 정상화 개인전 《정상화》 개최
[전시 프리뷰] 국립현대미술관, 정상화 개인전 《정상화》 개최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5.2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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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오는 9월 26일까지
캔버스를 뜯어내고 메우며 보이지 않는 것을 담아낸 화폭
정상화 작가 “내 그림에는 혈맥과 맥박이 있고, 심장이 담겨있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그림의 의미를 캐려하지 말고, 감각적으로 받아들여주길 바란다며 자신의 그림을 소개한 작가 정상화의 개인전 《정상화》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는 9월 26일까지 개최된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이 한국 단색조 추상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정상화의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한다. 지난 22일 전시 개막에 앞서 21일 언론공개회를 통해 전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제 74-F6-B, 1974, 캔버스에 유채, 226×181.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서스테인 웍스 제공)
▲무제 74-F6-B, 1974, 캔버스에 유채, 226×181.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서스테인 웍스 제공)

정상화는 회화를 근간으로 판화, 드로잉, 데콜라주(décollage), 프로타주(frottage) 등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며 평면작업 가능성을 탐색해왔고, 1990년대 이후에는 작가 특유의 수행(修行)적 방법론을 창안하여 독보적인 단색조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는 1953년 자화상부터 2000년대 300호 대형 추상회화까지 이르는 정상화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하며 재조명한다.

MMCA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 토대를 확장하는 시도를 이어가며, 정상화 작품이 지닌 미술사적 의미를 재조명·동시대적 맥락을 살핀다는 취지를 밝혔다.

1932년 경북 영덕 출생의 정상화는 1953년 서울대 회화과에 입학하여 1957년 대학 졸업 후 《한국현대작가초대전》(1960), 《악뛰엘 그룹전》(1962), 《세계문화자유회의초대전》(1963) 등 다수의 정기전, 그룹전에 참여했다. 1967년 프랑스 파리로 갔다가 1년 후 귀국한 작가는 1969년부터 1977년까지 일본 고베에서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이후 1977년부터 1992년까지 다시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작업에 몰두했고, 1992년 11월 영구 귀국해 1996년 경기도 여주에 작업실을 마련 그 후 한국에서 줄곧 창작활동을 이어왔다.

▲작품 64-7, 1964, 캔버스에 유채, 162×13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사진=MMCA제공)
▲작품 64-7, 1964, 캔버스에 유채, 162×13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사진=MMCA제공)

기자간담회에선 프랑스와 일본에서 작품 활동을 하게 된 계기와 8년 간의 일본 체류 기간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정상화는 1967년 군사 정권으로 나라가 어지러운 때에 파리에 나가게 된 상황을 회상하며 차근차근히 질문에 답을 전했다. 정 작가는 “프랑스 도착 2개월 만에 학생 혁명이 일어나, 시국이 굉장히 어려운 때에 종일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작품만 계속했고, 그러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병환으로 한국으로 귀국하게 됐다”며 “1년 여 아내의 병간호를 지속하다가 일본 화랑과의 계약 때문에 아내와 논의 후 일본으로 건너가게 됐다”라고 해외 생활의 계기를 설명했다.

정상화는 일본 체류 당시 70년대 한국에서 시작된 백색조 작품을 자신 역시 일본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28년 간 객지생활은 하기 시작했다. 정 작가는 “가정에 소홀하고 도망치듯 한 외국 작가 생활이었지만, 밖으로 나가 내가 모르고 못 봤던 것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욕구가 매우 컸다”며 “이틀에 한 번씩 미술관과 화랑을 다니며 동시대의 경향을 살피고, 알고자 했던 것을 행동으로 옮기며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고 당시의 시간을 회고했다.

정상화가 표현하는 백색은 한국 단색화에서 흰색이 갖는 의미와는 다른 의미망을 갖고 있다. 한국 단색화의 흰색이 의미하는 비애, 침묵, 공허와 다른 의미망을 갖는 정상화의 흰색은 회색에 가까운 흰색, 세월의 흔적이 베인 흰색으로 표현된다. 삼베옷이 낡아서 스며 나오는 찌든 때가 묻은 흰색, 장작불로 밥을 짓고 부엌 천장에 연기가 올라가서 햇빛에 비쳤을 때 나타나는 흰색 등 단색이지만 단색이 아닌, 서로 다른 층위의 색이 덧입혀져 표현되는 다색의 단색이라고 할 수 있다.

정 작가는 “해외 체류기간 동안 남이 못하는 것을 하고자 고심했고, 그림 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표현했다”며 “나의 그림에는 몸에 핏줄이 돌 듯이 혈맥이 있고 심장이 있으며, 단순한 평면의 그림이지만 다양성을 내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서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정상화 작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전시장에서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정상화 작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전시는 총 4개의 주제와 특별 주제공간, 아카이브 공간으로 구성됐다. 정상화의 작품을 시대 순으로 정리했다. ‘추상실험’은 1953년부터 1968년 시기로 정상화가 재현적 구상회화를 벗어나 전후 1세대 청년작가로서 시대적 상실과 불안을 반영한 표현주의적 추상 작품 전시한다.‘단색조 추상으로의 전환’장은 일본 고베에서 활동한 1969년부터 1977년까지의 작품으로 표현주의적 추상에서 단색조 작업을 시작하는 과정을 담는다.

세 번째로는 특별 주제공간 ‘종이와 프로타주’로 1970년대와 1980년대 캔버스보다 비교적 다루기 쉬웠던 종이를 이용해 재료와 기법을 탐구하기 시작했던 시기의 작품을 선보인다. 다음으로 ‘격자화의 완성’에선 1977년부터 1992년까지 일본에서 파리로 갔을 시기의 작품을 보여주며 “뜯어내고 메우기” 방법을 통한 단색조 추상의 완성도를 높이고 다양한 변주를 드러낸 작품을 볼 수 있다. 마지막 공간인‘모노크롬을 넘어서’에서는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1993년부터 현재까지의 작품을 소개한다. <무제 95-9-10>(1995), <무제 07-09-15>(2007) 등의 작품을 통해 그의 단색조 추상의 정수, 균열과 지층의 깊이를 통한 작가의 예술적 성취를 볼 수 있다.

▲무제 72-10, 1972, 캔버스에 아크릴릭, 115.5×73cm. 작가 소장 (사진=갤러리현대 제공)
▲무제 72-10, 1972, 캔버스에 아크릴릭, 115.5×73cm. 작가 소장 (사진=갤러리현대 제공)

간담회 이후 전시장으로 들어선 구순을 넘은 정상화 작가는 아주 꼿꼿한 걸음걸이로 전시장을 오가며 작품 속에 담아낸 자신의 세계를 설명했다. 첫 번째 추상 실험의 장에서 정상화는 요즘 젊은 화학(畫學)도 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자신을 그대로 두지 말고 버려야한다”며 “그림은 어찌 보면 정신성의 영역일 수 있다”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어 격자화를 선보인 세 번째 주제공간에선 캔버스를 말고 선을 만들며 작품을 완성하는 수행적 방법론의 기반이 자신의 어렸을 적 기억에서 기인했다고 설명했다. 정상화는 “캔버스를 말아놓고, 자르고 보니 옛날 어머니가 무명옷을 접고 쌓아두던 선, 치마에 잡았던 주름, 도마 위 바르게 썰리던 무의 모습이 보였다”며 동양이 가지고 있는 선의 이미지를 작품 속으로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작품을 통해 한국의 문창살이 가진 미감도 표현하고자 했다는 정상화는 마지막 주제 공간의 2007년 작업한 흑과 백을 표현 그림 앞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동양의 미에 대해 언급했다. 정상화는 “하얀 블라우스에 검정색 단치마를 입고 검은색 머리를 한 여자 아이를 보면, 저것이 ‘한국의 미’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정상화는 긴 시간 전시장을 떠나지 않으며, 작품에 대한 다채로운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림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한 또 다시 변화한 자신의 그림을 선보이겠다며, 정상화 작가는 작품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비췄다.

▲무제 87-2-10, 1987,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130.3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사진=이만홍 제공)
▲무제 87-2-10, 1987,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130.3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사진=이만홍 제공)

끝으로,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정상화의 60여 년 화업을 총망라한 이번 전시는 한국 추상미술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한 작가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라며, “한국 미술사의 맥락에서 작가의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