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MMCA, 시의성 있는 코로나19주제로 기획한 《재난과 치유》展
[현장리뷰] MMCA, 시의성 있는 코로나19주제로 기획한 《재난과 치유》展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5.25 1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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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문을 열어, 오는 8월 1일까지
동시대 예술가들이 바라본 코로나19에 대한 고찰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재난’과 ‘치유’. 일견 평이하게 읽히는 두 단어이지만, 각각의 단어가 가지고 있는 깊이와 의미를 생각해보면 양립할 수 있는 단어인가 의문이 든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이 선보이는《재난과 치유》전은 불가능할 것 같은 두 단어의 관계와 의미를 코로나19시대를 대변하는 다양한 미술 작품으로 표현해낸다.

전 지구에 닥친 유례없는 팬데믹은 우리 일상 곳곳을 흔들었다. 이전과 전혀 다른 소통의 시대를 열었고, 숨겨져 있었던 사회 곳곳의 문제가 드러났으며, 자연과 인간의 새로운 관계성에 대해 고민할 시점을 만들었다.

▲요제프 보이스, 곤경의 일부 (사진=MMCA 제공)
▲요제프 보이스, 곤경의 일부 (사진=MMCA 제공)

코로나19 팬데믹을 주제로 한 대형 기획전 《재난과 치유》는 팬데믹이 개인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동시대 예술가들의 관점으로 살펴보고, 재난의 그늘 속에서도 예술로 삶의 의미를 성찰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순간을 마련한다. 나아가 치유와 회복의 염원까지 전달한다. 전시는 지난 22일 문을 열어 오는 8월 1일까지 진행되며, 25일에는 전시를 언론에 공개하는 기자간담회가 이뤄졌다.

간담회 자리에서 양 학예사는 “전시 준비에 앞서, 기획에 큰 무게감을 느꼈다”며 “시의성 있는 주제로 전시를 기획해 코로나19를 동시대적 관점으로 통찰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느꼈지만, ‘재난’과 ‘치유’의 의미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고, 불가능과 실패의 가능성도 느꼈던 전시기획이었다”며 코로나19상황에서 전시를 기획하는 의미에 대해 언급했다.

▲서도호, ScaledBehaviour_runOn(doorknob_3.11.1) (사진=MMCA 제공)
▲서도호, ScaledBehaviour_runOn(doorknob_3.11.1) (사진=MMCA 제공)

‘재난과 치유’라는 직설어법의 전시 제목은 전시 기획자, 참여 작가, 관람객에게 시대를 직접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을 제공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한국 미술의 전통 아닌 전통 중 하나가 파안대소, 통곡과 같은 감정표현을 극도로 절제해 작품 안에 여실한 표정을 담지 않는 것인데, 나는 이를 ‘무표정의 미술’이라고도 칭한다”라며 “한국 미술은 ‘재난’에 있어서도 사실적으로 표현한 적이 드문데,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 많은 재난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며 한국 미술 속 감정 표현에 대해 언급했다.

이어 윤 관장은 “이번 ‘재난과 치유’전은 그런 한국 미술 전통에 과감하게 도전해 코로나 난국을 미술로 적극적으로 끌어안고자 하는 취지를 담았다”며 “미술이 가진 치유의 기능을 선보이고, 어려운 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치유와 회복의 과정으로까지 나아가는 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총 5개장으로 구성돼 동시대 국내외 작가 35명의 60여 점의 작품으로 꾸려졌다. MMCA는 해외 작가 작품을 좀 더 다양하게 선보이고 싶었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계획했던 것만큼의 해외작가 섭외가 할 수 없었다는 아쉬움을 표했다. 양 학예사는 “해외작가 섭외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전시 주제와 의미를 전달하자 꽤 많은 작가들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며 “코로나19 상황이 전 지구적 사태임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홍진훤, Injured Biker (사진=MMCA제공)
▲홍진훤, Injured Biker (사진=MMCA제공)

1부 ‘감염의 징후와 증상’은 근대 이후 신종 감염병 출현하게 된 징후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발생하는 사회적·개인적 현상을 기록하고 재해석한 작업을 선보인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요제프 보이스 <곤경의 일부>가 있다. 전시 포스터로도 활용된 이 작품은 재난과 치유를 모두 상징하기에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죽음의 위기를 겪었던 작가는 타타르민족으로부터 ‘펠트’로 구조 당한 경험이 있다. 이후 그는 계속해서 ‘펠트’로 인간의 생명과 회복에 대한 작품을 만들어 왔다.

2부‘집콕, 홀로 같이 살기’는 팬데믹 시대를 대변하는 ‘집콕’이라는 용어로 비대면 시대, 거리두기가 일상화된 세계를 표현한다. 이 장에서는 격리된 생활을 온라인 밈의 형태로 구현한 젊은 작가 리우 와 <2020년은 나에게>와 배달노동자, 물류노동자의 삶을 보여주는 홍진훤 <Injured Biker(부상당한 바이커)>, 무진형제 <결구>를 감상할 수 있다.

▲리암길릭, 상승하는 역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리암길릭, 상승하는 역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3부는‘숫자와 거리’라는 주제로 ‘일일확진자, 격리해제, 사망자, 국내현황, 세계현황, 거리두기단계’등 코로나19 상황에서 마주하는 숫자와 도표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또한 감염병 진행 상황을 지시하는 바로미터로 작용하는 숫자의 새로운 면을 제시한다. 이 장에서는 리암 길릭의 높이 7m에 달하는 <상승하는 역설>이 포함돼 있다. 작품은 전시장이 아닌 미술관 지하1층에서 1층으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 벽면에 설치돼 있다. 빨간색과 푸른색으로 나뉜 숫자들은 양 극단으로 뻗어있으며 이는 죽음과 삶의 경계를 말하고 있다.

4부 ‘여기의 밖, 그 곳의 안’은 코로나19로 변화한 공간에 대한 의미를 짚어본다. 질리언 웨어링 <당신의 관점(Your Views)>은 2013년부터 시작된 오픈콜 프로젝트로 각각의 개인들이 자신의 창밖 풍경을 기록한 것을 모은 영상이다. 팬데믹과 관계없이 시작됐지만, 스펙타클한 재난 없이 잔잔하게 지속되는 전 세계 창밖 일상 기록은 지금 현 시대에 치유의 시간을 선사한다. 양 학예사는 “작품을 설치하고, 한동안은 작품 앞에서 멍하니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 현 상황에 많은 관람객들에게 큰 울림을 전할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전인경, '바이러스의 시간과 공간',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50 x 150cm (3), 작가 소장(사진=MMCA 제공)
▲전인경, '바이러스의 시간과 공간',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150 x 150cm (3), 작가 소장(사진=MMCA 제공)

5부 ‘유보된 일상, 막간에서 사유하기’는 코로나19가 사유하게끔 만든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다른 종에 대한 탐구로까지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5부 전시실 마지막 작품은 에이샤-리사 아틸라의 <사랑의 잠재력>이다. 거대한 크기의 LED구조물을 포함한 무빙 이미지와 조각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작품이 설치돼 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사랑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 가에 대해 탐구한 작품으로, 여기서 ‘어디’는 인간 이외 생명 종(生命種)의 범위를 의미한다.

6전시실을 나오면 관람객은 이배 작가 <불로부터(Issu du feu)>를 마주할 수 있다. 하얀 한지 위에 설치된 세 개의 거대한 숯 조형물은 팬데믹 그늘을 벗어난 이후의 삶을 위한 회복과 치유의 시간을 전한다.

양 학예사는 “이배 작가가 작품을 설치할 때 딱 2가지를 요청했는데, 하나는 숯 조형물 아래에 한지를 깔아 거대한 숯 조각들이 한지 위에 떨어진 먹물처럼 구현해내고 싶다는 것과 두 번째는 조형물 근처에 차단선을 설치하지 않는 것이었다”며 “작가는 관람객들이 한지 위를 걸어 다니며 산책하듯 조형물을 느끼고 숯이 가진 정화와 액막이의 의미, 생명과 소멸, 정신적 균형을 느끼길 바랐다”며 작품이 가진 의미를 설명했다.

▲에이샤-리사 아틸라, POTENTIALITY FOR LOVE (사진=MMCA제공)
▲에이샤-리사 아틸라, POTENTIALITY FOR LOVE (사진=MMCA제공)

60여 점의 작품은 MMCA 5,6 전시실과 미술관 곳곳 계단과 복도 1층 로비공간에 흩어져있다. 대규모 주제 기획전인 만큼 높이 7m, 너비 8m의 대형 작품과 설치 작품들이 있어 여러 공간을 이용했다는 설명이다.

또한, 하나의 주제가 관통되는 공간 구성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번 ‘재난과 치유’전에서는 삼각형의 날카로운 예각의 공간과 설치물을 여러 번 만날 수 있다. 5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볼 수 있는 회화이자 설치 작품인 이진주 <사각 死角>, 1층 로비 안쪽과 외부 잔디밖에 설치된 서승모 <소실선과 바다>, 그리고 프란시스 알리스 <금지된 걸음> 영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 조나단 호로비츠 <아포칼립토 나우>를 감상하는 공간이다.

이 4가지의 공간은 모두 날카로운 예각을 가진 공간으로 정형적인 사각 또는 삼각이 아닌 비정형적 각을 만들어내 공간의 불안함을 불러일으키고, 시대의 불안함 또한 담아낸다. <사각 死角>의 이 작가는 팬데믹 시대의 풍경을 화폭 안에 담아 삼각형의 형태로 작품을 설치했다. 그는 ‘예각의 형태로 아주 날카롭게 우리의 삶으로 다가온 코로나19’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이배,불로부터(사진=MMCA제공)
▲이배,불로부터(사진=MMCA제공)

양 학예사는 “전시를 기획하면서, 예각의 형태를 가진 작품들이 모이는 것을 보고 날카로운 각이 만드는 조형적 감각으로 아직 회복되지 않은 현재 진행의 코로나19상황의 불안함을 표현해보고자 영상 관람 공간 또한 각진 형태로 구성했다”라고 공간의 의미를 밝혔다.

전시 <재난과 치유>는 코로나19의 현재, 그리고 팬데믹이 불러온 사회, 경제, 문화의 변화를 짚고 나아가 코로나 이후 인류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까지 짚어낸다. 재난의 지금, 치유의 미래까지 모색하는 전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코로나19로 인한 난국 속에 예술로 사회적 소통을 이루고자 하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며 “우리 삶의 변화와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지금의 시대를 담아낸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위로와 희망을 찾아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참여 작가>

신디케이트(사진가 그룹), 요제프 보이스, 아니카 이, 전인경, 이진주, 오원배, 박영균, 성능경, 김지아나, 안드레아 지텔, 써니 킴, 리우 와, 홍진훤, 무진형제, 차재민, 프란시스 알리스, 리암 길릭, 미야지마 타츠오, 이지원(아키타입), 최태윤, 김범, 질리언 웨어링, 서도호, 이혜인, 칸디다 회퍼, 토마스 스트루스, 서승모, 노은님, 허윤희, 조나단 호로비츠, 봉준호, 이영주, 염지혜, 에이샤-리사 아틸라, 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