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령은ㆍ김보라ㆍ랄리 아구아데, 코로나19가 취소시킨 공연 ‘그 후 1년’
권령은ㆍ김보라ㆍ랄리 아구아데, 코로나19가 취소시킨 공연 ‘그 후 1년’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1.05.2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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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6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포스트 코로나를 주제로 안무가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그 후 1년>이 내달 4일부터 6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국립현대무용단_그후1년_승화_ⓒAiden Hwang
▲국립현대무용단_그후1년_승화_ⓒAiden Hwang

국립현대무용단(단장 겸 예술감독 남정호)은 국내 안무가 권령은과 김보라의 신작, 그리고 스페인 안무가 랄리 아구아데의 댄스필름을 한 자리에 모았다. 세 안무가는 2020년 취소된 국립현대무용단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공연에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불발을 겪고 2021년 <그 후 1년>을 다시 시작했다. ‘그 후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만큼, 더욱더 고차원으로 나아간 안무가의 고민과 사유를 이번 무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전 인류가 공감할 만한 보편적인 주제이지만, <그 후 1년> 무대 위 세 작품은 각 안무가의 빛나는 개성 덕에 다양한 모습으로 완성됐다. 똑같은 상황 속에서 세 안무가가 주목한 지점도 모두 다르다. 권령은 안무가는 ‘생존’이라는 화두에 주목하여 작품 ‘작꾸 둥굴구 서뚜르게’를, 김보라 안무가는 ‘시간’에 관한 집요한 탐구를 바탕으로 ‘점.’을 선보인다. 랄리 아구아데의 댄스필름 ‘승화’에는 인간 존재와 개별 자아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관객들이 공연장에서 가장 먼저 만날 작품은 바로 댄스필름 ‘승화’다. 안무가 랄리 아구아데와 국내 무용수 8명(권요한, 류진욱, 서동솔, 손지민, 유재성, 이대호, 정재원, 정철인)이 시간적·공간적 한계를 극복하며 진행한 원격 현대무용 워크숍 현장을 기록했다. 안무가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본인의 작업실에서, 무용수들은 서울에 있는 국립현대무용단 연습실에서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서로를 만났다. 

국립현대무용단 연습실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랄리 아구아데의 모습이 투사되었고, 무용수들의 모습은 연습실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로 촬영 및 실시간 송출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약 3시간가량 진행되는 워크숍이 9회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을 고스란히 댄스필름 ‘승화’에 담았다. 백종관 연출이 키를 잡고 댄스필름을 제작했다.

▲국립현대무용단_그후1년_작꾸둥굴구서뚜르게_ⓒ목진우
▲국립현대무용단_그후1년_작꾸둥굴구서뚜르게_ⓒ목진우

댄스필름이 첫 무대를 장식했다면, 이어지는 두 작품은 국내 안무가의 실제 공연이다. 먼저 권령은 안무가는 ‘공연예술과 무용인의 생존을 위한 제의’라는 설정을 바탕으로, 생존 전략들을 모색하고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귀여움’을 제시한다. 귀여움이 오랫동안 인류의 보편적인 생존 도구였다는 점에 주목하여, 권령은은 이를 무대에 소환하고 무용예술가와 공연 현장의 소생에 적용한다.

권령은은 기존 공연 조건과 가장 대비되는 현재의 모습으로 ‘텅 빈 객석’을 꼽는다. 송출된 공연 영상의 조회 수는 실제 극장의 객석 수보다 월등히 높지만, 빈 객석 앞에서 진행되는 라이브 공연은 극장 공연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자아낸다. 실물 관객이 없는 상황에서 공연예술가들은 본인의 정체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흐려지는 무대와 예술가의 존재 가치를 붙잡고자 하는, ‘귀여움’을 내세운 특별한 제의가 권령은 안무작 ‘작꾸 둥굴구 서뚜르게’에서 펼쳐진다.

<그 후 1년>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할 작품은 김보라 안무가의 ‘점.’이다. 김보라가 말하는 ‘점’은 곧 그녀가 시공간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모든 시공간은 ‘점’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는 끊임없이 변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인간의 감각은 인지의 도구이자 변형의 열쇠라고 그녀는 말한다. 감각을 통해 인지 변화를 경험하고 이를 통해 공간의 새로운 생성과 변형을 발견할 때, 이는 곧 안무가가 말하는 ‘시간’과 연결된다. 

무대 위에는 커다란 풍선 형태인 조형물이 등장할 예정이다. 극장 공간을 꽉 채울 만큼 거대한 풍선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압도적인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다. 무용수들은 조형물이 야기하는 공간의 제한 속에서도 거침없는 움직임으로 매 장면을 이끌어나갈 예정이다. 

김보라 안무가는 몸을 통해 움직임과 공간을 생성하고, 감각적 상태를 남기는 데에 집중하며 작품 속 ‘시간’을 표현한다. 시간의 속성을 표현하는 세 가지 키워드로 ‘사이하다’, ‘이동하다’, ‘소진하다’를 제안하며 이는 각각 시간의 거리, 시간의 확인, 시간의 가능성을 표현한다. 김보라가 촘촘하게 구성한 안무가 무대 위 공간에 의해 변형된다면, 무대 위에서 재구성되는 시간은 곧 감각의 영역이다. 그렇기에 본 작품에서 안무가는 비(非)형태적인 것으로부터 발생하는 오차의 범위에 초점을 둔다. 그리고 이를 다루기 위해 공간에서 시작되는 변형을 의도적으로 계획하며, 예측 불가한 상황 속에서도 순간을 결정하는 무용수들의 주체성으로 무대 위의 시간을 다시 말한다. 

한편, 국립현대무용단은 공연 사전 관객 행사로 ‘오픈-업 프로젝트’도 마련한 바 있다. 김보라 안무가의 작품 ‘점.’은 연습 모습을 공개하는 ‘오픈리허설’로 관객과 호흡했고, 권령은 안무가가 직접 진행한 일일 안무 체험 수업 ‘오픈워크숍’도 열렸다. 오픈워크숍 수강 신청이 개시되자마자 2분 만에 매진되는 등, 인기리에 두 행사가 진행됐다.

6월 6일(일) 오후 3시 공연이 종료된 후에는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진다. 공연 직후의 감상과 물음들을 나눠보는 시간으로 꾸려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