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리뷰] MMCA⟪다원예술 2021: 멀티버스》 세 번째 작품, ‘기계 속의 유령’
[현장 리뷰] MMCA⟪다원예술 2021: 멀티버스》 세 번째 작품, ‘기계 속의 유령’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5.2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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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오는 8월 1일까지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은 공간을 보는 드론의 시선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인간과 동물의 시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인간이 볼 수 없는 영역을 새들은 볼 수 있기도 하고, 인간이 느끼는 색을 동물은 못 보기도 한다. 인간 외에 다른 종에 대한 탐구는 계속해서 이뤄져왔다. 그런데 최근엔 인간, 동물, 식물 이외에 기계로까지 우리의 궁금증의 범위는 넓어지고 있다. 인간이 들어갈 수 없게 설정된 공간을 드론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인간이 가진 시각의 한계를 넘어서고 좀 더 다양한 사고와 감각을 느껴볼 수 있는 전시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에서 진행하고 있는⟪다원예술 2021: 멀티버스⟫는 최근의 기술을 활용해 다른 감각과 사유방식을 제안하는 동시대 예술 작품 6편을 제작하고 있다. 2월에는 권하윤의 <잠재적인 마법의 순간을 위한 XX번째 시도>, 3월에는 서현석의 <X(무심한 연극)>를 선보였고 그 세 번째 작품으로 안정주, 전소정 작가의 <기계 속의 유령>을 오는 8월 1일까지 선보인다.

▲안정주전소정, 기계 속의 유령, 서울박스 설치 전경(사진=MMCA제공)
▲안정주전소정, 기계 속의 유령, 서울박스 설치 전경(사진=MMCA제공)

<기계 속의 유령>은 미술관을 무대로 하는 설치와 영상작업이다. 이 작업은 과학기술의 현재, 감각기관이자 기계장치로서의 눈, 증식하는 하이브리드 등을 고찰하고 상상한다. 특히 드론은 유령과 같은 시선을 가진 퍼포머로, 인간이 들어갈 수 없는 설치 작품 공간 사이를 가로지르고 그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송출한다.

드론 비행을 위해 구조물이 설치된 공간에는 그물망을 처 인간이 들어갈 수 없게 했다. 이 공간의 특별함은 인간의 힘이 작용되지 않은 설치 작품들 스스로 만드는 생태계라는 지점이다.

검정 철골의 설치 작품은 특별한 지지대 없이 설치물이 얽혀있는 골조 자체로 힘을 만들어 공간 안에 서있다. 또한,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에어백 구조물의 수직 낙하 운동, 이어서 발생되는 선풍기 바람, 로봇 팔로 흔들어지는 필름으로 벽에 비춰지는 빛의 운동은 인간 제어 밖에서 움직이는 공간이다. 공간 안에는 어항도 설치돼 있는데, 어항 안에 있는 물고기들이 물의 흐름을 계속 만들고, 이끼를 없애며 자체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그들만의 산소 울림 소리를 만들어낸다.

작가들은 이 공간에 CCTV와 스피커를 설치해 공간을 계속해서 지켜볼 수 있게 했다. 영상은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에서 생중계된다. 전시를 기획한 성용희 학예사는 “CCTV는 미술관이 문을 닫은 이후에도 계속 돌아가고 있는데, 유튜브를 보던 어떤 이는 이 작업이 미술관에 있는 새로운 존재, 이를테면 유령을 잡아낼 수도 있겠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며 작품이 넓히고자 하는 인간이 닿아가지 못한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나타난 사례를 얘기했다.

▲유튜브로 송출되는 AI드론 영상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유튜브로 송출되는 AI드론 영상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전시 기간 중에는 정해진 시각에 AI 드론 비행이 진행되고, AI 드론의 일인칭 시점을 현장에서는 고글로 관람객이 경험할 수 있다. 드론 영상을 송수신할 때에는 속도 때문에 라디오 전파(아날로그 전파)를 사용하는데, 이 때문에 드론 영상에는 노이즈가 계속 나타난다. 미술관의 전파와 드론이 송신하는 전파가 충돌하면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 또한, 인간이 제어하지 못하는 세계의 단면을 보여준다.

AI드론 비행은 심현철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와 무인 시스템 연구실이 개발했다. 카메라나 라이다(LiDAR) 등의 센서가 탑재돼있어 주변의 장애물들을 탐지하고, 자신의 위치값을 측정하며, 주어진 경로를 따라 장애물을 피해 가면서 비행한다. 현장에서는 카이스트가 있는 대전에서 매일 직접 연구생들이 미술관으로 찾아와 AI드론 비행을 진행한다.

전시 진행을 돕고 있는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연구원은 “인공지능 드론은 현재 자기 위치를 인식하는 것에서 많은 오류를 갖고 있는데, 작가님들과 협업하면서 기존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독특하면서 넓은 공간에서 비행을 시도해볼 수 있어서 좋은 시너지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AI드론(사진=MMCA제공)
▲AI드론(사진=MMCA제공)

드론은 미술관뿐 만 아니라 한강 밤섬을 비행해 그 영상을 프로젝트 갤러리에서 전시한다. 이 작업은 경주용 드론이 제공하는 인간 감각과는 다른 초월적 시각과 기계적 속도감이 근대성의 결과로 나타난 하이브리드한 공간의 풍경을 구성한다.

한강 밤섬은 1968년 여의도 개발 당시, 섬에 거주하던 인구를 이주시키고 인위적으로 폭파시켜 없애려 했던 공간이다. 하지만 인간의 계획과 다르게 윗밤섬과 아랫밤섬으로 나눠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후 20여 년이 지나서는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아, 그곳만의 생태계를 이루고 철새 도래지로 자리하게 됐다. 이런 특수성이 있는 공간을 드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생각의 장을 전달한다.

안정주 작가는 대중매체나 일상에서 채집한 사운드와 이미지를 변형, 변주, 반복하여 독자적인 서사구조의 영상작업을 만들어왔다. 전소정 작가는 비선형적인 시공간을 가설해 역사와 현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환기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 둘은 독자적으로 활동하면서도 p.2라는 프로젝트 콜렉티브로 «장미로 엮은 이 왕관»(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 2015)을 전시했고, 검은 밤이라는 밴드로 음악과 시각 언어 사이의 가능성을 탐구하기도 했다.

안 작가와 전 작가가 구축해놓은 세계는 전시 기간동안 점점 더 인간의 힘에서 벗어나 그들의 생태계를 만들어간다. 이러한 작업은 가시적 세계 너머의 실체를 드러내고, 감각의 전이를 실험하면서, 공감각적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서울박스를 비행하는 AI드론이 촬영한 영상(사진=MMCA제공)
▲서울박스를 비행하는 AI드론이 촬영한 영상(사진=MMCA제공)

전시 제목인 ‘기계 속의 유령’은 미술관의 보이지 않는 공간, 신체가 닿을 수 없는 장소를 배회하는 기계장치인 드론을 떠올리며 작가가 붙인 제목으로, 인공지능 로봇의 역설, 그 이면에 숨은 노동, 기계-눈의 감각들 그리고 영상의 유령성 등을 생각하게 해준다. 더불어 이 기계-유령은 인간 지각의 한계를 실감하게 하고 기존 주체의 위치를 위협하며 새로운 감각의 개입을 요구한다.

성 학예사는 “요즘 미술의 트렌드는 사물과 인간의 결합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며 “MMCA에서 선보이고 있는 ‘다원예술 2021: 멀티버스’ 전은 인간에게 이전과 새로운 감각의 장을 선사할 것이며 기술로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줄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