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파프리카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파프리카
  • 윤이현
  • 승인 2021.06.19 0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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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최근 기존의 이름 윤영채에서 윤이현으로 이름을 바꿨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생김새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우리는 백화점 지하에 있는 어린이 대공원에서 함께 다람쥐 바이킹을 탄다. 시간은 저녁 9시에 멈춰 있다. 추로스와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고 청룡열차를 타려는 순간, 피에로와 인형들이 우리를 쫓아온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달린다. 우리는 불이 꺼진 아파트 단지의 베란다 사이를 넘나들며 도망친다. 어느덧 피에로와 인형들은 두건을 쓴 도적 무리로 변해 있다. 막힌 벽 앞에서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그와 나는 함께 저 깊은 심연 속으로 추락한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꿈의 흔적을 적어 보았다. 피곤한 날이면 항상 놀이 공원 꿈을 꾼다. 그곳엔 사랑하는 누군가와 두려운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꿈을 꾸는 날은 온종일 기분이 좋지 않다. 개운하지도 않고, 뇌 일부가 여전히 꿈에 남아서 수면 중인 기분이다. 동시에 꿈과 현실의 모호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무엇이 현실인지, 그곳에서의 나는 그저 허구일 뿐인지 의구심이 생긴다.

대게 꿈에서는 감각을 느낄 수 없다고 하지만, 내가 경험한 꿈속 세상은 생동감이 넘쳤다. 촉감, 통각, 감정 모든 것이 말 그대로 현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한때는 두 세상이 모두 현실이 아닐까? 그렇다면 두 세계는 각각 어떻게 이어지고 무너지는 것일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고민은 무뎌졌다. 얼마 전 본 작품 하나가 이런 나의 상념에 다시 불을 지폈다. 영화 파프리카.

파프리카를 처음 봤던 날을 떠올려본다. 중학교 1학년 이맘때 즈음이었다. 기말고사가 모두 끝난 뒤,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영화를 틀어주셨다. 그때 친구 은솔이의 추천으로 파프리카를 보게 되었다. 정신과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 중이던 꿈 접속 장치 ‘DC 미니가 도둑맞게 된다. 꿈을 해킹당한 사람들은 스스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등의 기이한 행동을 반복하다가 결국 혼수상태에 빠지고 만다. 주인공이자 정신과 치료사인 아츠코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파프리카를 이용해 범인을 추적하게 되는데, 그 안에는 거대한 음모가 숨겨져 있다. 점점 현실을 침범하는 꿈의 세상 속에서, 알 수 없는 상대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된다.

성인이 돼서 다시 영화를 봤다. 그사이 나는 대략 2,555번의 꿈을 더 꿨다. 그 안에는 놀이동산에서 벌어지는 스릴러도 있었고, 전쟁터에서의 사랑 이야기도 있었으며, 싫어하는 누군가를 이해하게 되는 휴머니즘도 있었다. 이런 경험이 쌓이고 나서 파프리카를 보니, 꿈이란 건 결국 현실의 그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 미워하는 감정, 자격지심 따위가 무질서하게 표출된 혼잡한 세상, 그것이 꿈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그림자가 아름답다고 해서 그것을 통에 가둬두고 전시할 수 없듯이, 꿈도 그저 흘러가는 자연의 영역이자 현상일 뿐. ‘파프리카속 거대한 꿈의 퍼레이드는 그것을 지배하려는 추악함이 만들어낸 욕심의 산물로 보인다.

곤 사토시 감독 영화 '파프리카' (출처:https://blog.naver.com/)
곤 사토시 감독 영화 '파프리카' (출처:https://blog.naver.com/)

동시에 내가 꾼 꿈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백화점과 놀이동산은 부모님과 가보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욕망이 표출된 것이 아닐까. 가끔 내 꿈에 등장하는 는 누구였을까? 인연이 닿아 만났고, 그것이 다해 헤어졌던 몇몇 연인들이 만든 무의식의 존재가 아닐까 감히 추측해본다. 우리를 추격하는 피에로와 도적들은 아마 내가 외면하려 했던 현실일 것이고, 추락하는 장면은 꿈을 깨기 위한 무의식의 발악이었다고 생각한다. ‘파프리카를 통해 현실의 그림자인 꿈, 그곳에서 만난 존재들 그리고 그 꿈의 주체인 나에 대해서 심도 있게 탐구할 수 있었다.

영화 '파프리카' 속 퍼레이드 장면 (출처: https://blog.naver.com/)
영화 '파프리카' 속 퍼레이드 장면 (출처: https://blog.naver.com/)

세월이 흘러, 열네 살의 나는 사라졌다. 마치 지난 밤 꾼 꿈처럼 희미하게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영화를 추천해줬던 은솔이는 홀로 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났고, 거기서 계속 그림을 전공하는 모양이다. 나는 한국에 남아 이런저런 방황을 하다가 결국 미술을 그만두고 영화를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는 연락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렸지만, ‘파프리카라는 이름을 듣거나 학창 시절 사진을 꺼내 보면 문득 친구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그 친구도 이 세상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꿈을 꾸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얼마만큼의 꿈을 꾸고 나서야 우리는 마주칠 수 있을까. 아주 가끔은 꿈에서 한번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펜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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