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 개인전 《고구려를 그리다》…고구려 미학 전하는 전시 선봬
이태호 개인전 《고구려를 그리다》…고구려 미학 전하는 전시 선봬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6.1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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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무우수갤러리, 오는 27일까지
미술사가이자 화가인 이태호가 그려낸 고구려 기상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고구려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다양한 형태의 고분벽화로 남겼다. 이 때문에 고구려 고분 벽화는 당시 생활, 문화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사료이자 예술 작품으로 세계적인 문화 유산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대한 연구는 과거부터 현대까지 다양하게 지속돼왔다.

한국 미술사를 정리한 학자로 명성을 갖고 있는 미술사가 이태호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산과 나무 그림을 살피면서 미술사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고구려 고분벽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그의 창작욕구도 건드리게 됐다.

전남대학교 교수와 박물관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산수연구소 소장 및 명지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 중인 이태호 교수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학자로써 탄탄한 연구를 발표해왔지만, 그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며 화가로서의 길도 꾸준히 걷고 있다.

▲현무도, 물 위에 떠 있는 듯하고(호남리사신총 북벽), 2020.9, 종이에 수묵담채, 24x64cm(사진=무우수갤러리)
▲현무도, 물 위에 떠 있는 듯하고(호남리사신총 북벽), 2020.9, 종이에 수묵담채, 24x64cm(사진=무우수갤러리)

이태호 작가는 오는 27일까지 인사동 무우수갤러리에서 개인전 《고구려를 그리다》를 개최한다. 전시는 총 2부로 구성됐으며, 1998년 8월과 2006년 5월 강요배 작가등과 함께 참여했던 평양지역 주요 벽화고분 탐사와 남북공동 벽화고분 조사 작업의 감동을 담은 수묵담채화 35점을 선보인다.

이 작가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표현으로 창작하는 과정은 ‘고구려 화가의 기세(氣勢)’를 배울 수 있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고분벽화의 붉은색과 초록색, 분홍색, 노랑색, 갈색은 흰색, 먹선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색채를 드러내고, 여러 신분의 사람들과 갖가지 동물, 신선과 용봉, 해와 달과 별의 하늘 세계, 연꽃, 인동초 꽃, 구름 등의 상서로운 문양들은 활기찬 기운을 뿜어낸다”라며 “지구 전체 세계미술사에서 4~7세기에 고구려만큼 수준 높은 회화 유산을 남긴 지역이나 나라를 찾기 쉽지 않다”라고 우리나라 고구려 고분벽화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가치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산수도 1, 강바람 일고(강서대묘 서쪽 천정 받침), 2021. 봄. 종이에 수묵담채, 36x102cm(사진=무우수갤러리)
▲산수도 1, 강바람 일고(강서대묘 서쪽 천정 받침), 2021. 봄. 종이에 수묵담채, 36x102cm(사진=무우수갤러리)

이번 전시 《고구려를 그리다》는 “서울그림전”(노랑, 2017), “봄에 만난 대만의 사계절, 답사그림전”(안암동 카페 봄, 2018)에 이은 세 번째 개인전이다. 이 작가는 전시 1부에서 고구려 진파리 1호 고분의 소나무와 강서대묘의 산수도, 강서중묘의 청룡 백호 주작과 호남리 사신총의 현무 등 사신도, 상상의 도상들을 중심으로 고구려 고분벽화를 모사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진파리 고분 연화나 인동초 문양은 당시 백제의 무녕왕릉 전돌과 닮은꼴이 많아서 동시대 고구려와 백제의 문양을 비교해 보는 기회도 전할 것이다.

2부는 고려의 산수표현이나 조선 청화백자의 봉황무늬, 목어 등과 고구려 전통을 이어 만든 작품들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평양과 길림 집안의 옛 고구려 땅을 답사하며 만난 무덤 풍경화나 백두산을 스케치한 그림들도 함께 전시한다. 덧붙여,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은 순면지에 고구려 벽화와 유사한 수묵과 석채(石彩) 안료를 써서 고구려 전통의 색감과 멋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소나무 1, 바람 따라 춤추고(진파리1호분 북벽 현무도 좌우),2020.12, 종이에 수묵담채, 24x64cm(사진=무우수갤러리)
▲소나무 1, 바람 따라 춤추고(진파리1호분 북벽 현무도 좌우),2020.12, 종이에 수묵담채, 24x64cm(사진=무우수갤러리)

이 작가는 이번 전시의 시작점으로 작년에 출간한 저서 『고구려의 황홀, 디카에 담다-평양지역 고구려 고분벽화의 디테일』의 준비 작업을 짚었다. 그는 “2006년 남북공동 벽화고분 조사 작업 당시 찍은 사진을 작년 9월 다시 한 번 살펴보게 됐다. 당시 디카로 찍은 벽화 자료들은 나에게 새로운 감명으로 다가왔다”라며 “그 때부터 그리기 쉬운 문양이나 도상들을 먼저 시도하고, 코로나로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야하는 기간 동안 실견한 8곳 고분 외에 화집을 통해 간간이 고구려를 드로잉을 하며 전시를 준비했다”라고 작품 창작 과정을 설명했다.

벽화를 따라 그리는 방식으로 고구려를 탐구해 온 이 작가는 그 과정에서 고구려의 색채와 선묘를 보다 깊이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벽화를 그리면 그릴수록 이 작가에게 고분벽화는 표현주의ㆍ추상주의로 다가왔고, 오백년 전 고구려 고분벽화가 현대미술의 면모 또한 지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덕흥리벽화고분과 무학산경, 2021.5, 종이에 수묵담채, 24x64cm(사진=무우수갤러리)
▲덕흥리벽화고분과 무학산경, 2021.5, 종이에 수묵담채, 24x64cm(사진=무우수갤러리)

그는 “고구려 고분벽화가 가지고 있는 탄력 넘치는 선묘가 가장 흥겨웠다”라며 “후기 사신도 벽화의 경우는 웅혼한 형상에 섬세한 디테일을 조화시킨 기량이 일품이어서 내 솜씨로 표현하기에 부족함도 느꼈다”라는 겸손의 말도 전했다.

이번 전시는 우리 민족의 기상이 서려 있는 고구려 고분 벽화를 통해서 민족 문화의 원형을 찾고 이 작가가 탐구해 온 우리나라 색채의 원류를 느껴볼 수 있는 자리다. 장대한 역사가 담긴 화폭이 현대에 다시 한 번 그 힘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 작가의 《고구려를 그리다》는 관람객에게 장엄한 고구려 문화의 가치를 전달해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전시 관련 문의. 02-732-36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