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MMCA, 놀이하는 인간에 대한 탐구 《놀이하는 사물》展 개최
[전시 리뷰] MMCA, 놀이하는 인간에 대한 탐구 《놀이하는 사물》展 개최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6.2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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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과천, 내년 2월 27일까지
놀이와 의미를 추구하는 호모파덴스에 대해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은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고 제작할 줄 안다는 점에서 인간 본질을 파악해 ‘호모 파베르(Homo Faber/도구의 인간)’이라는 인간관을 만들었다. 네덜란드의 문화사가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의 본질을 ‘놀이’로부터 찾았다. 정신적인 창조활동의 유희를 즐기는 인간을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라고 칭하며, 이성이 중심이 되던 시기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생각하는 인간)’에서 벗어나는 다른 인간관을 제안했다.

시대가 변하고 인간이 펼치는 다양하고 세분화된 감각이 주목받으며, 최근엔 호모파베르와 호모루덴스의 합성어인 ‘호모 파덴스’라는 인간 정의도 나타났다. 호모 파베르는 의미와 지식적 영역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호모 루덴스는 재미와 감성의 영역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한다. 이 두 개의 인간관이 합쳐진 ‘호모 파덴스’는 놀이하면서 의미를 추구하고, 자신의 내적 세계에 대한 탐구를 외적 세계에도 펼쳐 보이는 인간관을 뜻한다.

▲이광호, [집착 연작], 2020-2021, 나일론, PVC, 전선, 플라스틱, 알루미늄, 스폰지 폼, 가변크기/ 사물들이 규칙성 없이 배치돼 있다 (사진=MMCA 제공)
▲이광호, [집착 연작], 2020-2021, 나일론, PVC, 전선, 플라스틱, 알루미늄, 스폰지 폼, 가변크기/ 사물들이 규칙성 없이 배치돼 있다 (사진=MMCA 제공)

유례없는 바이러스의 확산과 수많은 사망자를 마주하면서 모든 인간들이 움츠리고 있는 때에 ‘놀이’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가라앉아 있는 사회에 활기를 넣으며 노동으로만 집중되고 있는 우리의 일상을 뒤집어보고자 새로운 전시가 기획됐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 과천에서는 내년 2월 27일까지 일상 속 놀이의 순간을 찾아보게 하는《놀이하는 사물》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재료가 가진 고유한 물성과 숙련된 기술을 통합해 조화로운 사물의 언어를 ‘손’으로 빚어내는 작가들을 ‘호모파덴스’로 읽어내며 ‘제작자(makers)'로서 그들의 성격을 드러낸다.

전시를 준비한 도화진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에 있어서, 의도적으로 ‘공예’와 ‘공예가’라는 말을 뒤로 빼고, ‘제작자’라는 말을 앞으로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도 학예사는 “일반 대중에게 있어서 ‘공예’란 도자기나 컵, 무형문화재와 같은 이미지로 읽히며 작품이 아닌 기능적 사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며 “사실, 공예란 소재를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고 기능을 넘어 예술적인 확장성을 제안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서정화,사용을 위한 구조,2021,알루미늄 (사진=MMCA제공)
▲서정화,사용을 위한 구조,2021,알루미늄 (사진=MMCA제공)

《놀이하는 사물》전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은 기능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이 기능보다는 오브제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대중이 생각하는 공예가라는 일반적 이미지, 즉 기능적 사물을 만드는 사람을 뒤로 빼면서 ‘손’으로 작품을 만드는 ‘제작자’의 성격을 표면으로 드러낸 것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구성된 전시는 대중에게 공예가 가진 확장성을 경험해볼 수 있게 한다.

전시에는 8팀의 제작자, 서정화, 신혜림, 이광호, 이상민, 이준아, 이헌정, 현광훈, NOL이 참여했다. 작가들은 ‘상상’이란 매개를 ‘오브제의 변형과 재조합’이라는 행동적 놀이로 보여준다. 각각의 작품은 하나의 유희적 소통을 유발한다.

계획하지 않고, 재료 본연의 흐름을 이끌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할 수 있는 작품은 이광호 <집착 연작>이다. 거실 마룻바닥 같은 은박 전시대에는 나일론, PVC, 전선, 플라스틱, 알루미늄, 스폰지 폼으로 제작된 작은 작품들이 흩뿌려져 있다. 전시대에 배치된 작품들은 모두 크기가 다르며, 배치된 형태에서는 어떠한 규칙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작가는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들은 전시와 상관없이 제가 계속 만들고 모아왔던 사물들”이라며 “아이가 거실 여기저기에 장난감을 펼쳐놓고 놀던 모습에서 이번 전시 배치를 떠올렸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작품을 던지듯이 배치했다. 어떠한 계획이나 의도 없이 사물이 가지고 있는 흐름에 맡긴 디스플레이였다. 이 작가는 “작품을 마주한 관람객들이 작은 사물들을 보며 ‘저것을 쌓아볼까? 다르게 배치해볼까?’라는 자유로운 상상을 하길 바랐다”라며 “가능했다면 아주 큰 통에 작품들을 모두 담아 전시대 위에 부어버리는 식의 배치도 해보고 싶었다”라고 작품이 가지고 있는 색다른 시도를 짚었다. 계획적인 디스플레이는 저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하는 이성적인 사고를 건드린다. 다채로운 소재와 알록달록한 색감을 가진 크기도 제각각이고 모양도 제각각인 사물들은 의미를 추구하고 계획을 따라가는 대중의 사고를 흔들며 그들을 새로운 상상의 장으로 이끈다.

▲이헌정 작가 작품, 동물모양의 스툴이지만 사용자의 용도에 따라 스툴, 테이블, 플레이트 등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헌정 작가 작품, 동물모양의 스툴이지만 사용자의 용도에 따라 스툴, 테이블, 플레이트 등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계획되지 않은 재료의 특성을 이끌어 새로운 놀이적 시도를 전하는 또 다른 작가로는 이헌정이 있다. 이 작가는 자신이 만드는 아트퍼니처들을 50%만 완성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나는 의도를 가지고 제작에 임하긴 하지만, 사용자에 의해서 작품의 의미가 결정돼 작품이 스툴도 되고 플레이트나 협탁도 될 수 있길 바란다”라며 “작품들이 디자인과 조각ㆍ조형의 경계인 중간영역에서 이해됐으면 한다”라고 창작 방향을 전했다.

이헌정 작가는 자신의 코어를 도예에 두고 조각이나 건축을 여행하듯 탐구하며 다양한 창작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가는 작품 창작 시 완벽한 계획보다는 적당한 계획을 추구한다. 그는 “유약이라는 재료는 가마에서 구워지면서 다양한 색깔을 띠게 되는데, 작업을 하면서 어떤 색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지만 내가 생각한 색깔과 똑같이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라며 “예상할 수 없고, 작품이 갖는 우연성을 즐긴다”라고 말했다.

이 작가에게 도예는 유희적인 부분이 많다고 한다. 흙을 만지는 행위는 취미적 특성을 지니고 있고, 다른 창작법에 대한 탐구는 그의 호기심의 욕구를 충족 시켜준다. 그는 “너무 깊이 빠져들어 이성의 영역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라며 “도예 이외에 세라믹 드로잉이나 조각같이 다양한 영역으로 여행을 떠나며 ‘놀이’의 관점으로 창작을 이어나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신혜림, 시간의 비가 내린다 – 선, 2021, 가죽, 타이벡, 스테인리스 스틸, 순은, 가변크기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신혜림, 시간의 비가 내린다 – 선, 2021, 가죽, 타이벡, 스테인리스 스틸, 순은, 가변크기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쌓음과 엮음으로 표현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

물성을 가지는 재료로 창작하고, 어떠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한한 반복 작업이 요구될 때가 있다. 신혜원 작가 <시간의 비가 내린다 – 선>은 가죽을 동그란 원판으로 잘라 한 장씩 쌓아 올려서 251개의 작은 가죽 기둥으로 이뤄져 있다. 그는 이 작업이 자신에게 놀이의 영역이었다고 하지만, 창작과정에는 수행적 태도도 담겨있는 듯하다. 신 작가는 “여성작가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을 맞이하게 되면 이전과 같은 작업을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다”라며 “작업을 멈추면 이 곳으로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 아이를 기르면서도 할 수 있는 작업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현재의 작품을 만들게 됐다”라고 작품의 시작을 설명했다.

장신구 작업을 하면서 공예를 시작한 신 작가는 사람과 밀접 되는 작품을 만들어왔다. 때문에 가죽의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자세히 알고 있다. 사용한 가죽 중 가장 오래된 것은 30년이 넘은 것이 있다고 한다. 또한 신 작가는 “아이와 함께 있으며 작업을 지속하다보니 최대한 위험도가 적은 도구인 칼과 가위로 작업을 이어왔고, 금속이나 유해성 약품을 사용하지 않는 쪽으로 작업을 발전시켜 왔다”라며 작품이 가지고 있는 부드러운 특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작품에 대해 놀이적 성격보단 수행적 태도가 더 돋보이는 것 같다는 의견에 신 작가는 ‘놀이는 즐거움만이 아니다’라는 견해를 얘기했다. 그는 “작업과 삶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컸다”라며 “내겐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내가 원하는 것을 꾸준히 지속하는 것 자체가 놀이였다”라고 말했다.

▲이준아, ‘시간과 흔적’, 2021, 실, 편직밴드,가변크기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준아, ‘시간과 흔적’, 2021, 실, 편직밴드,가변크기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단편적인 재료들이 엮여서 양감을 만들어내면, 그 형체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차원의 물성을 만든다. 이준아 작가 <시간과 흔적>은 시간을 사라지는 것으로 보지 않고, 쌓인다는 의미로 바라보고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가는 시간은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닌 그 안에서 쌓은 경험이 ‘나’라는 인간을 구성한다고 바라본다.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옷은 우리 엄마가 나를 가졌을 때 입으셨던 가디건인데, 그 실의 짜임은 단순한 물성이 아니라 엄마가 나를 품고 있던 시간을 의미한다”라며 시간의 흔적을 설명했다. 또한, 이 작가는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실을 엮어가기보다 흐름에 따라 작업을 이어간다. 그는 “목적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면 창의성이 줄어드는 듯하다”라며 “나는 색깔 안에서 영감을 얻는데, 그때의 감각으로 작품을 만들어 나간다”라고 말했다.

▲놀이하는 사물 전시 전경, 전시장이 은박 소재로 조성됐다 (사진=MMCA제공)
▲놀이하는 사물 전시 전경, 전시장이 은박 소재로 조성됐다 (사진=MMCA제공)

《놀이하는 사물》전의 전시장 역시 ‘놀이’와 사고의 자유로움을 담아내고 있다. 원형 공간의 전시장은 작품을 독립적이되 관람객 개인의 해석이 가능하도록 유기적으로 배치했다. 독특한 지점 중 하나는 어두운 조도와 은박으로 이뤄진 전시 공간이다.

전시 공간을 디자인한 NOL(남궁교ㆍ오현진ㆍ이광호)은 ‘놀이’라는 주제를 공간 안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남 작가는 “‘놀이’라는 주제를 단순히 즐거움을 위한 유희적 의미로 해석하지 않았다”라며 “전시장에서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새로운 재료를 사용했고, 전시장을 산책하듯 걸어 다니면서 사색의 시간을 갖는 것이 놀이의 의미라 생각하고 디자인을 진행했다”라고 공간에 대한 설명을 전했다.

이번 전시는 관람객에게 시각적 감상 너머의 유희와 상호작용을 경험하게 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미술관은‘상상력 충전소’와도 같다”라며, “자신만의 재료와 상상력으로 저마다 즐거운 놀이를 창조하는 8팀의 작가와 작품이 장기간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위로와 새로운 영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