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사랑만을 원한 400년의 삶…뮤지컬 <드라큘라>
[공연리뷰]사랑만을 원한 400년의 삶…뮤지컬 <드라큘라>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1.06.23 12: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1 한남동 블루스퀘어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독특한 소재와 신선한 이야기를 전하는 작품은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지만, 진부한 소재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는 작품 역시 색다른 매력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다양한 화자를 만나 여러 시선으로 무대 위에서 재현되는 순간, 뻔하게 느껴지던 대상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된다. 

▲뮤지컬 ‘드라큘라’ 공연 모습, 1막 9장 드라큘라 役 신성록 (제공=오디컴퍼니)
▲뮤지컬 ‘드라큘라’ 공연 모습, 1막 9장 드라큘라 役 신성록 (제공=오디컴퍼니)

판타지의 대상이 영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판타지의 범위 안에만 머무르느냐, 다양하고 유연하게 변형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판타지 장르의 한 소재로서 뱀파이어는 우리에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의 생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무덤 혹은 지옥에서 갓 튀어나온 흉측한 괴물이라기보다 인간이었던 시절의 강렬한 감정을 기억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뮤지컬 <드라큘라>는 12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에서 뮤지컬 외에 영화, 연극, TV 등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각색된 ‘드라큘라’ 스토리를 또 다른 색채로 그려냈다. 1898년 발행된 아일랜드 소설가 브램 스토커(Bram Stoker)의 소설 ‘드라큘라’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드라큘라>는 2001년 미국 샌디에이고 라호야 플레이하우스(La Jolla Playhouse)에서 첫 공연을 올린 후 다양한 수정과 워크숍을 거쳐 2004년 뉴욕 브로드웨이에 입성했고, 한국에서는 2014년에 초연됐다. 

▲뮤지컬 ‘드라큘라’ 공연 모습, 1막 2장 조나단 役 조성윤 (제공=오디컴퍼니)
▲뮤지컬 ‘드라큘라’ 공연 모습, 1막 2장 조나단 役 조성윤 (제공=오디컴퍼니)

빅토리아 시대가 끝나갈 무렵, 트란실바니아의 영주 드라큘라가 영국 토지 매입을 대신해 줄 젊은 변호사 조나단과 그의 약혼녀 미나를 자신의 성으로 초대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드라큘라는 400년 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연인 엘리사벳사를 잊지 못한 채 영원의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그런 그의 앞에 엘리사벳사의 환생 미나가 나타나고, 드라큘라는 미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는 일념으로 위험한 사랑을 시작한다.

<드라큘라>에 등장하는 드라큘라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끝나지 않는 고통을 안고 영생을 살아내며, 자신에게 안식을 선물할 유일한 존재를 400년 세월 동안 기다린다. 드라큘라는 오직 ‘사랑만을’ 원했지만, 그녀와의 사랑을 위해서는 ‘피’가 필요했다. 극 중 백발에 주름이 자글한 노인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드라큘라 백작은, 미나의 연인 조나단의 피를 마시고 젊음을 얻는다. 원하는 바를 위해 남의 마음을 조종하고 살육도 서슴지 않는 절대 악으로 등장하면서도, 400년 동안 다가갈 수 없었던 존재 미나를 향해 순애보를 보낸다.

▲뮤지컬 ‘드라큘라’ 공연 모습, 1막 11장 반헬싱 役 강태을·루시 役 이예은 (제공=오디컴퍼니)

이번 시즌 새롭게 합류한 신성록이 그려내는 드라큘라는, 미나의 말처럼 ‘사랑만을’ 원한다. 그는 신의 저주를 받아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비극적 딜레마의 열쇠를 사랑에서 찾는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홀로 헤매며 더 늙고, 외롭고, 못돼졌지만 신성록의 드라큘라는 혹독한 세월로부터 지켜낸 사랑을 가장 온전하게 표현해낸다. 

▲뮤지컬 ‘드라큘라’ 공연 모습, 내가 날 수 있다면(If I Had Wings), 미나 役 박지연 (제공=오디컴퍼니)

<드라큘라> 네 번째 시즌에 처음 함께하게 된 박지연은 드라큘라의 400년짜리 사랑을 차근차근 넘겨받는다. 드라큘라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함께 나눴던 과거의 마음을 떠올리지만, 현재를 사는 미나에게 과거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일과 그 커다란 사랑을 외면하는 일은 모두 어려운 일이다. 드라큘라의 사랑을 외면하고 도망치던 순간부터, 눈을 마주 보며 사랑을 이야기하기까지의 과정은 박지연의 목소리처럼 진중하게 관객들을 설득한다. 

드라큘라, 미나와 함께 극의 흐름을 이끄는 다른 캐릭터들의 활약도 돋보인다. 드라큘라로 인해 아내를 잃고 복수를 꿈꾸며 그를 쫓는 뱀파이어 헌터 반 헬싱과 미나를 향한 헌신적인 사랑을 보내는 그녀의 약혼자 조나단, 드라큘라로 인해 뱀파이어로 변해버린 미나의 친구 루시까지 각기 다른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캐릭터들이 스토리라인을 펼쳐낸다.

배우들의 열연과 더불어 <드라큘라>의 가장 큰 볼거리는 4중 턴테이블 구조의 입체적인 무대다. 제9회 ‘더뮤지컬어워즈’에서 무대상을 수상했을 만큼 화려함과 웅장함을 자랑하는 무대는 작품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지며 몰입도를 강화한다. 또한 세트 위에 투영되는 영상 역시 드라큘라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뮤지컬 ‘드라큘라’ 공연 모습, 그댄 내 삶의 이유(Loving You Keeps Me Alive), 드라큘라 役 신성록 (제공=오디컴퍼니)

한편 뮤지컬 <드라큘라>는 오는 8월 1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된다. 신성록, 김준수, 전동석, 조정은, 임혜영, 박지연, 강태을, 손준호, 조성윤, 백형훈, 선민, 이예은 등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