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정체성이 마주한 세계, 가나아트센터《Today and Tomorrow》展
‘흑인’ 정체성이 마주한 세계, 가나아트센터《Today and Tomorrow》展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7.0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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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아트센터, 다음달 1일까지
6인 흑인 작가가 본 미국과 아프리카의 이중정체성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지난해 경찰 과잉진압으로 비무장 상태 흑인 남성이 사망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서 촉발된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미국 전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와 더불어 코로나19 확산은 우리 사회 모든 분야를 뒤흔들면서 국가 간 인종 간 갈등을 심화시키기도 했다. 흑인 차별, 동양인 차별 등 인종 차별의 문제는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 갈등이다.

미술가들은 이런 사회적 흐름과 부당한 시대상을 자신들의 작품으로 끌어 올린다. 가나아트는 근간에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인종차별 문제를 인식하고 현시대를 명철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는 6인의 흑인 작가 초청 그룹전을 기획했다.

▲Four Little Girls (Gold and Black)  II (no flash) 플래시 조명이 없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Four Little Girls (Gold and Black) II (no flash) /플래시 조명이 없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 Hank Willis Thomas. Courtesy of the artist and Jack Shainman Gallery, New York
▲Four Little Girls (Gold and Black)  II (flash), 상단과 같은 이미지에 플래쉬를 켜면 인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Four Little Girls (Gold and Black) II (flash)/ 상단과 같은 이미지에 플래쉬를 비추면 인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Hank Willis Thomas. Courtesy of the artist and Jack Shainman Gallery, New York

다음달 1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기획전 《Today and Tomorrow》는 그들 작품에 담긴 시대적 함의를 읽어보며, 자신의 정체성을 ‘흑인’으로 규정하는 작가적 시선을 탐구한다. 전시에는 행크 윌리스 토마스(Hank Willis Thomas, b. 1976), 오딜리 도널드 오디타(Odili Donald Odita, b. 1966), 폴 앤서니 스미스(Paul Anthony Smith, b. 1988) 래드클리프 베일리(Radcliffe Bailey, b. 1968), 라샤드 뉴섬(Rashaad Newsome, b. 1979), 사치 호이트(Satch Hoyt, b. 1957) 등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6인의 작가가 참여한다.

《Today and Tomorrow》에 작품을 선보이는 6인의 작가는 ‘흑인’ 작가로서의 스스로의 정체성을 주목하고, 작품을 시각화해 사회적 불평등이 여전히 잔존함을 부각시키는 활동을 지속해왔다. 백인 작가라는 명칭이 흔히 사용되지 않는 상황 속 그들을 흑인 작가라 규정짓는 것 자체가 그들이 가시화 하고자 하는 사회적 편견에 갇혀있는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가나아트는 그들이 스스로의 뿌리에 대한 탐구를 통해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담론을 추동한 것을 주목해, ‘흑인 작가’라는 지칭이 현 시대의 모순점을 드러내면서 추후 피부색으로 작가를 분류하지 않는 시대 도래에 유의미한 기여를 할 것이라는 기획 의도를 전했다.

▲Odili Donald Odita, Blackbird, 2020, Acrylic latex paint on aluminum-core, fabricated wood panel with reconstituted wood veneer, 233.7 x 132 x 4.4 cm | 92 x 52 x 1 3/4 inches © Odili Donald Odita. Courtesy of the artist and Jack Shainman Gallery, New York.
▲Odili Donald Odita, Blackbird, 2020, Acrylic latex paint on aluminum-core, fabricated wood panel with reconstituted wood veneer, 233.7 x 132 x 4.4 cm | 92 x 52 x 1 3/4 inches © Odili Donald Odita. Courtesy of the artist and Jack Shainman Gallery, New York.

각기 다른 연령대, 출생지를 배경으로 하는 6인의 작가를 연결시키는 단일 주제는 “아프리카 디아스포라(African Diaspora)”다. 디아스포라는 이산(離散)을 뜻하는 말로, 고향을 떠나 그들의 규범과 역사를 지키며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사용된다. 이로부터 파생된 단어인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는 노예 무역에 의해 강제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야만 했던 이들을 칭한다.

전시 참여 작가는 직접적으로 이주를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자신들의 뿌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조상의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이를 체화했다. W.E.B 뒤 보이스의 저서 《흑인의 영혼(The Souls of Black Folk)》(1903)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복합적 의식을 설명하는 명칭으로 “이중 자의식(Double consciousness)”이라는 용어를 제안한다. 자신의 선조들이 태어난 아프리카 대륙 출신의 사람들과 유대를 희망하면서도 결국은 자신이 외부인이 된 듯한 소외감을 느끼는 것,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감각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중 자의식을 의식적으로 인지한 참여 작가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을 작품에 차용하고 그들의 역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방식을 통해 주류 백인의 눈이 아닌 흑인의 눈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창조해 나갔다.

▲BB#1, 2016, Uunique picotage on inkjet print and colored pencil, mounted on museum board, 154.9 x 104.1 x 4.4 cm | 61 x 41 x 1 3/4 inches © Paul Anthony Smith. Courtesy of the artist and Jack Shainman Gallery, New York.
▲Paul Anthony Smith, BB#1, 2016, Uunique picotage on inkjet print and colored pencil, mounted on museum board, 154.9 x 104.1 x 4.4 cm | 61 x 41 x 1 3/4 inches © Paul Anthony Smith. Courtesy of the artist and Jack Shainman Gallery, New York.

사치 호이트와 오딜리 도널드 오디타는 음악과 색상으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를 예술로 전이한다. 사치 호이트의 <Hair Combing Cycle>(2017)은 흑인 여성이 원형으로 모여 앉아 서로의 머리를 빗는 퍼포먼스를 촬영한 영상으로, 조용한 전시장 가운데 머리를 빗는 소리만이 울려 퍼져 관람자가 청각적으로 작품을 먼저 인지하게 한다. 곱슬머리를 빗는데 사용되는 아프로콤(Afro-comb)은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로, 일련의 회화와 조각에서 흑인에 가해지는 차별에 대한 저항을 표상한다.

나이지리아 출생의 오딜리 도널드 오디타는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아프리카 예술과 고고학을 연구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아프리카의 미술, 전통 공예품을 보며 자랐고 이로부터 작업의 영감을 얻었다. 이러한 영감은 그의 작업에서 서구의 모더니즘과 아프리카 문화의 결합으로 드러난다. 그의 화면에서는 미국 추상회화의 경향 하드 에지(Hard Edge) 특성과 아프리카 직물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색띠가 드러나는데, 이는 미국인이자 아프리카인인 작가의 이중 정체성을 대변한다.

▲Rashaad Newsome, Through the Looking-Glass, 2021,Collage on paper in custom mahogany and resin artist frame with automotive paint, 172.7 x 172.7 x 10.2 cm | 68 x 68 x 4 inches © Paul Anthony Smith. Courtesy of the artist and Jack Shainman Gallery, New York.

라샤드 뉴섬과 행크 윌리스 토마스는 인터넷과 광고에서 이미지를 차용해 흔히 사용되는 이미지에 숨겨진 권력 관계와 차별을 폭로한다. 라샤드 뉴섬은 광고, 인터넷, 미술사, 흑인과 퀴어 문화 등에서 이미지를 추출해 콜라주 작업에 활용한다. 이는 미디어와 대중문화에서 사용되는 이미지가 왜곡된 권력을 어떻게 수행하는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데 유효한 작업방식으로 작동한다.

행크 윌리스 토마스 잡지, 유명 브랜드의 광고 이미지 안에 담긴 젠더, 인종, 계급 등 다양한 층위에서 벌어지는 차별의 메시지를 노출시킨다. 그는 광고에 들어간 로고나 텍스트 등 제작자의 의도가 개입되는 정보를 모두 제거하거나 되레 의도적으로 삽입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든다. 그의 작품 <Four Little Girls (Gold and Black) II>(2019)는 역반사 필름위에 20세기에 벌어졌던 시위 이미지를 프린트했다. 플래시를 켜서 작품을 살펴볼 때에만 그 이미지를 볼 수가 있는데, 이로써 그는 역사에 무엇이 기록되고 지워지는가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폴 앤서니 스미스와 래드클리브 베일리는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라는 공통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시각화하는 작가다. 자메이카 출생의 폴 앤서니 스미스는 날카로운 수제 도구를 활용해사진 표면에 독특한 패턴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사진 표면에 상처를 내는 그의 독특한 작업 방식은 자신들의 조상에서부터 지속돼 온 유색인종에 대한 폭력적 착취를 은유한다.

래드클리브 베일리는 가계, 인종, 이주, 집단 기억(부모 세대에서 자식 세대로 전달되는 공동체의 기억)을 주제로 작업한다. 전통 아프리카 조각, 가족 사진, 배, 기차 선로, 조지아주에서 나는 붉은 진흙을 소재로 사용한다. “한 발은 과거에 한 발은 과거에 딛고 있다(I’ve always had one foot in the past, I always have one foot in the present)”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과거 흑인 노예 역사에서부터 현재 인종차별까지 아프리카계 미국인 정체성에 대한 담론 전체를 아우른다.

▲Rashaad Newsome, Through the Looking-Glass, 2021, Collage on paper in custom mahogany and resin artist frame with automotive paint, 68 x 68 x 4 in (사진=가나아트센터 제공)
▲Rashaad Newsome, Through the Looking-Glass, 2021, Collage on paper in custom mahogany and resin artist frame with automotive paint, 68 x 68 x 4 in (사진=가나아트센터 제공)

《Today and Tomorrow》 전시장 입구에는 “사회는 짐짓 안정적인 체해야 한다. 그러나 예술가는 하늘 아래 무엇도 안정적이지 않음을 알고,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줘야 한다(A society must assume that it is stable, but the artist must know, and he must let us know, that there is nothing stable under heaven)”라는 제임스 볼드윈의 인용구가 붙어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행크 윌리스 토마스는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All art is political)”라고 말했다. 예술은 시대를 반영하고 예술가들은 가장 먼저 사회의 오류를 발견하고 작품으로 세상에 얘기한다.

만나 볼 수 있는 6명의 흑인 작가들은 지금 우리의 세계가 마주하고 있는 인종 차별 문제의 시작과 현재를 모두 아우르며,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지금을 얘기한다. 그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담긴 작품은 우리에게 오늘(today)의 과제가 무엇인지 공감하게 하고, 내일(tomorrow)의 문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