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대형화장실 발굴, 150여 년 전 정화 시설 우리나라가 유일
경복궁 대형화장실 발굴, 150여 년 전 정화 시설 우리나라가 유일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7.0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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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수구‧출수구 갖춘 화장실, 현대 정화조 시설과 유사해
동궁 하급관리 사용 추정, 궁궐 생활사 복원 도움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경복궁 동궁 남쪽 지역에서 궁녀‧궁궐을 지키는 군인들이 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화장실이 발견됐다. 발굴된 유구(遺構)는 현대 정화조와 유사한 시설이었다. 또한, 유구 토양에서는 많은 양의 기생충 알(g당 18,000건)과 씨앗(오이‧가지‧들깨)이 검출됐고, 「경복궁배치도」와 『궁궐지(宮闕志)』의 기록을 통해 유구가 화장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궁궐 내부에서 화장실 유구가 나온 것은 첫 사례다.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소장 김인규)는 8일 경복궁 동궁 남쪽 지역에서 발굴된 화장실 시설을 경복궁 흥복전에서 언론에 공개했다. 경복궁 화장실의 존재는 「경복궁배치도(景福宮配置圖)」(1888~1890년경 경복궁 중건 후 전각의 배치도면) ,「북궐도형(北闕圖形)」 (1907년 경 왕실 재산 파악을 목적으로 제작된 도면), 『궁궐지(宮闕志)』(904년경의 경복궁 전각 칸수와 용도를 설명한 책) 등에서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화장실유구 규모와 구조 (사진=문화재청 제공)
▲화장실유구 규모와 구조 (사진=문화재청 제공)

문헌에 따르면 경복궁의 화장실은 최대 75.5칸이 있었는데, 주로 궁궐의 상주 인원이 많은 지역에 밀집돼 있었으며, 특히, 경회루 남쪽의 궐내각사(闕內各司)와 동궁(東宮) 권역을 비롯하여 현재의 국립민속박물관 부지 등에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발굴된 화장실은 동궁 권역 남쪽에 위치해 동궁 관련 하급 관리와 궁녀‧군인이 주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궁 권역의 건물들은 1868년(고종 5년)에 완공됐으나,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조선물산공진회장이 들어서면서 크게 훼손됐다.

▲화장실유구 노출 후 전경(사진=문화재청 제공)
▲화장실유구 노출 후 전경(사진=문화재청 제공)

이 화장실은 1868년 경복궁이 중건될 때 만들어져서 20여 년간 사용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경복궁 영건일기(景福宮 營建日記)』의 기록과 가속 질량분석기(AMS, Accelerator Mass Spectrometer)를 이용한 절대연대분석, 발굴한 토양층의 선후 관계 등으로 유추할 수 있다.

발굴된 화장실의 구조는 길이 10.4m, 너비 1.4m, 깊이 1.8m의 좁고 긴 네모꼴 석조로 된 구덩이 형태다. 바닥부터 벽면까지 모두 돌로 돼 있어 분뇨가 구덩이 밖으로 스며 나가는 것을 막았다.

▲토양에서 발견 된 가지 속 (사진=문화재청 제공)
▲토양에서 발견 된 가지 속 (사진=문화재청 제공)

정화시설 내부에는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入水口) 1개와 물이 나가는 출수구(出水口) 2개가 있다. 북쪽에 있는 입수구의 높이가 출수구보다 낮게 위치한다. 유입된 물은 화장실에 있는 분변과 섞이면서 분변의 발효를 빠르게 하고 부피가 줄여 바닥에 가라앉히는 기능을 했다.

분변에 섞여 있는 오수는 변에서 분리돼 정화수와 함께 출수구를 통해 궁궐 밖으로 배출됐다. 이렇게 발효된 분뇨는 악취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독소가 빠져서 비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이 구조는 현대식 정화조 구조(분뇨 침적물에 물 유입→ 분뇨 발효와 침전→ 오수와 정화수 외부 배출)와 유사하다.

관련 전문가인 이장훈 한국생활악취연구소 소장에 의하면 150여 년 전에 정화시설을 갖춘 경복궁의 대형 화장실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고 한다. 정화시설은 우리나라 백제 때의 왕궁 시설인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지만, 분변이 잘 발효될 수 있도록 물을 흘려보내 오염물을 정화시킨 다음 외부로 배출하는 구조는 이전보다 월등히 발달 된 기술이다.

▲경복궁 동궁권역 화장실 유구의 평면 추정 이미지 (사진=문화재청 제공)
▲경복궁 동궁권역 화장실 유구의 평면 추정 이미지 (사진=문화재청 제공)

이 같은 분뇨 정화시설은 우리나라에만 있으며, 유럽과 일본의 경우에는 분뇨를 포함한 모든 생활하수를 함께 처리하는 시설이 19세기 말에 들어서야 정착됐다고 한다. 중국의 경우에는 집마다 분뇨를 저장하는 대형 나무통이 있었다고만 전해질 뿐 자세한 처리 방식은 알려진 바가 없다.

경복궁 화장실 유구 발굴은 그동안 관심이 적었던 조선 시대 궁궐의 생활사 복원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이번 발굴조사의 결과를 문화재청 유튜브와 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로 오는 12일부터 공개해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연구자와 시민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