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고향을 찾아온 이건희 컬렉션, 《웰컴 홈: 향연饗宴》展
[전시리뷰] 고향을 찾아온 이건희 컬렉션, 《웰컴 홈: 향연饗宴》展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7.16 1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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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8월 29일까지
대구미술관, 이건희 기증 21점 특별 전시
지역미술관 정체성 고려한 기부품
이인성. 이쾌대, 유영국, 서동진 등 근현대 작가 작품 선보여
이건희 미술관 대구 유치 시민 열망 뜨거워, 대대적 서명운동 펼치고 있어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마을에 살던 아이가 서울로 올라가 명문대에 입학하거나 좋은 회사에 입사를 하면 큰 잔치를 벌이곤 했다. 동네 초입에는 대구의 아들, 대구의 딸이라는 축하 현수막을 매달았고 서울에서 돌아온 이에게 고향의 따뜻함을 베풀었다. 타지에서 고생하며, 좋은 성과를 이룬 자식에게 전하는 고향의 온정이었다.

《웰컴 홈: 향연饗宴》, 대구 미술관(관장 최은주)이 컬렉션 21점을 소개하는 특별전의 전시명이다. ‘향연饗宴’은 ‘특별히 융숭하게 손님을 대접하는 잔치’라는 뜻이다. 삼성의 시작이었던 대구시가 고향으로 돌아온 이건희 회장과 미술 작품들에 보내는 인사를 담고 있다. 전시는 지난달 29일 문을 열어 오는 8월 29일까지 3개월 간 진행된다. 기자는 지난 4일 대구미술관을 찾아 현장의 관심을 느껴봤다. 

▲푸른색이 돋보이는 전시실, 故이건희 회장의 책 속 문장을 볼 수 있다 (사진=대구미술관 제공)
▲푸른색이 돋보이는 전시실, 故이건희 회장의 책 속 문장을 볼 수 있다 (사진=대구미술관 제공)

대구미술관으로 기증된 故이건희 컬렉션 21점은 김종영(1점), 문학진(2점), 변종하(2점), 서동진(1점), 서진달(2점), 유영국(5점), 이인성(7점), 이쾌대(1점)으로 회화 20점 조각 1점으로 구성됐다. 전시 《웰컴 홈: 향연饗宴》은 2개의 전시 나눠졌다. 두 개의 전시 공동 입구와 두 번째 전시 끝에서는 삼성과 故이건희 회장의 아카이브 영상과 타임라인을 만나볼 수 있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다채로워진 대구미술관 소장품

대구미술관은 이건희 컬렉션 21점과 대구미술관 소장품 및 대여 작품 20여 점을 함께 전시해 이건희 컬렉션이 가진 의미를 섬세하게 조명한다. 근현대 한국미술 흐름과 각각의 작가 특성을 좀 더 깊이 있게 다루는 기획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향토색 연구를 펼쳐나가며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대작과 조선의 힘든 상황을 표현했던 이인성의 감성적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재미도 있다. 대구미술관으로 기증된 작품 중 이인성의 작품은 7점이다. 8명의 작가 중 가장 많은 작품 수이다.

이인성 작품 중 풍경을 다룬 작품인 이건희 컬렉션 <풍경>과 대구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경주 풍경>은 나란히 전시 돼 있다. 고즈넉한 풍경을 담아내고 있는 두 그림은 민족미술 논쟁에 관심을 가지며 주제의식을 담아내고자 했던 이인성의 화풍과는 또 다른 편안하고 따뜻한 색감과 시각을 찾아볼 수 있다. <석고상이 있는 풍경>은 조금 색다른 구도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인성, 경주풍경, Watercolors on paper, 25.5 cm  48.5 cm , 1938, 이인성의 서정적인 화폭을 감상할 수 있다(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인성, 경주풍경, Watercolors on paper, 25.5 cm 48.5 cm , 1938, 이인성의 서정적인 화폭을 감상할 수 있다(사진=서울문화투데이)

서진달 작품은 이번에 2점 기증됐는데, 2점 모두 여성 누드 작품이다. 서진달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다수의 인물화를 출품해 주목받았고, 누드화도 많이 그렸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남아있는 작품은 드물다. 이번 기증으로 대구미술관이 소장하게 된 서진달 <나부입상>과 <누드>는 아카데믹한 느낌을 뿜어내는 수작이다.

특히 <나부입상>은 1920년대에 누드를 그린다는 파격적인 서진달의 행보를 보여주면서, 정면을 바라보는 여인의 자신감 있는 모습과 그의 탄탄하게 단련된 필체가 돋보인다. 여인의 몸을 균형 있고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붉은색, 녹색을 사용해 섬세한 완성한 피부 표현을 볼 수 있다.

전시에서는 이쾌대의 월북이후 화풍을 볼 수 있는 <항구>도 만나볼 수 있다. <항구>는 1960년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월북 이후 이쾌대 작품 활동을 보여주는 소중한 작품이다. 월북 후 이쾌대는 3‧1운동 등 역사적 주제나 소박한 일상을 다룬 작품을 많이 선보였다고 한다. <항구>는 저녁노을이 진 바다와 멈춰있는 배들을 원숙한 표현 기법으로 담아냈다.

▲이쾌대, 항구, 1960, 33.5x44.5cm, 캔버스에 유채(사진=대구미술관 제공)
▲이쾌대, 항구, 1960, 33.5x44.5cm, 캔버스에 유채(사진=대구미술관 제공)

대구미술관에 기증된 작품 중 두 번째로 많은 작품은 유영국의 작품이다. 문 홍보담당은 “처음에 기증목록을 보고, 유영국 작가 작품이 많은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라며 “대구와는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작가의 작품인데 어떤 이유에서 기증이 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라고 당시의 생각을 전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대구미술관 측은 유영국 작품 기증의 지향점을 어렴풋이 예측해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문 홍보담당은 “근현대 작가 중 표지석이 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하나씩 기증해준 것 같다”라며 “한국 미술 추상 1세대인 유영국 작가뿐 아니라, 추상‧구상‧반구상을 표현한 문학진 작가 작품도 기증받을 수 있어 감사하다”라는 뜻을 전했다.

두 번째 전시장은 삼성이 연상되는 푸른색으로 전시장을 꾸몄다. 이 곳에서 문학진과 유영국의 작품을 연이어 감상 할 수 있는데 반구상과 추상 작품이 연이어 전달하는 시각적 역동성이 돋보인다. 특히, 유영국의 동명의 <산> 작품이 나란히 배치돼 있는데, 두 개의 화폭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활기차면서도 거세게 관람객을 감싸 안는다.

▲서진달, 나부입상, 1934, 90.2x70.3cm, 캔버스에 유채, 자신감 있는 여성의 태도와 서진달의 힘 있는 필제가 돋보인다(사진=대구미술관)
▲서진달, 나부입상, 1934, 90.2x70.3cm, 캔버스에 유채, 자신감 있는 여성의 태도와 서진달의 힘 있는 필체가 돋보인다(사진=대구미술관)

대구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은 대구 출신 근대 작가들의 작품이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 대구 미술관에 필요한 작품들이 기증된 경향을 띠고 있다. 대구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과 연결고리가 있는 작품이나, 미술관이 쉽게 소장할 수 없는 굵직한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포함됐다는 설명이다.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대구미술관은 1920-1950년대 대구 미술사를 다루는 <때와 땅>전을 개최했다. 전시를 기획하면서 다룬 근대 미술가에 대한 연구는 이번 《웰컴 홈: 향연饗宴》전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또한, 삼성의 시작이었던 대구시의 축적된 자료는 이번 전시 아카이브 작업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전시장 입구 삼성 타임라인은 대구역사기록단체인 ‘시간과 공간 연구’의 삼성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문 홍보담당은 이번 이건희 컬렉션 전시가 미술과 익숙하지 않았던 대중들도 미술을 접해볼 수 있는 트리거로 작용한 것 같다는 견해를 보였다. 덧붙여 그는 “이번 기증이 국민적 관심을 받은 만큼 앞으로도 기업가들의 선순환적 기부체계의 바탕이 되길 바란다”라는 뜻도 전했다.

▲유영국, 산, 1970년대, 62.5x62cm, 캔버스에 유채(사진=대구미술관 제공)
▲유영국, 산, 1970년대, 62.5x62cm, 캔버스에 유채(사진=대구미술관 제공)

故이건희 컬렉션을 맞이하는 뜨거운 관심

한편, 기자는 ‘故이건희 미술관’ 건립지로 서울 용산구와 송현동 부지가 거론되기 이전에 미술관을 방문했다. 건립 후보지가 거론되기 전이라 ‘이건희 미술관’을 향한 대구 시민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전시 입구 한 켠에는 ‘국립 이건희 미술관 대구유치 시민 서명운동’을 위한 공간이 조성돼 있었다. 문현주 대구미술관 언론담당은 “이건희미술관 대구유치를 추진하는 시민단체가 자발적으로 요청해 와서 전시 입구에 서명 운동 공간을 마련하게 됐다”라며 “생각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서 미술관도 많이 놀랐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미술관을 돌아보는 사이에 여러 명의 대구 시민이 미술관 유치 시민 서명 운동에 동참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10대 학생부터 20대, 50대 등 다양한 연령층의 관람객이 서명에 참여해 ‘故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대구시의 열화 같은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장을 찾은 청소년들이 “이게 이건희 회장 미술품이었다는 거지”라는 얘기를 나누며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미술 전시를 관람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대구미술관에서 진행되던 서명운동 현장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대구미술관에서 진행되던 서명운동 현장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전시 개막 2주를 넘어선 대구미술관의 누적 관람객은 10.777명(사전예약 12,554명)에 달한다. 또한, 2주째 주말 입장권이 매진되는 등 큰 관심이 이어지고 있는 추세다. 관람 연령층도 20대부터 40대까지 고루 분포돼있고, 고령의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방문객들도 있다는 설명이다. 전시는 무료 관람이고, 전시 관람 전 사전예약이 필요하다.

문 언론담당은 “온라인 사전예매가 낯선 연령층에서는 전화 예약도 많이 오고 있다”라며 “2030세대는 이건희 회장을 인플루언서 개념으로 해석하며 그가 어떤 미술품을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해 하면서 찾아오고, 중장년층은 대구 제일모직, 삼성 라이온즈 등 삼성 관련 추억을 기대하며 찾아오시는 것 같다”라고 관람객 경향을 설명했다.

▲전시를 관람하는 관람객들 거리두기 때문에 일정 간격을 두면서 관람하고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전시를 관람하는 관람객들 거리두기 때문에 일정 간격을 두면서 관람하고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기자가 대구 미술관을 방문한 날은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로 미술관 방문 자체가 힘든 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인파가 미술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전시를 관람하면서 만났던 관람객들 중 이인성과 서진달의 정물화로 아이에게 그림을 설명해주던 아버지 모습이 인상 깊다.

전시에선 故이건희 회장의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저서에 실린 “문화적 특성이 강한 나라의 기업은 든든한 부모를 가진 아이와 같다”라는 문장을 만나 볼 수 있다. 이 회장은 생전 문화예술 지원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자신만의 문화 철학도 가진 인물이었다. 그의 이번 기증은 장성한 자식이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다시 되돌려주는 것과 같아 보인다. 자식이 너무나 늦게 사랑을 되돌려주는 것 같은 느낌도 있지만, 그의 기증이 보다 많은 국민들에게 뜻 깊은 문화적 경험으로 다가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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