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프리뷰]‘인왕제색도’ 드디어 실물영접…국박 ‘이건희 컬렉션’ 한 자리에
[현장프리뷰]‘인왕제색도’ 드디어 실물영접…국박 ‘이건희 컬렉션’ 한 자리에
  • 안소현 기자
  • 승인 2021.07.20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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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상절1’과 ‘월인석보' 등 15세기 한글과 한자 서체 편집 디자인 수준 확인할 수 있어
천수관음보살도, '수월관음도' 2점 고려불화의 섬세한 아름다움 드러내
특별전시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21일부터 9월 26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서 전시

[서울문화투데이 안소현 기자] 최고의 진경산수로 꼽히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실물을 드러냈다.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이 '이건희 컬렉션'을 공개하면서 그동안 교과서와 사진으로만 보던 인왕제색도를 일반인들도 볼 수 있게 됐다. 오는 21일부터 9월 26일까지 국박 2층 서화관에서 특별전시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에 포함된 인왕제색도는 비 갠 뒤 안개가 피어오른 인왕산의 경치를 자유분방한 필치로 묘사됐다. 원경에 배치된 치마바위, 범바위, 등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긋는 부벽준으로 여러 번 내리그어 바위의 무게감을 드러낸다. 전경에는 자욱한 안개에 몸을 숨긴 숲과 집이 있다. 숲은 작고 촘촘한 점들로 섬세히 묘사했다.

▲겸재 정선, ‘인왕제색도’, 1751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겸재 정선, ‘인왕제색도’, 1751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인왕제색도'의의 제작 배경을 일러주는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박물관 측에서는 세 가지 가설을 제시한다. 비 갠 인왕산 풍경에 빗대어 평생지기 이병연의 쾌유를 기원했다는 것이 첫 번째고, 후원자 이춘제의 저택 후원에서 보이는 경관을 그렸다는 것이 두 번째 설이다. 정신이 자기 삶의 터전을 배경으로 비 갠 순간의 상쾌함을 나타내고자 했다는 설이 세 번째인데, 이는 작품이 보여주는 디테일을 설명한다. 실제로 정선은 경상도 하양 현감을 지내고 1727년에 옥인동으로 이사했다. 작품이 제작되던 시점에 정선은 인왕산을 자주 방문했을테고, 따라서 산을 구석구석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을 테다. 전시는 영상 '인왕산을 거닐다'를 통해 인왕산 명소와 비 갠 인왕산의 풍경을 담아내 작품 이해도를 더 높이고자 했다.

▲수월관음도, 고려 14세기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수월관음도, 고려 14세기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고려 불화도 눈을 사로잡는다. 이건희 회장은 해외에 있던 고려 불화 다수가 국내로 들어올 수 있도록 힘썼다. 이번 전시에는 '천수관음보살도'와 '수월관음도' 등 고려 불화 2점이 포함됐다.

14세기 고려 때 제작된 '천수관음보살도'는 무수히 많은 손과 눈으로 중생을 구원하려는 천수관음보살을 담아낸다. 우리나라에서 천수관음보살 신앙은 역사가 깊지만 그림으로 표현된 천수관음보살도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 작품 속 천수관음보살은 어려움을 털어내 달라는 바람을 담은 먼지떨이 등 좋은 의미를 지닌 다양한 물건을 44면의 손으로 각각 들고 있다. 광배에는 수많은 눈을 그려 '천안'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같은 시기 작품 '수월관음도' 역시 고려 불화 특유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수월관음은 관음보살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하늘의 달이 여러 곳의 맑은 물에 비치듯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보통 수월관음도에는 깨달음을 얻으려고 구도행을 떠난 선재동자가 등장하나, 이 작품에서는 아래쪽이 손상돼 아쉽게도 동자가 보이지 않는다.

나란히 전시된 두 불화 앞에는 터치스크린 영상을 설치해 작품 세부를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적외선 촬영된 작품 사진으로는 숨겨진 밑그림을, X선 사진으로는 채색 방식 및 안료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에는 그 밖에도 기증자의 철학을 반영하는 작품이 많이 포함돼 있다. 산화철을 발라 붉은 광택을 낸 청동기 시대 ‘붉은 간토기’, 초기 철기시대 청동기로 당시 권력을 상징하는 ‘청동방울’, 삼국시대 배 모양을 추측할 수 있는 ‘배 모양 토기’, 조선백자로 넉넉한 기형과 문양이 아름다운 ‘백자 청화 산수무늬 병’ 등은 당대 최고의 기술과 디자인을 보여준다.

‘석보상절 권 11’과 ‘월인석보 권 11‧12’등의 한글 전적을 통해서는 15세기 한글과 한자 서체 편집 디자인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자세히 또는 간략히 기술했다는 의미를 지닌 '석보상절'은 한문 불교 서적의 내용을 편집해 알기 쉬운 훈민정음으로 표기했다. '월인석보' 역시 석가보니의 일대기를 다룬 한글 책으로 '석보상절'과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을 합치고 수정해 세조 때 간행됐다. 두 책 모두 한글의 과학성과 조형미를 골고루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다. 

▲월인석보, 조선 15세기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월인석보, 조선 15세기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 회장의 유족이 박물관에 기증한 미술품은 총 9, 797건 21, 600여 점으로 역대급 규모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이중 45건 77점의 기증품을 특별히 선정해 이건희 컬렉션의 다양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청동기 시대, 초기 철기시대 토기와 청동기, 삼국시대 금동불 및 토기, 고려 시대 전적‧사경‧불교 미술품‧청자, 조선 시대 전적‧회화‧도자‧목가구 등을 가로지른다. 모두 이미 잘 알려진 작품들이며, 이중 최초로 공개된 것은 없다. 기획자 이수경 연구관의 말에 따르면, 전시의 주목적은 “명품을 더 명품답게, 더 자세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은 대중 친화적인 설명으로 시민들이 컬렉션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힘쓴 전시다. 기증자의 철학을 되짚어보는 한편, 한국을 대표하는 귀중한 미술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좋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