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연극 한 편이 세상을 바꾸다, 페터 한트케의 <관객모독>
[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연극 한 편이 세상을 바꾸다, 페터 한트케의 <관객모독>
  •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 승인 2021.08.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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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멀쩡히 잘 걷던 다리가 아파, 딸이 예약해준 한의원을 찾았다. 연골이 마모되어 연골보충을 해주면 한결 도움이 될거라며 치료를 받고 이런저런 설명을 받았다.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혹 함자를 보니 <관객모독>을 번역한 분 함자와 같은데 그 연극을 아시느냐고 묻는다. 60이 좀 넘을까 말까한 여자 한의사가 뜬금없이 연극 작품 <관객모독>을 물어 오다니 나는 의아해 하면서 "제가 그 번역자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 여자 한의사는 너무나 반가워하면서 올해 신문에서 관객모독의 작가 페터 한트케 (1942~~)가 노벨문학상을 탄 사실을 읽었다면서 너무나 기뻤다고 말한다.

나는 너무나 의외의 장소와 사람에게서 <관객모독> 연극 얘기를 들으며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찌 그작품을 아세요?” 그녀의 대답은 너무나 의외였다. “저는 그 작품이 공연될 때마다, 그 버젼이 바뀔 때마다 놓치지 않고 다 보았어요. 늘 재미있고 흥분되었어요. 욕을 먹고 있어도 재미있더라구요!” 나는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인물에게서 의외의 얘기를 들으며 한국인 우리사회가 그동안 많이도 변하고 있었음을 나만 모르고 있었구나 하며 좀 부끄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연극관람은 그저 나같은 문학인이나 연극쟁이나 본다는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즐거운 순간이었다. 마치 수술을 하는 외과치료실에서 현대음악을 듣는 경이로움을 경험하는 그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동안 우리사회가 많이도 변하고 많이도 다양하며 깊어지고 있구나 하는 즐거운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페터 한트케를 처음 알게된 것은 내가 독일유학생활 하던 시절이다. 1965년 그가 문학기자로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2차대전 후 참담하게 무너진 전후 독일사회의 혼란 속에서 출구찾기에 방황하고 있는 독일작가들을 초청하여 향후 미국이 독일문단의 방향찾기에 가까운 국제문학세미나를 열어주었다. 지지부진한 결론도 없는 토론을 보며 따라왔던 새파란 이름도 없는 젊은 문학기자는 기성세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토로했다. 독일어권 중견작가들은 황당함과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낀 이 사건을 통해 그 당돌한 갓 스물이 넘은 기자를 보며 “어디 네가 쓰는 문학은 어떤 것인지 보자”고 벼르던 때였다.

온 사회가 큰 관심과 비판의 눈으로 그를 주시했다. 당시만 해도 독일대학강단과 문단에서는 전쟁의 원인을 명쾌하게 규명하기에 많은 것들이 사회 속에 엉켜있을 때였다. 
1966년 한트케는 <관객모독>을 발표하여 무대에 올리며 독일어권 사회에 폭탄을 던진 셈이였다. 독일어권 사회는 히틀러의 만행과 그에 휩싸였던 사회의 혼란상을 물심양면에서 정서적이고 정신적인 안정을 정리할 틈이 없는 가운데 미·소로 양분된 힘의균형이 자리를 잡지 못할 때였다. 또한 그 후 3년이 지난 1968년에는 파리에서 시작된 학생운동이 온 세계를 휩쓸기 바로 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 남단 언어철학이 둥지를 틀고 인간의 의식과 행동, 그에 기반을 둔 사회현상은 언어철학의 바탕을 두고 살펴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온 유럽을 휩쓸고 미국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비트케슈타인(1889 - 1951)과 춈스키(1928 ~   )를 모르면 학문을 할 수 없을 만큼 언어 철학과 행동방식에 대한 연구가 학풍을 좌우할 때였다. 의식과 행동과 말의 연관관계가 학문의 초점을 좌우할 때였다. 한트케가 드라마로 발표한 최초의 연극작품은 종래의 관점으로는 연극을 올릴수 없을만큼 획기적이였다.종래의 관념으로는 연극이 될 수없는 획기적인 작품이였다.

무대위에 선 4명의 배우는 종래의 무대개념으로는 이해할 수없는 텅빈무대위에서 언어로만 종래의 연극형식을 비판하며, 관객에게 감동과  각성을 일깨우려면 모든 가식적인 무대장식과 배경을 집어치우고 관객에게 모욕을 주므로써 각성과 자신을 돌아보게 하라는 것이다. 기존의 개념으로 볼 때 이것은 연극이 아니다.  

하지만 그 연극텍스트를 읽고 있으면 이 작품이 세계를 바꿀수있는 이정표같은 작품이라는 것을 졸지에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박사논문을 마무리하는 끝 단계에 와 있었음에도 이 작품을 번역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그리하여 1969년 한달음에 번역을 끝내고 아직도 한참 사실주의 연극에 푹 빠져있는 한국연극계에 이 작품이 비집고 들어갈 수나 있을까 걱정을 했다. 당시 우리 연극계에는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오셔서 한국연극계를 터잡고 키우고 있으셨을 때다. 동랑 유치진 선생님은 타계하셨지만 이해랑, 이원경, 김동원, 이진순 등의 선생님들이 무대를 사로잡고 사실주의 연극형태가 자리를 잡아가며 새로운 시대를 장민호 백성희 등 그 뒤를 이어 김의경 선생 등 현대연극의 싹트기가 부풀어 있을 때 한국현대극작가 경연대회에서 '로라세케트를 타는 오뚜기' 로 세인의 주목을 받을때였다. 이러한 연극 풍토에 <관객모독>을 심는다는건 가당키나 한걸까 의심해보며 때를 기다렸다.

여러 곡절 끝에 그래도 이 작품은 삼성출판사가 이끄는 [세계현대희곡선집]에 실리게 되고, 1976년 나처럼 이 작품에 꽂힌 기국서 연출이 극단<1976> 창단공연으로 한국에 태어나게 하며 근 반세기를 한국연극계의 중심에 자리잡게 하였다.

수많은 세월의 나이테를 거쳐도 항상 새롭게 다가오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연출가 기국서는 우리시대에 맞는 욕을 창조해가며 작품에 지속적인 생명을 불어넣었다. <관객모독>을 연출 상연해서 우리 연극의 새로운 면모를 보태주며 연극사의 한 면을 장식하고 있다. 세월이 지나도 작품 <관객모독>은 영원히 늙지 않는 마술을 지닌 작품으로 시대를 초월하리라 믿는다.

*이번 호부터 문화예술계에서 장르를 넘나들며 여러 예술인들과 60년 넘게 교류해 오며 각 우리 문화예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쏟아오고 있던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의 ‘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가 연재됩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