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프리뷰] 수원서 태동한 사회참여 미술로 지역 바라봐, 수원미술관 《바람보다 먼저》展
[현장프리뷰] 수원서 태동한 사회참여 미술로 지역 바라봐, 수원미술관 《바람보다 먼저》展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8.18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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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부터 오는 11월 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수원시립미술관 협력기획전
수원 소집단 미술그룹 6개 중심된 80년대 사회참여미술사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최루탄 가스를 들이마시고 밤을 지새워 그림을 그리던 날들이었습니다. 수원 미술동인 ‘새벽’ 이름에는 그 시절 민중미술 모든 것이 함축돼있습니다” 수원시립미술관(관장 김진엽)과 국립현대미술관(MMCA/관장 윤범모) 협력 기획전 《바람보다 먼저》에 참여한 이주영 작가가 지난 17일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한 말이다.

1. 이응노, 군상, 1986, 종이에 수묵, 211x27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응노, 군상, 1986, 종이에 수묵, 211x27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수원시립미술관 기획전 《바람보다 먼저》는 1979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사회참여적 미술운동을 수원 중심으로 조명하고, 나아가 민중미술의 전 지역 흐름을 탐색한다. 수원시립미술관아이파크미술관에서 18일부터 11월 7일까지 개최된다. 41(팀) 작가들의 회화·설치 작품 189점과 200여 점의 아카이브를 만나볼 수 있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지역미술관에게 맡겨진 역할로 수원미술사 정립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던 중 중앙화단 중심으로 기술된 민중미술의 기록을 지역 시각에서 재고찰해볼 필요성을 느꼈다”라며 “비교적 정리가 부족했던 80년대 민중미술을 중심으로 79년부터 수원에서 시작된 미술 소집단과 경기, 인천,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사회참여 미술운동 양상을 조망했다”라고 전시 방향성을 설명했다.

《바람보다 먼저》라는 전시 제목은 민중들의 강인한 힘을 노래한 김수영 시인의 시 ‘풀’에서 가져왔다. 고난과 시련을 능동적으로 타개해온 우리 민중의 주체성을 집약한 표현으로 한 시대의 미술사를 조명하고 정리하는 전시를 연다.

5. 신학철, 한국근대사-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1989, 캔버스에 유채, 200x13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신학철, 한국근대사-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1989, 캔버스에 유채, 200x13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1, 2층 전관을 사용하는 이번 전시는 총 2부로 구성됐다. 1부 포인트 수원에서는 권용택, 박찬응, 손문상, 신경숙, 이억배, 이오연, 이윤엽, 이주영, 임종길, 최춘일, 황호경 총 11명의 130여 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2부 역사가 된 사람들에선 소주제 ▲봄은 오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분단, 그리고 해방 아리랑 순으로 지역 화단에서 번져나간 사회참여 미술운동의 전국적 흐름을 정리한다.

1부 ‘포인트 수원’은 1979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수원 화단에서 활동했던 소집단 6개 POINT(포인트), 時點·視點(시점·시점), 목판 모임 ‘판’, 수원문화운동연합, 미술동인 ‘새벽’, 노동미술연구소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당시 사회참여 미술운동을 펼쳐왔던 이들 중 많은 이들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회화에서 다른 매체로의 전향을 택하기도 했다. 이억배 작가는 민중미술 작품을 선보이면서 그림책 작가로도 활동했고, 노동미술연구소 초창기부터 활동한 신경숙 작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애니메이션 작업으로 매체를 바꿨다. 전시에선 작가들의 초창기 작업부터 이후 작업까지 동일 선상에서 담아내 작가가 살아온 시대의 흐름 또한 느껴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7. 민정기, 역사의 초상, 1986, 종이에 석판화, 57x7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민정기, 역사의 초상, 1986, 종이에 석판화, 57x7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생존의 문제 때문에 그림책 작가를 택한 이억배 작가는 어린이들이 읽는 그림책 안에서도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을 담아냈다. 민중의 삶과 정신을 한국 고유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데에 특화돼있는 이 작가는 호랑이를 유난히 잘 그리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억배는 수원 화단에서 POINT(포인트), 時點·視點(시점·시점), 목판 모임 ‘판’ 활동과 창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후 안양 및 경기 남부 지역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 미술운동을 펼쳐나갔다.

노동미술연구소 활동을 하다가, 2000년대 초반부터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며 페인팅 작업은 20여년 간 멈춰왔던 신경숙 작가는 이번 언론간담회에 직접 참석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 운동 현장에서 손·망실 된 작품의 경우 다시 재현해 선보이기도 한다. 신경숙 작가는 이번 전시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다시 작업해 공개했다.

수원 출생인 신경숙 작가는 미술 운동에 참여하다가 수배당해 고향으로 피신 와 지금까지 수원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는 작가다. 신 작가는 “2000년대 초반까지는 수원에서 민중미술 작업을 하고 그 이후에는 애니메이션으로 매체를 바꿔서 20여 년 가까이 페인팅 작업은 잊고 살아왔다”라며 “당시 작품들은 여러 이유로 많이 손실됐고, 그 당시 기억은 제게 힘든 기억 중 하나여서 쉽게 재현하거나 꺼내 보이기 힘들었는데, 최근 공공미술 작품에 참여하게 되면서 용기를 갖고 전시에 참여하게 됐다”라고 시대의 상흔을 딛고 살아온 작가의 이야기를 전했다.

7.신경숙, 〈파업장에 아이들 번지점프를 하다〉, 1993(2021년 재제작), 유채, 116x140cm
▲신경숙, 〈파업장에 아이들 번지점프를 하다〉, 1993(2021년 재제작), 유채, 116x140cm (사진=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신경숙 작가가 새롭게 복원한 작품인 <아기장수우투리를 죽인 어머니의 회한>은 우리 민중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작품이어서 재현하게 됐다고 한다. 신 작가는 “설화 속에서 아기 장수 우투리는 세상을 변혁시킬 아이로 태어나지만, 부모는 그 힘이 무서워 아이를 죽이는데 그 어머니가 바로 우리 민중의 모습이라고 본다”라며 “민중의 힘이 조금 더 커졌을 때 아기 장수는 조금 더 클 수 있을 것이고, 민중의 힘이 적으면 우투리는 가장 아기 때 죽게 되는데 그 시간들을 생각하며 복원했다”라고 설명했다.

최춘일 작가는 수원에서 활동한 6개의 소집단의 발생부터 해체까지 모두 관여하며 수원 민중미술계 큰 형님과도 같은 인물이다.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최 작가는 동양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를 많이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선 머리카락 같은 붓질로 표현된 작품들이 전시됐다. 최춘일은 인간과 대지의 관계를 작업의 근간으로 삼아 인체와 자연의 합일을 탐구한 작업을 이어왔다. 이러한 고찰을 생태와 환경에 관한 감각으로도 확장 시켰다.

이주영 작가 또한 수원 소집단 형성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인물이다. 이 작가는 19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도시 재개발에 따른 변화, 소외되는 이웃들의 흔적 등 공동체의 생성과 소멸에 주목해왔다. 이 작가의 시선을 항상 사람을 향해있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이주영 작가는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대한민국을 ‘못생긴 동네는 모두 밀어버리던 때’라고 표현했다. 그는 “<안된다>는 특정한 장면을 구체화시킨 것이 아니라 미술운동을 하며 매일같이 나갔던 철거 현장 지원에서 마주했던 것을 그린 것”이라며 “그 시절 시간과 공간을 잡아두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라고 말했다.

5.이주영, 〈안된다〉, 1989, 캔버스에 유채, 90×116cm (1)
▲이주영, 〈안된다〉, 1989, 캔버스에 유채, 90×116cm(사진=수원시립미술관 제공)

1부 마지막 공간에선 수원에서 활동한 6개의 소집단의 200여 점의 아카이브 자료를 만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한국 현대사와 함께 수원미술운동 역사를 짚어볼 수 있다. 또한, 6개의 소집단을 설명해둔 글귀로 뜨거웠던 수원 미술사의 한 장면을 깊이 있게 바라보게 한다. 전시 설명을 맡은 신은영 학예사는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 미술사의 큰 줄기들을 만든다면, 도립 미술관들은 산등성이와 물줄기를 파면 시립미술관들의 역할은 그 위에 세밀한 산세를 조명하는 것이 역할이라고 본다”라며 “한국 현대사와 수원 내에서 태동한 미술운동의 흐름을 보여주고자 기획된 공간”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2부 ‘역사가 된 사람들’에선 수원을 중심으로 조명했던 한국 민중미술의 흐름을 인천, 경기, 대구, 부산, 울산, 광주까지 확장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공립미술관 협력전시사업’으로 기획된 전시는 수원이라는 지역성을 강조하면서 한국 민중미술의 큰 흐름을 바라보게 한다. 서울과 광주 중심으로 쓰던 민중미술 담론을 전 지역으로 확장 시킨다. 서울, 수원, 인천, 경기, 대구, 광주, 부산, 울산 등의 공간에서 하나의 일관된 지표를 가지고 움직여 왔던 작가들의 사회적 실천의 장을 만나볼 수 있다.

▲이오연, 〈광주 이야기〉, 1990년 추정, 패널에 아크릴, 59x71.5cm(사진=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이오연, 〈광주 이야기〉, 1990년 추정, 패널에 아크릴, 59x71.5cm(사진=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2부 공간에선 광주에서 번졌던 민주화 운동의 염원을 ‘봄’으로 지칭해 ‘봄은 오는 가’를 첫 번째 섹션으로 선보인다, 공간에 처음 들어서면 이응노 작가의 <군상>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예술로 민중미술 정신을 승화시키는 시도를 선보인다.

신학철 작업 제목이자 신동엽의 미발표 유고시이기도 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섹션에선 노동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다. 4.19혁명 시기 시대적 잔상을 기록하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노동자, 여성, 사회적 약자 등의 인권 이야기를 펼친다. 여성 작가로 노동운동 현장을 지나온 신경숙 작가는 “87 노동자 대투쟁을 겪은 우리 세대에, 큰 도시에서는 남성 회원보다 여성회원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었고, 여성들이 주도했다”라며 “지금까지 남아있는 활동가가 없는 이유는 무엇을 포기했다기보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매체의 변화를 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남성 작가에 비해 여성 작가에 대한 조명이 적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신 작가는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도 우리를 차별했다’라는 농담 섞인 답을 했다. 신 작가는 “안기부에 잡혀가더라도 여자는 벌을 덜 받았고, 그런 사상들이 팽배한 시대였기에 여성 작가를 덜 비춘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그 당시 여성들이 대학에 많이 진학했고, 사회에 계속해서 목소리를 전하고 활동했던 것도 시대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강요배, 꽃과 무기, 1977, 종이에 색연필, 수채, 118x77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수원시립미술관 제공)
▲강요배, 꽃과 무기, 1977, 종이에 색연필, 수채, 118x77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세 번째 섹션 ‘역사의 초상’에선 이 사회의 변혁을 이끈 ‘이름 없는 개인’을 주목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역사의 그늘에 갇히기도 하고, 사회 변화를 꿈꾸며 뜨거운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 한 명 한 명의 개인들은 그 시대를 진정으로 딛고 살아간 한 사람이었다. 그들에게서 ‘영웅’이라는 수식어는 낯설지만, 전시는 시대의 물결 위에서 이 사회의 주역이 누구였는지 다시금 느끼게 한다.

2부 전시 공간에서는 노동현장에서 사용되고 손‧망실 되거나 찾을 수 없었던 걸개 그림을 다수 선보이며 이응노, 신학철, 민정기, 강요배, 임옥상, 김정헌, 홍성담 등의 작가들 작품을 전시한다. 이응노 작품과 함께 스치듯 볼 수 있는 걸개 그림은 한 시대에 전국적으로 들끓었던 민중미술의 강렬한 줄기를 보여준다. 또한, 전시 마지막 공간에선 인천, 경기, 광주, 부산, 제주에서 발생한 민중미술 단체들을 조명하는 공간이 마련돼 민중 미술의 전국적 흐름도 탐색해볼 수 있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 관장은 “미술관의 소장품 중 민중미술 계통의 작품이 많은 점에서 시작해 국현과 다른 지역 미술관과 연계한 전시를 선보이면 어떨까 고민하게 됐다”라며 “우리나라 80,90년대 미술은 다양한 모색을 하던 시기로, 일제 잔재에서 벗어나 한국의 가치가 무엇인지 탐구하려 했고 그 속에서 민중미술이 나왔다”라고 전시 기획의 시작을 밝혔다. 김 관장은 “민중미술이 가지고 있는 어떤 정치적 메시지나 사회적 지향보다 민중미술의 양식적 측면과 한국 미술의 다원성을 짚을 수 있는 자리이길 바란다”라는 뜻을 전했다.

<전시 참여 작가>

권용택, 박찬응, 손문상, 신경숙, 이억배, 이오연, 이윤엽, 이주영, 임종길, 최춘일, 황호경, 강요배, 곽영화, 광주시각매체연구회, 김봉준, 김정헌, 김종례, 그림패 둥지, 노원희, 민정기, 박경효‧배용관‧서성훈, 박경훈, 부산청년미술인협회, 성효숙, 신학철, 안성금, 윤석남, 이기연, 이상호, 이응노, 이종구, 임옥상, 전정호, 정비파, 정정엽, 정하수, 천광호, 최민화, 한국TC전자 여성노동자, 홍성담, 홍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