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집’을 폄훼?한 미술평론가 글, 괜찮은 것인가
작가의 ‘집’을 폄훼?한 미술평론가 글, 괜찮은 것인가
  • 이은영 발행인·이지완 기자
  • 승인 2021.10.0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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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림 인터뷰 영상 속 공간, 다른 이의 집일 것이란 평… 선을 넘어
또 다른 시각, 개인 블로그에 적은 글일 뿐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이지완 기자] 평론가의 글은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을까. 평론가의 글은 관람객이 작품을 심도 있게 볼 수 있는 길을 제안해주고, 창작자에게 응원과 지적을 전하는 힘 있는 목소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감상을 전하는 글이 때론 너무 날카롭게 벼려져 창작자들에게 상흔을 남기기도 한다.

가나아트에서 오는 17일까지 열리는 김구림 개인전 《음과 양(YIN AND YANG)》에 대한 평론가의 짧은 평이 작가에게 큰 상흔이 됐다. 반이정 평론가는 지난 19일 자신의 블로그 반이정의 미술평론 ‘미술일지’ 카테고리에 해당 전시에 대한 6줄 정도의 평을 게재했다.

▲김구림 개인전 '음과 양' 전시에서 상영됐던 MMCA 작가와의 대화 인터뷰 영상 캡처
▲김구림 개인전《음과 양(YIN AND YANG)》 전시에서 상영됐던 MMCA 작가와의 대화 인터뷰 영상 캡처

반 평론가는 “단골 도상이 있다. 꽃, 육감적인 여성 나체, 해골. 작품 제작의 고정적인 공식도 있는 것 같다. 사진 인쇄물 위에 꽃 여자 나체, 해골 등의 출력물을 파피에콜레처럼 붙이고 그 위에 물감이 흘러내릴 만큼 막 붓질을 올리는 구성. 스프레이 살포로 화면을 채우는 것도 자주 사용한다. 김구림의 작업은 마구잡이식으로 감정을 쏟아 붓기 스타일을 따르고 선악을 도식적인 2분법적으로 구현한 작업이 많아서 해석의 층위가 작아서 조악한 면이 있다. 전시장에는 김구림의 인터뷰 영상도 상영 중이었는데, 인터뷰 하는 그의 뒤로 보이는 고가의 오디오 더미를 보아하니, 그의 집 같진 않고 작가와 관계있는 부유한 미술계 관계자의 집이 아닐까 생각해 봄”이라고 전시에 대한 평을 남겼다.

작품에 대한 평론가의 단상을 적은 글 후반부에 적힌 ‘인터뷰 하는 그의 뒤로 보이는 고가의 오디오 더미를 보아하니, 그의 집 같진 않고 작가와 관계있는 부유한 미술계 관계자의 집이 아닐까 생각해 봄’이라는 추측성 문장은 작품에 대한 평이 담긴 전반부 내용과는 맥락이 어긋나는 지점으로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 문장에 김구림 작가가 ‘고가의 오디오를 가지고 있지 못한 작가’라는 함축적인 비아냥거림이 담겨 있다고 지적했다. 작품에 대한 평이 아닌, 작가가 인터뷰 한 장소를 굳이 적을 필요가 있었느냐, 경솔했다는 설명이다.

개인 블로그에 짤막하게 의견을 적은 것이지만, 일반 개인도 아니고 평론가라는 자리에 오른 인물이 1인 미디어와도 같은 플랫폼에 쓴 글이기에 글이 가진 파급력을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는 비판이다.

반 평론가는 영상에 나온 오디오 더미가 일반적으로 오디오에 관심이 있는 이가 아니라면, 쉽게 수집하지 못했을 것들이어서 그러한 문장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또한, 해당 문장이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정도의 것인지 모르겠다며 기사화를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김구림 개인전 '음과 양' 전시 작품 (사진=서울문화투데이)
▲김구림 개인전《음과 양(YIN AND YANG)》 전시 작품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인터뷰 속 공간은 실제 김구림 작가의 자택이 맞으며, 젊었을 적부터 김 화백은 옛것과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아 오디오를 직접 수집해왔다고 밝혔다. 김 화백은 “우리 집에 직접 와보지 않은 이가 남의 집에 가서 인터뷰를 한 것 같다는 소리는 왜 하는지, 오디오만 있으면 부잣집인 것이냐”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반 평론가의 글을 접한 하계훈 평론가는 “전시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은 중립적으로 받아들이고, 필요한 경우 심도 있는 토론을 해볼 수 있지만, 뒷부분에 인터뷰 관련 이야기는 사족처럼 읽혀진다”라며 “작품 평을 넘어선 개인적 감정이 실린 듯 해, 혹시 그렇다면 좀 더 정제된 표현으로 작품 평에 녹여 넣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 사안이 언론에서 다루기엔 적합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인지도가 있는 평론가라 할지라도, 개인 블로그 공간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는 창구이고 글 자체 또한 평론보단 일지의 느낌으로 볼 수 있다”라며 “원로작가에게 선을 넘는 평을 전했다고 해도, 이를 언론에서 다루기보단 김구림 작가가 자신의 SNS나 플랫폼을 통해 이견을 제기하는 방식이 좀 더 알맞은 태도였을 것이라 본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윤진섭 평론가도 “작가가 어떤 평론에 대해 서운한 지점이 있을 수 있고, 또 그 평론이 선을 넘는 태도였다고 볼 수는 있지만 그 또한 평론가가 취할 수 있는 태도였다고 본다”라며 “사실과 다른 평이라면 작가가 직접 항의해 글을 내리는 것이 좋은 해결방법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윤 평론가는 반 평론가 글 후반 3, 4줄에 대해선 ‘쓰지 말았어야 할 글’이라며 옳지 못했다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작품을 보고 평론을 하는 것은 평론가의 당연한 일인데, 인터뷰 영상을 보고 ‘작가의 집이 아닌 것 같다’라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글을 게재하는 것은 사려 깊지 못한 태도였다고 판단한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본지는 이 건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평론가들의 평론을 비평하는 이근수 무용평론가에게도 글을 보여주고 입장을 물었다.

이근수 무용평론가는 “작가 취향이겠지만 짧은 한 문단 글에서 꽃, 여인 나체, 해골 같은 단어가 두 번씩 반복되고 마지막 부분은 작품과는 관계없는 글이다. 무슨 근거로, 작가는 저런 고급 오디오를 가지고 있을 수 없다는 단정 하에 부자인 누구의 집을 빌려서 인터뷰를 한 것 같다고 추측했을까”라고 의문을 표하며 “이 부분은 작가가 마치 허세를 부리기 위해 부자인 누구의 집을 빌려서 인터뷰를 한 것 같다는 추측, 인신공격성으로 읽혀질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앞의 혹평 또한 다분히 평론가 개인의 감정이 섞인 글로 비춰질 수 있겠다”라고 평가했다.

한편, 미술계에서 김구림 작가가 오디오마니아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김구림 작가의 인터뷰 중 거실에 있는 오디오를 배경으로 한 장면은 여러 곳에서도 등장한다. 반 평론가는 작가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 관계도 파악하지 않은 채 굳이 ‘부유한 미술계 관계자의 집’이라고 추측성 사족을 달았어야 했을까, 개인 블로그라고 하더라도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된 공간에 언급한 것은 작가를 폄훼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난을 피해가기 어려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