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展…동시대 시각으로 새롭게 탐색
MMCA,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展…동시대 시각으로 새롭게 탐색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10.28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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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2022.02.13, 국현 과천관
국내 추상미술계 대표적 여성 화가 최욱경
미술-문학 연계되는 지점 통해 새로운 시각 추구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국내 추상미술계의 대표적 여성화가 최욱경을 그의 작업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던 루이스 캐럴(Lewis Carrol, 1832~1898)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읽어보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이 과천관에서 내년 2월 13일까지 선보이는 최욱경의 대규모 회고전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다.

▲최욱경, 화난 여인, 1966, 캔버스에 유채, 137×174㎝,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최욱경, 화난 여인, 1966, 캔버스에 유채, 137×174㎝,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사진=MMCA 제공)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는 최욱경(1940~1985)의 예술 세계 전반을 재조명하는 회고전이다. 미술 교육자이자 시인이기도 했던 작가의 전방위적인 활동 이력을 총체적으로 조망해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작가의 시집 등을 통해 미술이 문학과 연계되는 다층적인 지점들에 주목해서, 최욱경 작업 전반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

전시는 크게 4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구성됐다. 연대기별로 마련된‘미국이라는 원더랜드를 향하여’, ‘한국과 미국,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한국의 산과 섬, 그림의 고향으로’ 3개의 주제 공간이 준비됐고, 마지막 ‘에필로그. 거울의 방: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은 작가의 작업 세계를 보다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자화상 작품 및 기록물을 소개한다.

▲최욱경 작가 (사진=MMCA 제공)
▲최욱경 작가 (사진=MMCA 제공)

첫 번째 공간 ‘미국이라는 원더랜드를 향하여’는 1963년부터 1970년까지를 담고 있다. 1963년 최욱경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1966년까지 미국에 머무르며 추상표현주의와 후기회화적 추상에서 팝아트와 네오 다다에 이르기까지 동시대 미국 현대미술을 폭넓게 학습했다. 1965년에는 <앨리스, 기억의 파편>을 통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관한 관심을 처음 구체화하기도 했다. 최욱경은 미국 유학 경험을 ‘뿌리가 흔들리는 충격’이라고 표현했는데, 원더랜드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뒤바뀌는 혼란을 겪는 앨리스의 이야기는 쉽게 공감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전시에선 이 시기 작품 중 <화난 여인>(1966), <나는 세 개의 눈을 가졌다>(1966) 등 표현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추상 회화 및 흑백 회화 등을 선보인다.

두번 째 공간 ‘한국과 미국,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에서는 작가가 1971년부터 1978년까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활동했던 시기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한국 미술계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단청과 민화를 통해 한국적 구도와 색채를 새롭게 인식하게 돼 서예와 한국화를 학습했다. 서울대와 홍익대에 출강하면서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1972)을 출간하는 등 미술 교육자이자 문학가로서의 활동 또한 병행했다. 이 시기에 최욱경은 뉴멕시코에 위치한 로스웰 미술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이 경험은 그의 작업 전반에 있어 주요한 변곡점으로 작용했다. 표현적인 추상미술에서 벗어나 구상과 추상이 결합된 독자적인 200호 이상의 대규모 추상미술 작업을 제작한 시기로 <줄타기>(1977), <마사 그래함>(1977) 등이 소개된다.

▲최욱경, 마사 그래함, 1976, 종이에 연필, 102×255㎝, 개인 소장 (사진=MMCA 제공)

세 번째 공간 ‘한국의 산과 섬, 그림의 고향으로’1979년에 미국에서 귀국해 영남대와 덕성여대에 재직하면서 경상도 지역의 산과 남해의 섬 등 한국의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을 다수 제작한 시기를 선보인다. 이 때의 최욱경은 원색의 강렬한 대비와 표현적인 성격이 두드러진 대작이 많았던 1970년대의 작업과 달리, 중간색을 주로 사용하고 절제된 선과 구성을 강조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전시에선 <섬들처럼 떠 있는 산들>(1984), <빨간 꽃>(1984) 등을 소개한다.

마지막 공간 ‘에필로그. 거울의 방: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은 1950년대 초부터 1970년대까지 작가가 제작한 자화상으로 대부분 구성된다. 작가는 추상에 대한 다채로운 실험을 거듭하면서도 구상적인 작업을 지속했는데, 이는 자화상이 근간이 됐다. 최욱경의 자화상은 전시용 작품이라기보다 그가 시를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던 것처럼, 자화상을 그리던 시기의 자신을 시각적으로 포착해 기록하는 수단에 가까웠다.

최욱경, 섬들처럼 떠 있는 산들, 1984, 캔버스에 아크릴릭, 73.5×99㎝, 개인 소장
▲최욱경, 섬들처럼 떠 있는 산들, 1984, 캔버스에 아크릴릭, 73.5×99㎝, 개인 소장 (사진=MMCA 제공)

최욱경은 1940년 서울에서 출생해 서울예고와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라 현지에서 화가이자 미술 교육자로서의 활동을 본격화했다. 1965년에는 『작은 돌들(Small Stones)』이라는 영문 시집을 출간, 1970년대에는 「앨리스의 고양이」를 비롯한 시 45편을 수록한 국문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1972)을 출간하며 문학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1979년부터 1985년 작고할 때 까지는 영남대와 덕성여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의 산과 섬을 주제로 한 회화 작업 제작에 몰두했다. 교수로 재직할 때의 최욱경은 여성의 미술 교육과 사회 진출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미술가, 교육자, 시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한 최욱경이었지만, 작가는 주로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영향을 수용한 미국적인 화가’ 혹은 ‘요절한 비극적인 여성 작가’로 인식돼 왔다.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는 이전의 평가들과는 달리 그의 작업을 동시대 현대미술 및 문학과의 관계를 통해 다각도로 조명해서 최욱경의 예술이 위치한 좌표를 재탐색하고자 한다. 원더랜드로 모험을 떠난 앨리스처럼,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색을 멈추지 않았던 최욱경의 능동적인 삶의 이력과 그의 작업이 지닌 동시대성을 부각하고자 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최욱경의 화업을 총망라한 이번 회고전은 한국 추상미술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한 작가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라며“화가 최욱경의 이력 뿐 아니라 시인이자 미술 교육자로 활동했던 그의 다양한 활동이 부각돼 국내외에서 최욱경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