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의 인문학 파먹기] 「이 글은 쉬는 시간에 메모장에 적어둔 것에 살을 붙여 완성했다.」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의 인문학 파먹기] 「이 글은 쉬는 시간에 메모장에 적어둔 것에 살을 붙여 완성했다.」
  • 윤이현
  • 승인 2021.11.21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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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최근 윤영채에서 윤이현으로 개명했다.
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최근 윤영채에서 윤이현으로 개명했다.

누군가의 전부가 내가 된다는 것은……. 나의 전부가 그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쌀쌀한 익선동의 주말 오전,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커플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저희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요?”

둘은 주변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이 서로를 꼭, 서로가 하나의 개체인 양 꽉 안고 있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나는 노트에 적힌 주문서들을 차례로 살폈다. 한참을 내리다 보니 그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공책을 펼쳐 보여주며, 40분 이상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는 말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들은 처음엔 놀란 듯이, 이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코트를 열어 상대를 품에 안아주며 가슴을 포개었다.

바람 한 점 막아주지 못하는 반소매 유니폼을 입고서, 혹여나 또 주문할 사람은 없는지 밖에서 내내 서성였다. 어쩐지 이 일련의 과정에서 그 둘의 쳐다보지 않으려 애를 쓰다가 가게로 다시 들어갔다.

이곳은 일본풍의 나무로 실내장식 된 작은 밥집이다. 오돌토돌하게 팔에 돋았던 닭살마저 잠재우는 따뜻하고 습한 온기. 그 공간 속에서 우리는 각자 분주하게 설거지를 하거나, 좌석을 치우면서 결제를 돕고 있었다. 친구는 음식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는지, 자꾸만 주문을 받으러 돌아다니는 내 발을 밟았다.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붉은색 운동화가 더러워지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신발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바쁜 가운데 티슈로 앞부분을 꼼꼼히 닦았다. 그러면서도 아까 보았던 그 커플이 아직도 서로를 안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러나 그들은 줄 끝에 서 있는 탓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계산을 도와달라는 직원의 말에 잡념을 비우고 다시 기계처럼 일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갓 나온 식기에 그만 손목에 화상을 입고 말았고, 설상가상 친구가 깬 그릇 모서리에 손가락을 베이고, 애써 닦아두었던 신발이 몇 번이고 더 밟힐 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익숙하게 팔에 찬물을 끼얹고, 대충 수건으로 물기만 제거한 채 다음 손님을 호명하러 나갔을 때, 눈앞에 그들이 있었다.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여전히 서로를 한 몸처럼 안고 있던 그 사람들이.   

 하나, 둘 손님들이 빠져나가고, 가게가 조금 한적할 때 잠시 숨을 돌리려 혼자 밖으로 나왔다. 익선동의 화려한 중심가를 지나 낡고 오래된 모텔들이 있는 뒷골목이 내 유일한 쉼터다. 돌계단에 앉으니 엉덩이는 차갑고, 베인 손끝과 화상을 입은 팔목은 쓰라렸다. 한숨을 담배 삼아 내뱉으면서 잠시 눈을 감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고 핸드폰을 열었다. 연락이 와 있었다.

며칠 전 붉어졌던 싸움으로, ‘와의 냉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저 우리는 각자의 모습대로 행동했을 뿐인데, ‘이라는 이유로 용납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야기 좀 하자는 말이 부담스러웠다. 어떠한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도망치고 싶었다. 어떤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퇴근하고 연락하겠다는 말만 보내고 다시 가게로 돌아갔다. 더러워진 붉은 운동화가 그렇게 나를 옮겨주었다.

 

너의 전부가 되겠다는 약속, 나의 전부는 너라는 말.”

 

아주 어렸을 때는 운명이 있다고 믿었다. 머리가 조금 컸을 때는, 그래도 우주에 단 한 사람 운명은 분명 있을 거로 생각했다. 설령 만날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첫사랑에게 잔인하게 차이고 나서는, 내 영원의 사랑은 그 사람뿐이라고 믿으며 밤마다 휴대전화를 확인했었다. 그러나 결국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이후 다른 사람들과 몇 번의 연애를 하면서, 더 나은 사랑을 경험했다. 결국, 운명의 짝이라고 믿었던 상대는 새로운 사랑에 의해 쉽게 기억 저편으로 가라앉았다.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였다.

젊은 사랑은 통조림처럼 가볍고, 달고, 쉽게 물리며 때가 되면 버려진다. 먼 훗날 서로의 동반자는 다른 사람이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쉽게 영원이라는 단어를 꺼내어 보여준다. ‘영원히 너만 사랑할게. 내 우주는 너야.’ 이런 말들로. 그러나 사랑할 때 하는 약속은 대부분 거짓이고,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사랑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그런데도 우리는 또 사랑하고 전부를 내어준다.

그러나 세상을 밟고 서 있을 때도,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도, 때로는 누군가에게 밟히는 순간에도 발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하는 한 켤레의 운동화처럼.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추운 초겨울의 오전을 버티는 한 쌍의 커플처럼. 우리는 무언가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혹은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사랑을 찾아 나설 것이다. 단순히 운명과 인연을 떠나서 그저 나를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고, 결핍으로부터 안전해지기 위해서 말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일 년간 서로의 전부인 것처럼 굴었던 사람의 곁을 떠나는 여행길에 오르려 한다. 그 끝이 새로운 사랑일 수도 있고, 혹은 다시 그에게로 돌아가는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번엔 애써 눈을 피하지 않고, 대화를 거부하지 않고, 씩씩하게 나아가야겠다. ‘전부, 영원, 사랑모두 깨져버린 그릇처럼 가벼운 것일지라도, 그래서 그것들이 또다시 나를 베고 찌르더라도. 잠깐의 따스한 품을 위해서, 언젠가 피어날 새로운 사랑을 위해 이 붉은 운동화를 신고 씩씩하게 일어나보려한다.

 

누군가의 전부가 내가 된다는 것은, 나의 전부가 그 사람이 된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