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한국연극의 장면전환, 『블랙아웃, 블랙리스트와 미투』
[신간]한국연극의 장면전환, 『블랙아웃, 블랙리스트와 미투』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1.12.0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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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극과 페미니즘, ‘미투’와 새로운 감각의 확장 다뤄
▲저자 김옥란|소명출판|정가 22,000원
▲저자 김옥란|소명출판|정가 22,000원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블랙아웃(Blackout)은 연극무대에서 암전(暗轉)을 뜻한다. 일상생활에서는 정전(停電)이나 전자기기가 갑자기 먹통이 되는 일을 가리킨다. 

막과 막 사이, 혹은 장과 장 사이에도 암전이 있다. 막과 장이 바뀌면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다른 시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2016년과 2018년 사이의 한국연극은 그런 의미에서 두 번의 거대한 암전 상태를 겪었다고 할 수 있다. 블랙리스트와 미투는 이 시기 한국연극의 장면전환을 상징하는 말들이다.

「블랙아웃, 블랙리스트와 미투」는 연극평론가 김옥란의 네 번째 연극평론집이다. 이 책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공연된 한국연극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시기는 블랙리스트 이후, 그리고 미투 운동 이후의 시간들이다. 연극무대보다 더 극적인 시간들이 광장에서 흘러갔다. 

촛불집회 현장은 우리 사회의 거대한 블랙아웃, 곧 거대한 암전의 장면전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2018년 2월 ‘#미투’ 폭로로부터 비롯된 미투운동으로 또 한 번의 블랙아웃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 시간들을 통해 우리 사회는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거대한 전환의 시간을 겪었다. 2016년과 2018년의 시간은 우리 사회의 거대한 블랙아웃이자 한국연극의 블랙아웃의 시간으로 기억된다. 실제로 이 시기 이후 관객들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태도로 공연을 보고 있다. 피해자다움의 강요가 아닌 피해자 중심 관점, 공연의 결과물뿐만 아니라 제작과정에서의 윤리적 관점도 중요하게 공감되고 있다. 그리고 장애인과 성 소수자 연극이 본격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했다. 

2016년과 2018년까지 짧은 시간 동안 어느 때보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연극들이 무대를 채우고 있다. 세월호에 대한 슬픔의 연대 속에서, 블랙리스트 검열반대의 운동을 통해서, 그리고 미투운동의 뼈아픈 시간 속에서 한국연극과 관객들은 무대의 안과 밖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단단해지는 시간을 함께 지나고 있다. 이 책은 이 시기에 대한 가장 가까운 객석의 한 자리에서 보고 나누었던 일들을 충실히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의 제1부 ‘블랙리스트와 미투’는 이 시기 한국연극에 대한 시론 성격의 글들을 모았다. 블랙리스트와 미투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블랙리스트 검열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었던 국립극단의 2015년부터 2017년까지의 공연을 다룬 글들과 2018년 미투운동의 사건과 그로 인한 변화들, 이론과 쟁점에 대한 글들을 수록했다.

제2부 ‘광장의 어머니 헤카베에서 공옥진까지’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블랙리스트 검열에 반대한 공연들, 세월호에 대한 슬픔의 연대를 보여준 공연들, 미투운동 이후 새로운 활력의 공연들에 대한 현장의 기록들을 수록했다. 블랙리스트 검열반대와 세월호에 대한 연대의 공연들로 기국서, 박근형, 김재엽, 전인철, 김광보, 윤한솔, 고선웅, 그리고 젊은 연극인들의 공연으로 윤미현, 이기쁨, 이경성, 박해성의 공연들에 대한 평론을 모았다. 미투 이후 새로운 활력의 공연들로는 페미니즘 연극제, 공옥진 춤을 주제로 한 류장현의 공연, 여성 작가ㆍ연출가 그리고 여배우들의 공연, 그리고 여성 서사 중심 공연들에 대한 평론을 모았다.

제3부 ‘드라마투르그 노트’는 드라마투르그로 공연현장의 제작 스태프로 활동하고 있는 김옥란의 드라마투르그 노트를 국내 창작극과 외국 원작극으로 구분하여 수록하였다. 국립극단 작품 〈국물 있사옵니다〉와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정동극장 작품 〈동동〉, 민간극단 작품 〈깨비가 잃어버린 도깨비 방망이〉,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사람들〉, 〈위대한 놀이〉, 〈하녀 빠뺑자매〉, 〈두르려라 맥베스〉의 현장작업 원고를 수록했다.

한편, 이 책의 저자인 김옥란은 연극평론가와 드라마투르그로 연극현장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본업은 한국연극 연구자이다. 2009년부터 5년간 극단 백수광부, 2015년부터 현재까지 극단 하땅세의 드라마투르그로 활동하고 있다. 서계동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남산예술센터의 드라마투르그로도 참여하였다. 연극평론가로, 드라마투르그로, 행복한 덕후의 삶을 살고 있다. 2015년 블랙리스트, 2018년 연극계 미투, 2020년 남산예술센터 폐관 등 검은 역사의 순간들도 함께 지나왔다. 최근에는 배우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연극사의 또 다른 진경을 만나고 있다. 한국연극에 대한 ‘엔들리스 러브’를 열심히 책을 쓰는 것으로 보답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