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카츠 《꽃》, 미공개 신작 4점 포함…코로나시대 위로 전해
알렉스 카츠 《꽃》, 미공개 신작 4점 포함…코로나시대 위로 전해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12.1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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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데우스로팍 서울, 내년 2월 5일까지
2019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신작 공개
내년 구겐하임 미술관 대규모 회고전 앞둔 전시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가 주류를 이루던 때, 자신만의 담백하고 독창적인 화법을 구사해나간 미국 작가 알렉스 카츠 개인전이 열린다. 지난 9일부터 내년 2월 5일까지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개최되는 《꽃》 전시다. 인물화 작품으로 익숙한 작가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20년 간 작업해 온 ‘꽃’ 시리즈를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 4점도 공개된다. 이번 전시는 내년 뉴욕 솔로몬 R.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릴 그의 회고전을 앞두고 카츠의 예술 인생을 정리해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알렉스 카츠, 모란(Peony), 2020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전시 개막 전 타데우스 로팍과 알렉스 카츠가 직접 갤러리에 방문해 함께 투어를 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려 했으나, 코로나19 상승된 격리수칙으로 현장에 참석하지 못했다. 때문에 지난 8일에는 김해나 타데우스 로팍 큐레이터가 진행하는 언론간담회가 열렸다. 조용한 분위기 가운데, 꽤 많은 취재진이 현장을 찾아 알렉스 카츠가 포착한 ‘꽃’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졌다.

꽃과 자연의 이미지는 카츠에게 익숙한 소재 중 하나였다. 뉴욕에게서 나고 자란 그는 도시에서 활동을 이어가다가 여름이 되면 미국 메인(Maine) 주를 찾아 그 곳에 있는 별장에서 주변 시골 풍경과 꽃의 모양을 화폭 위로 담았다. 그가 1960년대에 구현했던 단체 인물화의 표현도 꽃에서 시작됐다. 자연 속에 겹쳐 자라나는 꽃의 모습과 여러 인물들이 함께 움직이는 형태에서 연결고리를 발견한 것이다. 기존에 그가 표현하지 못했던 운동감과 움직임을 꽃의 움직임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그의 꽃 시리즈 작품에는 ‘연구작’이라는 제목이 붙은 그림들이 있다.

카츠의 ‘꽃’ 시리즈는 2001년쯤 시작됐는데, 이 때의 꽃 작품에서는 자연 속에서 자유분방하게 움직이고 있는 자연물의 순간적인 인상이 주를 이룬다. 또한, 작가 특유의 고유한 붓놀림과 화면 구성력, 단순화된 색면이 주목할 지점이다. 이러한 경향은 근간까지 꾸준히 이어져왔다. 그런데 최근 2019년부터 올해까지 카츠는 ‘꽃’이라는 주제에 조금 더 깊이 있게 다가선다.

▲지난 8일 언론 간담회 현장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지난 8일 알렉스 카츠 《꽃》전시 언론 간담회 현장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코로나시기, 알렉스 카츠가 전하는 위로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카츠는 새로운 꽃 신작을 많이 선보였다. 다시금 꽃이라는 소재에 집중하게 된 것은 ‘팬데믹 시대의 위로’가 가장 큰 이유였다. 카츠는 “꽃 시리즈를 통해 팬데믹에 지친 세상을 어느 정도 격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12월 초입 추운 겨울에 시작된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카츠의 《꽃》전시가 열리는 타데우스 로팍에는 은은한 따뜻함이 감도는 느낌도 든다. 대형 화폭에 선명하고 따뜻한 색깔이 전하는 기운은 보는 이에게 카츠가 실제로 바라봤던 봄‧여름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화폭에 담긴 꽃 역시 진달래, 아이리스, 노란미나리, 제비 등 봄‧여름의 제철 꽃들이다.

구작과 비교해 2020년부터 제작된 신작은 소재인 꽃 자체의 형상과 부피 묘사에 치중했다는 것도 특징이다. 꽃의 음영을 더욱 강하게 부각시키고 조각적인 존재감을 부여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카츠의 이러한 최근 경향이 두드러진 작품은 <모란(Peony)>(2020)이나 <주황색 바탕 위의 진달래(Rhododendron on Orange)>다.

전시에서는 카츠가 꽃 시리즈를 작업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도 공개된다. 아이리스를 그린 작품인 소형 캔버스의 <아이리스4>와 대형 캔버스의 <아이리스5>는 이번 전시에 나란히 배치돼있다. 비슷한 모양의 이 작품들은 실제로 카츠가 자연에서 소재를 포착하고 빠르게 화폭 안으로 담아낸 ‘연구작’과 이후 이를 토대로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작품이다.

카츠는 프랑스 인상주의 작가들의 방식대로 실제로 자연을 포착해 꽃 안에 담겨있는 빛과 대기를 그대로 화폭 위로 옮겨낸다. 현장에서 빠르게 이뤄지는 연구작 작업들에서는 좀 더 힘 있고, 빠른 속도의 붓질이 담긴다. 거친 스트로크와 강한 필법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작업에선 꽃의 표면과 색감에 좀 더 집중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꽃이 가진 특유의 밝은 색감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색을 신중하게 선정하고, 보색을 통해 균형을 추구한다.

▲(좌측부터) 알렉스 카츠 <아이리스5>, <아이리스4>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알렉스 카츠 특유 화풍 살아있는 작품들

담백하고 평면적인 화면 구성, 마치 마스크를 끼고 있는 듯한 인물들의 표정은 카츠가 가진 독창적인 화풍이다. 꽃 시리즈 역시 그가 가지고 있는 개성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는 TV나 영화화면 등에서 모티프를 얻어 대상을 클로즈업 하고 과감하게 잘라내는 방식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전시에서 공개된 꽃 작품을 마주하면, 단순하게 배치된 소재들을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고 소재가 가진 힘 역시 즉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한 눈에 소재의 형태를 순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카츠의 숙련된 화면 구성력 때문일 것이다.

외부에서 소재를 찾아 작업하고,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겨 작품을 좀 더 구체화하는 ‘꽃’ 시리즈 작품에서도 카츠만의 기법인 ‘웻 온 웻(wet-on-wet)’을 찾아 볼 수 있다. 먼저 칠한 물감이 마르기 전에 다음 획을 더하는 이 기법은 작품에 즉각성을 싣고, 이진명 미술사학자의 표현처럼 물감의 높이를 완벽하게 균등하게 맞추는 마술을 구현한다.

꽃의 대작들을 멀리서 바라보고, 다시 가까이 가서 바라보면 작가가 빠른 속도로 섬세하게 쌓아올린 색채들을 좀 더 깊이 있게 만나볼 수 있다. 꽃이 가지고 있는 생동감과 그 실제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AlexKatz,Straw Hat2,2021 (사진=타데우스 로팍 제공)

꽃을 소재로 한 작품이 주를 이루지만, 이번 전시에서도 카츠의 인물화를 만나볼 수 있다. 신작 초상화인 <밀짚모자 3(Straw Hat 3)>(2021)다.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을 화면 가득히 담아낸 작품은 같이 전시된 꽃 작품과 어우러지며, 관람객을 시골 풍경 속으로 데려다 놓는다. 카츠는 자신의 뮤즈인 부인 에이다를 모델로 한 초상화를 200점 넘게 그린 작가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작품 모델에 대해서는 익명의 밀짚모자를 쓴 여인이라고만 설명했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18년 롯데뮤지엄과 2019년 대구미술관에서 개최됐던 개인전과 이어지는 성격을 띠며, 근간에 우리 모두의 삶을 흔들어 놓았던 코로나를 견디고 위로하는 작가의 시각이 담겨있다. 순수한 지각에서 시작돼 담백하고 빠른 붓놀림으로 표현된 작품들은 즉각적인 현재의 위로를 건네준다. 복잡한 일상, 추운 날씨를 빠르게 잊어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