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의 인문학 파먹기] 2021년을 마치며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의 인문학 파먹기] 2021년을 마치며
  • 윤이현
  • 승인 2021.12.1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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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최근 윤영채에서 윤이현으로 개명했다.
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최근 윤영채에서 윤이현으로 개명했다.

일 년이 참 빠르다고들 하지만, 내겐 수년의 세월처럼 길고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다. 그런데도 마음만은 조급해서 판단은 오류를 내기 일쑤고, 왜 그리 남 눈치는 보게 되는지. 가출로 부모님의 가슴에 생채기를 낸 막내딸,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지질한 연인. 마지막으로 본 대학 입시에서도 보기 좋게 떨어지고만 한심한 수험생. 글도 주기적으로 올리지 못했으니 본분을 잊은 게으른 인간이 아닌가. 참 부끄럽다. 이렇게 나열해보니 올해의 도 영 마음에 들 지가 않는다.

한편 자신을 미워하면서 배운 것도 있다. 바꿀 수 있는 걸 바꿀 수 있는 용기와 바꿀 수 없는 걸 받아들이는 마음의 평정. 여행은 상처에서 멀어져 잠시 숨을 쉴 수 있는 효과적인 선택지라는 확신. 이토록 지질한 나를 사랑해주는 연인과 가족이 있었다는 사실. 그들을 통해 이제 좀 사랑을 알 것 같다.’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바꿀 수 있는 걸 바꿀 수 있는 용기와 바꿀 수 없는 걸 받아들이는 마음의 평정

 

고등학교 성적이면,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을 좇느라, 무모하고 패기 어린 도전을 했었다. 그것 때문에 후회되는 순간도 많았지만 선택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 1지망인 학교에만 꾸준히 원서를 넣었었다. 남들 다 하는 대학 생활 한 번 해보지 못했다는 게, 모두가 기대하고 바라던 일을 해내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어린 내 마음에 상처로 남아서, 자꾸만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치른 시험에서도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제는 내 실력이 부족했다는 사실, 단지 운이 없어서 그랬다는 말로 핑계 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전에 한수희 작가가 쓴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를 읽고 글을 썼던 적이 있다. 사실 그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글귀는 바꿀 수 있는 걸 바꿀 수 있는 용기와 바꿀 수 없는 걸 받아들이는 마음의 평정이었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되돌릴 수 없는 일에 마음을 쓰지 않기 위해, 까진 무릎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당차게 일어나 걷기 위해 오늘도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 새로운 꿈과 기회가 올 때까지 아마도 이 노력은 계속될 것 같다.

 

여행은 상처에서 멀어져 잠시 숨을 쉴 수 있는 효과적인 선택지라는 확신

 

진로 문제로 부모님과 한바탕 싸우고 난 뒤, 친구와 충동적으로 부산 여행을 떠났었다. 둘 다 아직 제대로 즐길 줄 모르는 미숙아들이라 이곳저곳을 누비진 못했지만, 부끄러운 자식으로 부모에게 오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저녁엔 호텔 레스토랑에서 제공된 케사디아(토르티야 사이에 치즈, 소시지, 채소 등을 넣어서 구운 멕시코 음식)와 와인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밤엔 광안리의 파도 앞에서 서로의 젊음을 사진에 담았으며, 포장해 온 회와 소주를 마시며 그저 덧없는 인생, 버티는 삶에 대해 뼈저리게 곱씹으며 건배를 했다.

광안리 바다와 나(2021.08.13)
광안리 바다와 나(2021.08.13)

새로운 인식의 태도를 얻지는 못했지만, 자유로운 이 시간을 즐겼고,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영화 완벽한 타인을 보고 썼던 글의 내용처럼 여행은 상처에서 멀어져 잠시 숨을 쉴 수 있는 효과적인 선택지였으며, 그 자체로 숭고한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내일을 살아낼 작은 용기를 얻었다.

 

이제 좀 사랑을 알 것 같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만 같아

 

몇 번이고 헤어지자고 했던 나를 기다려주고 보듬었던 사람과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번 도는 시간을 함께했다. 우정 같았던 사랑, 때로는 운명이라 믿었던 기억들이 한겨울 나뭇잎이 떨어지듯 사라지고 말았다. 마음이 외로워서 시작한 연애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결코 쉬운 관계도 아니었다. 이성적인 내게 감성적이고 쉽게 부서지고 마는 상대를 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연인에게 서운한 점을 어디부터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데이트의 빈도수는 어때야 하는지, 권태기와 익숙함을 구분하는 것조차도 힘겨웠다.

쉬웠던 고백, 가벼웠던 애정과 투정, 뻔한 타이밍에 던지는 이별만 경험해온 내게 이렇게 고민스럽고 편안하면서 복잡한 사랑은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함께한 시간 동안 우리는 각자의 어려움을 겪어내느라 피로했고 고생스러웠다. 20대의 연애는 그렇게 힘겹고 슬프게 끝이 났다. 그 사이, 나는 머리가 컸다는 이유로 부모님에게 덤비기도 했으며, 때로는 지쳐 엄마의 품에 안겨 아기처럼 울었다. 그렇게 그들이 건네는 포용과 따듯한 손을 잡고 먼지 구덩이에서 일어나 다시 걸음마를 떼었다.

사랑을 몰랐던 시절에 적었던 글의 내용처럼, 10대의 사랑이란, 매일 커가는 몸과 그것을 따라잡아야 하는 정신을 붙들고 사는 것은 너무도 무거운 일이었기에. 세상에 하고 싶은 말과 생각이 쌓이고 쌓여서 내 마음에 큰 짐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저 집 앞 편의점에 20원짜리 검은 비닐봉지를 사듯, 값싸게 서로를 소비한 것이었지만 나는 오늘 사랑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20대의 지금도 나는 자라고 있고, 매일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을 따라가기 위해 발악을 하는 것은 너무도 무거운 일이었기에. 하고 싶은 말이 줄고 세상에 그저 나를 맞춰야 한다는 사실이 큰 짐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 고통을 나누기 위해 오늘도 누군가를 찾아 나설 것이라고. 그리고 결국 그 종착지는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사실을 2021년이 다 가기 전에 적어두고 싶다.

올 한 해도 맘에 들지 않는 구석뿐인 였지만, 이토록 일 년이란 시간이 길게 느껴진 것은 치열한 고민과 성장이 있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꿈도 여행도 사랑도 몰랐던 그 시절에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되어서, 그 질문과 답을 글로 남길 수 있어서, 또 그것을 읽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2021년의 마지막을 따듯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