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프리뷰] MMCA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展, 국내미술관 첫 개인전
[현장프리뷰] MMCA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展, 국내미술관 첫 개인전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12.15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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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내년 4월 17일까지
인권‧난민 문제 다룬 120여점 작품 공개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미술은 어떻게 사회적 문제를 표현할 수 있을까.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에서 내년 4월 17일까지 열리는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전시가 그 답을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미술가이자 영화감독, 건축가, 행동가인 아이 웨이웨이의 개인전이 MMCA 서울관에서 개최된다. 국내 미술관에서는 첫 개인전이다.

▲ 아이 웨이웨이, 옥의, 2015, 거대한 설치작품이 천장에 매달린 상태로 전시된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아이 웨이웨이는 중국 반체제 예술인으로서 국내 대중에겐 강남스타일 패러디 작품과 레고사와의 설전 등으로 좀 더 잘 알려져 있는 작가다. 행동가적인 면모와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 등 온라인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신의 행보를 거침없이 공유함으로써, 그는 작품보다  ‘아이 웨이웨이’라는 예술가 자체를 자주 알려왔다. 이번 MMCA 서울관의 아이 웨이웨이 개인전 《인간미래》는 그의 가치관과 지향점이 담긴 작품들을 통해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를 좀 더 깊이 있게 경험해 볼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

아이 웨이웨이는 회화와 사진, 영상, 건축, 공공미술, 도자, 출판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해왔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설치, 영상, 사진, 오브제 등 대표작 12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 개막에 앞서 지난 10일에는 언론 공개회가 있었다. 디지털 시대의 선구적인 예술가로 주목받고 있는 아이 웨이웨이를 향한 언론의 관심은 뜨거웠다.

전시명 《인간미래》는 아이 웨이웨이 예술세계의 화두인 ‘인간’과 그의 예술 활동의 지향점인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결합시킨 것이다. 전시는 제 6, 7 전시장과 복도 공간, 야외 미술관 마당을 활용한다. 아이 웨이웨이는 이번 전시를 기획할 때, 관람객이 작품 하나하나의 의미를 인지하기보다 전시장 전체 공간을 받아들이고 감상하길 바랐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오브제나 사진, 설치 작품 이외에 전시공간의 벽지와 작품을 진열하는 케이스도 전시의 일부가 된다. 작품 개별의 설명은 없지만 복도 공간에 아이웨이웨이의 글과 책을 전시하면서 관람객들이 작품의 의미를 탐구할 수 있게 했다.

▲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전시 언론간담회를 찾은 취재진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현실 순간과 문제를 포착해 기록하다

아이웨이웨이는 문인(文人)인 아버지와 어머니 아래에서 성장했고, 문화혁명기 당시 아버지가 반우파 운동에 참여하면서 신장지구로 이주해야만 하는 삶을 겪었다. 어린 아이 웨이웨이에게 이 경험은 ‘문화적 취미를 갖고 있으면 위험이 생길 수 있다’라는 사실을 인지시켰다. 아버지의 복권으로 아이 웨이웨이 가족은 베이징으로 돌아오게 됐다. 이후 작가는 중국 내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뉴욕에서도 10년 간 공부하며 현대미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키웠다.

1993년 아이 웨이웨이는 베이징으로 귀국해, 중국 동쪽 지역에 차오창디 예술촌 형성에 참여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 ‘베이징 국가 체육장’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쓰촨성 대지진 사건으로 아이 웨이웨이와 중국 정부의 마찰이 시작됐다. 아이 웨이웨이는 자연재해로 수많은 학생들이 죽어나갔음에도 국가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며, 시민조사단을 구성해 직접 활동했다. 온라인으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총 사상자 수와 희생자의 이름을 기록했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행해온 그는 결국 자국을 떠나야만 했다. 2015년부터는 유럽에 체류하며 권력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현실의 문제를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제 6전시실에서는 권위에 도전하고 감시당하는 삶을 살아온 아이 웨이웨이의 시간이 담긴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바로 마주할 수 있는 작품이 그의 대표 사진 연작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와 <조명(Illumination)>(2009)이다. 전 세계의 권위적 공간을 찾아가 손가락 욕을 하는 그의 사진 연작은 한 명의 인간으로 바로 서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해나가고 인간다움을 탐구한 그의 의지가 담겨 있는 듯 하다.

▲조명(Illumination), 2015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조명(Illumination)>(2009)은 쓰촨성 대지진 당시 시민 조사단을 꾸려 활동을 펼쳐 온 아이 웨이웨이의 블로그가 정부에 의해 폐쇄 당하고, 2009년 8월 12일 탄줘런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청두에 갔을 당시 경찰에게 연행당하기 직전을 기록한 사진이다. 전 세계 누구라도 공권력에 의해 갑작스럽게 이유 없이 연행당할 수는 없다. 한순간에 급작스럽게 일어난 행위를 사진으로 기록하면서, 아이 웨이웨이는 당시의 부당함을 매번 현재 생동하는 사건으로 끌어낸다.

이번 전시에서 아이 웨이웨이는 여러 대형작품을 선보인다. 그 중 6 전시실 아래층에서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웅장한 작품 중 하나인 <옥의>(2015)를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중국 한나라 시대 황제의 무덤에서 발견된 ‘옥으로 된 갑옷(玉衣)’에서 유래한 작품으로, 대나무로 연을 만드는 중국 전통 기법으로 제작됐다. 황제 무덤에 같이 묻혀있던 유물에서 유래해 땅 속과 더 연이 깊은 작품이지만, 이번 전시에서 옥의는 공중에 떠서 전통과 이어지면서도 현재만의 감각을 도출한다. 이처럼 아이 웨이웨이는 신석기 시대 토기, 옥, 징더전의 도자기 등 중국 역사와 찬란한 문화유산에 현대미술을 결합해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코카콜라 로고가 있는 신석기 시대 화병>(2015)은 실제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지만, 중국에서는 너무나 흔한 토기 중 하나이기에 작품에 사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또 하나 눈여겨 볼 작품은 전시 공간 벽면에 부착된 <라마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파카인 동물>(2015)이다. 언뜻 보면 아름다운 금빛 장식 벽지 같지만, 자세히 보면 수많은 감시카메라와 수갑, 트위터의 상징인 ‘새’로 구성돼 있다. 아이 웨이웨이가 비판적 목소리를 내면서, 그는 언제나 중국 정부의 감시 대상이 됐다. 그가 어디를 가든 감시 인력과 감시카메라가 그를 따라다녔다.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과 대형 쇼핑몰, 지하철, 엘리베이터 등 현대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감시카메라의 존재를 생각하게 한다.

▲라마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파카인 동물(The Animal that Looks Like a Llama but is Really an Alpaca), 2015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부재하는 존재들에 대해

중국 고사에는 스스로가 세상에서 용을 가장 잘 알고, 잘 그린다고 믿고 있던 화가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실제로 용이 머리 위를 날아갔고 그 순간 화가는 자신이 그렸던 것이, 용이 아니라 뱀의 모습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 이야기는 우리 대부분이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어떤 문제나 존재가 실제 사건에 비해서 아주 작은 것이나 일부분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아이 웨이웨이는 뱀의 형상을 한 설치 작품을 여러 번 선보였는데, 쓰촨성 대지진 당시 사건 현장에서 나온 가방으로도 뱀의 형상을 만든 <천장의 뱀>(2008)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난민들이 직접 입었던 구명조끼로 만든 아주 큰 뱀 형상의 작품 <구명조끼 뱀>(2019)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뱀의 머리 부분은 아주 크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작아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실제 성인이 입었던 구명조끼부터, 아주 어린 아이가 입었던 구명조끼까지 작품에 사용됐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난민의 현실을 물질적인 소재로 구현해내기도 했지만, 앞서 말한 중국 고사의 내용에서 이어지는 의미도 갖는다. 우리는 난민, 인권 등 거대한 사회문제에 대해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 확신에 작가는 작품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정말 잘 알고 있는지 되물어보고 있다.

▲구명조끼 뱀(Life Vest Snake), 2019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복도에 설치된 이 작품을 지나고 나면, 제 7전시실에서 <빨래방>(2016)이라는 설치 작품을 볼 수 있다. 난민과 인권 문제를 다룬 작가의 대표 작품으로 난민들의 옷과 신발 등 물품으로 구성됐다. 2016년 5월 말, 그리스 정부는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국경에 위치했던 이도메니 난민캠프 비우고 거주 중인 난민들을 이동시켰다. 아이 웨이웨이는 캠프에 남겨진 물품을 모아 베를린 스튜디오로 운반해 세탁, 수선하고 다림질한 뒤 목록을 만들었다.

<빨래방> 작품에는 신생아를 위한 옷부터 어린이용 드레스, 알록달록한 물방울 무늬 바지 등 유아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대의 옷들이 망라돼 있다. 크기와 색깔별로 잘 정리돼 진열된 작품을 보는 순간 관람객은 거대한 쇼룸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 옷들에 담겨있는 서사와 시간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부피를 안고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수정 학예연구사는 “이 <빨래방> 작품에서 신생아 옷을 볼 때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이 밀려왔다”라며 “지금 여기에 이렇게 옷으로만 남아있는 이들은 어디에 있을지, 생존 여부도 알 수 없는 것이 지금 우리 시대가 겪고 있는 난민 문제”라고 짚었다.

▲빨래방, 2016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 작품 옆으로는 전통방식으로 제작된 중국 청화백자들이 전시돼 있다. 전통방식을 그대로 지키면서 완성한 이 작품은 백자 장식에 작가의 지향이 담겨있다. 백자에 그려진 푸른색의 장식문양은 모두 난민들의 생활을 담고 있다. 아름다운 구름 문양의 장식이 사실은 포탄 연기를 묘사 한 것이고, 생동감 넘치는 파도는 고무 보트 하나에 의지해 국경을 넘는 난민들의 생을 위협하는 자연으로 그려진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들은 아름다우면서도 숙연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일상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이질감과 균열이 작가 작품 면면에 깔려있다. 이는 평범한 삶이 지속되는 동시에, 지구 반대편에선 수없이 사그라져 가는 생명과 탄압 당하는 인권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한 작가의 표현법으로도 보인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에서 오랫동안 함께한 기획자에게 “아이 웨이웨이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이에 기획자는 “아주 강하고 엄격하지만, 따뜻한 사람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전시 《인간미래》는 아주 날카로운 이야기를 던지고 있지만, 그 저변엔 우리 모두의 삶이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아이 웨이웨이의 따뜻한 바람이 녹아있다. 디지털 시대에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