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 산책]삶과 죽음의 변증법, 말러 교향곡Ⅱ
[이채훈의 클래식 산책]삶과 죽음의 변증법, 말러 교향곡Ⅱ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
  • 승인 2021.12.2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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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말러 스스로 밝혔듯 이 곡은 심한 산고 끝에 탄생했다. 말러는 이 곡에서 ‘영원한 현재로서의 세계’를 그리려 했다. 말러 자신의 설명이다. “아주 파란 하늘을 연상해 보자. 하늘은 가끔 어두워지거나 유령이 나올 듯 소름끼치게 변하기도 하지만 천국 그 자체는 결코 어두워지지 않으며, 언제나 푸르게 빛난다.”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천상의 삶’을 묘사한 이 교향곡에 언뜻언뜻 비치는 고통과 어두움의 그림자는 ‘지상의 삶’을 반영한다고 해석했다. 

1901년 뮌헨에서 초연했을 때 청중들은 말러가 이 단순하고 유쾌한 음악으로 자신들을 조롱하고 있다고 오해했다. 장난스런 방울소리와 하이든 풍의 주제 선율에 “뭐 이런 음악이 다 있어?”라는 중얼거림이 나왔다. 특히 피날레 <천상의 삶>은 충격을 던졌다. “교향곡은 뭔가 거창한 피날레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당시의 통념에 비추어 볼 때 너무 하찮은 피날레였기 때문이다. 작곡가 겸 지휘자 피에르 불레즈가 처음 들은 말러도 이 곡이었다고 한다. 그는 1악장 처음에 나오는 방울 소리가 아주 놀라웠다고 회고했다. 우리도 두려워 말고 1악장 첫머리의 방울소리부터 들어보자. 희고 맑은 선율이 부드럽게 빛나는 1악장, 그로테스크하고 매력적인 바이올린 솔로가 활약하는 2악장, 꿈결처럼 포근한 3악장, 어린이가 본 천국을 소프라노가 노래하는 4악장… 

  
교향곡 1번 D장조 <거인>을 만난 것은 대학시절 학생회관 음악감상실이었다. 독특하고 신선한 사운드로 가득한 1악장, 폭풍처럼 요동치는 피날레 4악장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게오르크 숄티가 지휘한 런던 심포니 연주 LP였다. 

첫 악장의 서주, 최면을 거는 듯한 현악과 목관의 유니슨, 플루트와 클라리넷의 뻐꾸기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트럼펫의 팡파레는 처음 듣는 신선한 사운드였다. 이어지는 알레그로의 주제 - 가곡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오늘 아침 나는 들판을 걸었지’에서 따온 것 - 는 슈베르트 가곡만큼이나 유려했다. 저음의 첼로가 고음으로 올라가며 구불구불한 선율을 노래하는 대목이 아름다웠고(12:28~12:37), 호른의 강렬한 팡파레와 팀파니의 솔로가 교차하는 끝부분이 압도적이었다(15:16~15:30). 

2악장은 오스트리아 시골 춤인 ‘랜틀러’인데, 거대한 오케스트라로 연주하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진부한(!) 선율로 여겨졌다, 말하자면 내용과 형식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까, 묘한 불균형이 거슬려서 맘에 들지 않았다. 3악장은 팀파니 반주 위에서 솔로 콘트라바스가 유명한 ‘수사 마르틴’(영어로 “아유 슬리핑, 아유 슬리핑 브라더 존”이란 돌림노래)을 연주하면서 시작, 말러가 어린 시절 들은 유태인 주막의 노래와 연가곡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그대 푸른 두 눈동자’ 선율이 뒤섞이며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분위기도 처음에는 거슬렸다. 웬 잡탕이람? 

하지만, 피날레 4악장의 충격은 실로 엄청났다. ‘폭풍처럼 움직여서’란 지시어대로, 오케스트라는 3분 넘게 폭풍처럼 격렬하게 요동쳤다(링크 33:36). 젊은 말러의 방황과 고뇌, 도취와 열정이 쓰나미처럼 몰아쳤다. 이어지는 현악의 기나긴 노래는 말러가 자신의 젊은 시절에 바치는 묘비명, 에피타프였다(37:10). 하늘이 열리는 듯한 금관의 팡파레가 울려퍼지고, 목관의 뻐꾸기 소리가 다시 등장하고 삶을 긍정하는 우렁찬 투티가 어우러지며 대단원의 클라이맥스를 이뤘다. 세상에 이런 음악이 다 있다니! 나중에 알았지만 젊은 브루노 발터는 이 곡을 듣는 순간 벼락을 맞은 것 같은 감동을 받고 지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