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김원과 차진엽의 춤 - ‘겨울나그네’에 대한 두 가지 해석
[이근수의 무용평론]김원과 차진엽의 춤 - ‘겨울나그네’에 대한 두 가지 해석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1.12.2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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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겨울바다, 겨울연가, 겨울왕국…, 겨울이란 단어가 풍겨주는 공통적인 속성이 있다. ‘겨울 나그네’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 본명이 겨울여로(Winterreisse) 혹은 겨울여행이라면 그 이미지는 더욱 견고해진다. 코로나로 초토화되다시피 한 2021년 겨울 초입에 국립현대무용단(남정호)이 ‘겨울나그네’를 불러왔다. 독립적인 제명을 가진 24개 노래로 짜인 슈베르트의 연가곡을 세 명의 중진안무가에게 맡겨 그들이 선택한 노래들로 작품 세 개를 안무하게 했다. 김원의 ‘걷는 사람’, 안영준의 ‘불편한 마중’, 차진엽의 ‘수평의 균형’은 이렇게 탄생했다. 12월 3~5일,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5회 공연 중 나는 마지막 날, 3시 공연을 보았다. 

김원의 ‘걷는 사람’은 #1 ‘밤인사’, #4 ‘동결’, #20 ‘이정표’를 텍스트로 선택했다. “이방인으로 왔다가/ 이방인으로 떠나리//떠날 때 문에다 적으리/안녕 잘 자, 라고…” ‘밤인사’는 실연을 안고 떠나는 현재의 노래다. “꽃들은 죽었네/들판은 말라버렸네//내 마음은 꽁꽁 얼었네/ 그녀의 모습이 내 안에서 얼어붙었네”로 이어지는 ‘동결(凍結)’은 그가 사랑했던 날, 연인과의 추억을 소환한다. “이정표 하나가/내 눈앞에 딱 버티고 서 있다//나는 길을 가야 한다/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길을” 이렇게 끝나는 ‘이정표’는 불안한 내일을 마주하고 다시 출발점에 선 연인의 불안함을 노래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노래 말 들에 김원은 자신이 거쳐 온 삶의 과정을 투영한다.

무대 중앙 가장 깊은 곳에 검정색 망토를 입은 한 남자(한혜열)가 앉아 있다. 자리에 일어나 이동하면서 그는 묵직한 베이스로 ‘밤인사’를 노래한다. 옆에선 피아노(문종인)가 노래를 반주하고 다른 한 쪽에 숨겨진 여인(한숙현)이 대사를 낭송하기 시작한다. 김원의 독무가 그 앞에서 펼쳐진다. 노래와 시와 춤이 3위 일체가 된 완벽한 조합이다. 김원의 춤을 처음 본 것은 2007년 맨해튼의 DTW(Dance Theater Workshop) 극장에서였다.

10개의 연작으로 구성된 김영순의 ‘숯(Ssoot)‘ 공연에 게스트안무가로 초청된 김원은 그 중 두 작품에 출연했다. 고요한 바다 위에 산개한 섬처럼 정밀함이 흐르는 무대에 검은 옷의 무용수들이 기도하듯 엎드려 있고 흰 옷의 김원이 그 사이를 누비며 춤춘다. 한국적 색채를 표면에 드러내지 않으면서 토속적인 서정성을 느낄 수 있는 춤사위가 인상에 남았다. ‘걷는 사람’은 14년 만에 만나는 그녀의 춤이다. 긴 머리를 말총처럼 한 줄로 묶어 뒤로 넘긴 머리에 맨발, 검정색 헐렁한 바지에 녹색 스웨터를 받쳐 입은 그녀의 춤사위는 격정적이면서도 절제가 있다. 슬프고 청량한 곡조가 아코디언(김소미) 악기를 타고 연주된다.

“낯선 얼굴이 불쑥 내 안에서 고개를 내밀 때가 있다…” 그 낯섬에 대항하듯 두 팔을 활짝 펴 올리고 다리를 빠르게 교차하면서 그녀는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무대를 돈다. 멀리서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 듯 엎드려 바닥에 귀를 대고 있다. 뜨겁게 응축된 한을 풀어 헤쳐가는 듯한 치열함과 함께 회한의 정밀(靜謐)함이 느껴지는 춤사위다. 세 작품 중 슈베르트 음악의 정조(情調)를 가장 충실하게 흡수하면서 자신의 세계와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차진엽의 ‘수평의 균형’에선 그리움의 대상이 무용수의 몸으로 치환된다. 아래 위 헐렁한 흰 색 옷을 입은 여인이 터널 같은 어두움 속에서 걸어 나온다. 그녀의 분신인 듯 검정 옷의 남자(김지욱)를 만난다. 천정에서 무대 가운데로 내려진 철봉이 공중에 매달려 균형을 취하려 애쓰고 있다. 차진엽의 유연한 몸이 어둠 속을 유영하듯 자연스럽게 무대를 누빈다. 그녀의 춤에선 긴 두 팔이 움직임의 중심이다. 양팔을 벌려 머리 위로 회전시키고 한 쪽으로 모아 하늘을 찌르고 아래위로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 팔꿈치와 손목과 손가락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팔의 리드에 따라 어깨와 고관절이 회전하고 다리가 뒤따라간다. 몸의 진동과 철봉의 움직임은 연결되어 있는 듯 하다. 철봉이 균형을 찾을 때 무용가의 몸도 휴식할 수 있을 것이다.

차진엽이 선택한 첫 번째 노래는 #10 ‘휴식’이다. “이제야 휴식을 취하려고 몸을 누였네/내가 지쳤음을 처음 깨달은 것인가” 그러나 “다리가 쉬자고 하지 않네/너무 추워서 서 있기도 힘든데/폭풍이 나를 밀어 앞으로 가게 해”. 몸의 본질과 움직임의 본성을 찾으려는 그녀의 끈질긴 추적은 휴식을 용납하지 않는 듯 하다. 그러나 시체를 취하려는 듯 계속해서 따라오는 까마귀를 바라보는 현실의 두려움(#15, 까마귀)과 마침내는 “아무도 그의 연주를 듣고 싶어 하지 않고/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는”(#24, 거리의 악사) 미래에 대한 불안함은 무용가의 몸이 갖는 숙명일 것이다.

흰 눈이 무대 위를 하얗게 덮고 있다. 눈 속에서 힘겹게 일어난 그녀는 관객들에게 한 손을 흔들며 먼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다. 김원의 ‘걷는 사람’이 ‘겨울나그네’에 대한 정통적인 해석이라면 차진엽의 아방가르드 적 해석은 김건영의 감각적 조명과 함께하면서 또 다른 서정적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마치 겨울나그네가 되어 길을 떠나는 듯한 여운을 남겨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