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Interview]배우 송승환 “‘재미’가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 할 것”
[Culture Interview]배우 송승환 “‘재미’가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 할 것”
  •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김재성 작가
  • 승인 2021.12.2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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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첫 작품, 연극 <더 드레서>…내년 1월까지 무대 올라
시각장애 4급, 대본 등 모든 텍스트 음성 변환 기술 도움 받아
20년 넘게 공연 한류 이끈 <난타>, 코로나 영향 21개월 만에 문 열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 해설 진행 예정

지난 여름, 한 해 늦게 ‘2020 도쿄올림픽’이 전 세계 스포츠 팬들과 만났다. ‘팬데믹’ 시대의 ‘올림픽‘.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라 여겨졌고, 우려의 시선도 많았다. 심지어 연일 확진자가 기천명에 달하며 상승세를 보이는 도쿄에서 개최되는 국제 행사라니. 하지만 2021년에 찾아온 ‘2020 도쿄올림픽’은 예정대로 개막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올림픽 최대의 위기상황이었고, 1년 연기된 탓에 재정적으로도 매우 힘든 상황이라는 현실, 연출가나 음악감독 등이 대회 임박해 사퇴하는 일이 벌어진 것을 감안해도 올해 올림픽은 아쉬움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2018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선보인 드론 오륜기
▲2018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선보인 드론 오륜기

올림픽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개폐회식은 그 나라의 정체성을 세계인에 가장 강력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올림픽 최대 문화 이벤트다. ‘도쿄올림픽’은 그 의의와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크고 작은 아쉬움을 남겼다. 반면, 이로 인해 몇 년 만에 다시금 재조명된 행사가 있다. 바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막식이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1218대의 드론이 모여 선보인 장관과 고구려 고분벽화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인면조, 백호, 청룡, 주작, 현무 등 5개 동물 퍼핏 등은 메가이벤트 퍼포먼스의 극치를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개ㆍ폐막식 총감독을 맡은 송승환은 평창올림픽 성공 후 청천벽력 같은 시련과 맞이하게 된다. 급격하게 나빠진 시력으로, 시각 장애 4급 판정을 받은 것이다. 갑자기 닥친 인생의 난관 앞에 당황했고 절망했으나 좌절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고, 다시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11월 초연했지만 코로나19 상황 악화로 조기 종연(총 48회차 중 19회차 공연)한 연극 <더 드레서>가 1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로널드 하우드의 동명 희곡을 무대화한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리어왕’ 공연을 앞둔 셰익스피어 전문 극단 분장실이 배경이다. 악조건 속에서 연극을 올리기 위해 분투하는 연극인들의 모습을 통해 관계의 의미, 삶과 죽음을 통찰한다.

아울러 <더 드레서>는 배우 송승환이 60대 들어 처음 서는 무대다. 극중 송승환은 셰익스피어 전문 극단 대표이자 삶의 끝자락에 선 노배우 ‘선생님’을 연기한다. 이 작품이 노(老)역의 출발점인 셈이다. 

▲배우 겸 PMC프로덕션 예술총감독 송승환 ⓒ김재성 작가
▲배우 겸 PMC프로덕션 예술총감독 송승환 ⓒ김재성 작가

송승환은 1965년 아역 성우로 데뷔한 뒤 드라마와 영화, 공연에 출연할 뿐 아니라 MC, 라디오 DJ, 교수 등 다양한 분야에 열정을 쏟았다. 1968년에 연극 ‘학마을 사람들'로 아역 최초로 동아연극상 특별상을 받았다. ‘아씨' ‘여로' 등 텔레비전과 연극 무대를 오가며 열연했고, 20대엔 최고 인기 쇼프로그램이었던 ‘젊음의 행진' MC로도 활약했다.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때 돌연 미국으로 떠난 그는 브로드웨이 공연들을 보며 영감을 받아 <난타>를 제작했다. 한국적인 흥을 세계 언어로 풀어낸 비언어극 <난타>는 1997년 호암아트홀에서 오픈한 뒤 전 세계 57개국 310개 도시를 돌며, 지금까지 갈채를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며 최고의 공연 제작자 반열에 올랐다. 이후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개·폐막식의 총감독을 맡으며 전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으며 또 한 번의 성공을 거둔다. 

낮에는 21개월 만에 공연을 재개한 <난타> 공연장에서 배우 및 스탭들의 리허설을 체크하고 밤에는 국립정동극장에서 <더 드레서> 무대에 오른다. 틈틈이 유튜브 채널 ‘송승환의 원더풀 라이프’를 진행하고, 성균관대 문화예술미디어융합원 원장으로도 활동한다. 여기에 더해 오는 2022년에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 해설(KBS)도 맡을 예정이다. “남의 얘기를 예전보다 더 유심히 들을 수 있고, 생각도 조금 더 깊어지는 것 같다”라며 더욱 단단해진 내면을 드러내 보이며 도전을 멈추지 않는 배우 송승환을 만나 그의 연기와 삶 그리고 목표에 대해 물었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조기 폐막했던 연극 <더 드레서>가 1년 만에 다시 관객들과 만났다. 작년과 비교해 올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공연의 구성 부분에 있어서는, 인터미션이 없어져서 더 관객들이 이제 몰입도 있게 보시는 것 같다. 아울러 일부 뉴 캐스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작년에 한 번 공연을 하고 다시 재공연을 하다 보니 많이 익숙해져, 캐릭터를 더 잘 표현해내고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익숙해지니 작년에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새로운 표현들을 찾게 됐고, 때문에 완성도가 훨씬 높아졌음을 느낀다.

▲연극 ‘더 드레서’ 공연 모습 ⓒ국립정동극장
▲연극 ‘더 드레서’ 공연 모습 ⓒ국립정동극장

<더 드레서>의 작중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영국의 한 극장이다. 전혀 다른 배경과 상황이지만 작품 속 모습들은 지금과 정말 많이 닮아있어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전쟁’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과, ‘나이 듦’이라는 개인적인 변수 중 어떤 것이 인간의 삶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가?

둘 다가 아닐까? 어느 쪽이 더 우세하다고 얘기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우리도 사실 (바이러스와)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전쟁 속에서도 무대를 지켜가는 작품 속 이야기는 코로나를 이기며 무대를 이어가는 현실과도 비슷하다. 
더불어 내가 맡은 역할이 이제 노역이다 보니, ‘인간의 나이 들어감’에 대한 대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노배우는 공연 시작 5분 전에 첫 대사를 떠올리지 못해 쩔쩔매고, 의상 담당자 노먼을 제외한 다른 스태프, 심지어 그의 아내조차 그의 은퇴를 종용한다. 하지만 노배우는 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연기를 멈추지 않는다. 
목숨이 오가는 가운데 그깟 연극이 뭐 그리 중요한가 싶겠지만, 그것이 곧 배우들의 사명이 아니겠는가.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자면 배우로서의 삶을 1막, 제작자로서의 삶을 2막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1막과 2막 사이의 인터미션, 어떤 계기가 당신을 ‘난타’ 제작자의 길로 이끌었나?

어려서부터 연기 활동을 하고 배우를 했지만, 공연 제작도 겸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제작은 배우일 때와는 달리 경제적인 비즈니스를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 제작비 투자가 돼야 하고,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또 흥행을 성공시켜야 하고. 내가 제작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국내 시장이 매우 작았기 때문에 흥행 성공이 쉽지 않았다. 이에 눈을 해외로 돌리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 어느 나라든 가서 공연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했고, 이를 위해 비언어 공연을 떠올리게 됐다. 그렇게 난타가 탄생했다. 난타가 뜻밖에 성공을 거두며 세계 시장에서 공연이 이어졌고, 그러다 보니까 다른 걸 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프로듀서로서 이제 공연 제작하는 일을 한동안은 또 계속하게 됐다.

▲한국 공연관광을 대표하는 ‘난타’의 한 장면 ⓒPMC프로덕션
▲한국 공연관광을 대표하는 ‘난타’의 한 장면 ⓒPMC프로덕션

공연계에서는 넌버벌 공연의 첫 대중화로 우리나라 넌버벌 공연의 효시를 이뤘다, 에든버러, 브로드웨이 진출, 전 세계 동시 장기공연 등 개척자이자 선구적인 삶을 살았다. 성공의 이면에 위기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

난타는 관광업과 공연업이 결합된 상품이라 지금과 같은 코로나19, 이전에 메르스나 사스 같은 유행병과 외교 문제로 인한 관광객 감소 등 외부적인 요인의 영향을 받긴 했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들에 비해 큰 위기가 없었다고 여겨진다. 끊임없이 하나하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차근차근 이뤄 나갔기 때문이다. 에딘버러 페스티벌 참가가 처음의 목표였고, 세계  무대에 작품을 알리기 위해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는 게 두 번째 목표, 그다음은 전 세계에 전용 극장을 만들고 투어를 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를 하나씩 하나씩 달성해 나가면서 다행히도 많은 분들의 도움도 있었고, 배우와 스탭이 한마음으로 뭉쳤기 때문에 앞에 놓였던 어려움이 큰 위기라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 콘텐츠를 제작할 계획은 없나?

남은 인생 동안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좋은 역할이 있으면 또 연기도 하겠지만, 난타만큼 큰 성공을 거둘 작품을 또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열심히 하다 보면 난타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단은 만드는 콘텐츠마다 최선을 다할 뿐이다.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동시에 난타도 계속 업그레이드 시킬 것이다.

지난해 ‘송승환의 원더풀라이프’라는 타이틀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원로 배우들을 중심으로 무대 위 양면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고 이를 통해 어떤 걸 느끼고 있는지?

우리나라는 원로(배우)들에 대한 아카이브가 좀 부족한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연기 활동을 시작하면서, 많은 선배 배우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게 됐다. 이들에게는 우리나라 TV 초창기 시절, 옛날 연극 무대에 오르던 얘기 등 정말 재밌는 에피소드와 더불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이야기들도 많다. 그런데 이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이런 얘기들이 다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라도 선배들을 인터뷰를 해서 일종의 좀 아카이브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다. 하고 나니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나 또한 위로와 공감을 얻는다. 

▲배우 송승환이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송승환의 원더풀라이프’ 영상 캡쳐
▲배우 송승환이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송승환의 원더풀라이프’ 방송 장면 일부

1965년 아역배우로 데뷔해 어느덧 56년차가 됐다. 배우와 MC, 제작자, 교육자, 메가이벤트인 평창동계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일들을 해왔다. 꾸준하게 지켜온 자신만의 신념이나 철칙이 있다면?

특별한 신념이나 철학이라기보다, 어떤 일을 결정하는 기준이 있는데, 그건 바로 ‘재미’이다. 재미있어야 최선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없는 일을 억지로 해서는 효율도 나지 않고, 하는 나도 괴롭다. 난타도 그렇고 평창올림픽도 그렇고, 그 일이 명예나 돈 같은 걸 가져다 줄 거라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 아니라,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

모토라고 한다면 ‘이왕이 하기로 한 일은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해왔지만, 일단 결정한 다음에는 늘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일들을 비교적 큰 탈 없이 그렇게 해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현재 시각장애 4급 판정을 받아, 음성으로 글자를 읽어주는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대본 듣고 외우며 오른 무대다. 건강의 악화로 일상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으리라 생각되는데 어떠한가?

안 보이니까 들어야죠. 다행히 우리 IT 기술이 많이 좋아져서, 이제는 티티에스(TTS·text-to-speech·텍스트 음성변환기술) 같은 기술에 도움을 받는다. 메일이든 카톡이든 대본이든 책이든 스캔을 뜨면 스피커가 다 읽어준다. 눈으로 보던 것을 귀로 듣는 것으로 대체해서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 아무래도 안 보이다 보면 듣는 것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남의 얘기를 예전보다 더 유심히 들을 수 있고, 생각도 조금 더 깊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잃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얻는 것도 많다고 생각한다. 
연극은 리허설을 한 달 이상 하기 때문에, 동선이라든가 내가 움직이는 곳에 뭐가 있다든가 하는 것이 다 머릿속으로 암기가 된다. 보이지 않아도 다 외워둘 수 있다. 전혀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형체는 보이니까 사고의 위험은 거의 없다.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 역할도 나름대로 잘 해내고 있다. 난타 리허설 할 때는 카메라를 갖다 놓고 줌인을 해서 모니터로 확인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일반인들은 여가시간에 공연을 보거나 문화생활을 한다. 문화가 생활인 분은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다. 연극ㆍ뮤지컬을 만들고 있다 보니, 다른 작품들을 많이 보기도 하고,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한다. 아직은 발밑에 골프공이 보이기 때문에 휴일에는 골프도 친다. 

책이 주는 즐거움도 놓치지 않고 있다. 특정 장르를 탐하기보다 호기심 있는 분야의 책을 그때그때 보는 편이다. 한국 소설도 즐겨 읽는데, 이는 내가 만들려고 하는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상상력을 키우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지난 여름에는 도쿄 올림픽을 해설을 하러 다녀오면서 일본과 관련된 책들을 좀 봤고, 오는 2월에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 개ㆍ폐막식 해설을 하러 가기 때문에 중국 관련 책들을 많이 접하고 있다.

▲배우 겸 PMC프로덕션 예술총감독 송승환 ⓒ김재성 작가
▲배우 겸 PMC프로덕션 예술총감독 송승환 ⓒ김재성 작가

코로나 시대 이후 활발해진 비대면 온라인 공연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지난해와 올해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 온라인 공연을 많이 선보인 걸로 안다. 뮤지컬만 해도 춤과 노래가 있기 때문에 온라인 공연이 가능하겠지만, 연극을 영상으로 보면 생생한 현장의 느낌을 잘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연극을 영상으로 보라는 건 생선회를 통조림 캔으로 먹는 것과 똑같다. 살아있는 연기로 관객들과 호흡하면서 만나는 것이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연극이 존재하는 이유기도 하다.

모든 것이 다 영상으로 대체 가능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VR을 쓰고 좋은 경치를 봐도 직접 현장에 가서 보는 것만큼의 감동을 줄 수 있겠는가. 아날로그는 아날로그만의 힘이 있고, 아날로그로서의 존재 가치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을 아직도 가르치고 있는지?

시력이 나빠진 이후로 강의는 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성균관대학교 문화예술미디어 융합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회의를 통해서 교수들과 학과 학생들 간 융합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각 과, 전공마다 벽이 굉장히 높은데 그걸 조금 낮춰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타 전공 과목도 들을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문화ㆍ예술ㆍ트랜스미디어 테크놀로지의 융합을 통해 창의적 문화콘텐츠를 기획, 창작, 확산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느끼기에 학생들이 바라는 점은 무엇이라 보는가?

아직은 우리 문화예술 시장이 다른 산업 분야의 시장보다는 굉장히 작은 편이다. 때문에 문화예술을 전공한 학생들이 전공을 살려서 직업을 갖고 생계를 꾸려가기엔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다. 요즘 뭐 K-컬쳐에 대한 전 세계의 우호적 반응이 쏟아지고 있지만, 시장 자체가 크게 확대된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졸업을 한 후에 전공을 살려 활발히 일할 수 있도록 시장이 확대되고, 문화가 좀 더 산업화 되는 구조를 가장 바라고 있을 것이다. 

국내 뮤지컬 시장은 점차 확대되고 있는 반면, 이를 만드는 시스템은 여전히 구조적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뮤지컬 시장은 지금 굉장히 점점 커져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여전히 산재한다. 제작 여건을 비롯한 내ㆍ외부적 여러 문제들은 이제 하나씩 둘씩 개선을 해가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뮤지컬을 독립 장르로 분리 표기하는 내용이 골자인 ‘공연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문체위를 통과했다. 연극의 하위 장르 정도로 인식되던 뮤지컬이 별도 장르로 분리, 명기됨으로써 법령상 근거가 마련하고 한국 뮤지컬산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 육성할 수 있게 됐다. 다가올 새해에는 이를 토대로 뮤지컬이 국가 콘텐츠 산업 경쟁력 확대에 이바지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작품에 “연극배우는 관객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어떤 배우로 관객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고 싶은가?

어떤 배우로 기억되기까지는 바라지 않고, 그냥 송승환이라는 배우가 있었다는 것만 기억해 주셔도 감사할 것 같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코로나의 또 다른 변이인 오미크론이 등장하는 등 우리 사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서도 공연장은 매일 문을 열고, 관객들을 맞고 있다. 코로나 환자가 급증하니까 좀 꺼려 극장이 오길 꺼리시는 분도 있는 것 같은데, 마스크만 잘 쓰고 오시면 극장만큼 안전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많이들 와주셨으면 좋겠다. 빨리 코로나에서 좀 벗어나, 새해에는 우리가 일상을 되찾을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