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의 인문학 파먹기] 나는 누구입니까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의 인문학 파먹기] 나는 누구입니까
  • 윤이현
  • 승인 2022.01.03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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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98132, 경기도 어느 소도시의 한 작은 산부인과에서 한 여자아이가 세상을 향해 첫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아이를 받아든 부모님은 떨리는 손으로 탯줄을 잘랐다고 한다. 엄마의 가슴 위에 포개진 이 핏덩이는 금세 새근새근 숨을 내쉬었고 서서히 안정을 찾았다. 세 번째 아이의 탄생이었고, 그들은 그렇게 다섯 식구가 되었다. 아빠는 그 막내딸을 특히나 예뻐했다고 한다. 출근하기 전 주머니에 쏙 넣어 다니고 싶다며 한시도 눈을 떼질 않았으니 말이다.

세 살 무렵의 나
두 살 무렵의 나

아이는 반곱슬에 제법 각진 얼굴형을 가졌고, 개성 있는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분명했다고 한다. 엄마가 잠시 한 눈판 사이 상에 놓인 상추를 모두 먹어 치우고는 쓰다며 울먹이던 세 살. 성인들이나 볼 법한 자극적인 비디오를 몰래 보던 설익은 다섯 내기. 새벽에 일어나 냉장고 속 요구르트를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 쓰러져있던 여섯 살 먹 빵. 엄마의 분홍색 티셔츠와 하원 후 사 먹는 떡갈비를 좋아했던 유치원생. 애니메이션 슈가슈가룬주제가를 흥얼거리며 작은 언니의 뒤를 따라다니던 일곱 살의 막내. 피자두처럼 새까만 얼굴로 몸집보다 더 큰 책가방을 들고 씩씩하게 초등학교 교문을 넘나들던 어린이. 친구들과 학원을 빼먹고 시소 타기를 좋아하던 시기를 지나 제법 생각의 몸집이 자란 중학생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였다. 좋아하진 않았지만 잘했기 때문에 마치 그것이 정해진 길인 것처럼 명문 미대 앞 학원가를 전전했다. 그 시절 가장 부러워했던 건 친구들의 여유로운 주말이었다. 휴일에도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강남에 있는 유명 침술원에 들러 온몸에 침을 맞고서 아침밥도 먹을 틈 없이 곧장 미술 학원으로 달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13시간 내내 꼿꼿이 앉아 정물화를 그려냈다. 중간중간 차갑게 식은 도시락을 홀로 까먹을 때의 적적함과 서러움은 여전히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채색되어있다. 하루에 두 번씩 벽 뒤에 서서 남들의 그림과 비교당해야만 했던 일도 내겐 아픈 추억으로 남아있다.

무거운 화구 통을 들고 집으로 가는 길에,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건 당시에 유명했던 쇼미더머니 3’의 음악들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 그러나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 사이에서 머리가 복잡해질 때면 생각을 비우기 위해 할 수 있었던 것은 강한 비트의 음악을 듣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음악이 끝날 때 즈음,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한 것은 난데, 수화기 너머로 그들은 오늘 어떤 하루를 지냈는지 내게 물어왔다. 말꼬리를 돌려가며 딴청을 피우는 것으로 오늘의 쓸쓸함이 감춰질 무렵 비로소 집이 보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거창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미술은 그만뒀지만, 그에 못지않게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재능을 발견하진 못했지만, 괜찮은 성적을 받았고 어느샌가 영화감독을 꿈꾸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10대의 후반의 기억을 꺼내 보면, 내 곁엔 언제나 애니메이션과 영화 그리고 글이 있었다. 잘하진 못해도 그것들을 사랑했다. 그리고 영화가 곧 천직이자 소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대단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꿈을 버리진 못했다. 단지 운이 나빠서 계획한 일들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이라 치부했다. 그 시기에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단순 노동과 억지웃음을 팔아 돈을 버는 일이 좋았다. 글과 이야기를 짜는 것과는 달리, 일은 머리를 쓰지 않아도 쉽게 보람을 안겨줬다. 더불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즈음 사랑했던 것들이 마음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허무함과 동시에 삶에서 운명이나 천직 따위는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더 잘 맞고 잘 맞지 않는 것만 있을 뿐이다. 세상엔 정해진 것이 없었다. 그저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지는 과정이 곧 인생이라는 것을 스물두 살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매번 당당했던 내가, 때로는 사랑 앞에서 한없이 약해질 수도 있다는 것,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노력이란 것도 무모한 욕심이었다는 것도. 나는 더는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태어남과 동시에 받은 축복과 사랑은 순탄치 않을 미래를 견디어 내라는 야속한 복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의 깨달음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세상으로 던져짐과 동시에 어딘가를 향해 양껏 울었던 것을 아닐까.

살다 보면 전혀 다른 사고를 담고 있는 존재들을 마주하게 된다. 세상 사는 법이 여전히 힘겨운 나는 그들을 통해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리고 가끔 그들에게 너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묻는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 고요 속에서 전해지는 파장은 내게 가르침을 주는 그들과 나 사이에도 공통점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각자의 삶 그 안에서 그들도 스스로 누군지를 깨닫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태어난 순간에 흘린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과 세상의 축복, 성공과 실패의 의미, 사랑과 이별의 아픔, 방황과 두려움 그리고 희망. 이런 질문에 정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이다. 그저 그 시간을 감내할 뿐. 먼 훗날 사실은 그때 그랬던 게 아닐까?’하고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을 땐 또 다른 어려움이 탁하게 우리 앞을 가로막고 서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우리가 가진 공통점이었다.

스물세 살을 앞두고도 여전히 핏덩이 아가처럼 나는 울고 있다. 누군가의 가슴 위에 안겨서 이제는 이 눈물을 멈추고 싶다. 아니 눈물 흘리는 모습이라도 등 뒤에 숨어 감춰보고 싶다. 의문투성이인 세상은 이제 반겨주진 않기에 존재한다는 의미를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그 여정에는 새로운 사랑이 있고, 목표가 있으며 눈물을 멈추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내 곁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살고자 한다. 20××××, 나도 세상도 웃는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