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강요배: 카네이션-마음이 몸이 될 때》展, 소리와 몸짓 화폭
[전시 리뷰] 《강요배: 카네이션-마음이 몸이 될 때》展, 소리와 몸짓 화폭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1.1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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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새롭게 제작된 신작 19점 공개
16m 화폭 대형 대표작, ‘수풍교향水風交響’
‘경산 코발트 광산 사건’ 모티프 작품, 대구 역사담아
회화 중심으로 설치, 조각, 영상 작업 선봬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대구 미술관 2층 전시장에는 자연 경관과 함께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한 쪽 벽면이 전면 유리창으로 만들어진 제 3전시실과, 미술관 천장이 유리창으로 돼있는 선큰가든의 공간이다. 제 21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전 《강요배: 카네이션-마음이 몸이 될 때》는 지난 9일까지 대구미술관 2층 2,3 전시실과 선큰가든에서 개최됐다.

▲대구미술관 강요배 전시전경 (2)
▲대구미술관 《강요배: 카네이션-마음이 몸이 될 때》 전시전경 (사진=대구미술관 제공)

강요배 작가는 전시 준비 단계에서 전시 공간을 접하고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제주의 자연을 주로 그려온 강 작가는 “진짜 자연 앞에선 그림이 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하지만, 대구 미술관 측은 강 작가를 설득했고 그의 작업 과정에 응원을 실었다. 그 결과, 대구의 자연과 이번 전시 대표 작품인 <수풍교향水風交響> 어우러진 공간이 탄생할 수 있었다. 또한, 하늘의 빛을 시시각각으로 느껴 볼 수 있는 공간 아래에서 강요배 작가 자소상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대규모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강 작가는 회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다. 전시 출품작 대다수가 2021년에 새롭게 제작된 신작이었고, 총 19점을 제작해 전시했다. 대형 회화 작품 및 조각,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그간 강 작가 스스로 시도할 계획이 없었던 영상 작품까지 공개했다.

제주-대구-강요배를 잇는 자연

전시장 한쪽 면이 전면 유리창인 제 3전시실에서는 약 16미터에 달하는 <수풍교향水風交響>과 영상 작품 <강요배의 소리풍경>을 만나볼 수 있다. <수풍교향水風交響>은 가로 16m, 세로 3.3m에 달하는 거대한 화폭에 광활한 대자연을 담은 한 폭의 파노라마 회화다. 파도와 수풀에 휘몰아치는 바람, 거친 산맥, 차가운 달밤 등 변화무쌍한 자연의 모든 순간을 담고 있다. 회화는 보는 시점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계절의 변화를 드러내는 듯도 하고, 밤과 낮의 흐름,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의 시간을 담고 있는 듯도 하다.

작품에서 좀 멀찍이 떨어져야지만 한 눈에 아우를 수 있는 규모의 회화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에너지를 전한다. 그리고 이 <수풍교향水風交響> 옆에 배치된 영상 작품 <강요배의 소리풍경>은 그 에너지를 더욱 구체적인 형태로 만들어준다.

▲강요배, 수풍교향(水風交響), 2021, 캔버스에 아크릴, 333x1583cm
▲강요배, 수풍교향(水風交響), 2021, 캔버스에 아크릴, 333x1583cm (사진=대구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를 통해 화풍과 예술세계의 경계를 확장을 시도한 강 작가는 이전엔 익숙하지 않았던 영상 매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해 선보였다. 전시를 기획한 이혜원 학예연구사는 <강요배의 소리풍경>에 대해 “작가가 모두 직접 촬영한 영상으로, 작업을 하는 중간 중간이나 약주를 들던 순간에도 스마트폰을 이용해 제주의 자연을 계속 담아냈다”라고 설명했다. 파도치는 바다와 눈이 쌓인 설원, 꽃나무가 흐드러진 제주의 모든 자연의 순간들은 관람객을 영상 속 제주의 공간으로 이끈다.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지점은 인공의 음향이 들어가지 않고, 오로지 자연이 만들어낸 소리만 담겨있다는 점이다. <강요배의 소리풍경>에서 나오는 소리들은 <수풍교향水風交響>을 감상할 때에도 함께 들을 수 있다. 생생한 자연의 소리가 울리는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수풍교향水風交響>은 관람객들을 더욱 깊숙한 감상의 세계로 이끈다. 여기에 유리창 밖 자연까지 어우러지는 전시장 전경은 보는 이의 감정을 충만하게 만든다.

최은주 대구미술관장은 제 3전시실에 대해 제주의 자연. 대구의 자연, 강요배 작가 내면의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삼각형의 양 끝점에 하나씩 배치된 세 가지 형태의 자연은 보는 이에게 눈앞에 펼쳐진 공간 이상의 세계를 더듬어볼 수 있는 공감각적 예술경험의 순간을 만들어준다.

▲'강요배 소리풍경', 대구미술관 야외정원과 어우러진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강요배 소리풍경', 대구미술관 야외정원과 어우러진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작가 ‘몸’으로 발현된 자연의 순간

강요배 작가는 이인성 미술상 제 21회 수상자다. 2020년 선정 당시 “회화 매체의 확장과 깊이를 더하며 밀도 있는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으며, 오랜 시간 지속적인 작업을 통해 시대와 역사에 충실하고 다양한 화풍의 변모를 추구한다”라는 심사평이 있었다.

2000년에 제정된 이인성 미술상은 다양한 장르가 혼재한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회화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작품 활동을 개진하고 있는 작가에 주목해오고 있다. 강 작가는 이인성 미술상 수상 이후,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 ‘몸’으로의 발현으로 확장된 작업 세계를 새롭게 선보인다.

전시 제목 ‘카네이션-마음이 몸이 될 때’는 강 작가가 직접 선택한 제목이다. 성육신(成肉身)의 어원인 인카네이션(incarnation)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작품들은 자연의 구체적인 형상을 집요하게 좇아 구상성이 극대화된 화면을 만들어낸다. 얼핏, 제주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하나의 자연 풍광을 화폭으로 옮겨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거대한 캔버스를 휘감고 날뛰는 작가의 붓질은 단순히 자연의 일부분을 옮겨 낸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전시 마지막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영상에는, 신문지와 빗자루 등의 다양한 도구로 거대한 화폭을 채워나가는 작가의 작업 모습이 담겨있다. 그 영상을 보는 순간, 캔버스 앞에서 온 몸을 사용해 작품을 완성했을 작가의 모습과 에너지가 물씬 전달된다.

▲강요배, '바비'가 온 정원, 2021, 캔버스에 아크릴, 194x520cm
▲강요배, '바비'가 온 정원, 2021, 캔버스에 아크릴, 194x520cm(사진=대구미술관 제공)

<보라 보라>, <쳐라 쳐라 쳐라>는 웅장한 파도의 힘이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이다. 작품 앞에 서면, 시커먼 바다 한복판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작가는 대형 캔버스 작업 안에서 아크릴이 묻어 나오는 붓질에 자신의 몸짓을 실어, 그로 인해 발생 되는 소리를 상상하게끔 만든다. 그 소리는 바람과 파도 소리와 교차된다. 강 작가 작업을 관통하고 있는 ‘체화(體化)’가 보는 이에게 전달되는 순간이다. 그의 작업들은 내면을 이루는 생각, 사상, 이론 등이 몸에 배어 자기 것이 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자연의 역동성, 소리와 몸짓으로 전이되는 감각을 담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강 작가가 바라본 풍경의 정서까지 전해준다. 순수하게 아름다운 것은 자칫 공허해보일 수 있다. 하지만, 구체성이 강조돼 자연이 가진 본질적인 아름다움이 눈앞에 펼쳐져 아름다움이 경외감으로 나아갈 때 작품은 더욱 깊이를 갖게 된다. <‘장미’의 아침놀>은 제주에 태풍 ‘장미’가 불어 닥치기 전 아침의 풍경을 작가가 화폭에 담아낸 것이다. 강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항상 징조가 있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붉은 노을 같은 화면이 품고 있는 소리와 고요함이 조금 달라 보이는 느낌이 든다. 

▲강요배, '장미'의 아침놀, 2021, 캔버스에 아크릴, 181.7x259.5cm
▲강요배, '장미'의 아침놀, 2021, 캔버스에 아크릴, 181.7x259.5cm (사진=대구미술관 제공)

제주와 대구의 시간을 아우르다

강요배 작가는 제주 자연 속에 제주 4‧3 사건의 기록을 담아내 표현한 작가다. 그는 현실주의적 시각을 갖고 실천주의적 작품을 선보여 오기도 했다. 강 작가는 역사, 철학. 민족 고유 전통 요소를 넘나들며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작품을 연구한다. 그는 이번 ‘이인상 미술상’ 수상자 전을 준비하면서, 대구의 역사 또한 공부하고 연구할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그 시간은 선큰가든에 설치된 작품 <코발트>와 <처음소리- 하느>, <처음소리-가므>로 완성됐다. 강 작가는 대구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1950년에 일어난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 사건’을 접하게 됐다. 작가는 이 사건이 제주 4‧3 사건과 같은 맥락의 사건이라고 봤다.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 사건’은 1950년 7월 20일에서 9월 20일까지 자행된 것으로 추정된 학살 사건으로, 대구 형무소와 부산 형무소 수감자 및 보도연맹원 약 3,000명(정부추산 2,000여명, 유가족 추산 3,500여 명)이 학살된 사건이다. 보도연맹은 좌익 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로 조직된 반공단체지만, 실상은 좌익이나 반공과는 관련이 없는 일반 농민과 학생들도 포함돼있었다.

‘경산 코발트 광산’은 수직, 수평 갱도로 이뤄져있다. 학살은 수직갱도 위에서 자행돼 시신을 100여 미터 깊이의 갱도 아래로 던지는 식으로 벌여졌다. 강 작가는 코발트 광산의 수직 수평 갱도를 그대로 화폭으로 옮겨냈고, 코발트 안료를 사용해 제작했다. 그리고 <처음소리- 하느>, <처음소리-가므>는 경북 상주에서 제작된 비단을 강 작가가 직접 염색해 제작한 작품을 <코발트> 양 옆에 설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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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큰가든 공간에 <코발트>와 <처음소리- 하느>, <처음소리-가므> 설치 작품으로 둘러싸인  작가의 자소상 <섬>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코발트>와 <처음소리- 하느>, <처음소리-가므> 설치 작품으로 둘러싸인 선큰가든 정 가운데에는 작가의 자소상 <섬>이 자리하고 있다. 제목 ‘섬’은 섬(島)과 섬(立)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작가는 한 인간의 존재를 모두 개별적인 섬(島)으로 봤고, 또 그런 개인은 언제나 역사 앞에서 서서(立)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담아냈다. 그 인간의 형태를 자조상의 형태로 풀어낸 것은, 작가가 세계를 받아들이고 있는 관계를 유추해볼 수 있게 한다.

강 작가는 이번 전시에 이인성 작품 <가을 어느날>과 <경주의 산곡에서>를 오마쥬한 <어느 가을날>과 <산곡에서>도 선보였다. 강요배의 이 두 작품은 1934년, 1935년 당시 한국을 담아낸 이인성의 작품을 지금 시대의 시각으로 풀어낸다. 특히, 강요배 <산곡에서>의 경우 경주의 유적이 자리했던 공간에 미처 수습되지 못한 과거사의 유해들을 배치하고 그 앞에 절망하고 있는 개인, 또 그 뒤로 건설되고 있는 높은 건물을 통해 이 시대의 기록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강요배, 산곡(山谷)에서, 2021, 캔버스에 아크릴, 197x333cm
▲강요배, 산곡(山谷)에서, 2021, 캔버스에 아크릴, 197x333cm (사진=대구미술관 제공)

전시 후반부에서는 강 작가의 어렸을 적 작품인 <축구 생각>, 청년 시절 작품 <빈곳> 등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현실의 아픔을 담아내고, 제주 동백꽃 작가로 많이 알려진 강요배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그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제주와 현실, 자연을 풍성하게 보여줬다. 몸짓과 소리를 품고 있는 회화부터, 동양 미학이 녹아있는 듯한 <벌과 홍매>, <설향자>, <설담> 등으로 그가 가진 또 다른 표현법도 마주할 수 있게 했다.

생각이 체화돼 완성된 그림은 보는 이에게 생명력 있는 몸짓을 보는 느낌도 전해준다. 이는 그림이 품고 있는 어마어마한 역동성 때문일 수도 있다. 거대한 자연을 마주하면, 그 앞에 선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미약한 지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강 작품 면면을 살펴보면 그 자연과 함께 시간을 버티고 서서 역사와 시대를 일궈 온 존재들을 마주할 수 있게 한다. 전시는 강요배 작가가 쌓아온 밀도 있는 세계와 그의 내면 가운데를 경험할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