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대구미술관 해외교류전 《모던 라이프(Modern Life)》
[전시리뷰] 대구미술관 해외교류전 《모던 라이프(Modern Life)》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1.18 1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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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월 27일까지
한국-유럽 관통하는 모더니티 다뤄
프랑스 국보 마르크 샤갈 ‘삶’ 전시
개관 10주년 프랑스 매그재단 공동프로젝트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김달진미술연구소는 지난해 연말을 맞아 2021년에 주목할 만한 기획전시를 선정한 바 있다. 대구미술관(관장 최은주)의 개관 10주년 기념 해외교류전 《모던 라이프(Modern Life)》는 국립현대미술관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리움미술관 《인간, 일곱개의 질문》 등과 함께 2021년에 주목할만 한 전시로 꼽혔다. 전시는 대구미술관 1전시실과 어미홀에서 지난해 10월 개막해 오는 3월 27일까지 진행된다.

▲La foret 1950, 청동, 57x46x58cm, GIACOMETTI Alberto, Collection of Maeght Foundation
▲La foret 1950, 청동, 57x46x58cm, GIACOMETTI Alberto, Collection of Maeght Foundation

전시 《모던 라이프》는 프랑스 최초 사립미술기관인 매그 재단(대표 아드리앙 매그)과 대구미술관이 ‘모더니즘’ 주제어로 삼아, 양 기관의 소장품을 공동 연구한 프로젝트다. 연구는 2년 간 진행됐고,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 78명의 대표작 144점을 공개한다.

양 기관의 소장품들은 대구미술관 전시장 곳곳을 풍성하게 채우고 있다. 정말 많은 작품이 공개돼 작품의 다채로움이 전시의 또 하나의 백미다. 미술관 측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시민들의 문화적 향유 기회가 줄어들고, 해외교류가 어려워지고 있는 가운데 보다 많은 작품을 선보이는 데에 힘을 더했다고 밝혔다. 기자는 주말 점심시간 쯤 미술관에 방문했는데, 식사 시간을 앞두고서도 정말 많은 관람객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었다. 특히 어린이 관람객들의 비율이 높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자칫 난해할 수 있는 근대 미술 작품을 보고 기록을 남기며, 감상하는 태도가 즐거워보였다.

한국-유럽의 ‘모던 라이프’를 탐색하다

김달진미술연구소는 전시 《모던 라이프》를 “한국과 서양현대미술사의 한 궤적을 설핏 통찰하는데 손색이 없는 전시, 알차고 교과서적인 전시로서 교육적인 측면과 볼거리를 안겨준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전시 《모던 라이프》를 관람하게 되면, 한국과 서양 미술사의 큰 흐름을 느껴볼 수 있다. ‘역사’라고 하면 학문적이고 기록적 측면으로 접근하기 쉬운데, 전시는 문자로 남아있는 역사를 회화, 조각, 설치 작품 등으로 선보이며 시대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전달해준다. 연도에 크게 집중하지 않아도, 흐름에 따라 섹션 별 주제 소개 글을 읽고 전시를 감상하면 무리 없이 미술사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탈-형상화’섹션, 주말 오전임에도 많은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찾았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모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전시 제목이 알려주듯, 이번 전시 대부분의 출품작에선 ‘모더니티(Modernity)’의 전이와 변용적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모더니티의 범주에 속해 있는 모더니즘(Modernism) 미술은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치열한 예술적 실험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미술의 전개를 필연적인 진보의 역사로 정립할 수 있도록 기능했다.

모더니즘 미술이 움텄던 유럽과 한국은 모두 격변의 시대상을 통과하는 때였다. 이 시기 작가들은 시대의 혼란을 온몸으로 맞서고, 때로는 아픔이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순수하게 예술에만 천착해 추구한 미적 근대성이 이번 전시에 담겨있다.

전시는 총 8개의 소주제로 구성됐다. 주제는 첫 번째 ‘탈-형상화’, 두 번째 ‘풍경-기억’, 세 번째 ‘추상’, 네 번째 ‘글’, 다섯 번째 ‘초현대적 고독’, 여섯 번째 ‘평면으로의 귀환’, 일곱 번째 ‘재신비화된 세상’, 여덟 번째 ‘기원’으로 설정됐다. 섹션 별 소개 글들은 2차 세계대전, 이데올로기의 대립 등 역사적 사건과 함께 섹션별 전시 작품 의미를 함께 소개한다. 이는 미술의 근대화 과정을 보다 폭넓게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준다.

‘Dialogue(대화)’를 중심으로 완성된 전시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지점은 섹션별 대구미술관과 매그 재단의 소장품 배치다. 기획단계에서 전시 《모던 라이프》의 원래 제목은 ‘Dialogue(대화)’였다고 한다. 프로젝트 과정에서 양 기관은 서로의 소장품을 크로스 체크하며 전시를 준비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양 기관의 관계자와 학예사들은 수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는 양국의 작가‧작품의 대화로도 나아가는 장을 만들었고, 전시에 그 대화의 경험치를 녹여내고자 했었다. 하지만, 처음 전시 기획에서 좀 더 많은 작품을 선보이는 방향으로 기획이 수정되면서 작품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모던 라이프》가 전시 제목으로 채택됐다.

▲얼굴, 1963, 혼합재료, 42.5x49cm, 최영림, Collection of Daegu Art Museum
▲얼굴, 1963, 혼합재료, 42.5x49cm, 최영림, Collection of Daegu Art Museum

‘대화’가 기반이 된 전시는 구성에서 그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섹션에선 대구미술관 소장품과 매그재단의 소장품을 선명하게 구분해 놓은 반면, 세 번째 섹션에선 각 기관의 소장품이 작품 별로 대칭돼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마치 각각의 작품이 대화를 나누는 듯한 배치가 전시에 재미를 더한다.

첫 번째 섹션 ‘탈-형상화’는 형(形)에 대한 예술가들의 끊임없는 탐색으로 열린 모더니티의 한 면을 선보인다. 전시 《모던 라이프》에 들어서자마자 만날 수 있는 제르멘 리시에의 <La Montagne (The Mountain)>,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두 점의 조각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전후 격동의 역사를 온몸으로 맞고 서 있는 근대의 시작을 보여주는 듯하다. 공식화 된 형(形)의 존재를 넘는 작가들의 탐색은 새로운 시대를 모색하는 에너지를 품고 있다. 라울 우박, 후리리오 곤살레스의 회화 작품도 인상적이다. 인간에 대한 탐구를 기반으로 변형된 구조와 독특한 면 분할로 형상적인 양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율성이 돋보인다.

이러한 매그 재단 소장품과 함께 첫 번째 섹션에서 선보이는 대구미술관의 소장품은 최영림의 <얼굴>, <여인> 등의 회화 작품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조각 옆으로 배치된 작품은 한국전쟁 이후 우리 민족의 얼굴을 담아내고 있다. 비극적인 현실감이 투영돼 형이 무너져 검은 색으로 채워진 화폭은 당시 한국을 가로지른 참극을 은유한다.

첫 번째 전시공간을 보면서 놀라웠던 것은 매그재단과 대구박물관의 소장품이 특별하게 구분할 수 없었던 점이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옆 최영림의 회화는 서로 다른 문화권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같은 맥락의 감성을 지니고 있었다. 두 문화권의 작품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경험은 한 시대를 보다 풍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작품들이 대화를 하고 조화를 이루는 공간과 각 문화권의 색채를 독보적으로 선보이는 공간 모두 나름의 재미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M.C.6., 1962, 캔버스에 유화, 223x212cm, HANTAI Simon, Collection of Maeght Foundation
▲M.C.6., 1962, 캔버스에 유화, 223x212cm, HANTAI Simon, Collection of Maeght Foundation

고통, 삶의 환희, 기원으로 나아가

형(形)과 풍경, 추상, 글을 차례로 선보인 전시는 다섯 번째 섹션 ‘초현대적 고독’을 통해 전후 모더니즘 미술이 끊임없이 쏟아낸 형식적인 변화들을 현대적인 개념으로 계승한 작품들을 잠시 선보인다. 이 공간은 주 전시 공간에서 조금 떨어진 느낌으로 배치돼, 현대 속 ‘개인’과 ‘나’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와 잠시간의 시각적 환기를 불러일으킨다.

이후 여섯 번째 섹션부터는 ‘평면으로의 귀환’이라는 주제로 회화의 미래를 예견해보는 자리를 만든다. 모더니티의 이후를 선보이며, 대구미술관은 서양으로부터 유입된 화풍을 거부하고자 시작된 시도였던 ‘단색 회화’를 집중적으로 선보인다. 김기린, 윤형근, 이우환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평면성과 색채의 율동감을 보여주는 시몬 한타이, 클로드 비알라, 프랑수와 루앙의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일곱 번째 섹션 ‘재신비화된 세상’에서는 굴곡의 역사 속에서도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찬양과 생의 기쁨을 다룬 작품들을 선보인다. 인간에 대한 성찰이 담은 이응노, 인간의 존재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서세옥의 작품이다. 특히, 해당 섹션에선 프랑스 국보인 마르크 샤갈의 <La Vie 삶>도 만나볼 수 있다. 호안 미로의 천진난만한 작품까지 어우러진 일곱번째 전시 공간은 관람객에게 생의 활기찬 운율과 희망을 전달하는 듯하다.

▲무제, 1986, 종이에 먹, 137cm×69cm, 이응노,  Collecion of Daegu Art Museum
▲무제, 1986, 종이에 먹, 137cm×69cm, 이응노, Collecion of Daegu Art Museum

특히, 이응노의 회화와 마르크 샤갈의 <La Vie 삶>을 가깝게 배치해 한국과 유럽의 삶의 운율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은 것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전시는 마지막 섹션을 ‘기원’을 주제로 구성해 인간과 자연, 세계와 우주의 지속적이며 순환적인 관계를 제시하며 마무리를 한다. 이외에도 전시되고 있는 작가들과 모더니즘 미술에 대해서 깊이 있게 접근해볼 수 있는 아카이빙 공간을 제시해, 전시의 여운을 좀 더 오래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재신비화된 세상’섹션, 마르크 샤갈, 이응노, 호안 미로,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이 함께 전시돼 있다.
▲‘재신비화된 세상’섹션, 마르크 샤갈, 이응노, 호안 미로,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이 함께 전시돼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미술사의 큰 흐름을 작품들로 풀어낸 이번 전시는 ‘교과서적 전시’라는 별칭이 알맞았다. 섹션 별 주제에 따라 양 기관의 소장품을 흥미롭게 풀어냈고, 작품을 관람하는 것만으로도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전시 공동 기획자 마동은 전시기획팀장은 “이번 전시의 핵심은 현재를 반영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기대하는 모더니즘의 독자적인 성질이 드러난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시대는 언제나 변한다. 하지만, 앞선 시대의 흔적은 다가올 순간을 준비하고 희망할 수 있는 힘을 전한다. 한 시대의 경향을 정리함으로서, 지금과 미래를 꿈꿔 볼 동력을 얻을 수 있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