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 산책]삶과 죽음의 변증법, 말러 교향곡Ⅲ
[이채훈의 클래식 산책]삶과 죽음의 변증법, 말러 교향곡Ⅲ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
  • 승인 2022.01.1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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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그날 이후 말러 1번 <거인>은 내 젊은 시절의 벗이 됐다. 마음 편히 쉬고 싶을 때는 1악장 ‘자연시’(Naturlaut)를 들었고, 술이 덜 깬 채 일어난 아침에는 폭풍을 뚫고 승리를 외치는 4악장 피날레를 들었다. 그것은 젊은이의 음악이었다. 말러가 장 파울(Jean Paul)의 성장소설 <거인>에 심취해서 이 곡을 작곡했고, 영원과 무한을 동경하며 자연과 교감하며 인간의 내면을 발견하는 주인공 알바노를 자신과 동일시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다.

나 또한 말러를 알기 전에는 약간의 거부감을 갖고 있었지만, 그가 임종의 자리에서 “모차르트…”를 두 번 부르고 숨을 거두었다는 얘기를 들은 뒤 다소 호감을 갖게 됐다. 모차르트를 사랑한 사람이라면 나쁜 사람은 아닐 거라고 생각을 조금 고쳐먹은 것이다. 그의 교향곡 1번 <거인>을 듣고 정신없이 그의 음악세계에 빠져든 것은 이런 상태에 있을 때였다. 그 후 20대 내내 나는 ‘말러 열병’을 앓았고, 지금 나는 말러의 교향곡을 ‘궁극의 교향곡’으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말러는 생전에는 작곡가보다 지휘자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초인적인 카리스마의 지휘자로, 일에 대한 헌신과 집중력이 엄청났다. 1897년부터 1907년까지 빈 국립오페라를 이끌며 글루크, 모차르트, 베토벤, 베버, 바그너, 베르디, 푸치니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 그가 재임한 10년은 빈 국립오페라가 창의와 활력이 넘쳤던 시기로 기록된다. 지휘에 몰두하느라 작곡할 시간이 충분치 못했던 말러는 여름휴가를 이용해서 교향곡을 써야 했다. 말러는 알마와의 결혼을 앞둔 1902년 1월 31일, 그녀에게 보낸 편지에 “나의 시대는 올 것”이라고 썼는데, 말러의 시대는 그의 사후에 왔다. 지휘자 브루노 발터와 멩엘베르크가 그의 전도사를 자임했고, 레너드 번스타인과 게오르크 숄티가 1960년대에 그의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여 말러의 시대를 열었다. 1980년대 이후 세계 음악계에 ‘말러 열풍’이 번졌고, 그의 교향곡은 어느새 베토벤과 함께 가장 자주 연주되는 레퍼토리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5·18 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는 광주에서 아주 특별한 말러 연주회가 열렸다. 지휘자 구자범이 이끄는 광주 시립교향악단이 말러 <부활>을 연주한 것이다. 다. 김상봉 교수(전남대 철학과)가 우리말로 가사를 썼고, 오디션을 거친 자원자들이 합창에 참여했다. 어린이와 선생님, 젊은이와 노인, 아마추어와 프로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열정 하나로 뭉쳤다. 연주 당일, 지휘자와 연주자들은 혼신의 힘을 다했고, 90분의 연주가 끝났을 때 장내는 눈물바다가 됐다. 

“나 높이 날아오르리라, 사랑의 날개를 타고! 일어나, 자 일어나! 내 사랑아, 너 일어나! 어둠을 뚫고, 한빛 되어 살아나라!” 

세계 말러 연주사에 길이 남을 이날의 감동적인 연주를 광주MBC 이주형 PD가 다큐멘터리 <광주, 부활하다>에 담았다. 합창단에 참여한 음악 교사 최은아 선생은 말한다. “광주의 영령들 뿐 아니라 내 안에 잠자는 그 무엇을 깨워주는 음악, 이 시대를 깨우고 연주하는 사람들을 깨워주는 목소리였어요.” 5·18 민주화운동은 광주라는 한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로 기억해야 할 우리 모두의 현대사다. 이 곡은 광주 영령들을 부활시켰고, 연주에 참여한 이들의 마음을 이어주었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말러 음악의 위대성을 알려주었다. 지휘자 구자범의 말이다. “음악은 한 개인의 가슴만 울릴 수 있는 거죠. 음악 자체가 사회를 바꾼다는 건 말이 안 되지요. 음악은 그냥 세상을 반영할 뿐입니다. 그게 모이고 모여서 꿈이 될 수는 있겠지요.” 김상봉 선생이 쓴 <부활>의 피날레가 이어진다. 

“너는 헛되이 태어나지 않았다. 헛되이 살고 고통 받은 게 아니다. 태어난 것들은 모두 소멸하지만, 소멸한 것들은 모두 부활한다. 그대, 만물을 정복하는 죽음이여, 이제 그대가 정복되었다. 부활, 그렇다 부활! 내 심장이여, 너는 한 순간에 부활할 것이다.” 

말러의 <부활> 교향곡은 한국의 광주에서 ‘부활’했다. 이 곡은 1악장 ‘거인의 장례식’에서 출발, 2악장 렌틀러에서 아름다운 과거를 회상하고, 3악장 스케르초에서 끔찍한 기억에 전율하고, 4악장에서 최초의 빛을 명상한 뒤 5악장 피날레에서 찬란한 부활을 노래한다. 80년 5월 광주에서 죽어간 넋들을 추모하고 그 정신이 되살아나길 기원하는 내용으로 되살린 지휘자 구자범의 해석을 말러가 알았다면 기뻐하며 박수를 쳤을 거라고 확신한다. 

말러는 소통을 원했다. 그는 오로지 음악을 통해서만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었고 그 순간에만 그의 세계는 완벽해졌다. 그 뒤에는 다시 고독이 찾아왔다. 그를 제대로 이해해 주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였다. 지휘자 멩엘베르크는 음표 뒤에 숨어 있는 뜻을 설명해 달라고 말러에게 요구한 적이 있다. 말러는 대답했다. “내 음악은 그 자체로 연주해야 합니다. 거기엔 어떤 설명도 덧붙일 필요가 없어요.” 말러는 젊은 시절 교향곡 1번 <거인>과 2번 <부활>을 설명하는 프로그램 노트를 직접 쓴 적이 있지만, 곧 폐기해 버렸다. 말이란 게 얼마나 부질없는지 깨달은 것이다. 말러는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나는 모든 것을 악보에 적어 놓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악보에 적는 게 불가능하다.” 말러가 얘기한 ‘가장 중요한 것’은 해석하는 사람이 찾아야 하는데, 그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이 고독한 존재라면 완벽한 소통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말러처럼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던 도흐나니는 말했다. “천재의 음악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저 좀 더 가까이 다가서려고 노력할 뿐이다. 아직 답을 모르는 것을 파악해 보려고 애쓰는 게 훨씬 더 흥미로운 일 아닌가.” - <말러를 찾아서>(포노, p.89)

말러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 이제 침묵하고 그의 음악을 들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