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대한민국 제1호 유치과학자 김재관 평전 발간…『뮌헨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기적』
[신간]대한민국 제1호 유치과학자 김재관 평전 발간…『뮌헨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기적』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2.01.21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산업화의 설계자, 김재관 박사
▲저자 홍하상|백년동안|정가 13,500원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50년 전 ‘한강의 기적’은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낡아버린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난 곳은 아직까지 라인강과 한강 뿐이다.

50년 전, 수입 대체 경공업으로 근근이 먹고살던 나라가 단숨에 수출 대국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가능케 한 핵심 하드웨어 두 가지는 단연 경부고속도로와, 철강ㆍ조선ㆍ기계ㆍ정유로 대표되는 중화학공업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세계 최빈국 한국보다 사정이 조금 나았던 다른 개발도상국들은 왜 인프라와 중화학공업을 건설해 한국과 같은 발전을 이루지 못했을까?

그 대답을 『뮌헨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기적』은‘과학기술자’에서 찾는다. 이 책은 1950년대 독일 정부 장학생으로 독일에 유학하고 현지 철강회사에 근무하다 1967년 한국과학기술원(KIST)의 제1호 ‘유치과학자’로 귀국, 포항제철ㆍ현대조선ㆍ현대자동차 등 한국의 철강ㆍ중기 산업 육성의 밑그림을 그린 김재관의 평전이다. 저자는 한국 산업화의 역사에서 부당하게 소외된 과학기술자들의 능력과 헌신을 재조명한다.

김재관(1933~2017)은 경기 화성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기계공학과 재학 중 6ㆍ25사변으로 부산으로 피난, 학업을 계속하며 미군 부대 통역을 맡다가 특수강에 눈을 떴다. 졸업 후 한국산업은행에 입사했다가 독일 정부 장학생으로 뮌헨 공과대학에 유학, 금속재료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창립 때 해외 유치과학자 1호로 참여, 제1연구부장과 특수기재연구실장, 이후 상공부 초대 중공업차관보, 국방과학연구소(ADD) 부소장을 거치며 포항제철 설립을 비롯해 기계ㆍ조선ㆍ자동차 등을 핵심으로 하는 한국의 중화학공업화와 방위산업 육성의 청사진을 제공했다.

산업화를 넘어 선진화로 도약하기 위해 국가표준 제도가 절실함을 내다보고 한국표준연구소를 설립, 5년간 소장으로 있으면서 한국 표준시 확립 등의 성과를 내고, 헌법에 ‘국가표준’을 명문화하는 데 기여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 인천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와 대학원장을 지내며 후학을 양성했고, 편역서 『묄렌도르프』를 통해 구한말 독일인 재정고문 묄렌도르프가 조선의 산업화에 기여한 면모를 재조명했다.

KIST가 발족하고 해외에서 연구생활을 하고 있던 과학자 18명을 ‘유치과학자’ 1호로 불러들일 때, 유일하게 비(非)미국유학파로 포함된 게 김재관이었다. 김재관은 한국 최초의 종합제철소 설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대일 청구권자금’ 협상의 전면에 나서 연산(年産) 103만 톤 규모의 제철소 설립안을 관철해 자금을 따내고, 그가 손수 설계하고 말뚝을 박아 구획한 포항제철(현 POSCO) 평면은 20년 동안 생산 규모가 5배로 증가할 때까지도 기본설계 변경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2021년 세밑에 51세 나이로 퇴역한 포스코 ‘고로(高爐) 1호’가 바로 김재관이 고집스레 설계한 103만 톤 그 용광로다.

정주영의 ‘500원 지폐 거북선’ 전설의 바탕에도, 최초 고유모델 국민차 ‘포니(PONY)’의 배경에도 김재관이 있었다. 그는 KIST 부장ㆍ실장을 거쳐 국방과학연구소(ADD) 부소장으로 방위산업의 기틀을 닦은 김재관은 상공부 초대 ‘중공업차관보’로서 현대의 고유모델 자동차 생산 결단을 이끌어냈다. 신설된 한국표준연구소(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초대 소장으로서 대한민국 ‘시간 독립’을 이뤄 냈다. 표준연 홈페이지(kriss.re.kr) 첫 화면인 그 ‘대한민국 표준시’다.

김재관의 마지막 숙원은 표준제도를 확립해 헌법에 명문화하는 일이었다. 박정희의 예기치 않은 서거 후에도 표준연 소장으로서 ‘표준제도 조항의 헌법 명문화’를 추진하고, 정치적 격동기에 사인(私人)으로 돌아가서도 국회와 정당, 주무부서를 문지방 닳도록 드나들며 설득한 결과가, 1980년 제5공화국 헌법부터 현행 헌법까지 이어지고 있는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제127 2항)라는 조항이다.

윤계섭 서울대 명예교수, 이상희ㆍ채영복 전 과학기술부장관, 김명자 전 환경부장관, 정낙삼 표준연 1호 유치과학자, 신성철 전 KAIST 총장이 추모와 추천의 글들을 썼다. 이들은 “한국의 경제 기적 뒤에 가려진 김재관 박사 같은 과학기술자들의 업적과 헌신이 재조명되고 널리 알려질 계기가 되기 바란다”라고 입을 모은다. 

한편, 이 책의 저자 홍하상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38년간 전 세계를 발로 뛰며 논픽션을 써 왔다. 『뮌헨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기적』은 생전의 김재관 박사를 비롯, 생존한 증언자들을 면접하고 독일 현지를 답사 취재한 결과물이다. 『오사카 상인들』 『교토 천년상인』 『도쿄 긴자상인』 『일본의 상도』 『이병철 경영대전』 『정주영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유럽 명품 기업의 정신』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으며 일본, 중국, 대만, 태국, 러시아 등에서 12권이 번역 출간되었다. 포스코전략대 일본담당교수를 지냈고, 현재 전경련 교수로 있다. 한국일보 백상출판문화상, 일한문화교류상(일본 외무성)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