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비평]-서울오페라앙상블 '장총', 뛰어난 작품성과 대중성으로 갈채 받아
[이채훈의 클래식비평]-서울오페라앙상블 '장총', 뛰어난 작품성과 대중성으로 갈채 받아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
  • 승인 2022.01.2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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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K-오페라다! 창작 오페라를 보러 가자!
22~23일, 대학로 아르코 대극장서 올려져

<장총>은 재미있다. 의미와 감동도 있다. 한국 팬들에게 어필할 만한 작품성과 대중성이 있으니 한류 열풍을 타고 세계무대로 진출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1월 22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초연된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장총>은 창작 오페라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먼저, 소재와 스토리가 보편적 호소력을 갖고 있다. 사람이 아닌 무생물인 장총(총기류)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증언한다. 백두산 졸참나무로 만든 장총은 일제 말기에는 독립군과 일본군을 죽이는 무기였고, 해방 후에는 국군, 인민군, 빨치산, 토벌대의 무기가 되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는다. 장총에는 이루지 못한 졸참나무의 꿈이 새겨져 있다. 졸참나무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의 뜻과 달리 학살의 무기가 됐다. 낡은 장총의 방아쇠가 호른의 밸브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울림이 컸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창작오페라 '장총'의 쇼케이스 한 장면.(사진= 2021 ArkoCreate / ⓒWon Gyu Choi)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창작오페라 '장총'의 쇼케이스 한 장면.(사진= 2021 ArkoCreate / ⓒWon Gyu Choi)

장총의 비극적 삶은 전쟁과 학살로 얼룩진 지구촌에서 두루 공감을 일으킬 만하다. ‘빨갱이’에 대한 분노로 ‘멸공’을 외치는 길남은 폭력의 화신처럼 보인다. 하지만, 원래 음악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그가 음악의 추억을 통해 선한 인간성이 살아 있음을 발견하는 대목은 감동이었다. 악극을 하고 땜질을 해 주는 선녀와 봉석의 사랑을 <로미오와 줄리엣>의 알레고리로 설정한 것도 흥미로웠다. 봉석이 선녀의 오빠를 죽였는데도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니,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우리 분단 현실과 연결한 작가의 상상력이 기발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오페라 중반에 배치하여 드라마를 입체적으로 구성한 것도 훌륭했다.

오페라는 뭐니뭐니해도 음악이다. 작곡가 안효영의 음악은 시종일관 생동감 있었고, 일반 청중들이 듣기에 어렵지 않았다. 쉽게 귀에 들어오면서도 진부하지 않았다.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를 적절히 배합하여 신선하고 다양한 음색의 팔레트를 자유롭게 구사했다. 20세기 음악 어법, 그 중에서도 한스 아이슬러나 파울 데사우의 민중 오페라를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었다. 선녀와 봉석의 악극 장면에서는 한국전쟁 때 유행한 <굳세어라 금순아>를 연상시키는 선율이 흥겨웠다. 서구 팝송의 영향을 덜 받은 북한 노래와 비슷하게 느껴졌는데, 남과 북이 함께 즐길 만한 대목이었다. 호른, 하모니카 얘기가 나올 때 해당 악기 소리를 들려준 것은 바그너의 라이트모티브를 연상시켰다. 호른 얘기할 때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느린 악장의 주제를 호른이 연주한 대목은 인상적이었다. 쇼팽 에튀드 <이별의 노래>, 베토벤 <합창> 교향곡 피날레의 터키 행진곡 대목,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에서 브륀힐데가 깨어나는 대목 등 클래식의 유명한 모티브를 슬쩍 삽입하여 ‘숨은그림찾기’로 음악 듣는 재미를 더했다.

초연인데도 안정된 무대를 선보인 것은 연출자와 출연자, 그리고 모든 스태프가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로 보인다. 테너 김주완(장총), 소프라노 장지민(졸참나무), 바리톤 최병혁(길남), 소프라노 정시영(선녀), 테너 석승권(봉석), 메조소프라노 이미란(정아) 모두 고른 가창력과 연기력을 발휘했다. 출연자들 사이의 호흡이 잘 맞았기 때문에 특정 개인이 두드러지기 보다는 적절한 앙상블을 시종일관 유지했다. 구모영 지휘의 코리아쿱 오케스트라는 솔로와 투티, 템포와 다이내믹을 적절히 안배하여 편안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관악 앙상블도 거칠지 않게 잘 처리했고, 특히 정아가 등장하는 장면의 첼로 솔로는 무척 아름다웠다. 하모니카 소리도 다른 악기에 파묻히지 않고 잘 들렸다. 기차 소리 등 효과음도 오케스트라와 잘 어우러졌다. 심플하면서 안정된 기하학적 디자인의 무대, 국화 문양과 꽃 흐드러진 봄날을 보여준 스크린도 효과적이었다.

굳이 ‘옥의 티’를 지적해야 성실한 리뷰가 될 것이다. 대본은 전체적으로 훌륭했고, 톡톡 튀는 언어가 귀에 잘 들어왔다. 하지만 디테일은 다듬을 여지가 있었다. “사랑은 무엇인가?”란 물음에 “그대는 나의 심장, 나는 그대의 심장”이라고 한 것은 평면적인 대사로 보였다. 심장이란 단어를 쓰기보다는 ‘심장에 와 닿는’ 구체적인 표현을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나무였었어”처럼 된소리가 두 번 연속 나오는 가사는 음악적으로 좋지 않다. “나무여써써”보다는 “나무여써”가 낫지 않을까. 아울러, 주역인 장총을 좀 더 역동적으로 연출할 필요는 없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지금은 내레이터 역할에 그친 느낌인데, 장총과 나무의 고통스런 액션이 있으면 좀 더 설득력을 높일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22일 대학로 아르코 대극장에서 올려진 창작오페라 '장총'의 무대인사 장면.
지난 22일 대학로 아르코 대극장에서 올려진 창작오페라 '장총'의 무대인사 장면.

음악에 대해 ‘희망사항’을 얘기하는 것은 금기일 것이다. 하지만, 청중으로서 솔직한 바램을 얘기하는 걸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그너의 라이트모티브처럼 호른과 하모니카 소리를 들려주었는데, 이왕이면 ‘나팔 소리’ 얘기할 때 트럼펫 소리도 듣고 싶었다. 아울러, ‘나무들의 통곡’ 얘기가 나올 때 ‘나무들의 통곡’ 소리를 기대했는데 안 나와서 다소 실망스러웠다. ‘나무들의 통곡’을 오페라 맨 앞에 서곡 대용으로 넣고 오페라 종반에 다시 나오도록 하면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토벌대의 노래’가 종반에 나온 것도 다소 뜬금없게 느껴졌다. 차라리 초반에 이 노래를 넣고, 설화의 죽음 직전에는 라이트모티브로 처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 ‘토벌대의 노래’와 짝을 이룰만한 ‘빨치산의 노래’를 삽입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베토벤도 <피델리오>를 수차례 개작했다. <장총>을 다시 무대에 올릴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다. 그 때 참조해 주시면 고맙겠다는 생각이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창작 오페라가 많이 나오고 있다. “오페라가 어렵다”는 편견도 차츰 깨지고 있다. 반갑고 흐뭇한 현상이다. 창작 오페라의 소재와 장르로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예술적으로 조명한 <장총>은 창작 오페라의 활성화가 낳은 훌륭한 결실이다. 이 좋은 작품이 단 두 회 공연으로 막을 내리는 것은 무척 아쉽다. 창작 오페라도 창작 뮤지컬처럼 장기 공연이 가능하도록 정부의 후원과 팬들의 사랑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K-팝과 K-드라마가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K-오페라를 세계 오페라 극장에서 앞다투어 초청하는 날도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K-오페라를 세계에 내놓으려면 먼저 우리 관객들이 K-오페라를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창작 오페라를 보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