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장총’ 한 자루”…서울오페라앙상블 창작오페라 <장총>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장총’ 한 자루”…서울오페라앙상블 창작오페라 <장총>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2.01.24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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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를 꿈꾸다 무기가 된 졸참나무 이야기
김주완·최병혁·정시영·석승권·이미란·장지민 출연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올해로 창단 28주년을 맞는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의 창작오페라 <장총(The Trigger)>이 지난 22일과 2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초연 무대를 선보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동시대를 대표하는 우수창작신작을 발굴하기 위해 지원하는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의 창작오페라 부문 선정작인 이 작품은, 동아연극상, 차범석희곡상 등을 수상하며 두각을 드러낸 작가 김은성과 작곡가 안효영이 오랜 작업을 통해 탄생시켰다.

▲2021 ArkoCreate 창작산실 / ⓒWon Gyu Choi
▲2021 ArkoCreate 창작산실 / ⓒWon Gyu Choi

제국주의 일본의 군수공장이 있던 인천 부평 조병창에서 생산된 99식 소총의 의인화와 한국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마을 사람들의 갈등상황에 놓이게 된 한 유랑악극단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야 했던 ‘해방전후사’를 전쟁 풍자 우화극(寓話劇)으로 다룬 창작오페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최후 항쟁을 하던 일본 제국주의는 전시총동원령을 내린다. 인천 부평 조병창에서 쉴 새 없이 무기를 생산한다. 이때 만들어진 소총 한자루의 일생이 스토리의 기본 골격이다. 원래 이 총은 백두산 압록강변의 졸참나무였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아닌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가 되고 싶었다.

일본 황실의 국화 문양이 새겨진 장총은 기구한 삶을 산다. 처음엔 일본군 소총이 돼 독립군을 죽이더니, 독립군에 빼앗긴 뒤엔 일본군을 죽인다. 이후 총은 중국 팔로군의 손에 들어갔다가 다시 광복군에게 넘어간다.

국내로 들어와서는 미군정에 압수당해 제주도 국방경비대 훈련병의 총이 됐다가 6·25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차례대로 국군, 인민군, 학도병, 의용대의 총이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번엔 지리산 빨치산의 총이 됐고, 토벌대에 넘어가면서 공비들을 없애는 최전선에 선다.

장총의 시각에서 타인에 대한 사상의 차이로 증오가 피가 천지를 오염시켰던 한국전쟁 당시, 한 마을에서 일어난 빨치산들과 우익청년의 전투와 심리를 다룬 내용으로 종국에는 증오를 뛰어넘어 화해와 희망을 노래한다.

슬픈 역사의 한 페이지를 그린 오페라 ‘장총’은 ‘악기를 꿈꾸다 무기가 되어버린 한 나무 이야기’를 다뤘다. 당초 악기가 되고 싶었으나 조병창에서 총으로 태어난 운명의 장총도 결국 다시 쇠로 녹여져 악기로 태어나고자 하는 꿈을 품는다는 메타포를 담았다.

천안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구모영의 지휘,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을 역임한 이경재의 연출, 오페라 100여 편을 연출한 장수동 예술감독의 탁월한 무대 앙상블, 지리산 아래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한국적인 미니멀 무대(무대디자인 최진규)를 중심으로, 장총 역에 테너 김주완, 길남 역에 바리톤 최병혁, 유랑극단 선녀 역에 소프라노 정시영, 봉석 역에 테너 석승권, 지리산 여자 정아 역에 메조소프라노 이미란, 나무 역에 소프라노 장지민이 출연했으며, 코리아 쿱오케스트라와 노이오페라코러스가 함께했다. 전지성이 음악코치를, 노이오페라코러스(단장 박용규)가 합창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