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모차르트①]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가 잊혀졌다고?
[우리가 몰랐던 모차르트①]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가 잊혀졌다고?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
  • 승인 2022.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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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zart Wearing Sunglasses Art Board Print ⓒSuper Me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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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 ‘소금의 도시’란 뜻이지만 소금의 짠 맛보다는 ‘모차르트 쿠겔’(모차르트 얼굴로 포장된 동그란 초콜렛)의 달콤한 감촉을 떠올리게 한다. 이 도시는 모차르트 덕분에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항 이름부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공항’이다. 해발 542미터 높이에서 중심가를 굽어보고 있는 잘츠부르크성Hohensalzburgfestung은 이 도시의 랜드마크다. 1756년 모차르트가 태어난 집Geburtshaus과 1773년부터 그의 가족이 살았던 집Wohnhaus, 구시가 한가운데의 돔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잘츠부르크 대성당, 레지덴츠(Residenz, 대주교의 겨울궁전), 미라벨궁(Schloss Mirabel, 대주교의 여름궁전) 등 이 도시의 명소들은 모두 모차르트의 체취가 서려 있다.

소년 모차르트는 대주교가 미사를 집전하는 대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근무하며 수많은 미사곡을 작곡했고, 레지덴츠와 미라벨궁에서 디베르티멘토 같은 여흥음악으로 대주교와 귀족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요즘 잘츠부르크 대성당의 종탑에서는 모차르트가 5살 때 작곡한 메뉴엣 선율이 불안한 음정으로 울려 퍼진다. 모차르트 시대에 사용했음직한 마차가 광장을 가로지르고, 18세기 복장을 차려 입은 사람들이 관광객들을 불러 세운다. 그들의 안내에 따라 전통 식당에 들어가면 현악사중주단과 2~3명의 성악가가 들려주는 모차르트의 가벼운 음악들 -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디베르티멘토 D장조 K.136과 F장조 K.138, <피가로의 결혼> 백작부인과 수잔나의 이중창, <돈조반니> 체를리나와 돈조반니의 이중창, <마술피리>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이중창 등 - 을 감상하며 식사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도시가 모차르트에게 쓰디쓴 좌절과 굴욕을 안겨주었고, 자유를 갈구하는 젊은 그에게 냉정하게 등을 돌렸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놀랍게도, 모차르트는 고향 잘츠부르크를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더 넓은 세상에서 꿈과 재능을 맘껏 펼치길 원했던 그는 ‘억압의 도시’ 잘츠부르크를 향해 수없이 독설을 날렸다. 1781년 5월 26일, 빈에서 잘츠부르크의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잘츠부르크에서 하는 일은 짐스러워서 좀체 집중할 수가 없어요. 왜냐구요? 전혀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중략) 제 재능을 펼치도록 자극을 주는 게 하나도 없어요! 제가 연주할 때나 제 작품이 연주될 때, 그냥 빈 테이블과 의자를 향해 연주하는 느낌이죠. 잘츠부르크에 쓸 만한 극장이라도 하나 있다면 모르겠지만….”

오페라 극장 하나 없는 열악한 조건, 궁정악단 단원들의 뒤쳐진 기량과 해이한 기강 등 불만거리 아닌 게 없었다. 음악가를 하인 취급하는 콜로레도 대주교의 권위주의적 태도를 그는 견딜 수 없었다. 자유를 갈구한 그는 25살 때인 1781년 6월,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속박을 걷어차고 빈에서 프리랜서 음악가로 데뷔한다. 그 뒤 잘츠부르크에서는 <하프너> 교향곡 K.385, 대미사 C단조 K.427, 오페라 <후궁에서 구출하기> K.384 등 몇몇 예외를 빼면 모차르트 음악이 거의 연주되지 않았다. 콜로레도 대주교에게 모차르트는 예의도 모르고 분수도 모르는 ‘불경스런 놈’이었고, 그의 음악은 ‘이 못된 녀석’의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게 할 뿐이었다. 메너드 솔로몬은 “콜로레도 대주교가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의 이름 자체를 지워버리고 싶어 했다”고 썼다. 모차르트가 1791년 세상을 떠날 무렵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는 거의 잊혀진 사람이 됐다. 

이러한 역사를 생각하면 요즘 잘츠부르크 사람들이 모차르트를 상품화해서 먹고 사는 게 커다란 아이러니로 보일 수 있다. 모차르트를 관광 상품으로 이용하는 게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자성의 소리는 언제나 존재했다. 2006년 모차르트 탄생 250년 가념 행사 때 지휘자 아르농쿠르는 ‘모차르트 상업주의’를 강하게 질타한 바 있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늘 그렇지 않았던가. 인류에게 고귀한 선물을 남겨주고 자신의 희생으로 고향에 불멸의 명예를 안겨 준 사람을 기리고 감사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언제나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게 우리 사는 세상 아닌가. 


*이번 호 칼럼부터 독자들의 관심과 흥미, 상식을 더해드리기 위해 퀴즈를 넣었습니다. 댓글로 정답을 맞춰주시면 되겠습니다. 정답은 맞추시는 분 중 한 분을 추첨해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편집자 주)

퀴즈1. 모차르트가 1781년 빈에 데뷔하여 1791년 사망할 때까지 10년 동안 잘츠부르크에서 연주된 적이 없는 곡은? 
① 하프너 교향곡   ② 오페라 <후궁에서 구출하기>   ③ 대미사 C단조   ④주피터 교향곡 

                                                                                                              (정답은 다음호에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