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나는 선글라스를 낀 채, 오코노미야끼를 먹었다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나는 선글라스를 낀 채, 오코노미야끼를 먹었다
  • 윤이현
  • 승인 2022.02.0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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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최근 윤영채에서 윤이현으로 개명했다.
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일주일 전에 쌍꺼풀 수술을 받았다. 불친절한 간호사들의 손에 사지가 묶인 채 무자비하게 눈을 찔러대는 마취 주삿바늘에 온몸을 부르르 떨고 나니 어느새 수술이 끝나 있었다. 무자비하게 건물 밖으로 내던져진 나는 주섬주섬 챙겨온 선글라스를 꼈다. 처방전 약값에 한 번, 서로에게 어떠한 관심도 없는 이 동네 분위기에 다시 한번 당황해하며 친구를 만나기 위해 신사동 골목으로 걷고 있었다. 눈이 너무 아파서 어딜 향해 가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눈가에 고인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시야가 맑아지더니 저 멀리 서 있는 친구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친구는 비틀거리는 내 꼴이 우스웠던지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나 역시 눈물을 흘린 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대기자가 있는 식당에 예약을 걸어두고 잠시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영국의 한 가정집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이국적인 곳이었다. 우리 동네에선 찾아볼 수 없는 아주 감성적이면서도 묘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색다른 곳. 나는 바닐라 라떼를, 친구는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자리에 앉은 뒤, 조심스레 선글라스를 벗어 보였다. 나 역시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한 터라, 친구의 반응을 살피기 전에 얼른 휴대폰을 꺼내 들고 내 모습을 비춰봤다. 명란젓 하나 올려놓은 듯한 눈두덩이 밑으로 눈물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심각한 몰골에 당황한 나는 급하게 다시 선글라스를 꼈다. 한바탕 웃고 난 뒤에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요즘 주변에 괜찮은 사람은 없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지, 무슨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는지, 늘 그렇듯 뻔한 내용의 수다였다. 그러나 신기한 건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단 한 번도 지루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이 어색한 곳도 집처럼 편해져 갔다. 친구는 최근 소개받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참 좋은 남자지만 이성적으로 호감이 가질 않아 고민된다고 했다. 해줄 말이 마땅찮아 그저 듣고만 있던 내게, 새로 시작한 일은 어떻냐고 이번엔 친구가 물어 왔다.

대답에 앞서 잠시 말하자면, 나는 요즘 술을 배우러 다닌다. 그중에서도 전통주를 빚는다. 사실 우리 집엔 올해로 90년 된 지역 지정 문화재인 허름한 주조장이 있다. 진로로 방황하고 고민하는 일에 지쳐버린 나머지, 가업을 잇기 위해 양주(釀酒, 술을 제조하는 일)를 본격적으로 배워보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술 최고의 명인이 운영하는 전통주연구소에 출근해서 수강생들의 수업을 돕고 허드렛일을 하기도 하며, 동시에 청강생으로 수업을 듣고 있다.

다시 친구와의 대화로 돌아가기로 하자. 매일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 새로운 분야를 알아나가는 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마주하는 일. 무엇보다 매일 술이 익어가는 향을 맡으며 여러 종류의 술을 맛볼 수 있다니. 이렇게 마음 편하고 즐거운 일은 오랜만인 것 같다고 답했다. 친구는 참 다행이라며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리곤 다시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무언가를 물으려던 사이, 식당에서 연락이 왔다. 어느덧 낮과 밤의 경계를 구분 짓기 힘든 신사동의 7시가 가까워져 왔다. 선글라스를 낀 채, 친구와 식당으로 향했다.

한 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맛본 오꼬노미야끼(밀가루를 가쓰오부시 우린 물에 개어 잘게 썬 양배추를 섞은 후 취향에 따라 각종 재료를 넣고 지져 먹는 일본 요리)는 정말 훌륭했다. 톡톡 터지는 새우의 맛도, 아삭아삭한 양배추의 식감도, 즐거워하는 친구의 표정을 보는 것도 행복하기만 했다. 까만 렌즈 너머의 사물이 잘 분간이 되진 않았지만, 그저 이 겨울의 해가 저물고 있다는 것, 추위 속에 온기를 주는 이와 음식을 나누고 있다는 게 좋았다. 최근까지 겪었던 어려움과 슬픔도 모두 위로받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든든히 먹고 모 중학교 앞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길, 우리의 대화는 멈출 줄 몰랐다. 나는 친구에게 자꾸만 장난을 쳤고, 친구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 농담을 받아주고 있었다. 어딘지 익숙한 이 거리, 한때 소중했던 사람이 나를 바래다주던 길이 이 길이었음을 문뜩 깨닫고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입을 닫고 말았다. 친구는 내 마음을 눈치챈 건지, 짧지만 무거운 침묵을 기다려주었다. 그때까지도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수술의 후유증으로 흐르는 건지, 아픈 추억이 눈물샘을 건들고 있는 건지 잘 분간할 수는 없었다.

그날 친구가 조심스레 묻고자 했던 질문은 분명, 요즘은 괜찮냐는 그저 단순한 물음이었을 것이다. 애써 말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나는 괜찮다. 이젠 정착할 곳도 생겼고, 쌍꺼풀도 가지게 되었으니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다. 친구는 아마 이런 내 마음을 알아봤을 테다. 지난 선택, 사랑 그리고 실패를 통해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도 말이다. 그때, 기다리던 버스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눈가의 상처를 소독하러 몇 번 병원에 들러야 하는 것을 빼면, 아마 다시는 이 동네에 올 일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이 낯선 곳에서 멀어지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친구와 사이좋게 손을 잡고 익숙한 우리의 땅으로. 굽이굽이 난 길을 돌아 걸어가기로 했다.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소시지를 눈썹 안에 감춘 채 비록 흐르는 눈물이 바닥에 툭툭 떨어지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