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1.유연해질 것, 자유로워질 것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1.유연해질 것, 자유로워질 것
  • 윤이현
  • 승인 2022.02.09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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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전 세계적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성격 유형 검사 중 하나다.

MBTI의 종류와 구성 (출처: MKYU 비지니스를 위한 MBTI)
MBTI의 종류와 구성 (출처: MKYU 비지니스를 위한 MBTI)

  검사가 끝나면 네 글자의 결과가 나온다. 자리별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으니, 2의 네 제곱은 총 16. 즉 유형은 16가지다. 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유형을 알게 되었다면, , 인터넷을 켜자. ‘자신을 발견하세요!’ 따위의 문구로 포장된 성격 유형별 특징에 대한 글들이 쏟아질 테니. 참고로 나의 유형을 잠시 말하자면, ESTP(모험을 즐기는 사업가 유형 또는 수완좋은 활동가 유형).

그러나 나는 이 허무맹랑한 검사를 믿지 않기로 했다. 맹신하던 때도 있었다. 나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이가 세상에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을 느끼며 동질감에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자신도 알지 못했던 행동들을 이해하게 되면서, 이제 나를 좀 알 것 같다고 떠들어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들과 나는 각자의 유형 안에서 행동하기 시작했다. 더욱 외향형답게, 이성적으로, 현실적으로 굴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우리는 점점 정해진 반경을 벗어날 수 없는, 쳇바퀴 속 다람쥐 신세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었다. 아니 달라질 용기도, 여유도 몰랐다. 이미 마음과 정신세계는 일정한 모양새로 고정되고 말았다.

그러나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과는 달리, 과거에 내가 경험한 사람은 보다 더 다채로웠으며 입체적이었다. 또한, 모순적이기도 했으며 전혀 일관적인 모양새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 모험을 즐기는 사업가라는 설명과는 다르게, 나는 모험을 즐기지 않는다. 설명 속엔 시원시원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나와 있지만 실은 그렇지도 못하다. 의외로 사소한 부분에서 상처를 받고, 큰 상처에는 차라리 덤덤한 편이다. 경쟁을 즐긴다는 설명과는 다르게 이를 나는 매우 싫어한다. 유흥을 그리 즐기지도 않으며 주말이면 방에 처박혀 온종일 영화를 보는 편이다. 그러면서도 술을 좋아하는 나는 술이 곁들여지는 모임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은 붙잡지 않지만, 쿨하기는 커녕 인연이 끝나면 비교적 오랫동안 아파하며 자책하곤 한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도 못하다. 단 하나 비슷한 점은 반항을 좋아한다는 사실뿐이다. 이렇듯 나의 경우만 보더라도 하나로 귀결할 수 없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사실 당연한 거다. ‘하루에도 열두 번 바뀌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는 꽤 잘 검증된 옛말을 빌지 않더라도 사람을 단순히 몇 줄로 정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복잡 미묘한 인간의 존재를.

내가 학창 시절에 자주 반항했던 이유는, 초등학교 선생님들로부터 당했던 차별과 폭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상처에 무뎌질 수 있었던 건 그만큼 크고 작은 외침(外侵)에 자주 노출되었었다는 증거였다. 경쟁을 싫어하는 까닭 역시, 늘 그 속에 내 던져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딱히 할 말이 없는 가족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보다 영화를 보는 게 더 나았고, 그마저도 싫증 나면 억지로 술자리를 만들어 집 밖을 전전했을 뿐, 단순히 타고난 성격의 문제는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결핍에 따른 것이었다.

따라서 의미 없는 질문지에 답을 끄적이는 것보다는 의 부족함을 알아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까를 믿게 되었다. 검사 하나가 라는 존재의 본질을 찾아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건 1차원적인 사고방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창조해가는 과정이다.’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말한다. 이와 동시에 최고의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저자 벤저민 하디(Benjamin Hardy)고정 마인드셋의 함정이라는 말로 MBTI와 같은 성격 유형 검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관점의 문제점은 어렵거나 복잡하거나 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연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럴 때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맞추기보다 내향성과 같은 라벨을 자신에게 붙여 다양한 상황에서의 자발성, 개방성, 노력 부족을 정당화하려 한다. 그 결과 노력하는 만큼 성장하기는커녕, 그 라벨의 수준 정도로 떨어지게 된다.’라고 말이다.

그들의 견해에 나 역시 동의한다. 우리가 그토록 꿈꾸고 희망했던 진정한 자기 자신은 허상에 불과하다. 한 시간 단위로도 바뀌는 것이 사람이며, 환경에 쉽게 지배당하고 마는 것이 인간이란 동물이다. 그런데도 이런 검사가 성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확실한 현재, 미래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고자 하는 심리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안에는 를 쉽게 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내포된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무엇보다도 유연해져야 한다. 유연해지기 위해서는 내가 만들어낸, 자기 자신을 가두고 있는 무지막지한 프레임을 과감하게 부실 수 있어야 한다. ESTP라는 단어가 알게 모르게 내게 부여한 함축된 이미지와 사고방식을 딛고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명심하자. 오늘 밤엔 나를 끊임없이 같은 자리에서 맴돌게 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들을 노트에 적어보자. 그리고 그 옆면에는, 되고 싶은 를 하나씩 열거해보자. 지금 이 시각 이후부터는 지난날의 성격 유형 검사 결과를 잊어버리기로 하자. 그러니 우린 지금 당장, ‘모험을 즐기는 사업가라는 명함을 찢어버리고 나를 얽매고 있는 고정관념의 쇠사슬을 끊어내는 모험을 시도하여 진정한 자유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