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완벽한 크리스마스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완벽한 크리스마스
  • 윤이현
  • 승인 2022.02.11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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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사람은 이상하고 사랑은 모르겠어.’ 한동안 들었던 노래의 제목이다.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은 더더욱 알 수 없었다. 그러니 타인을 이해하며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의 우주와 또 다른 우주가 맞닿는 일만큼 어려울 테다.

열여섯의 크리스마스에 엄마가 동네의 카페로 불러내기 전까지 나는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리저리 부서를 옮겨 다니며 힘들어하시던 엄마는,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친한 동기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장례식에 다녀온 뒤 나를 불러냈던 것이다. 엄마는 울며 말했다. ‘엄마는 너무 별로인 엄마인 거 같다. 엄마처럼 살지 마! 제발, 닮지도 말고.’ 삶에서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을 꼽아보라면, 주저 없이 나는 이날을 기억해 낼 것이다.

잔잔한 캐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눈이 살랑거리며 사뿐히 내려오는 분위기 좋은 밤이었다. 유리창 너머로는 서로를 끌어안은 연인들이 한껏 달아오른 성탄절 분위기를 설렘으로 만끽하고 있었고, 함박눈을 맞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은 밤거리마저 환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본 눈은 가볍게도 하얗게도 보이지 않았다. 눈과 창, 커피 향, 사랑 그리고 절망이 이어지던 그 밤. 그 순간이 느린 동작처럼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딸에게 자신을 닮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얼마나 많은 자기 혐오가 있고 난 뒤에야 가능한 일일까.

그날 이후로 엄마를 이 아닌 그저 한 인간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엄마라는 대상은 자식을 위한 가늠할 수 없는 존재라고 무의식적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라는 건 하나의 역할이었을 뿐이지, 그녀의 전부는 아니었다. 엄마에게도 그림 그리기를 사랑했던 10대의 시절이 있었고, 결혼으로 많은 것이 바뀐 혼돈의 20대가 있었다. 커리어를 쌓으며 열심히 공부하며 일했던 30대가 있었으며, 직장 생활로 눈물 마를 날이 없던 40대가 있었다.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작가 정희진은 말한다. ‘아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라고.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자신을 갈대밭에 내던져 놓는 일이라고도. 단지 페미니즘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살아보니, 정말 아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었다. 뭐든 지 다 내어줄 거 같은 신적인, 자식을 위한 존재에서 나약한 인간이 된 엄마를 보는 일은 내게 큰 상처였으니.

결국, 엄마는 직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은 작은 카페의 사장이 되어 있다. 그곳엔 엄마가 사랑하는 그림이 있고, 출퇴근 길에 마시던 좋은 커피가 있다. 온정이 있고, 봄이 있다. 그렇게 그곳에 가면 눈가에 고운 주름이 진 50대의 한 여성이 늘 커피 향처럼 앉아있다. 물론 하루하루 매출이 어쩌니 하는 한탄과 자조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수많은 계절 속에 피어난, 그녀의 약하고 때로는 강한 생명력. 그것을 늘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나는 엄마를 하나의 존재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내 삶의 절대적인 여신에서 작고 가녀린 인간으로 볼 수 있게 된 그녀를 나는 사랑한다.

엄마의 눈물, 크리스마스 날의 자살, , 커피 이 모든 것이 마치 한 편의 영화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란 이해사랑그리고 성장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피어날 수 있는 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분야의 공부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일만큼은 좋아한다. 영화 같았던 그 겨울밤, 그 서사의 주연, 내 엄마의 삶을 이렇게 글로나마 남겨두고 싶다. 여전히 사람은 이상하고 사랑은 모르겠다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삶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꿈 꾸는 한 명의 예술가로서, 좋아하는 영화 속 대사와 코멘트 하나를 적어두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짧은 단편 영화 같은 나의 이야기를 정리하려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증오와 탐욕으로 얼룩져 있다고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세상에는 사랑이 넘친다. 항상 멋지거나 뉴스거리가 되진 않지만 늘 존재한다.”

비행기가 쌍둥이 빌딩에 충돌했을 때 탑승객들이 전화로 보낸 것은 증오나 복수의 메시지가 아니라 사랑의 메시지였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중에서>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는 반드시 그 사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영화가 된다.” 2022.02.10. 윤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