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세계적으로 독보적인 문화예술공항의 주춧돌
[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세계적으로 독보적인 문화예술공항의 주춧돌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2.02.1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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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근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주재근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건물 입구에는 ‘정초(定礎)’ 또는 ‘머릿돌’ 이라고 새겨진 돌을 볼 수 있다. 주춧돌(礎)은 집을 지을 때 기둥을 세우기 전에 터를 다진 후 기둥 놓을 자리에 놓는 네모난 돌이다. 집의 가장(家長)이 집안의 평안과 행복을 위한 새로운 집터를 제대로 잡고 주춧돌을 놓는 것은 매우 중차대한 일이다. 

주춧돌은 이제 집터 뿐만 아니라 조직이나 기관의 정체성, 운영방향, 운영철학 등을 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된다. 

인천 영종도에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서기 전인 2001년까지는 김포국제공항이 외국 주요도시와 연결되는 유일한 하늘의 관문이었다. 인천에 신국제공항건설 계획이 발표되자 반대여론이 들끓었다. “갯벌을 매립해 활주로 만들면 지반이 가라앉는다”. “해일 위험에 노출돼 있는 유일한 공항이 될 것이다.” “막대한 건립예산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 등등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인천국제공항은 이제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자랑스워하고 세계 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국제공항이 되었다.

초기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계공항협의회(ACI) 주관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7년 연속 ‘세계 최고공항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7년 수상 이후에는 더 이상 평가를 받는 것이 무의미해져 평가를 받지 않고 있다. 

2010년 7월4일 국립국악원 대회의실에서 인천국제공항공사와 국립국악원과의 업무협약이 있었다. 당시 이채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님은 인천국제공항을 문화예술공항으로 주춧돌을 놓는데 있어 한국의 전통문화와 예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출입국 동선에 따라 국내외 이용객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신세대 감각의 국악 음원, 종묘제례악, 선유락 등 국악원 대표 공연의 고화질 공연사진, 악기 사진을 제공하고, 국악원 공연단의 인천국제공항에서의 공연등을 하기로 손을 잡았다. 

업무협약식이 끝나고 간담회 자리에서 이채욱 사장님에 대한 느낌은 조선시대 지(智)와 예(藝)를 겸비한 영남 선비를 보는 듯 하였다. 경북 상주 출신으로 삼성물산, GE메디컬시스템스 아시아지역 총괄사장, GE코리아 회장을 지낸 기업인이었지만 문화와 예술을 이야기할 때 부리부리한 눈이 더욱 생동해지는 사장님의 얼굴이 지금도 선연하다.

이채욱 사장님은 개항 10주년을 기념한 2011년 국립국악원, 국립중앙극장,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문화재재단 기관장을 한자리에 모셨다. 고품격 문화서비스제공에 기여한 협약기관과의 감사자리와 구체적이며 지속적 협력방안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보통 업무협약식이 협약에 그치고 실제 실행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채욱 사장님은 본인 스스로 솔선수범하며 간부들과 직원들을 문화예술에 눈뜨게 한 것이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행렬을 재현한 ‘왕가의 산책’을 비롯한 국악상설공연, 수문장 교대식, 클래식, 뮤지컬, 팝페라 등 전통과 현대, 한국과 세계가 연결되는 공연을 한해 5,000여회 실시하고 있다. 

또한, 공항내에 대한민국 국보급 문화재가 복제 전시되고 국가무형문화재 예술품이 특별전시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전 세계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전통 컨텐츠 디지털미디어월을 설치해 최첨단 현대 IT 문화예술을 서비스하고 있다. 

전 세계 대도시, 대규모 공항을 가더라도 이와같은 문화예술을 표방한 도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인천국제공항과 지리적으로 경쟁에 있는 오사카 간사이공항, 상하이 푸동공항, 북경 서두공항, 싱가폴 창이공항과는 비교가 되지 않고 있다. 

이채욱 사장님은 2008년 9월 인천공항에 취임해 유례 없는 두차례 연임을 하고, 2013년 2월 퇴임을 하였다.  

2011년부터 인천국제공항에서는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을 펼처 세계 최고 ‘컬처 포트(Culture Port)란 명성을 얻었다. 인천국제공항은 더욱 성장하고 진화하여 2018년 새롭게 개항한 제2여객터미널을 세계 최고 아트포트(Art Port)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어느 한명의 기관장이 어떻게 주춧돌을 놓느냐에 따라 기관의 위상이 달라지고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만약 이채욱 사장님이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아닌 코레일 사장으로 갔다면 서울역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역들이 단순히 교통이용시설이 아닌 문화예술서비스를 체감하고 향유하는 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며칠 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수문장 교대식에 출연할 단원 선발 심사를 다녀오면서 고 이채욱 사장님이 더욱 그리워 그를 새삼 그려 보았다.

고 이채욱 부회장이 2018년 3월 건강문제로 CJ그룹 퇴진의사를 밝히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저는 진짜 행운아였고 앞만 보고 달려온 세대였다.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도록 많은 젊은이가 용기와 꿈을 갖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