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여성만담가 고춘자 탄생 100주년
[윤중강의 뮤지컬레터]여성만담가 고춘자 탄생 100주년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2.02.1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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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장소팔과 고춘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만담 콤비. 올해는 여성 만담가 고춘자 탄생 100주년이다.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난 고춘자(본명 고임득)의 해방 이전 활동은 확실치 않다. 해방 이후엔 여러 악극단을 전전했다. 코미디언 구봉서가 아코디언을 연주했던 태평양악극단, 훗날 액션스타로 이름을 날린 박노식이 활약했던 백민악극단, ‘눈물의 여왕’ 전옥이 이끌었던 백조악극단의 유명 배우 사이에서 고춘자란 이름이 보인다. 

1955년 3월 15일 저녁 7시 30분, KBS라디오(당시 HLKA)에 장소팔과 고춘자의 만담 제목은 ‘가슴에 무궁화 달고’을 선보였다. 전쟁에 겪은 국민에게 웃음을 선사하면서, 한편 반공정신의 고취하는 내용이다. 이들의 ‘대화만담’은 국영방송국으로서는 더없이 귀중했다. HLKA의 모든 기념일과 공개방송에 장소팔과 고춘자가 빠지는 일이 없었다. 

두 사람의 역할분담은 확실했다. 장소팔의 역할을 엉뚱한 얘기를 하는 것이고, 고춘자는 ‘속사포 말투’로 인기를 끌었다. 예를 들어 술 얘기를 할 때, 고춘자는 한국의 막걸리부터 양주에 이르기까지 20여종의 술을 숨 쉴 틈도 없이 주워섬긴다. 그런 후 “당신은 어떤 술을 제일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장소팔은 “외상술이 제일 맛있죠”라고 하는 식이다. 

KBS에 이들이 출연하는 만담프로에는 서도명창의 민요가 함께 했다. 이것을 결합해서 “민요만담”이라는 프로그램 제목과 장르가 생겨났다. 만담 제목을 살피면 부부만세, 요지경춘색, 이래도저래도, 내 사위는 권투선수, 여름의 이모저모, 콩나물맘보, 똘똘이탐정 등이다. 
코메디나 개그프로그램이 처음엔 인기를 끌다가도 소재고갈 등으로 지적을 받기도 하는데, 이들의 민요만담은 한 편에선 부부싸움의 내용과 시비조가 많다는 지적이 있었음에도, 아주 오래도록 그들은 방송에서 고정프로그램에 출연을 했다. 1960년대에는 그들이 없었다면 공개방송이 불가능했다. 서울의 창경궁(당시, 창경궁)의 벛꽃놀이부터 제주도 서귀포의 공개방송까지, 언제나 장소팔 고춘자 콤비가 함께 했다. 

그 시절 이들의 활약이 궁금하면, 국립영화제작소가 제작한 “내 강산 좋을시고” (1957년,  이형표 감독)를 보면 알 수 있다. 한갑득(거문고)과 김취란(가야금) 이정업(장구)의 반주로 노래하는 이은주 김옥심의 민요, 박귀희의 설장고와 박초월의 농부가까지, 당대 최고의 명창명인과 함께 두 사람의 입담이 재밌다. 두 사람은 “HLKA를 통해서 유명한 장소팔 고춘자”란 이름을 걸고 극장쇼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런 무대에는 박천복, 이은관, 고백화, 김뻑꾹 (김진환) 등의 국악인들이 동반 출연했다.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제작한 '민요잔치'(1961년, 31분)는 추석을 맞아서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노래로 떡을 치고, 웃음으로 국수을 말고,  춤으로 술을 빚어서” 팔도강산을 찾아다니면서 농민을 위로하지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당시 국악전공의 여성으로 구성된 KBS국악연구회의 노래와 춤을 함께 볼 수 있는 귀한 자료이기도 하다. 옹헤야(보리타작소리), 뽕따러가세, 베틀가, 강강수월래와 함께, 이은관 명창와 KBS국악연구회가 함께 부르는 ‘뱃놀이’의 영상을 만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세월이 흐르면서 구봉서와 곽규석(후라이보이)의 콤비도 사랑을 받았고, 송해와 이순주의 남녀 코미디언이 등장을 했지만, 장소팔과 고춘자 또는 김영운과 고춘자 콤비 튝유의 만담은 여전히 사랑을 받았다. 동아방송의 개국 축하 공연에서 장소팔 고춘자 콤비가 사회를 맡거나 만담에 출연을 했다. 동아방송의 13주년 개국쇼 (1976년, 장소팔 고춘자)와 동아방송 송년대잔치 (1977년, 김영운 고춘자)에 이르기까지 고춘자는 여성만담가로서의 건재했다.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에 서울에서 시민 위안 공연이 가장 많이 열린 곳이 남산과 창경궁(당시 창경원). 이 두 곳은 행락철의 인파가 가장 많았다. 남산야외음악당과 창경원 특설무대에 가장 많이 오른 연예인은 누구일까? 30여년을 꾸준히 사랑받은 고춘자이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 우리는 여성 만담가의 고춘자를 기리며 좀 더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잊고 있는 것을 거기엔 살아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