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nterview]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국악) 수상자 장사익 소리꾼 “꿈꾸는 대로 노래하며, 나무와 같이 늘 한자리에서”
[Special Interview]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국악) 수상자 장사익 소리꾼 “꿈꾸는 대로 노래하며, 나무와 같이 늘 한자리에서”
  •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사진 김재성 작가
  • 승인 2022.02.1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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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과 국악 사이의 정체성…“나를 이루는 모든 요소가 음악”
“자연과 삶을 노래한 시인의 문장, 내 노래 영감이자 원천”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애국가 제창, 내 평생 다시없을 영광
통일되면 휴전선서, 전 세계 사람들 지켜보는 가운데 아리랑 우렁차게 부르고 싶어
젊은 국악인 활발한 창작, 국악 발전 이끌 것
2월26일 KBS 불후의명곡 ‘장사익 특별 무대’, 제2의 음악 인생 선보일 것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사진 김재성 작가]“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밤새워 울었지”

어느 5월, 한 남자가 귀갓길에 문득 바람결에 스민 꽃향기를 맡았다. 장미의 모습을 한 향이 만든 길을 따라간 남자는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만다. 향기의 주인은 화려한 장미가 아니라 그 뒤에 숨은 듯 조용히 자리 잡은 하얀 찔레꽃이었다. 그는 털썩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찔레꽃에게서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처지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굴곡진 삶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장사익의 절창은 찔레꽃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슬픈 꽃으로 만들었다. ‘고독’이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 같은 꽃말을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장사익의 노래만으로 전해지는 찔레꽃을 향한 정서는 일관되게 ‘슬픔’이다. 장사익을 찔렀던 찔레꽃은 노래가 되어 따끔한 향기로 자리 잡았다.

▲소리꾼 장사익 ⓒ김재성 작가
▲소리꾼 장사익 ⓒ김재성 작가

장사익은 28년 전, 자신을 노래의 길로 이끈 피아니스트 임동창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무대를 통해 특정 팬층을 확보하기 시작했고, TV출연을 계기로 자신만의 독보적 영역을 구축했다. 하지만 위기도 있었다. 2016년 초 성대 수술로 인해 8개월 동안 노래를 아예 못했던 그는, 이후 성대에 혹이 두 차례나 재발하여 최근까지 병원을 오가며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절대적인 안정이 목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이지만, 장사익은 오늘도 어김없이 찔레꽃의 가시에 손을 내주고 음악을 취한다. 그는 “한 번도 아닌 세 번이나 이상이 생기다 보니 좌절도 많이 했고, 노래를 계속하는 것에 대한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쓴 것을 먹고 나면 단 것이 더 달게 느껴지듯 노래를 하지 못한 시간 역시 값진 자양분이 됐다”라고 말한다.

쉬는 동안 노래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서예’다. 그저 좋아서 흥얼거렸던 그의 노래가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아왔듯이, 붓글씨 역시 어떠한 규범이나 규칙에서 벗어나 낙서하듯 써내려갔고 그의 70인생 철학과 예술세계가 응축된 작품은 2019년, 정동에서 <낙락장서(落樂張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소개됐다. ‘낙서를 즐기는 장사익의 글씨’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 앞서 시와 같은 글을 직접 써서 우리에게 선물했다. 

여기에 더해, 새롭게 그의 흥미를 끈 것은 ‘사진’이다. 거창한 장비 없이 모두가 들고 다니는 휴대폰으로 기록할 뿐이지만, 그의 노래가 그렇듯 일상의 기록은 스스로에게 위로를 줬다. 오는 3월에는 인사동에서 작은 사진전도 개최한다. 주변의 사물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스쳐지나갈 작은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개성을 발휘시키는 그의 시선이 스마트폰에 담긴 것이다. 

올해 나이 74세. 부드러운 미소에 잘 정돈된 하얀 머리를 한 장사익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그저 손을 뻗기만 해도 그리고 입을 열면 더욱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예인(藝人)이다. 부드러운 미소로 창이 큰 집을 감싸 안은 인왕산 자락처럼 생(生)을 굽어다보는 섬세함과 우직함을 동시에 지녔다. 

누군가는 그를 두고 ‘가장 한국적인 대중가수’라 부르고, 또 누군가는 그를 ‘가장 대중적인 소리꾼’이라 칭한다. 전통예술에 정통한 소리꾼이지만 언제나 대중의 옆에서 함께 호흡하기 때문일 것이다. 생을 보듬으며 희노애락(喜怒愛樂)을 함께 나누는 소리꾼 장사익이 노래로 짓는 시가 궁금해, 따스한 빛이 가득 찬 그의 집에 마주 앉았다.

▲인터뷰에 답하고 있는 소리꾼 장사익 ⓒ김재성 작가
▲소리꾼 장사익 ⓒ김재성 작가

제13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국악) 수상을 축하드린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수상의 기쁨을 짧게 들을 수밖에 없어 아쉬웠는데, 상을 받은 소회를 좀 더 자세히 듣고 싶다.

수상 경험이 많은 건 아니지만, (이번 수상은)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받아 더욱 의미가 크다. 움츠렸던 나 자신에게 하나의 계기가 됐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상을 통해 받은 기운으로, 새싹처럼 열심히 활동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많은 상들을 고사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좋아서 하는 음악인데, 그것에 비해 나를 너무 크게 봐주시는 게 송구스러웠다. 나보다 훨씬 뛰어나고, 긴 세월 노력한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그런 분들 앞에 서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기 보다, 긴 세월을 지내다보니 상을 주는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법도 배워가는 것 같다.

수상 당시 “코로나로 인해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팬데믹 이후 일상의 달라짐이나 활동의 변화가 있다면?

최근 2년은 굉장히 혹독한 시간이었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지만, 그보다 성대에 문제가 생겨 세 번째 병원 신세를 지게 됐기 때문이다. 마라톤 선수에게 다리 부상이 치명적인 것처럼, 나에겐 성대의 혹이 그러했다. 한 번도 아닌 세 번이나 이상이 생기다 보니 좌절도 많이 했고, 이 일을 계속하는 것에 대한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쓴 것을 먹고 나면 단 것이 더 달게 느껴지듯 노래를 하지 못한 시간 역시 값진 자양분이 됐다. 처음엔 절망적이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나를 건강하게 잘 돌보며 생명력 있는 노래를 하라는 신호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직 예전처럼 기량을 회복하진 못 했지만 꾸준히 치료를 받으며 행복하게 노래하고 있다. 어려운 시간들로 하여금, 현재 나의 모습과 위치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생각하게 됐다. 말하자면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셈이다.

▲인터뷰 중 생각에 잠긴 소리꾼 장사익
ⓒ김재성 작가

쉬는 동안 나를 위로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글도 쓰고, 사진도 찍으면서.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휴대폰으로 찍는 거다. 지나다니며 내 시선이 닿는 곳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그걸 후에 다시 꺼내어보니 굉장히 흥미로웠다. 주변의 사물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개성을 발휘시켜주는 것에서 재미를 느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3월에는 인사동에서 작은 사진전도 열게 됐다. 지난 2019년 정동의 한 갤러리에서 진행했던 붓글씨 전시회 <낙락장서(落樂張書)>에 이은 두 번째 전시다. 좌절하기보다 끊임없이 나아가면서 새로운 걸 느끼고 받아들이다보면, 속에서 꿈틀거렸던 것들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 같다. 

여러 모로 어려운 시기, 우리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동계올림픽이다.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당시 초등항생 아이들과 애국가를 제창한 무대는 우리나라의 전통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드러내는 무대라 더욱 의미가 깊었던 것 같다. 목소리로 세계에 우리나라를 알리는 기분은 어떠했나.

내 평생 아마 두 번은 없을,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전 세계 많은 국가가 막대한 돈을 들여 올림픽 유치를 위해 애쓰는 것은, 메달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 나라의 능력 그리고 문화를 알리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올림픽 행사 중 가장 중요한 순서는 ‘국가(國歌)’ 제창이라 생각한다. 보통 이런 자리에서 울려 퍼지는 애국가라면 성악가가 턱시도를 입고 나와 근엄하게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데, 왜 내게 기회가 주어졌을까 처음엔 궁금했다. 하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고, 어떻게 표현할 지를 고민했다. 우리나라의 기상을 만방에 알리겠다는 생각으로 평소보다 서너 키 올리고 노래 길이를 두 배 정도 늘려서 천천히, 우렁차게 불렀다. 늘 듣던 애국가와는 다르게 느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금까지 노래해 온 시간 중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된 순간이었다. 질문을 통해 말씀하신 것처럼, 당시 무대는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과거를 겪고 현재를 살고 있는 나,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이 함께 만든 무대가 아닌가. 이런 의미 있는 무대에 설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자부심이 생겼다. 당시 개ㆍ폐회식 총감독을 맡았던 송승환 연출이 나를 추천했다고 들었다. 행사가 끝나고 고마운 마음에 짜장면을 샀다.(웃음)

최근 젊은 세대의 국악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과 더불어 우리나라 국악계 소리꾼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 시대의 국악은, 전통은 전통대로 지켜나가면서 젊은 사람들의 창의작인 활동들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우리의 색깔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친구들은 정말 다양한 노력들을 많이 한다. 옛날에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만 했던 것들을, 그들은 실현해낸다. 모든 음악 장르를 통틀어 창의적 활동이 가장 활발한 것이 국악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악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가 매우 높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전통과 창작을 구분 짓기보다, 대중과 가까운 우리 음악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다면 이는 곧 관심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오는 더욱 발전된 음악들이 국악에 힘을 보탤 것이라 생각한다.

장사익의 노래가 국악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도 있었는데,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실은 정체성이랄 게 없다.(웃음) 국악을 가장 오래 공부했지만, 대중음악과 서양음악도 공부했고 좋아하기 때문에 아마 전부 어우러진 음악이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 눈엔 독도가 조그마하게 보이지만, 바다에 가려진 저 아래는 울릉도보다 더 크다고 한다. 나의 음악도 마찬가지다. 대중음악을 하고 있지만 그 저변에는 국악적인 요소들이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995년 발표한 앨범 <하늘가는 길>에 수록된 ‘국밥집에서’라는 노래가 있는데 첫 머리는 대금 산조와 같고, 중간은 희망가가 흘러나오며 뒷 소절로 가면 진도아리랑 가락이 펼쳐진다. ‘아버지’과 ‘꽃구경’에는 판소리의 아니리가 들어가 있다. 이처럼 내가 만들고 부르는 노래는 어느 장르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나를 이루는 모든 음악적 요소가 포함된 입체적인 형태다. 

굴곡 많은 세월을 지나오며 가까스로 ‘노래하는 삶’을 찾은 덕분에, 남들과는 다른 감정과 좀 더 편안한 전달력을 가지게 된 것 같다. 흔히들 음악은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있지 않나. 계절에 따라 날씨가 매일 달라지듯 우리의 기분 역시 마찬가지다. 안타깝게도 삶은 행복한 순간보다 고통스러운 순간이 더 많다. 하지만 우리의 곁에는 예술이 있기에 이를 이겨내고 버텨낼 수 있다. 나의 노래로 많은 분들의 슬픔이 기쁨으로 정화되길 바란다.

▲인터뷰에 답하고 있는 소리꾼 장사익 ⓒ김재성 작가

작사ㆍ작곡도 많이 하고 있다. 창작의 영감은 어디서 얻고 있나?

내가 하는 건 사실 작곡이라기보다 엮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가장 좋은 가사는 시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시인들처럼 멋진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야 있지만, 어쭙잖게 하느니 안 하는 게 낫다. 잘 찾아보면 내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시들을 만날 수 있다. 시를 읊다보면 멜로디가 나온다. 내가 마음대로 흥얼거리면 친구 임동창이 옆에서 피아노로 멜로디를 만들어준다. 새로 발표할 ‘뒷짐’이라는 곡도 시를 읽다가 영감을 얻었다. ‘아무래도 외로운 가 봅니다. 한 손으로 남은 길 가기가’라는 가사가 굉장한 울림을 줬다, 외롭게 혼자 가는 것보다 함께 가자는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형식을 완벽하게 갖춰야만 뛰어난 음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가득 차있다 보면 오히려 듣는 이의 감상이 들어갈 틈이 없지 않겠나. 내가 느낀 것을 어떠한 형태로 만들어 전달할 수 있고, 그게 온전히 전해진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다. 

70대를 맞으며 <자화상 七(칠)> 무대를 올렸다. 다가올 80대와 90대를 위해 어떤 밑그림을 그리고 있나?

며칠 전, KBS ‘불후의 명곡’이라는 프로그램 녹화가 있었다. 사실 제작진이 정말 오랫동안 출연을 요청했고, 그동안 계속 고사를 해왔다. 그런 자리 자체가 나는 불편하고 민망하다. 내 노래로 경연을 한다니. 그래서 원래 경연으로 진행되는 방식인데, 이번엔 경연 없이 내가 내 노래를 부르는 구성으로 변경해, 출연을 결정했다. 게스트는 딱 둘이 나온다. 최백호 선생님과 소향 씨. 원래도 방송 노출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번 출연은 성대 문제로 공백기를 가진 후 정말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는 거라 어떻게 나올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1시간 30분 넘는 시간 동안 그동안 발표했던 내 노래들을 쭉 부르다보니, 이게 지금까지 활동에 대한 나름대로의 결산이 아닐까 싶었다. 막간 홍보를 하자면, 이달 26일에 방송 예정이라고 한다.(웃음)

▲소리꾼 장사익 ⓒ김재성 작가
▲소리꾼 장사익은 KBS ‘불후의 명곡’ 특집 방송 녹화가 그간의 활동에 대한 결산이라 말한다 ⓒ김재성 작가

더불어, 작년과 재작년에 코로나로 인해 취소됐던 공연을 오는 10월 올리기 위해 준비 중이다. 원래 문명이라는 건 인간이 자연과 싸우면서 그리고 인간들끼리 서로 만나면서 발전해온 것인데, 요즘은 반대로 서로 멀리하고 단절해야 생존하는 시대가 됐다. 내가 좋아하는 마종기 시인의 ‘우화의 강’이라는 작품이 있다. 굉장히 긴 시인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것은 사실 죽고 사는 일보다 어렵다고 생각한다. 점점 서로를 멀리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이번 공연 타이틀은 ‘사람이 사람을 만나’로 정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 보는 삶, 자연, 인생을 노래로 들려주는 자리가 될 것 같다.

이제까지 힘에 부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열심히 달려왔다면, 지금부터는 조금 힘을 빼고 편하게 노래해보려 한다. 나이 먹은 티를 좀 내면서. 기교보다 진정성에 더 집중하고 싶다. 이번 방송 녹화가 나에겐 변화의 한 지점이 될 것 같다. 

▲인터뷰에 답하고 있는 소리꾼 장사익 ⓒ김재성 작가
▲소리꾼 장사익 ⓒ김재성 작가

그간 무대가 수없이 많았다. 언젠간 해보고 싶은 ‘꿈의 무대’가 있다면?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꿈의 무대가 있다.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면, 휴전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손에 든 가위로 철조망을 잘라내고 만들어진 길 위를 오토바이가 큰 소리를 내며 질주하는 모습을 꿈꾼다. 그 시끄러움을 뚫고, 전 세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리랑을 우렁차게 부르고 싶다. 

장사익의 소리는 판소리, 대중가요, 클래식, 재즈, 퓨전 등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기ㆍ승ㆍ전ㆍ결을 가진 독자적 ‘서사시’라 칭해지곤 한다. 지금까지 음악에 오랜 세월을 담아왔지만, 아직 노래하지 못 한 사연이나 앞으로 담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특별한 이야기라기보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자연스럽게 늙어가면서 나와 주변사람들의 시선을 노래에 담고 싶다. 노래하는 것은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고, 내가 부른 노래들은 곧 나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인 셈이다. 세상 모든 존재는 탄생한 이유가 있다. 나도 그렇고, 저 산에 핀 자그마한 꽃 한 송이도 그렇다. 너무 작아서 사람들의 발에 수도 없이 밟히는 꽃들은 사실 산중의 무서움을 이겨낸 대단한 존재들이다.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끊임없이 생존을 위한 전쟁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무서운 세상에서도 겁도 없이 피어나는 꽃처럼’ 자리를 잡고 자신을 피워내는 존재들을 위한 노래를 계속 하고 싶다.

▲소리꾼 장사익 ⓒ김재성 작가
▲테라스로 나가면 거대한 바위가 장사익의 집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김재성 작가

어떤 예술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딱히 생각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런 걸 염두 해두고 살진 않을 것 같다. 그저 (바람이) 부는 대로 맡기면서 살 뿐이다. 자연을 닮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나무는 늘 한 자리에서 묵묵히, 숲을 이루며 산다. 이처럼 나도 나무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