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진의 문화잇기] ‘보편성 잃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세계적 위상 지켜내길
[박희진의 문화잇기] ‘보편성 잃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세계적 위상 지켜내길
  • 박희진 학예사‧칼럼니스트
  • 승인 2022.02.1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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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진 학예사‧칼럼니스트
▲박희진 학예사‧칼럼니스트

일본 정부가 지난 1일,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佐渡)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추천했다. 이제 1년 6개월 간 유네스코 자문기관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에서 심사를 거쳐 내년 여름이면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갈수록 대담해지는 일본의 역사왜곡, 일본의 안하무인(眼下無人) 역사전쟁이 또다시 유네스코를 국제사회 외교 분쟁의 중심에 세웠다. 

일제 강점기의 일본 문화유산 등재에 대한 일본의 보이지 않는 압박은 ‘조선인의 무덤’으로 불리는 일본 산업시설 군함도(軍艦島) 마저 근대 유적지로 인정받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바 있다.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철강, 조선, 탄광’이란 주제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三菱重工業長崎造船所) 등의 7개 시설들도 조선인 5만여 명이 강제 동원됐던 곳이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이번에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추천한 사도광산(佐渡金山)은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의 사도 섬에 있는 금산(金山)이다. 1601년 금맥이 발견되면서 30년간 40톤 정도의 금을 채굴할 만큼 세계 최고의 광산으로 알려졌다. 1896년 메이지 시대 민간 기업 미쓰비시에 매각되면서 전쟁 물자를 제공하는 광산으로 사용되었고 1939년 이후 2차 세계대전에 조선인 1000여 명이 강제 노역을 강요당했다는 곳이다. 당시 조선인의 강제노역은 태평양전쟁 시기 전쟁의 물자 확보에 활용되었고 1989년 폐광 후 현재는 관광지로 운영 중에 있다.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는 일본 사도광산의 전시모습 (사진 출처 / http://www.sado-kinzan.com)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는 일본 사도광산의 전시모습 (사진=사도광산 공식홈페이지)

일본정부는 이러한 사도광산의 어두운 역사를 교묘하게 벗어나 일제강점기를 제외한 에도시대(1603~1868년) 유적지로 대상의 역사기간을 한정해 일본 고유의 전통기술로 채굴하는 유례없는 광산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사도광산을 금광 유적군으로만 소개하고 과거 일본인도 조선인도 모두 합법적으로 동원됐기에 강제노동 자체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강제징용 논란을 피하기 위한 대상 기간을 한정한 일본정부의 꼼수 배경이다. 하지만 현재 관광지로 운영되고 있는 사도광산의 모습 또한 외관은 물론 내부 채굴 장소에 이르는 모든 길이 근대 이후 메이지 시대에 채굴현장을 보존하고 있어 사도광산의 역사적 가치를 애도시대로 한정짓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가 있어 보이는 상황이다.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결과는 옹졸한 일본의 양심을 잃은 자국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논란과 함께 유네스코에 날로 가중되는 재정난을 해결해주는 일본이 가하는 보이지 않는 ‘힘의 논리’로 짐작된다. 세계유산의 보편적 가치와 역사적 사실에 양심을 따르는 유네스코의 원칙주의를 지켜낼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메이지시대 채굴현장이 보존된 사도광산의 전시모습
▲메이지시대 채굴현장이 보존된 사도광산의 전시모습 (사진=사도광산 공식홈페이지)

 일본은 2015년 중국이 난징대학살 기록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자 정치적 편향성을 이유로 투명한 심사를 요구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심사 제도를 개편했다. 같은 해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당시 일본은 국제적 비난 여론을 의식해 군함도에 한국인이 강제 동원된 사실을 인정하고 알리겠다고 약속했지만 등재 이후 여전히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2017년 한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도 일본의 반발은 컸고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를 본 한국 중국 등 8개국 15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해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할 때도 유네스코 회원국으로서의 분담금 감축을 전가의 보도로 들고 나오며 압박해왔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문화의 뿌리를 찾고 나아가 민족의 정체성과 자부심, 애국심 등을 키워간다. 민족이 전제가 되어 성립된 민족국가(民族國家)에서는 자국의 역사를 뿌리내려 국민의 자부심으로 국가 존립의 근간을 삼기 때문에 크든 작든 역사에 대한 민족주의적 해석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부끄러운 역사는 감추게 되고, 자부심을 느꼈으면 하는 역사는 과장하는 것이 민족국가의 숙명이라고는 하지만 현재의 국가 문제를 유리하게 해결하기 위해서 주변국들과의 마찰도 불사하고 자신들의 입장에서 과거의 사실들을 왜곡하거나 없었던 일로 치부하는 일본의 만행에 국제사회가 함께 대응해야 할 때이다. 

국제사회를 농락하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일본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며 ‘세계유산의 보전을 통해 평화를 증진한다’는 유네스코 설립 취지대로, 한국 및 동아시아 국가들의 반발과 분노를 야기하는 일본의 외교적으로, 정치적으로 세계유산을 악용하는 만행에 대하여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