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SeMA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 빛이 품은 다양한 이야기
[전시리뷰] SeMA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 빛이 품은 다양한 이야기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2.1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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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고찰하는 근‧현대 미술
종교화-과학-우주의 빛을 조망
백남준 ‘촛불 TV’, 서울 전시만의 특성 보여줘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빛’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얼마나 될까? 과학의 시각으로 바라본 빛, 표현의 방법으로 탐구하는 빛 등 단편적인 연상만 이어질 뿐, 풍부한 이야기 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인간의 삶과 너무나 가까워 특별하기 인지 할 수 없었던 물질의 면면을 세세하게 더듬어보는 전시가 열렸다. 서울시립미술관(관장 백지숙)과 영국 테이트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이다. 전시는 북서울미술관에서 오는 5월 8일까지 개최된다.

▲ 존 브렛(1831-1902), 도싯셔 절벽에서 바라본 영국 해협, 1871 년, 캔버스에 유채. 테이트미술관 소장. 브렛 여사 1902년 기증 (사진=SeMA 제공)
▲ 존 브렛(1831-1902), 도싯셔 절벽에서 바라본 영국 해협, 1871 년, 캔버스에 유채. 테이트미술관 소장. 브렛 여사 1902년 기증 (사진=SeMA 제공)

2019년 《데이비드 호크니》전 이후 선보이는 서울시립미술관의 두 번째 ‘해외소장품 걸작선’은 영국 테이트 미술관 소장품 110여 점을 공개한다. 오랜 시간동안 전 세계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아 온 작가 43명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전시 개막 전부터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은 윌리엄 블레이크,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클로드 모네, 바실리 칸딘스키, 제임스 터렐 등 18세기부터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모두 접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빛》 특별전은 중국 상하이 푸동미술관에서 개관 전시로 개최한 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여는 영국 테이트미술관의 순회 전시다. 전시는 공간마다, 조금씩 다른 구성을 띄기도 하는데 서울 전시에서 달라진 점은 백남준 아트센터와 협업이다.

《빛》전은 전시 가장 맨 앞에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소장하고 있는 백남준 <촛불 TV>를 배치했다. 이는 서울시립미술관 《빛》 전시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작품이다. 백남준 <촛불 TV>는 구형 철제 TV 안에 촛불 하나가 불을 밝히고 서 있는 작품이다. 철제 TV 안 촛불은 실제로 매일 불을 붙이길 반복해야 한다. 이 작품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상징되는 TV 안을 모두 비우고, 그 안에 인류의 가장 첫 번째의 빛이었던 불을 밝힘으로써 인간이 중심이 돼야 하는 기술의 방향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 한 편으로는 인류 최초의 빛에서 지금 현대의 빛 까지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SeMa에서는 두 번째 의미에 집중해 작품을 선보인다.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아담을 심판하는 하나님, 1795년, 양각 에칭, 종이에 잉크와 수채, 43.2x53.5cm. 테이트미술관 소장. 그레이엄 로버트슨 1939년 기증. N05063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아담을 심판하는 하나님, 1795년, 양각 에칭, 종이에 잉크와 수채, 43.2x53.5cm. 테이트미술관 소장. 그레이엄 로버트슨 1939년 기증. N05063 (사진=SeMA 제공)

‘빛’으로 경험하는 우리의 시간

전시는 ‘빛’을 주제로 16가지의 공간을 구성했다. ‘빛, 신의 창조물’을 시작으로 ‘빛, 연구의 대상’, ‘릴리안 린, 빛의 물리학을 구현하다’, ‘빛의 인상’, ‘빛의 흔적’, ‘빛과 우주’, ‘제임스 터렐, 빛으로 숭고함을 경험하다’ 등으로 이뤄졌다. 전시 공간들은 큰 흐름은 연대기적으로 구성돼 있지만, 각각의 공간에 배치된 작품 면면을 살펴보면 각기 다른 시대의 작품이 나란히 배치돼 있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역사 속에서 점점 변화해 온 ‘빛’의 큰 흐름을 담아내면서, 종교화와 미술사 흐름 속 빛의 변화와 같은 상대적으로 작은 변화의 흐름까지 아우르는 기획이다.

백남준의 <촛불 TV> 이후 볼 수 있는 첫 번째 공간, ‘빛, 신의 창조물’ 섹션에선 윌리엄 블레이크, 아니쉬 카푸어 등 종교적 의미의 빛을 탐구한 예술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 공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종교’에 관한 과거와 현재의 시각이다.

아니쉬 카푸어, 이쉬의 빛, 2003, 유리섬유, 수지, 래커칠, 315x250x224cm. 테이트미술관 소장. 테이트국제협의회 2005년 기증. T12204
▲아니쉬 카푸어, 이쉬의 빛, 2003, 유리섬유, 수지, 래커칠, 315x250x224cm. 테이트미술관 소장. 테이트국제협의회 2005년 기증. T12204  (사진=SeMA 제공)

아니쉬 카푸어의 <이쉬의 빛>은 유리섬유를 사용한 거친 외면과 윤이 나는 유리와 같은 암적색의 내부를 가진 구체형의 작품이다. 이 작품을 마주하면 관람객은 암적색 표면에 거꾸로 비치는 자신의 모습과 첫 번째 공간에 전시돼 있는 빛을 담아낸 과거 종교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재의 작품이 작품을 마주하고 있는 나와, 과거의 그림 속 빛을 모두 품어내는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시각적 경험은 ‘빛’이라는 물질이 관통해 온 인류사를 생각해볼 수 있는 장을 열어준다.

같은 주제인 성경 속 ‘대홍수’ 그렸음에도 다른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제이콥 모어의 <대홍수>(1787년작)와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의 <대홍수>(1805년전시)를 비교해보는 것도 전시를 느낄 수 있는 재미 중 하나다. 작품 속에서 빛이 어떻게 사용됐고, 거대한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표현됐는지를 비교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윌리엄 터너, (왼)빛과 색채(괴테의 이론)-대홍수 후의 아침, 창세기를 쓰는 모세, 1843년 전시, 캔버스에 유채, 78.7x78.7cm. N00532. (오)그림자와 어둠-대홍수의 저녁, 1843년 전시, 78.7x78.1cm. N00531
▲윌리엄 터너, (왼)빛과 색채(괴테의 이론)-대홍수 후의 아침, 창세기를 쓰는 모세, 1843년 전시, 캔버스에 유채, 78.7x78.7cm. N00532. (오)그림자와 어둠-대홍수의 저녁, 1843년 전시, 78.7x78.1cm. N00531 (사진=SeMA 제공)

이어지는 두 번째 공간 ‘빛, 연구의 대상’과 세 번째 공간 ‘릴리안 린, 빛의 물리학을 구현하다’는 과학의 시각으로 바라본 ‘빛’ 다루는 공간이다. 특히 두 번째 공간 ‘빛, 연구의 대상’ 섹션은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의 작품으로만 채워진 공간으로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쉽게 경험해 볼 수 없는 공간이다. 두 번째 공간에서 터너의 ‘빛’에 대한 연구가 담긴 작품들이 공개된다. 대학교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빛’을 알려주기 위해 사용한 스케치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당시의 작가들이 어떻게 빛을 접하고, 작품에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흐름을 가지고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빛을 담아낸 인상주의 실험

세 번째 공간을 나가서 만나볼 수 있는 공간으로 인상주의 작품을 전시한 ‘빛의 인상’ 공간이 있다. 이 공간에는 《빛》 특별전 포스터에도 사용된 존 브렛의 <도싯셔 절벽에서 바라본 영국 해협>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존 브렛은 자신의 범선을 실제 소유하고 항해를 할 정도로 바다에 관심이 많았고, 해양화를 많이 그른 작가다. <도싯셔 절벽에서 바라본 영국 해협>에는 하늘에서 내리쬐는 빛의 선을 아주 세밀하게 표현했다. 빛 뿐 만아니라, 구름과 바다 물결의 표현 역시 너무나 섬세하게 그려냈다. 작품이 전시된 공간은 실제로 밝은 등이 있는 공간인데, 마치 전시장의 빛이 그림으로 비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빛의 순간을 화폭 위로 오롯이 담아냈다.

▲클로드 모네(1840_1926), 엡트 강가의 포플러, 1891년, 캔버스에 유채. 테이트미술관 소장. 예술기금 1926년 기증
▲클로드 모네(1840_1926), 엡트 강가의 포플러, 1891년, 캔버스에 유채. 테이트미술관 소장. 예술기금 1926년 기증 (사진=SeMA 제공)

이 공간에선 클로드 모네의 작품을 비롯해 프랑스와 영국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빛이 머문 찰나의 순간을 잡아채 화폭 위에 풍부한 색깔로 담아낸 그림들은 당시 미술계가 빛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느껴볼 수 있게 한다. 더불어,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만으로도 관람객들에게 큰 만족감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인상주의 그림이 전시 된 공간에서 특이한 작품이 하나 전시돼 있다. 쿠사마 야요이의 <지나가는 겨울> 이다. 사각형의 거울과 교차된 거울로 서있는 설치 작품은 전시 공간 속 작품을 색다르게 볼 수 있는 시선을 만들어낸다. 걸음을 옮기면 서로 다른 회화가 중첩된 순간도 마주할 수 있고, 전시장에 있는 지금의 빛 또한 경험해볼 수 있게 한다. 쿠사마 야요이의 <지나가는 겨울>은 회화의 형태인 작품을 좀 더 다층적으로 경험하게 해, 빛이 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변화의 지점을 생각해보게 한다.

▲야요이 쿠사마, 지나가는 겨울, 2005, 거울과 유리, 180x80.5x80.5cm. 테이트미술관 소장. 아시아태평양작품구입위원회 기금으로 2008년 구입. T12821(왼)
▲야요이 쿠사마, 지나가는 겨울, 2005, 거울과 유리, 180x80.5x80.5cm. 테이트미술관 소장. 아시아태평양작품구입위원회 기금으로 2008년 구입. T12821(왼) (사진=SeMA 제공)

우주, 실내, 명상의 대기…빛의 지금

종교화에서 인상주의 회화, 풍경화를 거친 빛의 탐구는 실내 속 빛의 공간을 조명한다. 2층 전시실 ‘실내의 빛’ 공간에선 필립 파레노의 <저녁 6시>라는 카페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은 전시장에서 단순 바닥 인테리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작품은 언뜻 보기에 천장에서 빛을 쏘아서 창틀을 형상화 한 듯 하지만, 이 작품은 실제로 카페트를 자르고 끼워 넣어서 만든 작품이다. 필립 파레노의 <저녁 6시>와 어우러져 전시된 작품은 빌헬름 함메르쇼이의 <실내>라는 작품이다. 한 여인의 뒷모습을 그려낸 이 작품은 보는 이에게 묵직한 고요함과 안정을 전한다. ‘실내의 빛’ 공간부터는 우리 일상 속의 빛이 어떻게 작품 속으로 투영되고 있는 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다.

▲'실내의 빛' 전시 공간
▲'실내의 빛' 전시 공간, 바닥 카페트에 필립 파레노의 <저녁 6시>가 자리하고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외에도 ‘빛과 우주’ 공간에선 올라퍼 엘리아슨의 <우주 먼지 입자>로 빛이 무한하게 뻗어나가는 광경을 경험해볼 수 있고, 마지막으로 ‘제임스 터렐, 빛으로 숭고함을 경험하다’라는 공간에선 대기의 빛을 지상에서 경험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제임스 터렐의 <레이마르, 파랑>은 무한한 파랑의 공간으로 관람객들을 이끌어 가는 경험을 제공한다.

▲올라퍼 엘리아슨, 우주 먼지입자, 2014, 스테인리스강, 반투명 거울 필터 유리, 강철줄, 전동기, 조사등, 직경 170cm. 테이트미술관 소장. 니콜라스 세로타 경을 기리며 작가가 2018년 기증. T15131
▲올라퍼 엘리아슨, 우주 먼지입자, 2014, 스테인리스강, 반투명 거울 필터 유리, 강철줄, 전동기, 조사등, 직경 170cm. 테이트미술관 소장. 니콜라스 세로타 경을 기리며 작가가 2018년 기증. T15131 (사진=SeMA 제공)

근대 명화와 동시대 설치미술 까지 아우른 거대한 규모의 기획전은 ‘빛’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꺼낸다. 국내에서 쉽게 보기 힘든 작품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으로 전시장을 찾았다. 하지만, 전시 관람 이후엔 작품보다 미술사 전체에 흐르고 있는 거대한 ‘빛’의 흐름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백지숙 SeMA 관장은 《빛》 특별전이 어린이‧청소년 관람객에게 학습의 기회가 될 수 도 있을 것이란 뜻을 밝힌 바 있다. 전시는 110여 점의 작품으로 미술사의 큰 흐름을 조망하고 있다. 공간 별로 갖고 있는 분위기가 달라, 자칫 흐름을 놓치면 방황할 수도 있지만 개별의 전시 공간이 가진 매력의 일부만 느껴도 충분한 매력을 경험해볼 수 있다.